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34)
학생회 간부는 회장, 부회장, 총무, 회계, 서기, 선도부장, 홍보부장으로 총 일곱이다. 그중 유일한 2학년인 부회장을 제외하면 전부 졸업을 앞둔 예비 공무원들.
이 말인즉 3년 인턴 경력의 뛰어난 인력이 1년에 여섯이나 생성되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고위 귀족 가문 자제들에게 치이는 3년을 보낸 불굴의 인턴.
‘화수분이네.’
무한으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신원과 능력이 확실한 싱싱한 인력이 여섯? 너무 좋다. 이런 인력을 굳이 시험이라는 번거로운 과정으로 뽑을 필요가 있을까? 그냥 가져가면 되지.
어디를 가도 이런 안정적인 공급망은 볼 수 없다. 아펠스 시절부터 존재한 아카데미가 갑자기 망할 일도 없지 않나.
마음 같아서는 학생회 인원을 늘려서 예비 공무원도 늘리고 싶지만, 지금 학생회의 능력은 소수 정예로 구른 덕분에 생긴 능력이지. 괜히 양을 늘리면 질이 하락한다.
“내년 학생회는 어떨지 기대되는군요.”
“걱정 마세요. 2학년 중에도 뛰어난 인물은 많으니까요.”
“오, 그렇습니까?”
“만약 칼의 눈에 차지 않으면 제가 회장으로서 열심히 단련시킬게요.”
키득거리며 말하는 모습에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괜한 말을 꺼내서 얼굴도 모를 2학년들의 미래가 결정됐다.
말은 내 눈에 차지 않으면, 이라는 조건부였지만 실제로는 마르게타가 1년 동안 장난 아니게 굴리겠지.
‘미안하다.’
그래도 1년 고생하고 수십 년이 보장되면 괜찮은 거래 아니냐. 1년 동안 담당 일진이 공녀인 건 조금 가혹한 일이지만.
아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상사의 눈치를 보는 법도 미리 배우는 거다. 어느 부서를 가든 공작가 사람이 상사로 버티는 경우는 드무니까 내성은 확실히 쌓이겠지. 오히려 좋은데?
“마르만 믿겠습니다.”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그 말에 기대감이 차기 시작했다. 마르게타라면 잘할 거다.
“앞으로가 기대되는군요.”
내년에는 지금 회장을 비롯한 간부들, 그리고 내후년에는 마르게타가 키운 간부들. 2년 연속으로 훌륭한 신입들이 행정부에 활력을 불어넣겠지. 만족스럽다.
“마르는 어느 부서로 갈 생각입니까?”
그리고 가장 기대되는 건 마르게타다. 공작가의 일원이면서 학생회에 자원할 정도면 얼마나 열의를 가지고 공직에 임할런지.
“아.”
하지만 마르게타는 짧은 한 마디와 함께 몸이 굳었다.
굳어지는 몸과 별개로 애처롭게 떨리는 동공은 내가 말실수를 했나 걱정될 정도였다.
***
아마 나 혼자 있었다면 베개를 끌어안고 굴러다녔을 거다.
“유급은 불가능합니까?”
후후…
“먼저 떠나지 말고 제 옆에 있었으면 합니다.”
우후후후후후…
‘최고야.’
녹아내릴 것 같은 표정을 겨우 붙잡으며 이 행복을 만끽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칼에게 부끄러운 얼굴을 보일 것 같아 가슴이 떨리지만, 사소한 말에도 나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잖아. 이렇게 버티는 것도 대단한 거야.
제도에서 칼이 모든 걸 말해줬을 때는 속으로 각오했었다. 칼의 상처가 아무는데 1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기다리자고.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곁에서 기다리자고.
칼은 나에게 누구보다 먼저 속을 보여줬으니까. 아무리 오래 걸려도 결국 나에게 올 테니까. 그래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택했다.
하지만 칼은 바로 나를 바라봐줬다.
‘행복해.’
1년? 10년? 칼은 단 하루 만에 웃어줬다. 물론 상처가 나은 건 아니겠지. 과거를 잊은 것도 아닐 거다. 그럼에도 칼은 나에게 솔직하겠다는 말을 지키기 위해 숨김없는 모습을 보였다.
‘칼의 진심.’
이렇게 따뜻한 걸 보면 칼도 나에게 마음이 있었던 거겠지. 그동안의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었어.
여한이 없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
이제 칼과 자식 다섯 정도를 낳고, 막내까지 결혼하는 걸 보고, 손주들이 전부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정말 여한이 없을 거다.
‘죽어도 좋아…’
물론 칼보다는 늦게 죽을 거다. 내가 칼보다 먼저 떠날 수는 없으니까.
아, 그래도 칼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 건 힘든데. 하지만 칼에게 다른 상처를 줄 수는 없으니 내가 참아야지.
칼보다 오래 살려면 넉넉하게 아흔이면 되려─
“내년 학생회는 어떨지 기대되는군요.”
“걱정 마세요. 2학년 중에도 뛰어난 인물은 많으니까요.”
명함에 서명을 하던 칼의 목소리가 들리자 빠르게 입을 열었다. 내가 봐도 훌륭한 순발력이야.
아무튼 내년, 내가 회장으로 있는 시기.
‘흠이 있어서는 안 돼.”
내가 회장으로 있는데 칼에게 실망을 줄 수는 없다. 반드시, 반드시 최고의 학생회를 만들어 칼을 만족시키자.
나라면 할 수 있다. 그동안의 학생회 생활은 폼이 아니었으니까. 그동안 회장을 보며 학생회를 움직이는 방법도 익혔으니까.
신입 관료들이 유능해야 칼이 편해진다. 칼이 편해져야 여유도 많아지고, 그래야 나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나겠지.
‘힘내자.’
