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3)
제 13화
원치 않았던 주연 집결 – 4
쿠키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대충 반죽하고 모양 내고 오븐에 넣으면 끝일 줄 알았는데 그 외에도 뭔가 하더라고. 그거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다 됐어요!”
그래서 멍하니 보고 있으니 어느새 완성되어 있었다. 기다리던 완성 소식에 슬그머니 다가오는 에리히와 아인테르.
쟤네는 부장이 나서는데 명색이 부원이라는 것들이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무리 동아리 가입 목적이 제과가 아니어도 너무 노골적이지 않냐. 그래도 저 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루이제는 제과라는 행위 자체가 마냥 좋은지 부원 둘의 무임승차에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못난 놈.’
무임 탑승객 1호가 되어버린 에리히를 바라보자 절로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최약체를 담당하는 상황인데, 사소한 접촉이라도 늘려야 가능성이 생기지 않겠나. 제과에 환장하는 루이제 옆에서 같이 하는 시늉만 보였어도 바로 취미 공유라는 이점을 점하게 된다. 그런데 그걸 안 하네.
놀라운 일이다. 아직 루이제를 몇 번 보지도 않은 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좋아한다는 놈이 저러고 있네. 아인테르도 똑같은 놈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지능이 퇴화하나? 둘 다 지능 퇴화 상태면 에리히에게만 슬쩍 알려줘야지. 멍청아, 넌 이런 거라도 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자, 다들 드셔보세요.”
기대감이 담긴 루이제의 말에 에리히를 향하던 시선을 쿠키 쪽으로 돌렸다. 이왕 만들었으니 먹긴 먹어야지.
쿠키 쪽으로 손을 뻗으려 하자 루이제가 먼저 하나를 집어 나에게 내밀었다. 장유유서인가. 온갖 것이 혼합된 이 기괴한 로판 세계에서 이런 동방의 예절을 보게 돼서 감동이다. 빙긋 웃고 있는 루이제의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둘이 보였다. 날 너희들 경쟁에 넣으려고 하지마. 그리고 질투를 할 거면 할 일은 하고 해야지, 무임승차 주제에 어딜.
“고맙다.”
루이제가 내민 쿠키를 잡아 한입 베어 물었다. 보통 이런 작품에서 주인공의 요리 솜씨는 극락이거나 나락이거나 둘 중 하나인데, 다행히 무난히 맛있었다.
“아.”
“음…”
그런데 뒤이어 먹는 둘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씹자마자 침음을 내며 루이제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뭐야, 왜 저래?
“맛있네. 팔아도 되겠다.”
이상한 반응이지만 신경을 끄고 맛 평가를 들려줬다. 혼자 쪼물딱 거리며 만든 작품인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실제로 맛있었으니 딱히 찔릴 것도 없다. 그 말이 기쁜지 루이제가 활짝 웃으며 뒤에 있던 둘을 돌아보았다. 화들짝 놀라며 표정을 관리하는 둘.
“응, 나도 맛있어. 잘 만들었다.”
“맛있습니다, 루이제 영애.”
그러나 입과 달리 흔들리는 눈동자는 솔직했다. 맛있다는 평가에 기뻐하는 중이 아니었다면 루이제도 눈치 챘을 정도의 진동. 맛있는데 저것들 반응이 왜 저러지. 쟤들 입맛이 고급인 건가, 내 입 맛이 누렁이인 건가. 다시 쿠키를 베어 물었다. 여전히 맛있었다.
적어도 내 입맛이 문제는 아니다. 쿠키가 당첨과 꽝이 섞인 러시안 룰렛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설마 그러겠냐, 그건 고의로 하라고 해도 못하겠다.
‘배때지가 부른 것들.’
첫 동아리 모임은 그렇게 마무리 됐다.
어제 먹은 쿠키가 황천길을 건널 내 멘탈을 위한 노잣돈이 될 줄은 몰랐다.
