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16)
스파이로 의심되는 것과 별개로 귀빈들은 타국의 왕자와 성자 후보라는 가볍게 볼 수 없는 신분의 인물이다. 심지어 3황자 전하까지 영주성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니 부인의 부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겠지.
애초에 그런 귀빈들은 타일글레헨 백작령에 올 일이 없는 게 정상이지만, 설령 오더라도 영지의 주인인 내 초대로 와야 마땅했다. 초대자라는 부담과 책임을 부인이 짊어지게 했으니 그동안 마음이 편치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폐하께서 적당한 때에 돌려보내라고 하셨으니 이제 부인도 마음이 놓일 것이다.
“돌려보낸, 다고요?”
“그렇소. 귀한 분들을 우리가 너무 붙잡고 있는 것도 실례지 않소. 일개 백작령보다는 제도에 있는 것이 좋겠지.”
그렇기에 부인에게 직접 소식을 전했고,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란 것인지 부인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동안 고생 많았소, 부인.”
“빌리. 칼과 에리히도 돌아가는 건가요?”
“그렇지. 에리히는 귀빈들의 동료고, 칼은 업무로 바쁘지 않소.”
당연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부서도 아닌 감찰부를 맡으며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의 신뢰를 받고 있는 아이다. 지금까지 영지에 붙잡고 있던 것이 미안할 정도.
게다가 그제 호르펠트 백작이 바뀌지 않았나. 제국의회 의원이 바뀌는 사건이 터졌으면 필연적으로 감찰부가 움직이게 된다. 오히려 귀빈들이 짐을 싸기 전에 먼저 제도로 보내야 할 수준이다.
“칼은 오늘 당장이라도─”
“안 돼요.”
부인은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조금 놀라웠다. 귀족의 품위와 체통을 중시하는 부인이 타인의 말을 끊는 일을 하다니. 물론 그럴 이유가 있으니 그런 것이겠지만.
“아직, 아직 안 돼요. 돌려보낼 수 없어요.”
“폐하와 제국이 그 아이에게 거는 기대가 크오. 우리의 자식이지만 제국의 신하이기도 하지. 그 아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내야 하오.”
“칼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에요.”
“부인.”
드물게 고집을 부리는 부인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면서도,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는 것이 결혼 전의 부인을 보는 것 같아 묘하게 반갑기도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내 개인적 추억에 휩쓸려 나라의 일을 허술하게 할 수는 없지 않나. 부인을 잘 설득하는 수밖에.
“이제 겨우 칼과 함께 할 아이를 찾았어요.”
하지만 방금 말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부인, 그게 무슨 말이오.”
“말 그대로예요. 칼의 짝으로 맞는 아이를 찾았어요.”
“당장 돌려보내시오.”
아무래도 부인이 그 사이에 이상한 일을 진행 중이었던 것 같다. 짝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부인을 제지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우리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일.
물론 부인을 탓할 생각은 없다. 부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내 잘못이고, 부인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은 내 잘못이지.
“빌리!”
차라리 내가 칼에게 말하는 것이 빠를 것 같아 몸을 돌리자 부인의 고성과 함께 무언가 잡아끄는 것이 느껴졌다.
급히 뒤를 돌아보자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얼굴을 붉게 물들인 부인이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겨우, 겨우 그 아이와 웃을 수 있는데! 나한테서 자식을 두 번이나 뺏는 건가요!?”
“부인, 그게 무─”
그 뒤는 멱살이 잡혀서 제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손님들을 보내는 건 며칠 후로, 칼도 그때 같이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부인의 손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폐하께서도 적당한 때라고 하셨지 당장이라고 명하신 건 아니니.
“각하.”
“괜찮네.”
집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집사장이 어색한 눈으로 쳐다봤다. 확실히 지금 꼴이 말이 아니기는 하겠지.
“이번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요! 만약 저한테 아무 말 없이 칼을 돌려보내면 저도 친정으로 돌아가겠어요!”
부인이 그렇게 강한 줄은 몰랐다. 아무리 제국백이 되며 군에서 물러난 지 꽤 됐다고 하지만, 2년 전까지는 참전도 한 몸이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멱살이 잡힐 정도는 아닌데.
일단 집사장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손짓을 하고 집무실에 들어갔다.
‘짝이라.’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혼담은 알아서 하라는 말을 꺼낸 이후로 부인도 칼의 혼담에 관여한 적은 없다. 그런데 갑자기 짝이라니.
그 아이가 짝을 만들 여유가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마음에 품었던 상대를 잃었는데. 그렇게 떠나 보냈는데.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답답한 심정을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사실 알고 있다. 어디서부터 일이 이렇게 꼬였는지 정도는 잘 알고 있지. 모를 리가 있겠나.
4년 전, 대토벌 전쟁부터 무언가 꼬이기 시작하더니 이렇게 흘렀다.
“감찰부도 참전했다는군. 4과가 왔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감찰부는 국내를 담당해야지.”
황제 폐하의 검이지만 국외가 아닌 국내를 담당하는 감찰부. 그렇기에 장남인 칼을 감찰부에 넣고 나는 전쟁에 참전했다. 그것이 효율적이고, 안전하며, 확실한 방법이니까.
