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35)
분노한 총무에 의해 회장이 ‘찬란한 회장 조각 X 8’이 되는 참사는 피했다. 조각 모음 하는 것도 일인데 다행이네.
“시리 다르레드, 맞나?”
“네, 맞습니다!”
“제대로 썼군. 받아라.”
“감사합니다!”
사단장 앞의 이등병 같은 우렁찬 목소리에 절로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정도로 열정에 가득 찬 친구가 재무성에 들어온다면 내 앞날도 편하겠지. 감찰부면 더 좋고.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명함을 받는 총무의 모습은 누가 봐도 행복해 보였다. 분노로 떨리던 어깨가 다른 의미로 떨리기 시작했을 정도니까. 얘도 자작가 차녀라는 애매한 입지라 누군가에게 추천장을 받을 일은 없었겠지.
‘이게 신입이지.’
사소한 기회 하나에도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습. 너는 꼭 정상적으로 자라야 한다. 이런 풋풋한 신입이 1, 2, 3 과장 트리오처럼 암흑 진화를 하면 정말 슬플 거야.
“그동안 학생회의 노력과 능력은 가까이서 봤으니 잘 알고 있지. 이전부터 추천장을 주려고 했는데, 마음에 든 것 같아 다행이군.”
“영광입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뭘 은혜까지야. 내가 더 고맙지.
“회장에게는 내가 비밀로 해달라고 했으니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말고.”
옆에 있던 회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니 총무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혹시나 있을 2차전은 예방했다.
회장이 좀 화려할 정도로 혓바닥을 놀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티배깅을 할 절호의 기회는 놓칠 수 없지 않나. 이해한다, 나도 회장 나이 때는 저랬으…
‘시발.’
자연스레 드는 끔찍한 생각에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겨우 2살 차이인데 이게 무슨 소리야. 나도 아직 젊은 나이인데.
내 실제 나이에 비해 정신이 늙어가고 있다. 정신 차리자, 젊은 꼰대가 될 수는 없어.
“다른 간부들의 추천장이다.”
참담한 심정을 억누르며 4장의 명함을 회장에게 건넸다. 이미 총무에게도 준 상황이다. 다른 간부들에게 전해주는 날이 늦어지면 본인이 패싱 당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 노릇.
앞으로 수십 년을 제국을 위해 봉사할 인재들인데 사소한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게 할 수는 없다. 회장에게 맡기면 오늘 안에 처리할 거라 믿는다.
“제대로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만약 회장이 까먹더라도 총무가 보고 있으니 염려할 필요는 없겠고. 게다가 먹고 튈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니 제대로 주인에게 전달되겠지.
그렇게 회장과 총무, 어느새 부회장실에서 나온 마르게타의 배웅을 받으며 학생회실을 나갔다.
‘조용하네.’
그리고 내가 나가자마자 총무가 회장의 멱살을 잡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이다. 예비 공무원끼리 싸우다가 다치면 국가의 손해지 않나. 너희 몸은 이제 너희 게 아니라 국가의 몸이야.
동아리실로 복귀하던 중, 적당히 인적 없는 곳에서 통신구를 꺼냈다.
– 제휴?
“거창하게 말하면 그렇기는 합니다.”
중요한 아이디어는 잊기 전에 빠르게 처리하는 게 중요하니까.
물론 동아리실에서 해도 될 것을 굳이 야외에서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현 학생회에게 추천장을 뿌리고, 마르게타에게서 내년 학생회를 확실히 키우겠다는 말을 들으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땅바닥에 원석이 굴러다니면 전문적으로 수거를 해야지, 혼자 줍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다. 혹여나 그런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인해 예비 노예, 아니 예비 공무원을 미처 챙기지 못하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래서 아예 아카데미와 연계해 학생회는 자동으로 관직에 진출하는 제도를 만드는 건 어떤가, 하고 장관에게 제안했다.
“어차피 학생회는 관직 진출을 원하고, 우리도 신입이 늘어나면 좋지 않습니까.”
– 그건 그렇지.
대답과 달리 장관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마치 그냥 둬도 잘 돌아가는데 굳이 건드릴 필요가 있냐는 표정.
저 불같은 양반도 책상에 2년 앉아있었더니 서류맨이 다 됐구나. 굳이 안 해도 되는 건 건드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부장 앞에서 내 턱주가리에 주먹을 꽂던 화끈한 과장은 어디로 갔나.
“관료를 목표로 달린 애들인데 굳이 시험을 볼 필요가 있습니까?”
그래도 장관의 결재를 받아야 하기에 계속 말을 이었다. 이미 추천장만 있으면 아무 경력도 없는 인물이 공무원이 되는 판국이다. 무경력도 아닌 3년 학생회로 구른 애들한테 프리패스권을 주는 게 문제가 되나?
– 가만히 둬도 관료가 되려는 것들인데 굳이 이런 제도를 만들 필요도 없지.
‘문제는 없지만 귀찮음은 있다.’ 직접 입 밖으로 뱉은 말은 아니지만 장관의 표정은 딱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간단한 일은 아니다. 아카데미와 얽힌 문제니 교육성이 따라오고, 신입이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방식이니 제대로 서류화 해야 한다. 못할 건 없지만 귀찮기 짝이 없는 일.
반면 지금처럼 시험으로 관료가 되게 두면 기존에 있는 제도로도 충분하고, 정 시험을 넘기고 싶으면 나처럼 직접 추천장을 뿌리면 된다.
하지만 그러면 안된다. 그런 주먹구구식 방식으로는 원석을 놓치는─
– 야.
