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31)
제과 동아리실은 방학 동안 방치된 것치고 깔끔했다. 사실 먼지로 가득할 줄 알고 청소할 준비도 하고 있었는데.
– 아카데미에 복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동아리실은 주기적으로 청소했으니 바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청소도구를 준비하다가 교감의 연락을 받고 두 손 가볍게 이동했다. 알고 보니 방치된 것이 아니라 꾸준한 관리를 받던 귀한 장소였다.
고맙다, 교감. 아카데미 2인자까지 올라온 사람이라 그런지 능력과 센스가 상당하다. 1, 2, 3 트리오가 교감의 반만 닮았어도.
‘영입할까.’
순간 교감을 감찰부로 스카우트하는 방법이 떠올랐다. 다른 과는 무리겠지만 차장실에 넣으면 잘할 것 같은데.
진지하게 고민되는 안건이지만 결국 폐기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적성에 맞는 곳에서 놀아야지. 나도 군부가 적성에 맞으면서 재무성에 있으니 고통받고 있잖아.
씁쓸한 심정을 억누르며 산사나무 화분을 창가에 내려놨다. 교감이 주기적으로 관리할 줄 알았으면 굳이 가져갈 필요도 없었겠지만, 그래도 저택에 머무는 동안 내 방을 꾸며주는 역할을 했다.
고맙다, 우리 하양이.
‘무럭무럭 자라라.’
우리 하양이, 참 예쁘기도 하지.
이리나가 선물 하나는 정말 잘 줬다. 게다가 유리스에게 들은 꽃말을 생각하면 감동이 두 배가 되는 선물이고. 용서와 관용이라, 다시 들어도 대단하다.
내가 이리나 입장이면 절대 용서 못한다. 잘 지내다가 가문 단위로 두들겨 맞았는데 어떻게 용서하나.
3과장의 머리를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레 가지를 매만지다 몸을 돌렸다. 몇 시간 후면 손님이 올 테니 슬슬 준비해야지.
‘페로사 가넬리.’
미리 상점에서 산 과자를 꺼내며 손님의 이름을 떠올렸다.
빌라르의 딸, 아르메인의 명문 무가 중 하나인 가넬리 백작가의 일원, 그리고 17살이라는 나이에 정식으로 기사 서임을 받은 능력자.
그 나이에 대단한 실력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나이에 비하면 대단한 거지, 다른 기사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진 건 아니다. 17살에 기사라서 뭐 어쩌라고, 전쟁에서는 같은 나이끼리 싸우냐?
‘아무리 생각해도 자원한 것 같은데.’
대륙 어느 나라든 같은 임무에는 혈육을 몰아넣지 않는 관례가 있다. 만약 그 임무를 수행하던 인원이 싸그리 전사하면 가문 하나가 박살나니까.
그리고 지금은 그 관례를 무시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지도 않고, 페로사의 능력이 압도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본인이 이 임무에 자원했다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왜 자원했지? 그리고 자원했다고 받아주는 아르메인은 또 뭐고.
‘정말 가족 상봉이라도 하라는 건가.’
어떻게 보면 제국 아카데미에 머무는 평화로운 임무기는 하다. 왕자를 호위하는 일이니 차후 승진이 보장된 임무기도 하고. 그러니 부담 없이 기러기 아빠가 되어버린 빌라르에게 딸을 보낸 걸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정말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지, 실상은 다른 법인데. 지들도 그걸 아니까 급하게 인원을 대대적으로 교체한 거고.
‘모르겠다.’
그래, 내가 아무리 고민해봤자 느그 나라 사정을 어떻게 알까. 그냥 페로사의 넘치는 효심에 감동한 아르메인의 결단이라고 생각하자.
안타깝게도 빌라르 입장에서는 불타는 효심이지만.
저 멀리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동아리실 앞에서 멈췄다. 이제 왔구나.
-똑똑
“감찰관님. 빌라르입니다.”
“아,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리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뻔했다. 빌라르의 안색이 지난번보다 더욱 어두워진 것 같았으니까. 머저리 왕자들의 만행 속에서도 버티던 빌라르를 무너뜨린 건 그 딸이구나. 안타까운 일이다.
심지어 빌라르의 금발이 더욱 푸석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닐 거다. 저러다 백발로 퇴화하는 게 아닌가 몰라.
“갑작스런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정심을 애써 억누르며 빌라르를 맞이했다. 이번에는 업무적 이유가 아니라 순수한 위로를 위한 만남이니 따뜻하게 맞이해야지.
물론 칙칙한 남자의 위로만큼 의미 없는 것도 드물지만, 삼국 전력의 숙소에서 치이는 것보다는 여기서 숨을 고르는 게 나을 거다.
“저야말로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하하, 무리라고 할 게 있겠습니까.”
빌라르의 말에 작게 웃은 뒤 빌라르의 뒤로 시선을 옮겼다.
빌라르가 말한 무리한 부탁의 주인공, 빌라르가 고혈압으로 쓰러진다면 유력한 범인일 것 같은 사람.
“빌라르 경, 그러면 이쪽이?”
“예, 제 딸입니다.”
한숨 섞인 대답에 남색 머리의 기사가 슬쩍 앞으로 나오더니 고개를 숙였다.
