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30)
제도에서 아카데미로 가는 길은 순탄했다. 재미없는 습격 이벤트도 없었고, 처음 아카데미로 갔을 때와 달리 도로도 멀쩡해서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도로가 개판이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괘씸하다. 도로 정비 명목으로 돈을 타갔으면서 그런 꼬라지였다고? 물론 허공으로 사라진 돈은 지방관 재산을 털어서 회수했지만.
아무튼 아무 문제없이 달리고 달려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딱히 그립지는 않았습니다, 아카데미.
‘조용하네.’
아카데미에 진입하자 학기 중의 활기를 생각하면 어색할 정도의 한적함이 맴돌았다.
아직 방학이라는 걸 생각하면 조용한 게 당연하지. 학생 대부분은 집에 갔고, 학생이라는 손님이 없으니 상권도 활기가 다소 꺾이고.
만약 아카데미가 방학 중에도 학생들을 붙들고 있는 마굴이면 모를까, 다행히 아카데미는 그런 마굴이 아니다.
“아카데미가 이렇게 조용할 수도 있네요.”
맞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창 밖을 내다보는 마르게타가 보였다.
순수하게 신기해하는 것 같은 모습. 별거 아닌 모습이지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르도 처음 보는 겁니까?”
“원래는 개학식에 맞춰서 텔레포트로 움직였으니까요. 방학 중의 모습은 볼 일이 없었죠.”
확실히 마르게타가 어디 시골 귀족도 아니고, 굳이 먼 거리를 마차로 오고 갈 필요 없이 텔레포트 마법사로 이동하면 그만이긴 하다.
“편히 돌아갈 수 있는 마르를 괜히 고생시키는 것 같군요.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마차로 이동하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잖아요?”
싱긋 미소를 지은 마르게타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슬쩍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칼이랑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저야 좋죠.”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마르게타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이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구나.
저택에서 마르게타에게 마음을 털어놓은 이후, 안 그래도 적극적인 편이었던 마르게타는 더욱 저돌적으로 변했다.
“칼이 저에게 솔직해졌으니, 저도 칼에게 솔직해질게요.”
아카데미로 돌아가기 며칠 전, 위풍당당한 마르게타의 선포에 솔직히 많이 놀랐었다. 애써 다른 여자를 외면하던 나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던 게 마르게타였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호의를 표하는데 모르는 척을 하려면 눈이나 귀 중 하나는 없어야 한다. 그런데 자제하고 숨겼던 게 그 정도였냐고.
그리고 리미트를 푼 마르게타는 확실히 엄청나졌다. 예전에는 내가 조금만 다가가도 얼굴이 빨개지며 허둥거렸지만 이제는 먼저 가까이 와서 부끄러운 말을 당당하게 하지 않나.
‘그건 아닌가.’
자세히 보니 마르게타의 얼굴은 미세하게 붉었다. 동공도 세차게 떨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구나.
그냥 부끄러움에 대한 내성이 증가했다. 그걸로도 장족의 발전이기는 하지.
“소중한 시간을 저에게 써줘서 고맙습니다.”
슬쩍 마르게타의 손을 잡으며 말하자 얼굴에 미세하게 퍼졌던 붉은 기운은 점점 짙어졌다.
이게 마르게타를 놀리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건 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마르게타는 이렇게 부끄러워 하는 모습이 익숙하고 귀엽다.
“카, 칼을 위해서라면 평, 생도 쓸 수 있어요.”
더듬거리면서도 입을 여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다른 일행들은 전부 숙소로 갔지만 나는 만날 사람이 있어 본관으로 향했다. 학생들이 떠난 아카데미여도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있는 법이니.
“오랜만입니다, 감찰부장. 그간 잘 지냈습니까?”
“물론입니다. 교장께서도 건강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특히 아카데미를 지배하는 남자는 집도 아카데미다. 직장과 자택의 일치, 꿈에 나올까 무서운 조합이 아닌가.
교장을 보니 절로 측은한 마음이 들었지만 정작 교장은 별 감흥이 없는 것 같다. 본인이 괜찮다면 상관 없기는 한데.
“별일이 없었다면 다행입니다. 혹여나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지요.”
“동감입니다.”
긴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하는 교장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비록 현장에서 직접 구른 나나 빌라르보다는 덜하겠지만, 교장도 이번 제과 동아리의 제도 여행에 가슴 떨렸을 인물 중 하나다.
왕자니 성자 후보니 하는 것들이 아카데미에 남은 걸로도 뒷목을 잡을 일인데 거기에 제도 여행까지 얹는다? 미칠 노릇이지. 만약 학생 신분인 제과 동아리 부원들이 다치는 일이 생기면 교장도 책임을 져야 한다.
아카데미 밖에서 뽈뽈거리다가 다친 거니 억울하겠지만 어쩌겠나. 책임질 일이 생기면 억울해도 붙잡혀 끌려오는 게 고위직 역할이지
“그렇지요. 감찰부장의 노고가 정말 많았습니다.”
물론 고위직 겸 현장 책임자인 나보다 격렬하게 책임을 짊어지지는 않을 거다. 교장도 그걸 아니 이렇게 위로 인사를 하는 거고.
“아, 감찰부장.”
몇 마디 더 안부 인사와 근황을 주고 받던 교장이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입을 열었다.
“이번 삼국 전력 중에 특이한 인물이 끼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흥미롭군요.”
‘시발.’