“오, 안녕하십니까. 동아리 가입 신청을 하려고 왔는데요.”
경쾌한 목소리에 말없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동아리실에 박혀있던 나를 찾아와 가입 문의를 하는 아르메인 왕국 3왕자, 류티스 로벤스. 굳이 아침부터 찾아와 내가 조용히 아지트로 쓰고 있던 제과 동아리실의 고요한 아침을 깨버렸다.
“난 제과 동아리를 맡고 있다.”
“그럼 맞게 찾아왔군요!”
혹시나 해서 한 말에 주먹을 내지르면 어지간한 건물 기둥은 가뿐히 쓰러트릴 것 같이 생긴 놈이 웃으며 답했다. 그래, 알겠다. 넌 제물 3호가 맞구나. 이번 주가 동아리 선택 주간이라는 건 들었으니 슬슬 국외 3인방이 모일 건 예상하고 있었다. 난 올게 왔다는 심정으로 류티스의 가입 신청을 받아들였다.
“제과 동아리 가입 신청은 당신에게 하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가입 승인에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류티스가 떠나고 2시간 정도 후, 이번에는 유벤 연합왕국 2왕자인 라테르 오스티아가 찾아왔다.
“…….”
‘이 새끼들 짰나?’
같은 날에 2명이 줄지어 찾아와 버렸다. 2시간 간격은 뭐지? 마음의 준비하라는 팁인가? 기묘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류티스와는 달리 마른 체구, 확실히 라테르가 맞다.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라테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카피바라에 홀린 제물 4호를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형제님. 제과 동아리 고문을 맡고 계신다고 하여 찾아왔습니다.”
또 2시간 정도 후에는 5호가 찾아왔다. 라테르를 보고 설마 했던 생각은 현실로 돌아왔다. 왜 긍정회로 돌리는 건 다 틀리면서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지 의문이다.
“동아리 가입으로 왔나?”
“예, 그렇습니다.”
“이름은?”
“신성교국의 타니안 에네스입니다.”
알아. 예의상 물어봤어.
나는 조용히 부원 명부 맨 아래에 타니안의 이름을 끄적끄적 적어 넣었다. 하루 만에 동아리 인원이 두 배로 늘다니, 루이제가 알면 기뻐하겠는 걸…
희미한 미소를 지은 타니안이 동아리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확인한 나는 의자에 몸을 파묻고 부원 명부를 바라봤다. 동아리 개설 2일차에 요주의 6인방이 전부 모였다. 고무적인 성과였다. 이제 이 여섯을 나 홀로 감시해야 한다. 끔찍한 미래였다.
이상하다, 어느 게임에서는 파츠 5개 모이면 게임에서 승리하던데. 난 6개나 모아서 초과 달성한 거 아닌가? 그런데 왜 오히려 고생을 해야 하는 거지?
막막함에 천장을 올려다보고 얼굴을 양손으로 쓸어 내렸다. 아직 이번 주가 끝나려면 시간이 좀 있기에 방심했더니, 거짓말 같이 기적적인 3연벙을 당해버렸다.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다.
‘저 셋을 하루 만에 홀렸다고?’
어떻게?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이게 그 개연성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난 지금까지 연인도 없이 미친 것들만 꼬이던데 왜 너는.
그렇게 루이제에게 향할 뻔한 원망은 급격히 방향을 틀어 삼국 전력에게로 향했다. 생각해보니 그 새끼들이 문제다. 자국 주요 인사가 타국 귀족 영애와 눈이 맞을 것 같으면 알아서 커트해야지, 뭐 하는 거야.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삼국 놈들은 주요 인사의 기행을 막지 못했고, 나는 원작 흐름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여섯이 우르르 동아리실로 오겠지.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감찰부에서 다시 눈을 뜨기를 바라며. 마굴에서 도망쳐도 갈 곳이 다른 마굴이라는 게 어이가 없네.
