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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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는 제도로 돌아오자마자 업무를 위해 자리를 비우셨다. 관료는 정말 힘든 일이구나. 오라버니가 마음 편히 있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관료는 하지 말아야지.’
아직 졸업 이후 진로는 결정하지 않았지만 일단 관료는 피하자. 난 오라버니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못 버틸 거야.
그래서 볼 때마다 걱정된다. 보기에도 힘들어 보이는데 실제로는 어떨까? 학생들에게는 방학이라도 있지만 오라버니에게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뭐라도 만들어드릴까?’
진지하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아카데미에서는 피로에 좋다는 약재를 이것저것 넣어서 쿠키를 만들었지만 방학 이후로는 그러지 않았다. 손님이 주방에서 얼쩡거리는 건 실례니.
사실 집사님은 우리가 제과 동아리라는 걸 듣고 마음껏 주방을 써도 된다고 했지만 아직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내가 만든 쿠키보다 저택의 사용인들이 만든 음식이 오라버니 몸에 더 좋겠지. 괜히 전문가들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일에 치이는 오라버니를 보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잠깐, 아주 잠깐 정도면 주방에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네 잘못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갑자기 귓가를 맴도는 것 같은 목소리가 떠오르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날 내 푸념을 받아준 오라버니, 듣고 싶은 말을 해줬던 오라버니.
응, 그러고 보니 아직 그때 보답도 제대로 못했지. 더 늦기 전에 작은 보답이라도 하는 게 맞아.
그래, 그래서 떠오른 거야. 아직 보답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 떠오른 거야.
‘그런 거야. 다른 의미는 없어.’
듣는 사람이 없는데도 스스로 변명을 했다. 아니, 변명이 아니지.
점점 뜨거워지는 얼굴을 애써 진정시키며 상업 지구로 향했다. 주방에 약재가 있을 리는 없을 테니.
그렇게 조용히 저택을 나가 한가득 재료를 샀다. 괜히 들켰다가 혼자 가도 충분할 일을 여럿이 갈 것 같으니까.
“오라버니?”
“응?”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오라버니를 만났다. 저택 정문 앞이니 길이라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그나저나 이 시간에 오라버니를 볼 줄은 몰랐다. 보통 해가 거의 지고 나서야 돌아오셨는데.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깜짝 선물을 만들기도 전에 들켜버렸다. 일부러 오라버니가 없는 시간대를 노린 거였지만 이게 이렇게 되네.
에넨께서 오라버니한테는 무언가 숨기지 말라고 꾸짖는 것 같다. 이미 비밀을 전부 턴 사이라 그런─
‘아니야.’
자꾸 이상한 쪽으로 생각이 빠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오라버니가 빤히 쳐다보고 계셔서 그런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뭐지? 왜 보시는 거지? 혹시 얼굴에 이상한 거라도 묻었나?
아니면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는 건가? 우연히 마주친 여기서, 단 둘이서…
“루이제, 혹시 시간 있어?”
“넷?”
손이 벌벌 떨렸다.
오라버니의 말에 재료들을 전부 놓칠 뻔했지만 겨우 진정했다. 왜 이러는 거야, 오라버니랑 둘이 있던 게 처음도 아니면서.
몇 번이나 오라버니 쪽으로 곁눈질을 하다가 그만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순간 시선을 피할 뻔했지만 오히려 그게 더 어색하겠지.
“갑자기 미안해.”
“괜찮아요. 저 시간 많아요.”
미안하다는 말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오라버니 덕에 제도에서 편히 쉬고 있는데, 오라버니가 찾으면 없던 시간도 만들어서 응해야 한다. 그게 도리다.
그런 내 모습에 오라버니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너, 너무 격하게 저었나?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서.”
“아, 네! 얼마든지요!”
상담이라는 말에 부끄러웠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두근거림이 차올랐다.
아카데미에서도 꾸준히 오라버니에게 말했었다. 무언가 고민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달라고, 오라버니에게 신세를 졌으니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고.
그런데 오라버니가 입을 열기는커녕 내가 오라버니에게 투정을 부렸다. 고마움과 별개로 어찌나 민망하던지.
‘드디어.’
이제 오라버니가 나에게 숨겨왔던 고민을 꺼내주신다. 드디어 오라버니에게 받은 것을 조금이나마 돌려드릴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오라버니도 나를 신뢰하신다는 거겠지…?
이유 모를 설렘이 가슴 전체로 퍼지는 걸 느끼며 오라버니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아는 사람 이야기인데─”
뻔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서두에 웃을 뻔했다.
오라버니, 이 상황에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 당연히 핑계잖아요.
오라버니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도로 입을 다물고 어색하게 땅만 내려다봤다.
***
내 마음을 더럽힌 우유부단함은 마지막으로 불타올랐다.
“내가 아는 사람 이야기인데─”
이 시발,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자괴감이 들었다. 이런 분위기에 아는 사람 운운하는 건 누가 봐도 핑계지 않나. ‘내가 많이 민망한 얘기를 할 건데 그거 나 아니야.’ 라는 변명이지.
용기를 얻기 위한 상담에서 용기가 바닥을 기는 모습을 보였다. 슈퍼 겁쟁이들의 쉼터가 있다면 내가 VVIP겠네.
