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39)
부원들에 의해 탄핵과 후임 추대를 동시에 겪은 루이제는 그 이후로도 수시로 탄핵과 취임을 반복해야 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날이 좋아서, 쿠키의 맛이 별로라서, 빵 부스러기가 많아서, 오늘은 과자가 괜찮게 만들어져서. 대충 그런 것들.
그렇게 루이제는 개학 2주 만에 제과 동아리 부장 일곱 번 연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내일 7대 부장 탄핵과 8대 부장 취임이 예정되어 있다. 이 정도면 그냥 일일 퀘스트 아니냐.
부장 교체는 동아리 명단을 새로 작성해야 하니 귀찮은 일이지만, 1대부터 지금까지 쭉 루이제였기에 가만히 두고 있었다. 10대들의 장난에 불과하니 굳이 막을 이유도 없고.
“부원들의 우정이 두터워졌으니 고문으로서 흐뭇한 일입니다.”
그런 장난 속에서 피어나는 우정을 보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조금 이상한 우정이지만 아무렴 어때. 한 명을 노린 다섯의 사랑 경쟁보다는 차라리 여섯의 철없는 우정이 나은 법이다.
“새로운 학기라 그런지 다들 새로운 마음으로 임하시는 것 같군요.”
빌라르도 동의하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부원들이 사랑 경쟁을 하다가 서로 앙심이 생기면 스케일이 커진다. 황자, 왕자, 성자 후보가 서로 증오하기 시작하면 얼마나 개판이 터질까.
그리고 개판이 터지기 시작하면 윗분을 어떻게 모셨길래 이딴 일이 터지냐고 갈굼 당하는 아랫놈이 생기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그 아랫놈은 나와 빌라르다.
그러니 사랑을 포기한 지금의 모습이 낫다. 적어도 윗분들의 감정 싸움으로 우리가 갈려나갈 가능성은 사라졌으니.
“다음은 어떤 모습으로 저희를 놀라게 할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동감입니다. 벌써 내년이 기다려지는군요.”
겉으로는 가볍게 웃으며 나눈 대화지만 그 속내는 가볍지 못했다.
‘역시 무리네.’
루이제에게 전원 차였으니 로맨스 판타지에서 로맨스가 사라진 상황. 그렇다면 이것들이 아카데미에서 떠나지 않을까 하고 살짝 기대했었다. 저것들이 조기 귀국한다면 나를 놀라게 하는 건 맞잖아. 그래서 슬쩍 떠봤다.
그리고 빌라르는 ‘내년에 직접 봐.’ 라는 말로 조기 귀국 따위는 없다는 대답을 날렸다. 그래, 예상하긴 했다. 아쉽긴 하지만 예상한 결과다.
‘루이제 때문에 온 것도 아니니.’
원작의 힘으로 인해 부원들이 아카데미에 모인 건 맞다. 하지만 이곳은 어느 작품의 원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
현실적으로 얼굴도 이름도 존재도 모르는 루이제를 보기 위해 왕족이나 되는 것들이 아카데미에 왔을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각자 이유가 있어서 아카데미에 오고, 그곳에서 루이제를 만난 거다.
그러니 루이제에게 차여도 돌아갈 이유는 없지. 애초에 루이제를 보기 위한 입학이 아니었으니. 오히려 지금 귀국하면 ‘칭호: 여자에게 차이고 도망간’ 이 붙어버린다.
‘결국 졸업까지 봐야 하나.’
그래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지금 분위기를 보면 졸업 이후 2부 같이 끔찍한 일은 없지 않겠나.
눈 딱 감고 더 버티자. 이제 루이제에게 잘 보이겠다며 트롤짓을 하지도 않을 테니. 다섯이 서로 견제를 날리며 진전이 없는 답답한 꼴을 보지도 않을 테니.
빌라르도 같은 생각인지 눈이 마주치자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힘내자.
***
자퇴할까.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자퇴하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일이 이렇게 흐를 확률이 대체 얼마나 될까. 일단 평범한 사람은 평생 동안 겪을 일 없는 확률이라는 건 알겠다.
아카데미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높다. 경쟁자가 넷이나 있을 확률, 그럭저럭 높다. 그 경쟁자가 전부 나보다 신분이 높을 확률, 적지는 않다. 나를 포함해서 다섯이 동시에 차일 확률, 없지는 않다.
그리고 앞에 있는 모든 확률을 돌파한 상황에서, 사랑했던 사람이 내 형에게 마음이 있을 확률은 극히 미미하다. 한없이 0에 가까운 확률이다.
‘그게 되네.’
하지만 그 0에 가까운 확률이 터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땅이라도 샀지. 그러면 거기서 금광 정도는 나왔을 텐데. 어차피 확률적으로는 비슷하지 않겠나.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다. 내가 상대를 좋아한다고 상대도 나를 좋아하라는 법은 없다. 경쟁자도 만만치 않으니 각오도 하고 있었다.
루이제에게 거절당하면 아쉽고 슬프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납득하려고 했다. 루이제는 소중한 친구이기도 하니까.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형이 얽히는 건 각오도, 생각도 못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한 사람이 있으면 그건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야지.
“복잡하다…”
답답한 심정에 홀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듣는 사람도 없으니 욕을 해도 상관없지만.
