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27)
서로 다른 의미로 걱정되는 두 과장을 떠올리니 머리가 어지럽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걱정해도 어떻게 해줄 방법은 없지. 애초에 상사가 부하에게 언제 결혼할 거냐고 달달 볶는 것도 많이 추하잖아.
심지어 그 상사도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다. 제3자 시선으로 보면 끔찍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네.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지.’
둘 다 결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니까. 성격이나 취향에서 조금 독특한 면을 보이지만 부족함 없는 애들이다. 그 정도 독특함은 괜찮겠지. 괜찮을 거다.
슬쩍 4과장의 얼굴로 시선을 돌리자 4과장은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였다. 늠름한 기사가 완벽한 하녀로 전직하는 건 방학 기간으로도 충분했다.
‘…괜찮겠지?’
어째 4과장이 결혼하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되네. 물론 1과장도 마찬가지지만.
참담한 심정이다. 설마 부장이 미혼이라고 과장들도 미혼을 추구하는 건가. 내 업보가 깊구나.
잠시 입을 다물다가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참담한 심정과는 별개로 까먹기 전에 줘야지.
“받아, 선물이야.”
“영광입니다.”
그러자 4과장이 고개를 더욱 숙이며 두 손으로 주머니를 받았다.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 선물이지 별거 아니라서 주는 사람이 민망해진다.
저택에서 팔자에도 없던 하녀 일을 하던 4과장, 괜히 얼굴을 보이면 삼국의 의심을 받을 것 같아 근처를 배회하는 묵광대. 더운 여름에 고생 많았지.
“안 그래도 바쁠 텐데 이상한 일로 쉬지도 못하고, 다들 수고 많았어. 몇 푼 넣었으니 다 같이 써.”
그래서 회식이라도 하라고 은화 몇 개 챙겨준 거다. 솔직히 걔네가 회식 못할 정도로 가난한 애들은 아니지만 남의 돈으로 하는 회식은 각별하지 않나.
“묵광대는 황혼 교단 때를 빼면 얼굴도 못 봐서 아쉽네.”
“그러면 주인님이 자리를 빛내주시면─”
“그런 나쁜 말 하는 거 아니야.”
4과장의 말을 빠르게 끊었다. 회식 자리에 까마득한 상사가 같이 있다니, 그건 치하가 아니라 고문이지. 차라리 다음에 보는 게 낫다.
단호한 거절에 아쉬운 듯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보니 마음에 흔들렸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감찰부장의 공로가 크다. 크라시우스 가문은 실로 황실의 복이군.”
“황송하옵니다.”
황제에게 초대받은 식사 자리에서 다짐했다. 난 절대 부하들과 겸상하지 않겠다고.
그 끔찍한 지옥의 연쇄는 내가 끊어야 한다… 그날 체해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어.
이제 얼마 후면 아카데미로 돌아간다. 생각해 보니 방학 기간 동안 거의 제도에만 있었네.
막 방학을 시작했을 때는 제국의 온갖 대도시를 순회하며 시장들에게 대가리 박는 나날을 보낼 줄 알았다. 상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라 걱정이 많았지.
저것들도 막상 활발하게 여행을 하려고 하니 귀찮았나 보다. 하긴 제도에만 있어도 충분한데 뭐하러 밖으로 나가.
‘다행이다.’
최악의 상황에는 루이제의 영지로 가는 것도 각오했었다. 다행히 선량한 남작부부가 선 채로 기절하는 꼴은 피했네.
‘시발.’
문득 그런 걸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안타까웠다. 개같은 것들, 겨울 방학 때는 제발 귀국했으면.
– 한 번 일어난 일이 두 번 일어나지 않으라는 법은 없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 지랄하지 마 새끼야.
통신구로 통해 들리는 목소리에 절로 감정이 새어 나왔다. 그래도 발언은 포장했다는 것이 마지막 이성이었으리라.
아인테르가 암흑 진화하면 딱 저런 모습일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황태자. 진짜 언젠가는 신분 떼고 한 대만 패고 싶다.
– 겨울에도 올 거라 생각하고 준비해야겠어. 이번처럼 급하게 대비하니 영 피곤해서 말이지.
최악에 대비하겠다는 말, 혹은 ‘너 겨울에도 고생할 듯’ 이라는 낙인. 이상하다, 평범하게 보면 준비성 넘치는 발언인데 왜 후자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 같지?
근질거리는 입술을 애써 진정시키며 겨우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평온한 겨울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 겨울 방학 때는 최대한 막을 거니 그럴 일 없다.
– 감찰부장의 염려에 고마울 따름이나,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가 에넨께서 우리에게 내린 선물이 아니겠는가.
= 그럼 이번에는 최대한 안 막아서 이렇게 됐냐? 개소리 하지 마라.
이 새끼가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네.
확실히 이번에도 막는 것에 실패해 마음의 눈물을 흘리며 끌려온 상황이다. 겨울 방학이라고 달라질 거란 보장은 없다.
아니, 오히려 이번에 했으니 다음에는 더 쉬워지겠지.
‘겨울은 안돼.’
만약 겨울 방학에도 제과 동아리가 제도로 오면 몹시 곤란하다. 그때는 신년하례식도 겹쳐서 정말 미쳐버린다.
작위를 가진 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신년하례식. 그 시기에 타국 왕족과 차기 성자도 제도에 있다? 사교에 미친 귀족들은 어떻게든 초대하려고 안달일 것이다.
아마 높은 확률로 황제도 그 머저리들을 초대하겠지. 손님의 격은 주인의 위신으로 이어지는 법이니까.
‘오겠네.’