“예?”
다시 입에 시동을 걸려는 사이 장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 몇 명 남았냐?
덤덤하게 묻는 장관의 말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망할, 이 타이밍에 그걸 묻네.
“…일흔 정도 남았습니다.”
– 하.
입을 몇 번 달싹이다가 겨우 대답하자 장관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 설마 아직도 믿고 있냐?
“아니, 갑자기 그런 말하기 있습니까?”
밉다. 애써 생각하고 있지 않던 주제를 끌어올린 저 인간이 너무 밉다.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지만 통신구 너머라 어떻게 할 방법도 없고.
– 가끔 보면 지능이 부족한 건지, 머리가 순수한 건지 구분이 안 간단 말이야.
“신의가 넘친다고 해주십쇼.”
그리고 시발, 지능 부족하고 순수한 머리는 같은 말이잖아.
‘망할.’
한숨을 내쉬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나도 안다. 내가 의미 없는, 믿을 게 못 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는 걸.
“유능한 인재를 방치하는 건 제국에 죄를 짓는 것이지 않나. 만약 감찰부장을 대체할 인재를… 그래, 백 명 정도 데려온다면 고려할 수 있지.”
과거, 내가 미친 척 장관을 패싱하고 바로 황태자에게 사직서를 날렸던 날. 그날 황태자가 나에게 했던 말.
사직서를 보고 웃음을 흘리던 황태자는 나에게 딜을 걸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딜이 아니라 놀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황태자는 내가 정말 백 명을 데려와도 ‘감찰부장은 백 명이 아니라 이백 명으로 대체 가능하지.’ 라고 말을 바꿀 놈이니까.
잘 알고 있다. 내가 들은 말이 장난감이 가지고 싶다고 난동 부리는 아이에게 ‘올해 착하게 지내면 사줄게.’ 같은 부질없는 약속이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절박하고 아쉬운 놈은 무언가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법이다. 나도 그렇다…
– 그 와중에 서른은 어떻게 구한 거냐.
“다 아카데미에서 구했습니다. 아카데미가 좋긴 좋던데요.”
이미 장관에게 속내를 들켰으니 막 나가기로 했다. 학생회 말고도 지난번 실기 시험 때 재미 좀 봤지.
그래, 이번 제휴 제안에 사심이 가득 담긴 건 맞다. 아카데미에 있는 예비 공무원들을 자동으로 쭉쭉 뽑아서 백 명 채우려고 했다. 그게 잘못이야? 나만 좋자고 하는 일이야? 모두 행복한 방법이잖아.
학생회는 마음 고생하지 않고 공무원이 돼서 좋고, 나는 내 밑이 빠르게 차서 은퇴가 앞당겨지니 좋고, 황태자는 신규 노예가 생기니 좋고. 얼마나 좋아.
애석하게도 장관은 그 모두 중에 포함이 되지 않은 것 같지만.
– 고려는 할 테니 얌전히 있어.
고려하겠다는 말은 시끄러우니까 닥치라는 말이나 다름 없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어쩌겠나. 결재를 해줄 사람이 요지부동이면 방법이 없는데.
앞으로도 추천장은 내가 직접 작성해야겠다. 그래도 졸업 전에는 백 명 채우겠지.
장관과의 연락은 동아리 시간이 되고 나서야 끝날 정도로 길어졌다. 사실 내가 추하게 애원한 시간이 절반 이상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야박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내가 재무성과 제국을 위해 얼마나 굴렀는데 이런 부탁 하나 안 들어주나.
‘시간만 잡아 먹었네.’
이미 동아리실에 부원들이 모여있을 시간이다. 설마 그 사이에 사고를 치지는 않았겠지? 2학기 개학 기념이라면서 이상한 짓을 했다면 정말 서러움에 오열할지도 모른다.
제도에 있을 때는 마르게타에 집사에 4과장도 있어서 잠깐 자리를 비워도 편했지. 이제 좋은 시절은 다 갔다.
‘좋은 시절?’
생각해 보니 이상하네. 부원들을 데리고 제도에 있는 게 좋은 시절일 정도로 내 근무 환경이 바닥을 기는 건가.
슬쩍 머리를 가로 저으며 생각을 털었다. 괜히 빨간약을 먹고 진실에 도달하면 나만 고달프지.
…이미 고달픈 일이 생길 것 같지만.
‘이번엔 또 뭐야.’
동아리실에 가까워질수록 정체 모를 소음이 커져갔다. 무슨 일이 터진 것 같은 불길한 징조.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저것들이 말싸움으로 언성이 높아진 거면 바로 외교 분쟁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일이다.
“오, 고문 선생! 오셨습니까?”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류티스가 찻잔 하나를 들며 반겨줬다.
“웬일로 늦으셨군요.”
“잠시 일이 있어서.”
빠르게 동아리실을 훑어보니 우려한 일은 아니다. 평범하게 다과를 깔아두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던 상황.
‘사람 헷갈리게.’
혼자 놀라서 달려온 스스로가 못나 보였다.
“아, 과자는 동아리실에 있던 걸로 먹었습니다. 새로 만들기에는 시간이 없어서.”
“괜찮다. 다 먹으라고 있는 거지.”
빌라르와 페로사에게 대접하고 남은 거였나.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눅눅해지는데 상관없다.
“하하, 감사합니다. 다 같이 루이제에게 차인 기념이라 도저히 만들 시간이 나질 않더군요.”
…?
뭔 기념?
그 말과 함께 어깨를 으쓱인 류티스는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시선 끝에는 얼굴이 붉게 변해서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루이제가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 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