“…내 얘기인데.”
“네, 오라버니가 아는 오라버니 얘기요.”
살짝 웃음기 섞인 루이제의 대답에 더 비참한 심정이지만, 방금 자괴감을 터뜨린 덕분에 오히려 마음이 정리됐다.
“사실 몇 년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거든.”
그 일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마르게타에게 털어놓을 용기를 얻기 위해 루이제와 상담하는 거지, 루이제에게 털어놓기 위한 것이 아니니까. 아직 자기의 상처도 다 회복하지 못했을 아이한테 내 상처도 얹어주는 건 너무한 일이다.
“그 일 때문에 조금 위축됐었어. 다른 사람도 몇 번 밀어낸 것 같고.”
마르게타 입장에서는 조금도 아니고 몇 번도 아니겠지만. 정말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놓고 그 밀어낸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한 것도 아니야. 아무 말도 안 했어.”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설명, 이러이러한 입장이니 기다려줬으면 한다는 부탁.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
“너무하지. 내 사정으로 밀어낸 거면 그 사정이 뭔지는 알려줘야 했는데.”
나는 온전히 내가 선택했다. 내가 아직 헤카테를 잊지 못했기에 마르게타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부정할 수 없는 내 선택이다.
그러면 마르게타는? 마르게타도 온전한 자신의 선택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온전한 선택은 모든 정보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거다. 내가 고의적으로 정보를 보내지 않는데 어떻게 온전한 선택을 할까.
나는 나를 위해 마르게타를 억눌렀다. 아무리 포장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말하려니 무섭더라고. 괜히 말했다가 지금 관계가 무너지지 않을까, 괜히 그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게 아닐까.”
그리고 잠시 입을 다문 뒤 루이제의 표정을 살폈다.
루이제는 푸른 눈을 빛내며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한탄에 당황하지도, 꺼려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안타까운 기색도 보이지 않고 그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오히려 그러니 마음이 편하네. 고맙다.
“솔직하게 말하면 겁 먹은 거지. 다른 말로 표현할 게 없네.”
슬쩍 루이제의 어깨로 손을 뻗어 몇 번 토닥였다.
지금까지 나보다 어린 루이제에게 걱정을 받을 때마다 창피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이 말고 내가 루이제보다 나은 게 뭘까 싶다. 적어도 루이제는 스스로 용기를 냈잖아.
“그래서 용기 있는 사람한테 조언을 구하고 싶었어.”
“사람 잘못 찾으신 것 같아요.”
“글쎄, 난 제대로 찾은 것 같은데.”
그 말에 둘 다 미소를 짓고 말았다. 딱히 웃긴 말도 아니지만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계속 미소를 짓던 루이제는 내 눈을 빤히 응시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하는 한 마디.
“겁쟁이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싶지 않나요?”
예상 못 한 답변이 나왔다.
“사실 저도 용기를 내서 한 말은 아니었어요. 그냥 말하고 싶어서, 오라버니라면 들어줄 것 같아서 어리광을 부린 거죠.”
멋쩍은 듯 웃는 루이제지만 말은 끊이지 않았다.
“혼자 품기는 무섭고, 남한테 말하기도 무섭고, 그래도 누군가한테는 털어놓고 싶고, 위로도 받고 싶고. 이런 겁쟁이가 세상에 또 있을까요?”
그러면서 루이제는 어깨 위에 있는 내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쳐올렸다. 무심코 손을 빼려고 했지만 루이제는 내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겁쟁이가 버둥거리다가 말한 거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오라버니는 그런 겁쟁이의 말을 들어주셨죠.”
오라버니가 털어놓고 싶은 상대는 겁쟁이의 외침을 외면할 분인가요? 그렇게 덧붙이는 루이제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아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마르게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설령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트라우마를 듣더라도 가볍게 넘길 사람이 아니다.
“아니면 오라버니가 품은 일이 오라버니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인가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말하기 무서운 건가요?”
애석하게도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내가 헤카테에게 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테니.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루이제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오라버니는 그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았겠죠.”
익숙한 말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외면하지도 않았고요.”
익숙한 말이 입장이 바뀐 채 다시 반복되고 있다.
“잊지도 않았죠.”
여러 의미로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한 거지? 본인 앞가림도 못하는 상황에서 너무 당당했잖아.
“그러면 오라버니 잘못이라고 할 사람은 없어요.”
“…듣고 싶었던 말이네.”
“저도 듣고 싶었던 말이거든요.”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 루이제에게 언변으로도 밀리는구나.
“그래, 듣고 싶었지.”
그래도 다행이다. 언변으로 밀려서.
만약 내가 쓸데없이 언변만 좋았으면 설득도 안 통했겠지. 그러면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을 거다.
“고마워.”
괜히 원작 주인공이 아니네.
“별말씀을요.”
밝게 웃는 루이제 덕에 마르게타를 제대로 바라볼 용기가 생겼다.
아니, 용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겁인가?
용기든 겁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결과는 같을 테니.
‘1년이나 걸렸네.’
마르게타를 만나고 1년. 이제서야 마르게타에게 진심을 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