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2)
제 12화
원치 않았던 주연 집결 – 3
약 이틀 동안 아카데미 교직원 모두가 자기 손에서 터지지 않기를 바라며 돌리고 돌린 폭탄은 내가 수거하여 터뜨렸다.
“고문을 맡은 칼 크라시우스다. 전부 구면이군. 잘 부탁한다.”
앞으로 고문이라는 명목으로 합법적 감시가 가능해진 제과 동아리 부원들을 바라보았다. 마냥 해맑게 웃는 루이제, 떨리는 동공을 주체하지 못하는 에리히, 늘 그렇듯 웃는 얼굴인 아인테르. 이제 여기서 딱 셋이 더 늘어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절로 웅장해진다.
“앞으로 자주 보고 지낼테니 편하게 부르려고 하는데, 혹시 시간을 두면서 친해지고 싶은 사람 있나?”
앞으로 반말로 통일할 건데 이의 있냐는 말. 아인테르를 겨냥하여 한 말이지만, 정작 아인테르는 미소를 지은 상태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는 모양이다. 이제 앞으로 들어 올 셋한테도 편하게 말 놓을 명분이 섰으니 만족스럽다.
“고문이기는 하지만 딱히 내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필요한 일이 있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부르고, 편하게 대해라.”
특별할 것 없이 적당한 말로 소개를 마무리 했다. 부원으로도 지내본 적이 없으니 고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교감에게 들어보니 사실상 이름만 올려놓고 문제가 없나 살피는 정도라고 하더라.
딱 내가 원하는 수준의 역할이다. 다른 교직원들은 황자를 살피는 것에 미치겠지만, 난 오히려 살필 명분이 없어 미칠 뻔했으니. 이거 내가 없었을 원작에서는 대체 누가 이 흉악한 마굴을 맡았을지 안타까울 정도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에 의문과 측은함을 품을 필요는 없다. 지금은 내가 그 마굴을 맡은 상황이니까. 이 마굴의 창시자인 루이제를 바라보자 한가득 쌓인 제과 도구와 재료를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나 눈이 반짝 거리는지 헐레벌떡 저것들을 사온 교직원이 안다면 분명 기뻐할 것이다.
그런 루이제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던 에리히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이왕 아카데미에 온 김에 에리히와도 자주 만나려고 했는데, 마침 이렇게 고문과 부원의 관계가 되었다. 이제 에리히와 어색한 관계를 많이 진전시킬 수 있겠지. 에리히도 기뻐할 거다.
에리히는 칼과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돌려버렸다. 머리로는 이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을 어쩌겠나. 평생을 가주의 시선에 짓눌려 살던 에리히였다. 가주와 닮은 눈빛을 하는 칼은 본능적으로 꺼려지는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어릴 때만 해도 칼과 에리히는 서로 친근한 형제는 아니었어도 등을 돌린 형제도 아니었다. 에리히에게 다른 형제자매도 없으니 단 둘 뿐인 형제끼리 계속 거리를 둘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기껏 루이제와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루이제와 동아리 시간에도 붙어 있을 수 있는 기회.’
혹은 동아리 관련이라는 명분으로 그 외의 시간에도 자연스레 만날 수 있다.
비록 황자라는 이상한 불순물이 하나 끼어 있어도 이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다. 칼이 고문을 맡는다는 소식을 듣고 억장이 무너질 뻔한 에리히였지만, 그렇기에 더욱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칼에 대한 공포와 기피를 이기지 못한다면 루이제와의 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사랑에 눈이 먼 남자는 몇 년 동안 시달린 트라우마와 맞설 용기를 얻어버렸다.
에리히가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나아갈 다짐을 할 무렵, 아인테르도 그리 편한 심정은 아니었다. 어느새 쿠키를 만들겠다며 재료를 펼쳐 놓는 루이제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칼 때문이었다.
‘온다고 듣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런 관계로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눈웃음을 짓고 있는 아인테르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아인테르가 루이제의 동아리에 이름을 올린 것은 나름 무리한 행보였다. 아카데미에 황실 인사가 입학한 경우는 종종 있지만, 동아리에 가입한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과 고문을 맡을 교직원에게 부담을 줄 수 있으니 배려를 위한 것, 이 대외적 이유.
실제로는 황자들 사이의 계승권 분쟁이 이유다. 특정 황자가 동아리에 들어가 그 동아리 귀족들과 접한다면, 평시에는 그 황자가 접촉할 수 없었던 인물들이 그 황자의 파벌이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반면 귀족들은 난데없이 다른 황자들에게 그 황자 파벌로 인식되어 강제 운명 공동체로 전락해버린다.
그렇기에 황자들은 상대가 클 변수를 줄이기 위해, 귀족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황실의 동아리 가입은 암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2년 전, 황실의 계승권 문제는 1황자와 2황자의 치열한 대립 끝에 1황자가 황태자에 책봉되며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숨을 죽이고 있던 3황자, 아인테르가 그동안의 암묵적 규칙을 어기며 동아리에 가입한다? 황태자는 당장 아인테르를 밧줄에 매달고 싶은 충동이 솟구칠 것이다. 황비 소생인 황태자에게 2황자와 같은 황후 소생인 아인테르는 마지막 남은 불안 요소니까.
실제로 황태자 책봉으로 2황자와 황후의 몰락이 결정되고 얼마 후, 2황자파를 난도질하던 감찰부의 칼날이 3황자에게도 향했다. 황제의 묵인, 황태자의 지시를 등에 업은 감찰부의 칼날은 3황자라는 이름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전하. 황태자 전하께서는 전하의 침묵에 흡족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감찰부를 이끌고 3황자궁에 쳐들어 온 것이 칼 크라시우스. 19세에 최연소 부장이 되어 제국 정계를 들썩이게 한 신성이었다. 그 신성은 접견실에서 아인테르와 마주 앉아 담담히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마지막까지 2황자와 함께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신 것. 현명하신 선택이었습니다.”