미래의 다섯 아이를 위해서라도.
“마르는 어느 부서로 갈 생각입니까?”
타오르던 열정이 그 한마디에 빠르게 식었다.
맞다, 칼은 나도 관료가 되는 걸로 알고 있지.
‘필요 없는데.’
관료 같은 거에는 흥미 없다. 애초에 관료가 되려고 한 것도 무심한 칼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서 아닌가.
하지만 칼이 아카데미에 파견을 오며 굳이 관료가 될 필요가 사라졌고, 칼이 따뜻해지면서 쐐기가 박혔다. 관료가 되지 않아도 칼과 가까워졌는데 그럴 이유가 있나?
애초에 감찰부장인 칼과 신입 관료인 내가 얼굴을 볼 일이 얼마나 있을까. 설령 본다고 해도 업무 시간에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차라리 그 시간에 칼의 저택이나 영지를 관리하는 게 이득이다.
‘어쩌지?’
학생회가 관료가 되는 걸 기대하는 칼이다. 이 상황에서 회장인 내가 관료가 되지 않는다?
“마르 덕분에 누군가는 관료가 될 기회를 잃었군요.”
안된다. 개인의 변덕으로 누군가의 미래를 망친 악녀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면 졸업하기 전에 학생회에서 나갈까?
“마르에게는 학생회도 재미에 불과했군요.”
그것도 안된다. 끈기가 없는 가볍고 처신 못하는 여자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면 눈 딱 감고 관료가 될까? 관료가 되고 바로 결혼을 못한다는 건 거짓말이었잖아.
“마르가 안주인으로서 영지를 맡아줬으면 했는데, 아쉽군요.”
앗, 아아…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흐르기 시작하니 모든 게 두렵다. 무엇을 생각해도 칼을 실망시킬 것 같다.
어쩌지, 뭐가 정답이지? 내가 어느 부서로 갈지 물어봤으니 관료가 되는 게 맞을까?
“마르?”
“아, 네. 불렀나요, 칼?”
황급히 대답하자 칼은 오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보지 마,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아줘…
무심코 고개를 숙이자 머리 위에서 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관료에 생각이 없는 겁니까?”
가슴 안쪽으로 묵직하게 날아오는 말에 순간 몸이 떨렸다. 직접 말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채다니, 역시 칼은 나랑 마음이 통…
아니, 이게 아니잖아.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도피하지 마.
“…네, 맞아요.”
고민 끝에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칼이 나에게 솔직했으니 나도 칼에게 숨기는 게 없기로 했잖아. 그런 다짐을 했는데 고작 이런 걸 숨길 수는 없지.
대답을 하자마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칼이 나를 어떤 표정으로 보고 있을지 직접 확인하기 무서웠다.
“다행입니다.”
어?
예상하지 못한 말에 슬쩍 고개를 들자 미소를 짓고 있는 칼의 얼굴이 보였다.
“딱히 관료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 그런가요?”
방금까지 열심히 추천장을 쓴 사람의 말이라 신뢰성이 조금 떨어졌다.
“관료밖에 길이 없다면 모르겠는데, 마르는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칼은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관료를 택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는 듯이.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는 게 낫습니다.”
그 말을 하는 칼의 눈에는 약간의 애환이 담겨있었다.
***
쭈뼛거리던 마르게타는 몇 번 더 어르고 달래주고 나서야 기운을 차렸다. 설마 내가 실망할 거라 생각한 건가.
‘오히려 다행이지.’
마르게타의 공직 생활에 흥미가 가기는 했지만, 그건 마르게타가 진심으로 공무원에 꿈이 있는 것 같아 그런 거고. 공무원은 최대한 안 하는 게 맞다.
내가 실시간으로 구르고 있는데 이 마굴에 마르게타도 들어온다고? 마르게타가 진로를 걱정해야 하는 입장이면 모를까 공작의 사랑을 받는 막내인데?
몇 번을 생각해도 공무원은 최대한 안 하는 게 맞다. 이미 마굴에 발을 들인 나나, 저기 밖에 있는 예비 공무원들을 빼면 말이다.
“인상이 칙칙해서 그런지 인성도 시꺼멓네.”
“시꺼먼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의 앞날이 아닐까요. 이 선택받지 못한 놈.”
“놈이 아니라 년이거든?”
그래서 너네 언제까지 싸우냐.
슬슬 동아리실로 돌아갈 생각에 문 앞까지 갔지만, 밖에서 들리는 소음에 차마 문을 열지 못했다.
회장의 화려한 언변에 총무의 멘탈이 점점 갉아먹히다가 결국 무력 충돌이 일어난 것 같았다. 멱살 잡히는 소리와 머리카락 붙잡는 소리가 여과 없이 들렸다.
일단 사이가 좋은 건 맞는 것 같다. 저러고 3년을 지냈는데 아직도 저러는 걸 보면 보통 사이는 아니네.
“마르, 이제 나가보겠습니다.”
일부러 문 너머도 들릴 정도로 말하자 UFC도 멈췄다. 듣다 보니 재밌어서 계속 서있었지만 이제 나가야지.
“감찰부장님, 돌아가시는 겁니까?”
“그래.”
문을 열자 평온한 얼굴과 복장의 회장이 반겨줬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자세히 보니 멱살 부근이 흐트러지고 머리는 무언가에 잡아끌린 듯 묘하게 떠있었다.
그리고 회장 뒤에서 고개를 숙인 총무에 비해 회장의 모습이 더욱 처참했다.
‘네가 졌구나.’
육체보다는 언변에 치중한 스타일이었어.
다시 시선을 총무 쪽에게 돌리니 고개를 숙인 총무의 어깨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직 흥분 상태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냥 나가면 2차전이 터질 것 같으니 추천장은 바로 주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