하지만 전쟁이 이상하게 진행되며 감찰부도 전쟁에 개입했다. 막 감찰부의 관료가 된 칼도 북방에 오게 됐다. 미칠 노릇이었다. 내가 바란 것은 살아서 제국을 위해 일할 아들이지, 죽어서 명성을 높일 영웅이 아니다.
설령 누군가 죽는다면 아비인 내가 죽는 것이 맞다. 후대를 위해 선대가 희생하는 것, 그것이 크라시우스다. 그렇기에 그 아이를 조금이나마 안전한 곳으로 넣은 것인데.
‘살아서 망정이지.’
그동안의 훈련이 성과가 있었는지, 다행히 그 아이는 종전까지 살아 남은 것은 물론 큰 공훈도 세웠다.
역시 자식들을 철저하게 훈련시키는 것이 맞았다. 어떠한 감정도 개입하지 않은 채 훈련을 진행하는 것이 맞았다.
부족했던 나는 부친의 실망을 받으며 자랐다. 부친의 기대가 실망, 분노,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을 겪었다. 그때의 무력감과 자괴감은 가볍지 않았지.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는 감정의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부족하지 않은 철저한 훈련으로 나 같은 실패작으로 키우지 않았다. 그것이 그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
설마 그 증명을 전쟁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살아서 망정이야.’
정말 살아서 망정이다. 감찰부는 능력과 충성을 증명하고, 경험을 쌓기 위해 보낸 자리였다. 그 선택이 이렇게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나.
때문에 에리히는 관직이 아닌 아카데미로 보냈다. 만약 관직으로 보냈다가 칼 같은 일이 터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자식의 목숨으로 난데없는 도박을 하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
게다가 에리히마저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위기를 겪는다면 부인이 버틸 수 없겠지. 이미 나와 칼이 나란히 전쟁터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혼절까지 했었다고 하니까.
‘에리히만은.’
이미 나와 칼은 진창을 굴렀지만, 에리히만은 멀쩡해야지. 그리고 에리히만은 칼처럼 비극을 겪지 않아야지.
칼은 누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전장에서 짝을 찾아 비극을 맞이했다. 아카데미에서 지내는 에리히는 그런 일을 겪지 않겠지.
‘부인도 괜한 짓을.’
그쪽으로 생각이 뻗으니 다시 부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칼의 짝이라, 그건 우리가 개입해서 될 일이 아니거늘.
그 아이가 스스로 상처를 털어내고 결정할 일이다. 그 과정에서 인위적인 무언가가 있어서는 안된다. 애초에 크라시우스의 선대는 후대가 스스로 나아갈 수 있게 단련을 시키는 스승이지, 인생에 간섭하는 참견꾼이 되어서는 안된다.
“겨우 그 아이와 웃을 수 있는데! 나한테서 자식을 두 번이나 뺏는 건가요!?”
하지만 부인의 울음 섞인 외침을 떠올리니 차마 부인에게 크라시우스의 방식을 강요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부인이 지금은 크라시우스의 성을 쓰기는 하지만 원래는 아라스 가문이지 않나. 부인에게 너무 크라시우스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도 곤란하겠지.
이미 아이들의 양육을 크라시우스의 방식으로 하는 것을 따라준 부인이다. 그리고 그 양육은 아이들이 장성하며 끝났고. 이 이상 요구하는 것은 욕심이다.
그래, 이제는 부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게 맞을 거다.
***
또 다시 어머니의 부름을 받았다. 하루에 두 번이나 부른 적은 없었는데.
‘무슨 일이지?’
어머니는 차라리 조용하게 지내는 편이지, 의미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편은 아니다. 갑자기 부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기는 하다는 것.
그런데 나만 두 번 부르는 것보다 나 한 번, 에리히 한 번 부르는 것이 낫지 않나 싶다. 어머니, 에리히는 관심 없으세요?
‘장남으로 태어난 죄인가.’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장손에게 언제 결혼하냐고 공세가 몰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 같기도 하다. 내가 솔로인 이상 어머니의 시선이 에리히까지 흘러갈 일은 없겠지.
에리히는 나한테 고마워 해야 한다. 승산이 희박한 쟁탈전에서 이기라고 응원도 해줘, 그 쟁탈전 동안 어머니의 어그로도 혼자 끌어줘. 세상에 이런 형이 어디 있나.
이러고도 루이제와 이어지지 못하면 그건 하늘이 정한 팔자겠지.
“어머니.”
“왔니? 다시 불러서 미안하구나.”
“괜찮습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습니다.”
사실 방금 전까지 집사장과 서류 놀이를 하고 있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자리에 앉자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어머니가 보였다. 어딘가 불안하고 초조한 것 같은 모습.
슬쩍 시선을 돌리니 시녀장도 그리 편안한 모습은 아니었다. 미묘하게 굳은 입꼬리를 보니 시녀장도 마음이 편치는 않은 것 같은데.
‘뭐지.’
영지에 도착한 첫날부터 저러면 이해라도 가는데, 갑자기 저럴 이유가 있나?
“칼.”
“예, 어머니.”
잠시 찻잔을 매만지던 어머니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알아서 잘할 거라 믿지만, 그래도 스물이 넘었으니 약혼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
아. 이런 이유구나.
마르게타가 옆에 있는 상태로 압박해도 내가 움직이지를 않으니, 이젠 직접적으로 말하는 걸로 방향을 바꾼 것 같다.
이럴 때는 내가 장남인 게 서글프다. 위로 남매 하나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