“보면 알겠지만 새 부원이 셋이나 들어왔다. 서로 잘 지내고, 싸우지 말고.”
제발.
동아리 시간에 여섯이나 모여버린 부원들에게 유치원생을 바라보는 절절한 심정으로 얘기하자 류티스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새끼가, 웃어…?
“걱정이 너무 많으십니다! 모두 앞가림은 할 줄 알 테니 염려마십쇼!”
존나 염려스러운 말을 내뱉는 류티스에게 고개만 한 번 끄덕여주고 시선을 돌렸다. 왕족의 자제심은 믿을 수 있지만 거기에 원작이 얽혀버리니 신뢰도가 급격히 떡락해버렸다. 언제 갑자기 원작 펀치가 내 명치를 구타할 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시 보는군. 너도 이 동아리였나.”
본의 아니게 내가 류티스를 붙들고 있던 사이 라테르가 루이제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뻔히 루이제가 있는 걸 알고 들어왔으면서 모르는 척을 하고 있다. 추하다, 왕자야.
“안녕하세요! 그, 라테르 님이셨죠…?”
“라테르라고 편히 불러도 된다.”
차갑던 라테르의 표정이 미세하게 녹아내렸다.
‘시발.’
남자 놈의 저런 표정을 보는 취미는 없기에 시선을 돌렸더니 다른 놈들의 얼굴이 돌린 시선에 들어왔다. 사람이 늘어나니 이제 어디를 보든 적어도 한 놈은 눈에 들어온다. 끔찍하네. 눈을 감고 다녀야 하나.
어쨌거나 라테르가 먼저 치고 나가서 그런지 다른 부원들도 슬금슬금 루이제 쪽으로 다가갔다. 새 부원을 경계하던 기존 부원도, 자신 외에 오늘 다른 가입자가 있을 줄 몰랐던 신규 부원도 서로 눈치 싸움을 하다 한 마음이 된 것이다.
‘어째 익숙한 모습인데.’
다섯 남자에게 둘러싸인 루이제의 모습은 마치 시장에서 유세하는 정치인을 보는 것 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자의적이냐, 타의적이냐의 차이겠지. 난데없이 둘러싸여 허둥거리는 루이제에게 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내가 고생하게 만든 원흉이라고 생각하면 가끔 밉지만, 악의가 없다는 걸 생각하면 측은해지기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복도 쪽 창문에 누군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교감이었다.
교감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편지를 보여주었다. 뭐지, 나한테 편지를 보낼 사람이 있나? 6인방을 보니 아직 인사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는 것 같아 슬쩍 복도로 나가 교감에게 다가갔다.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십니까?”
맡은 수업이 없다는 죄로 인해 내 전용 메신저로 진화 중인 교감이 아까 보여주었던 편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덧붙이는 한 마디.
“삼국 측에서 보낸 서신입니다.”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아카데미에 주둔 중인 삼국 전력 측에서도 눈 뜨고 주요 인사를 털려버린 이변을 눈치 챈 모양. 교감에게 전해줘서 고맙다 말한 뒤 내용을 확인하였다. 대충 안부인사 떼고, 미사여구 떼고, 그 외 자잘한 표현들을 쳐내니 용건은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 빠른 시일 내에 감찰관과 만났으면 합니다. ]‘고문이 아닌 감찰관이라.’
이번 이변을 단순히 아카데미에서 발생한 일이 아닌 제국 측에서 작정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품은 뉘앙스. 삼국 측에서 얼마나 당혹스러워 했을지 뻔히 보일 정도다.
슬쩍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동아리실의 6인방을 쳐다보았다. 제국이 저걸… 작정하고 모았다고? 아무래도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꼭 만나야겠다. 예정보다 빨리 모여버린 6인방으로 인해 삼국과의 탐색전도 다소 이른 시기에 발생해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독자님들의 과분한 관심과 사랑, 성원에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앞으로도 실망시키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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