황제에게 생각이 닿자 해탈의 단계에 돌입해버렸다. 어쩌면 제과 동아리가 제도에 갈 생각이 없어도 황제의 초대장이 날아올지도 모르겠다.
보인다, 미래가 보여. 신년하례식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내 모습이.
– 그러고 보니 감찰부장. 장인어른과 무슨 일 있었나?
장막을 들추고 엿본 미래에 한탄하는 사이 황태자가 툭 말을 뱉었다. 아, 벌써 귀에 들어갔나.
“전승공 각하께 조언을 받은 것이 있어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 그렇군.
마르게타에게 속을 털어놓은 이후, 두 손 묵직하게 선물을 챙기고 전승공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돌아오면서도 두 손 묵직하게 답례품을 받은 게 문제지만. 이게 그 조공 무역인가 그건가.
아무튼 내 답을 들은 황태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신경을 껐다. 그래도 이 놈이 사생활을 파헤치는 놈은 아니지.
– 비가 적적한 장인어른의 말상대를 해줘서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했네.
“과분한 말씀입니다.”
– 에르제베트 경에게도 안부 전해달라더군.
황태자도 황태자비 앞에서는 일개 전령에 불과하구나. 뭔가 신기하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연락을 끊은 황태자. 오늘은 그냥 안부 인사로 연락한 건가. 이 새끼는 바쁜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시간이 남아도는 것 같아.
그나저나 1과장에게 안부라.
‘아직도 놀랍네.’
그 그림에 그린 듯한 숙녀인 황태자비와 그림에 그린 듯한 광기인 1과장이 학창 시절에 친한 선후배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아카데미는 대체 뭐하는 곳일까.
‘가문을 보면 이상하진 않은데.’
1과장은 후작가 영애니 공작가 공녀와 친한 게 이상하진 않다. 이상하지는 않은데…
아니, 더 신경 쓰지 말자. 학생 시절 1과장은 정상이었나 보지. 그렇게 생각하자.
‘정상인 1과장…’
그러면 감찰부가 멀쩡한 숙녀를 망친 거구나. 감찰부의 업이 깊다.
***
너무해, 진짜 너무해.
“유리스, 괜찮아?”
옆에서 소피아가 위로해주고 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는 페넬리아 언니를 위해서 그런 건데.
“씨잉…”
언니는 바보야. 혼자 아무것도 못하면 다른 사람 도움이라도 받아야지. 앞서 나가지 못하면 적어도 후발 주자한테 뒤쳐지지 말아야지.
“나는 그분 곁에 있는 걸로도 충분해.”
아까 전에 언니가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뭐? 주인님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만족해?
‘거짓말.’
그런 사람이 주인님을 그렇게 애타는 눈으로 봐? 소피아도 속지 않을 거짓말을.
아니, 어쩌면 언니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지. 바보라서 자기 진심도 모르나봐.
더욱 서러운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자 소피아가 허둥거리는 게 느껴졌다.
‘난 진짜 언니를 위한 건데…’
주인님이 아카데미로 돌아가실 때가 됐다. 이제 언니가 주인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도 끝이다.
기껏 주인님이 결혼을 생각 중이신 것 같은데, 이제야 언니가 다가갈 시간이 왔는데. 공녀님이 선두에 있는 건 막지 못하니 그 뒤에서라도 달려야 되는데.
“나는 그분 곁─”
고개를 휘휘 저으며 바보 같은 말을 털어냈다. 누가 보면 이미 애틋한 관계인 줄 알겠어.
“언니! 이미 주인님을 노리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공녀님이라면 나도 알아.”
“이 바보! 공녀님이면 말도 안 하지!”
결국 참다 못해서 금발 언니의 이야기를 꺼냈다. 주인님에게 산사나무를 선물한 그 귀족 언니. 유일한 사랑이라는 적극적인 고백을 한 언니.
그런 경쟁자가 등장한 상황인데 페넬리아 언니는 대체 뭘 하는지. 그래서 자극이라도 받으라고 말했는데, 이상한 쪽으로 자극을 받았다.
“주인님에게 숨겼다고?”
산사나무의 꽃말을 알면서 일부러 다른 꽃말을 말한 것. 페넬리아 언니는 그 말에 화를 냈다. 아니, 왜 거기서 그러는 건데.
그 뒤로 언니에게 한참이나 혼났다. 주인님에게는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한다고, 감히 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방해하는 건 나쁜 짓이라고.
“그러면 언니는 왜 그러는데!”
다른 말은 다 참았지만 마지막 말은 못 참았다. 정작 자기 사랑을 자기가 방해하고 있는 희대의 바보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지.
언니에게 빼액 소리치고 그대로 도망쳤다. 이제 나도 몰라. 다 페넬리아 언니 잘못이야. 아카데미에서 금발 언니가 두 번째 부인이 된다고 해도 내 잘못은 아니야.
‘진짜 바보.’
아무리 그래도 내 입으로는 절대, 절대 산사나무에 대해 말하지 않을 거야. 솔직히 움직이지 않는 페넬리아 언니 꼴을 보면 내가 가만히 있어도 금발 언니가 더 빠를 것 같기는 하지만.
입술을 몇 번 깨물다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진짜, 진짜 마지막이야.
‘겨울 방학.’
만약 주인님이 겨울 방학 때도 제도로 올라오시면, 그때까지 주인님과 페넬리아 언니 사이에 진척이 없으면.
‘말해야지.’
전부 말할 거다.
페넬리아 언니가 주인님을 사랑하는 것. 금발 언니도 주인님을 사랑하는 것.
둘 다 공평하게 시작하는 거야.
“…유리스?”
옆에서 소피아가 떨떠름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