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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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근무 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
연애 경쟁이 끝나니 다섯 머저리의 속 터지는 모습을 볼 일이 사라졌다. 덕분에 정신적인 피로도 급감했고. 욕하면서 강제로 시청하던 막장 드라마가 드디어 완결 난 기분이다.
그리고 다섯의 상호 견제와 그 견제 속에서 어떻게든 치고 나가려는 발악도 사라지니 동아리가 굉장히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높-으신 분들이 잠잠하니 미천한 아랫놈은 행복하지.
“오늘은 맛있네.”
“역시 10선 부장이야. 제대로 실력을 내니 굉장하잖아.”
“인정해줘서 고마워…”
평화로운 대화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 이게 아카데미지. 이게 동아리지.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삶이 뭐가 아카데미냐. 이 평화로움이야 말로 진정한 아카데미다.
물론 내가 놀기 위해 아카데미에 온 건 아니지만, 누리지 못한 학창 생활을 생각하면 나는 늦게나마 이 평화를 즐길 자격이 있다. 그렇게 믿는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
흡족함에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도 좋고, 빌라르도 좋고, 루이제도 좋고, 저 다섯한테도 좋은 결말이 아닌가.
만약 저것들이 실연에 마음 아파했으면 모를까, 저렇게 잘 노는 걸 보면 오히려 차이는 게 올바른 루트인 것 같다.
“진작에 이렇게 할 수 있었으면서.”
“그러게. 조금 괘씸한데.”
“조만간 11대 부장이 탄생하는 겁니까?”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그만해.”
쿠키 주변에 모인 부원들의 대화를 듣자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효과 확실하네.’
아홉 번 연속 탄핵이라는 엄청난 기록은 루이제를 치욕과 수치에 떨게 하기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혼심의 힘을 다하여 쿠키를 만들었고, 드디어 부원들에게 합격을 받은 모양이다.
확실히 이틀에 한 번 탄핵 당하는 건 너무했지. 오죽하면 동아리 내에 ‘1 루이제’ 라는 단위도 생겼겠냐.
“반 대항전이 언제였지?”
“7 루이제 후.”
대충 14일 후라는 의미다. 반죽을 주물럭거리다가 그 말을 들은 루이제는 보는 사람이 걱정될 정도로 몸을 떨었지. 정작 그 말을 한 당사자들은 뭐 어쩔 거냐는 듯이 당당했지만.
물론 웃자고 하는 장난이니 감정 싸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애초에 동아리 밖에서는 평범하게 말하는 것 같더라.
만약 왕족들이 동아리 밖에서도 1 루이제라는 단위를 사용하면 다른 학생들도 따라하게 되겠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아마 루이제는 울면서 자퇴하지 않을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성별을 초월한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데 굳이 그 친구를 몰아세울 필요는 없지.
예전보다 지금이 더 친해 보이는 건 절대 기분 탓이 아닐 거다. 우리는 좋은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어, 라는 말이 진짜로 통하는 말이었다는 게 놀랍다.
“오라버니, 여기요.”
차이자마자 이렇게 친해지는 걸 보면 사실 원작이 로맨스 판타지가 아니라 프렌즈 판타지가 아니었을까 고민하는 사이, 쿠키 하나가 눈 앞에 불쑥 튀어나왔다.
평소에 잘 먹는 단골 손님이라고 직접 배달도 해주네. 감동이다.
“고마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루이제가 내민 쿠키를 집었다.
요즘은 다른 녀석들 입맛에도 맞아서 그런지 내가 먹을 양이 좀 줄었지. 덕분에 쿠키 하나하나가 좀 귀하게 느껴진다. 뭔가 좀 아쉽네, 나만의 작은 맛집이 유명 맛집이 된 것 같아.
“잘 만들었네.”
몇 번 씹어 삼키고 루이제의 어깨를 토닥였다. 예전에 비하면 뭔가 달라진 것 같지만, 부원들 입맛에 맞추다 보니 그런 거겠지.
***
형의 얼굴을 봤다. 평소하고 같은 피로에 찌든 표정이다. 간혹 웃는 것 같기는 하지만 솔직히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분도 안된다.
루이제의 얼굴을 봤다. 누가 봐도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에 얼굴도 불그스름했다. 우리가 놀리면 꼬리 세운 고양이 마냥 반응했던 것에 비하면 누군가 싶을 정도로.
흠.
‘겨울인가.’
왜 옆구리가 시리지.
무심코 옆구리를 매만졌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겨울은 이 세상이 아닌 나의 마음에만 찾아온 변덕스러운 요정이기에.
‘머리도 얼었나.’
별 이상한 비유를 하는 걸 보니 머리도 맛이 간 것 같다. 하지만 내 잘못은 아니다. 이 상황이 내 잘못이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마르게타 공녀의 전례도 있으니 형이 루이제의 마음을 모르는 건 예상했다. 루이제가 형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각오했다.
씁쓸하지만 어쩌겠나. 차인 주제에 루이제한테 내 앞에서 자제하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런데 이건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저걸 모른다고?’
지나가던 개를 붙잡고 물어봐도 알 거다. 저 둘이 무슨 관계 같냐고 물어보면 예쁜 사랑 하라고 응원의 꼬리 흔들기를 할 수준이니. 그 정도로 루이제의 눈빛은 노골적이었다.
그리고 형은 개도 알 정도의 눈빛을 받고도 아무 반응이 없다. 알면서 저러는 거면 형이라도 패야 할 혐오스러운 인성이고, 정말 모르는 거면 마르게타 공녀와 루이제가 걱정될 정도의 눈치다.