“페로사 가넬리입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과 투박한 인사말. 평범하고 무난한 모습인데. 일단 겉으로만 보면 불타는 효심의 주인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골고루 닮았네.’
투박하고 엄근진한 모습은 부친, 남색 머리는 아마 모친 쪽이겠지.
“칼 크라시우스입니다. 졸업 때까지 잘 지내 봅시다, 페로사 경.”
“예, 잘 부탁드립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일단 둘을 자리에 앉혔다. 초대한 손님을 계속 세워두는 건 도리가 아니지.
미리 준비했던 다과를 테이블에 내려놓자 빌라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동아리실에서 먹는 과자는 오랜만이군요.”
그 말에 작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네, 확실히 오랜만이기는 하다. 그동안 제도나 영지에서도 다과회를 자주 했지만, 동아리실에서 간소하게 하는 미니 다과회가 그립기도 했다.
“과자는 수제가 아니라 사온 거라는 게 다르지만요.”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표정은 전혀 아쉬워 보이지 않았다. 호불호가 극심히 갈리는 루이제의 쿠키보다는 기성 제품이 낫다 이거지.
이해한다. 못 먹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루이제의 작품을 딸에게 먹이고 싶지는 않겠지. 아무리 딸이 대형 사고를 쳤어도 아비는 딸을 사랑하는 법인가…
무심코 시선을 페로사에게 돌리자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음, 말은 안 거는 게 좋겠다.
“이래저래 바쁘셨을 텐데 편하게 있다가 가십시오.”
그냥 원래 계획대로 빌라르한테나 신경 쓰자. 이 양반이 갑자기 멘탈이 터져서 탈주하면 곤란하니까.
다행스럽게도 빌라르의 멘탈이 서서히 치유되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 이것도 드셔보세요.”
멘탈 회복 최대 기여자는 놀랍게도 페로사였다.
멘탈에 직격타를 날린 사람이 회복도 시킨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딸 아닌가.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딸이 옆에 착 붙어있으니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 것 같다.
기사는 보통 딱딱하기 마련이다. 그런 기사의 길을 걷는 딸이 자기한테는 사근사근하면 뿌듯하고 귀엽겠지.
“평소에도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빌라르의 중얼거림은 못 들은 걸로 했다. 평소에도 이런 모습인 게 아니라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 거였구나.
페로사도 빌라르의 말에 민망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저러는 걸 보니 본인이 잘못한 게 있다는 것 정도는 아는 것 같은데.
그래도 본인의 잘못을 알기에 첫인상에 가산점이 붙었다. 같은 국적인 어떤 왕자에 비하면 선녀나 다름없지. 그 새끼는 내가 지 욕하는 줄도 모를 거야.
“페로사 경은 빌라르 경을 많이 따르는 것 같군요.”
그래서 슬쩍 끼어들어 페로사를 두둔했다. 내가 옹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니 고개를 숙이고 있던 페로사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설마 이 아이가 제국까지 이 아비를 따라올 줄은 몰랐습니다만.”
그리고 다시 숙였다. 미안하다, 이거 안 통하네.
한 번 말이 막히니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페로사가 제국에 온 걸 옹호할 수 있는 말이 없긴 하지.
그래도 어떻게든 쥐어짜서 입을 열었다. 여기서 멈추면 나도 민망하고 페로사도 민망한 상황이다.
“젊은 나이에 기사가 될 정도의 집념이 보통 집념이겠습니까. 다소 특이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지요.”
사실 다소가 아니다. 존나 특이한 모습이다.
“게다가 기사가 되고 자만에 차지 않고 아버지를 생각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사실 아름답지 않다. 너무 무서운 모습이다.
“이런 기사가 호위 전력으로 있다면 류티스 저하도 안심하겠지요.”
사실 안심은커녕 페로사가 있는지도 모를 거─
“정말입니까?”
‘뭐야.’
왜 여기서 반응하지?
입을 다물고 나와 빌라르를 번갈아 살피며 눈치를 보던 페로사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인사를 제외하면 나한테 말을 건 건 처음 같은데.
“예, 아마 그럴 겁니다.”
일단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러자 페로사의 눈이 급격히 빛나기 시작했다.
“류티스 저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만한 영광은 없습니다.”
어조도 묘하게 올라갔다. 딱딱했던 표정에도 생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뭔가 싶어서 빌라르에게 시선을 돌리자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 그런 건가.
‘목적은 따로 있었네.’
페로사에게 아버지를 위한 효심이 있었을 수 있다. 먼 타지에서 고생하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보니 페로사를 제국에 오게 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추종자였나.’
친애하는 왕자 저하를 보필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마침 그 호위 임무 책임자가 빌라르니 더욱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겠지.
아까 플러스가 붙었던 첫인상이 위태로워졌다. 류티스를 추종해서 그런지 너도 저돌적이고 막가파구나. 그런 건 닮지 않아도 좋은데.
“류티스 저하를 존경하는 모양이군요.”
그 말에 두 쌍의 시선이 동시에 꽂혔다.
기겁한 빌라르의 눈빛, 흥분이 가득한 페로사의 눈빛. 그래놓고 둘 다 무표정에 가까운 건 부전여전 같지만.
“물론입니다. 류티스 저하께서는─”
‘시발.’
일단 잘못 건드렸다는 건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