처음에는 깜짝 파티인 줄 알았다.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할 정도로 당혹스러운 일이었으니. 그 당혹감만큼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어떤 표정으로 루이제를 보고, 어떻게 형을 대해야 할까.
형이 아닌 다른 사람이면 괜찮다. 미련도 털어냈으니 루이제가 누굴 만나든 기꺼이 축하할 자신은 있다.
그런데 루이제가 형과 이어지면 난 첫사랑을 형수로 두는 기괴한 상황에 빠진다. 심지어 루이제도 도련님을 찬 상황이 되잖아. 서로 어색해서 숨이나 쉬겠냐.
‘형은 모르는 것 같고.’
마르게타 공녀에게도 선을 그었다가 최근에서야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 형이다. 그런 형이 루이제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만약 형이 고의적으로 루이제를 홀린 거라면 차라리 화라도 냈을 텐데. 이게 지금 무슨 짓이냐고 멱살을 잡았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안다. 형은 루이제의 마음을 모르고, 오히려 내가 루이제와 잘 되기를 원했다. 형에게 받은 도움도 적지 않았을 정도로.
그러니 어떻게 원망하겠나. 형은 동생을 위해 노력했고, 동생은 능력이 부족해서 실패했다. 그것뿐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는 건 아니기에 생각을 접었다. 그래, 어떻게든 될 거다.
애초에 루이제가 형과 이어진다고 확정된 것도 아니지 않나. 이렇게 고민하다가 아무 일도 없으면 나만 민망한 상황이다.
…그래도 자퇴서를 가지고 다니는 건 잊지 말자. 여차하면 바로 본관으로 달려가서 제출할 각오로 품고 다니자.
‘나도 형처럼 되는 건가.’
형제가 나란히 열일곱에 관직 진출이라니. 크라시우스 가문은 정말 충신 가문이구나.
하하, 망할.
잠이나 자자.
***
통신구를 업무 용도가 아닌 사적 용도로 쓰는 건 오랜만인 것 같다.
“주신 건 꼬박꼬박 먹고 있습니다.”
– 그래, 꼭 챙겨 먹으렴.
심지어 그 대상이 어머니라서 그런지 더욱 낯설다. 지금까지 가문에 말할 게 있으면 집사장이나 시종장에게 연락했으니까. 둘을 거치는 게 아니라 어머니에게 직접 거는 건 처음이네.
그 기묘한 어색함 때문에 잠깐 망설였지만, 앞으로 연락드리겠다고 어머니와 약속했으니 결국 연락을 걸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런 사소한 약속도 어기는 건 조금 그렇지.
연락을 걸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바로 연락을 받았을 때는 조금 놀랐지만.
– 더위는 사그라들고 있지만 그래도 조심하렴.
“명심하겠습니다.”
– 갑자기 온도가 변하면 감기에 걸리기 쉽다고 하더구나.
“아, 예.”
아무튼 어머니는 안부와 걱정으로 가득 찬 말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이러니 조심해라, 저러니 조심해라, 이것도 조심해라, 저것도 조심해야 한다.
‘나는 대체 어디 있는 거지.’
어머니가 조심하라는 말을 듣다 보니 혼란스러웠다. 나는 지옥에서 근무하고 있었나. 왜 이렇게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냐.
어떻게 보면 지옥이 맞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건 좀.
– 알겠니?
“알겠습니다.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이니 묵묵히 경청했다. 다르게 생각하자. 요 몇 년 동안 못한 연락을 몰아서 하고 있는 거라고. 자업자득이네.
– 에리히는 잘 지내니?
그렇게 계속 말을 이어가던 어머니는 에리히를 언급했다. 에리히 안부를 왜 나한테.
이 새끼, 설마 어머니한테 연락 안 드렸나?
‘못할만하지.’
동생의 불꽃 효도에 울컥할 뻔했지만 에리히의 상태가 떠오르니 금방 가라앉았다.
에리히가 지금 다른 사람하고 대화할 기분은 아니겠지. 같은 슬픔을 공유하는 부원끼리라면 모를까, 어머니에게 연락할 생각은 나지도 않을 거다.
사실 차이자마자 낄낄거리는 모습을 보면 아무렇지 않아 보이기는 하는데, 그 속내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겉으로만 멀쩡하고 속은 썩어가는 중일 수도 있지.
‘말해야 되나.’
진지하게 고민된다. 차인 걸 말해야 되나?
방학 때도 에리히가 아카데미에서 마음에 맞는 상대를 찾기를 바란 어머니다. 아들의 연애 사정이 당연히 궁금할 거다.
당시에는 차마 ‘에리히가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경쟁자 중 최약체라 좀.’ 이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넘어갔었다. 그런데 지금은 경쟁자가 아니라 한날 한시에 차인 동지가 되어버렸고.
“그, 어머니.”
고민 끝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나 에리히의 사생활이다. 에리히 본인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어머니가 몰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가 에리히에게 연애 관련 질문을 하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물론 비밀로 한 사람이 감수해야 할 일이지만, 그래도 첫 실연의 아픔을 어머니 손에 인양당하는 건 너무 가혹하잖나.
“그게 말입니다.”
물론 에리히 앞에서는 티를 내지 말아달라고 당부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