빙긋 웃는 칼의 모습에 아인테르는 씁쓸히 웃었다. 친모인 황후에게 너는 대체 누구 자식이냐는 고함을 듣고, 동복 형제인 2황자에게는 분노 어린 시선을 받았다. 그래도 아인테르는 침묵을 지켰다. 그렇기에 2황자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황후가 사실상 유폐를 당했음에도 아인테르는 살아남았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더 이상 황실에 소란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제가 비록 황태자 전하와 어머니는 다르나, 같은 아버지를 두고 있는데 어찌 그 뜻이 다르겠습니까?”
“실로 현명하십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있으라는 경고, 알겠다는 짧은 수긍. 그 대화를 끝으로 칼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면 같은 미소를 얼굴에 머금은 상태로.
“전하의 궁에서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조사 결과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전하의 명성을 시기한 자들이 모함을 한 모양이지요. 그들을 엄히 벌하여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이해합니다.”
그 이후로 아인테르는 칼이 전달한 황태자의 경고대로 숨을 죽이며 살아갔다. 황제와 황태자를 등에 업은 감찰부의 손에 2황자파가 처절히 몰락하고, 종래에는 아인테르의 외가인 애실론 후작가마저 휩쓸려 나갈 때도 침묵을 지켰다. 그 덕분에 아인테르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 소녀를 만나고 아인테르의 인생이 바뀌었다. 추종자, 라는 이름의 감시자들을 주렁주렁 달고 아카데미를 거닐던 아인테르 눈에 분홍색 머리가 인상적인 소녀가 들어왔다. 그저 변덕이었다. 아카데미에서도 황태자의 의도대로 숨을 죽이려던 그가 그 소녀에게 말을 건 것은.
“루, 루이제 나이어드라고 합니다!”
실권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으나 황자이기는 한 아인테르의 물음에 벌벌 떨며 답하는 소녀, 루이제. 아인테르는 그 이후로도 루이제와 만났다. 그러다보니 루이제도 조금씩 긴장을 풀며 아인테르를 편히 대했다. 아인테르는 누구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정을 그녀에게서 느꼈다.
변덕으로 시작하고, 짧은 시간 이어진 인연이지만 그 깊이는 진심이다. 아인테르는 그렇게 자부하였다. 그렇기에 루이제가 동아리 인원을 구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이 일로 황태자가 다시 손을 쓸지도 모른다. 눈 앞에 있는 칼이 황태자의 칼날로 돌변하여 아인테르를 처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인테르는 나아갔다. 이번에는 침묵을 지키고 싶지 않았다. 밀가루를 얼굴에 묻힌 루이제와 그 옆에 있는 칼을 바라보는 아인테르의 눈동자에 굳건한 다짐이 차올랐다.
‘잘 하는 건가…?’
열심히 쪼물딱 거리는 루이제를 보니 절로 의문이 든다. 내가 제과를 해 본 적이 있어야 잘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지. 이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자신 있게 하고 있으니 잘 하는 중일 거라 믿는다. 도구도 충분하니 문제 없겠지.
슬쩍 옆에 있는 작은 오븐을 바라보았다. 원작이 판타지라 그런지 온갖 도구가 마법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돌아다니고 있다. 감찰부 창고에 도청기나 위치 추적기, 감시 카메라 같은 것도 존재하는 걸 보고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그런 상황에 오븐이 없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것이다.
멍하니 오븐을 보다 시선을 돌리니 아인테르와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어 속내를 알 수 없는 모습. 2년 전에 3황자궁에서 본 이후로는 처음이다.
‘애한테 너무했지.’
이 세계는 성인의 기준이 17살로 널널한 편이다. 하지만 아인테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널널한 범위에도 들어가지 못한 15살. 아무리 황태자의 지시였다지만 15살 애한테 너무 압박을 줬던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2년 전, 북방에서의 일이 끝나고 황태자가 계승 분쟁에서 승리한 시기. 당시 제국 행정부는 살아있기만 하면, 그리고 공직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승진 이유로 충분할 정도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살아남아 능력을 증명한 인물들은 파격 승진을 당했고, 그 피해자에는 나와 장관이 속해있다. 그때부터 장관이 화가 좀 많아진 것 같긴 하다.
…아니, 그 양반은 장관 승진 이전에도 분노 바이러스 보균자였다. 순간 미화할 뻔했네.
아무튼 북방에서 많은 일을 겪고, 팔자에도 없는 감찰부장에 올라버린 난 심기가 뒤틀리고 정상이 아닌 상태였다. 그 때문에 업무 집행에 감정이 실린 경우가 종종 있었고, 아인테르도 필요 이상으로 압박했었다. 황태자는 만족한 모양이었지만. 변태 같은 놈.
에리히도 그렇고, 아인테르도 그렇고. 어째 이 동아리에는 내가 미안한 애들 밖에 없는지 의문이다. 착잡한 심정에 부원들을 둘러보다 루이제에게 시선이 닿았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루이제가 고개를 갸웃하며 왜 그러느냐는 눈으로 쳐다본다.
그래도 너한테는 미안한 일 없어서 다행이다. 오히려 얘는 나한테 미안해 해야지.
네가 카피바라만 아니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올 일은 없었을텐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무사히 1연재를 해냈습니다. 단순 1일 1연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올리는 시간도 정해둬야 하는데,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쉽지가 않군요.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어프라이님! 상한올리브님! 후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