겉과 달리 속으로는 본능적으로 욕을 내뱉었다. 지금까지 빌라르 덕분에 삼국 전력과 부딪힌 적은 없었지만, 이번 방학 동안 빌라르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교체됐다고 들었다.
혹시 그 교체 인원 중에 빌라르의 권위에 도전하는 반골의 상이 등장하면 나도 피곤해지고 빌라르도 피곤해진다. 그러니 제발 조용히 넘어가기를 바랐는데.
‘그런데 교장이 언급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화려한 인물이길래 교장이 직접 언급하겠나. 교장이 주시할 정도의 인물이면 꽤 고위직이거나 비범한 인물일 테고, 어쩌면 빌라르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할 거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곤란한다. 빌라르 정도면 괜찮은 협상 상대라 졸업까지 있었으면 싶다.
“교체 인원 명단입니다. 이틀 전에 전달 받았습니다.”
책상에 놓인 서류 더미에서 몇 장을 뽑아 건네주는 교장. 이틀 전이면 한창 마차에서 시간을 보낼 때네.
건네주는 서류를 받고 빠르게 훑어봤다. 아르메인 왕실 기사단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빌라르다. 그런 빌라르를 위협할 존재면 나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겠지.
‘골치 아픈데.’
단순하게 생각하면 빌라르보다 서열이 높은 왕실 기사단 인사지만 확률은 낮다. 그런 인물을 보낼 거면 애초에 빌라르를 귀국시켰을 테니.
그러면 유벤 연합왕국에서 고위 마법사를 보낸 건가? 아니면 신성교국에서 추기경급 인사를?
누구든 귀찮은 일이다. 직책이 너무 높으면 내가 유사시에 깔아뭉개기 힘든─
‘방금 뭐였지.’
아랫줄로 내려가던 시선이 급하게 다시 위로 올라갔다. 방금 이상한 걸 본 것 같은데.
처음 보는 이름이다. 내가 알 정도로 고위직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성은 익숙한 성이다.
페로사 가넬리
‘뭐야.’
진짜 뭐야 이거. 여기서 가넬리가 왜 나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존재의 등장에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혹시 가델리나 가낼리 같은 건데 내가 잘못 봤나?
‘아니네.’
물론 결과는 같았다. 가넬리가 맞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멍하니 서류만 내려다봤다. 페로사 가넬리, 17세, 국적은 아르메인.
이름 아래에 적힌 특이사항으로는 빌라르 가넬리의 딸이라고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우연히 성이 같은 것도 아니다. 빌라르의 딸이 맞다.
‘왜?’
왜 빌라르의 딸이 여기에?
아니, 대륙 어느 국가든 같은 임무에 혈육을 몰아넣는 편은 아닌데? 게다가 이 호위 임무가 그런 관례까지 어겨야 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도 아니고.
“특이하지 않습니까? 저도 처음에는 제법 놀랐습니다.”
“아, 예. 정말 특이하군요.”
그런 내 모습에 교장이 입을 열었다. 그렇지, 누구나 나 같은 반응이겠지.
이 임무가 뭐 그리 좋은 임무라고 딸이 아버지를 따라 이 먼 타국까지 오나. 효심이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표현할 필요는 없는데.
‘어쩐지 표정이 어둡더라니.’
아카데미로 복귀하는 동안 빌라르의 표정은 묘하게 어두웠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빌라르와는 업무적으로 알게 된 사이지 사적으로 친한 게 아니지 않나.
그동안 같이 구르며 쌓인 내적 친밀감이 있긴 하지만, 빌라르는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괜히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 같아 그냥 넘어갔었는데.
“…놀라운 일입니다.”
이 말밖에는 안 나온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빌라르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서 가족이 그리울 수도 있다. 타지 생활을 하면 가족이 그리운 법이지. 당연한 거다.
그렇다고 그 가족을 타향으로 보내는 건 대체 무슨 해결법이야. ‘고향에 있는 가족’을 보고 싶은 거지 ‘같이 고생할 가족’을 원한 건 아닐 텐데.
‘아르메인도 정상은 아니구나.’
아르메인도 블랙 컨츄리였다. 국력 1, 2위 국가가 나란히 블랙 컨츄리라니, 대륙의 미래가 어둡다.
설마 이게 대륙 평균인가? 내가 모르는 거지 모든 나라가 전부 이 수준인가?
그러면 차라리 제국이 좋은 건가? 어차피 전부 블랙이면 중소보다는 대가 낫긴 하지.
‘끔찍하다.’
제국이 선녀인 대륙이라니. 도대체 에넨은 무슨 세상을 만든 거냐.
다음날이 되자 새로운 삼국 전력이 도착하여 조용했던 아카데미가 조금은 소란스러워졌다.
맞이하는 것 자체는 제국이 아닌 삼국에서 신경 쓸 일이니 나하고는 상관없지만─
“시간이 된다면 동아리실로 와주십시오. 같이 차라도 마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 알겠습니다. 초대에 감사합니다.
어제 교장에게 들었던 말, 그리고 오늘 딸과 만날 빌라르의 모습을 떠올리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법이다. 몇 달을 알고 지낸 빌라르는 말할 것도 없지.
내가 해줄 건 없지만 그래도 위로라도 해줘야지 어쩌겠나.
– 그, 감찰관님. 죄송하지만 한 명 더 가도 괜찮겠습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빌라르에게 걸려온 연락을 듣고 깨달았다.
빌라르는 딸에 약하구나…
“물론입니다. 다과회는 여럿일수록 즐거운 법이지요.”
힘내라, 빌라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