‘루이제만 불쌍하게.’
형이 저 모양이면 차라리 루이제가 더 적극적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 다섯을 동시에 찼던 그 용기면 뭔들 못할까. 까짓 사랑 고백 정도야 쉽겠지.
하지만 루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 루이제 정도 동안, 아니 20일 정도 동안 형에게 직접적인 고백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했다가 맞지만.
‘아직 공녀도 기다리고 있으니.’
형의 첫 번째 부인, 혹은 유일한 부인이 될 사람은 사실상 공녀로 확정됐다. 문제는 그 공녀조차 아직 형과 공식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형에게 직접적인 호감을 표하면 공녀의 분노가 덮칠 거다.
그러면 루이제가 형의 부인이 될 확률은 급격히 하락한다. 아무리 새로운 부인을 들이는 게 남편의 독단으로도 가능한 일이라지만, 첫 번째 부인이 공작가면 아무래도 눈치를 많이 살피게 되겠지.
…솔직히 형의 파멸적인 눈치를 보면 분노에도 아랑곳 않고 강행할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제발 관계에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 빨리 이어지든 실패하든 결과가 나와야 마음이 편하지. 아무 진전 없는 모습만 계속 보여주면 고문 아니냐고. 난 대체 뭘 위해 차인 건데.
“형수님 보냐?”
“닥쳐.”
어깨동무를 하며 속삭이는 류티스에게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안 그래도 심란한데 거슬리게.
내 대답에 작게 웃음을 흘린 류티스도 내 시선을 따라 형과 루이제에게 시선을 돌렸다.
“답답하군.”
“답답하지.”
류티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받고 싶었던 눈빛을 받으면서 눈치 채지 못하는 저 답답함. 만약 형이 아니라 동생이었으면 몇 대 때렸다.
“저런 눈치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
동감이다. 부장이라는 고위 관료라면 온갖 정치판을 겪었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저런 눈치로 지금까지 버틴 거지?
“우리도 고문 선생 눈에는 저런 모습이었겠지.”
“그렇겠네.”
훅 들어오는 말에 잠시 숨이 막혔지만 겨우 긍정했다.
지금 내가 형을 보며 느끼는 심정이 딱 과거의 형 마음이었을 테니.
‘내가 정말 저랬다고?’
끔찍하다.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
심지어 나는 호의를 받고도 모르는 게 아니라 단순히 관계 진척이 안된 답답함이었다. 형보다 나을 게 없는 입장.
물론 다른 넷도 마찬가지라 마음이 조금 놓인다. 머저리가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 다행이야. 부끄러움은 나누면 줄어드니까.
“일단 두고 보자고.”
의외의 말에 슬쩍 류티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저돌적인 왕자라면 친구의 연애를 돕자고 나설 줄 알았는데.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류티스는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연애 실패자 다섯의 도움이 딱히 이로울 것 같지는 않아서.”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
약 3주에 이르는 기나긴 평화에 긴장이 풀어진 모양이다.
“칼, 무슨 일 있나요?”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이런 말을 들을 리 없지.
내 눈치를 살피던 마르게타가 조심스레 꺼낸 말에 괜히 머쓱해졌다. 무슨 일이 있다는 걸 나도 모르는 사이에 티를 낸 것 같다. 그래놓고 아무 말도 없으니 마르게타 입장에서는 궁금한 게 당연하다.
하지만 마르게타에게 ‘루이제가 다섯을 전부 차버려서 제가 너무 편합니다.’ 라는 인성이 의심되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나. 심지어 그 다섯 중에는 에리히도 있다. 마르게타에게 동생의 비극에 기뻐하는 인성 파탄자로 보이는 건 슬픈 일이다.
“별일 없었습니다.”
“그런가요?”
그리고 시무룩한 마르게타의 모습을 보는 게 더 슬픈 일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실수했다. 앞으로는 숨기는 거 없이 솔직하기로 했는데. 아무리 사소한 거라지만 무언가를 숨겼다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
“동아리 내부 일이거든요. 부원들의 사이가 돈독해졌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부원들 사이가요?”
“예.”
예상 못한 일이라는 듯 마르게타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럴만하지. 마르게타는 나와 가깝게 지내며 제과 동아리와도 가끔 엮였고, 방학 동안에는 아예 함께 지냈다. 이미 제과 동아리가 사랑에 눈 먼 자들의 모임이라는 건 알고 있는 상황.
그런데 짝사랑 대상과 경쟁자들이 서로 친해졌다면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겠지. 혹시 루이제가 다섯 남편을 두는 건가 싶을 거다.
“…그렇군요.”
오히려 그 반대라는 걸 설명하자 마르게타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작가 영애가 황자와 왕자 등을 시원하게 차버린 기적의 이야기. 나도 빙의자가 아니면 못 믿었을 거다.
“그 일로 동아리가 깨지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사이가 돈독해졌습니다. 요즘은 십년지기 친구 같더군요.”
“…….”
“마르?”
말이 없던 마르게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슬쩍 내 옆자리에 앉았다.
“칼.”
그러더니 내 손을 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 언제나 칼의 옆에 있을게요.”
“감사한 말입니다.”
“누구보다 가까이.”
“더 감사한 말이군요.”
진지한 표정에 비해 하는 말은 귀여웠지만.
***
칼은 부원들이 친해진 것에 기뻐했지만 실상은 다르다. 부원들이 사람으로서는 친해진 것 같지만, 이성으로서는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갑자기 주변을 정리했다고?’
아무 이유 없이 그럴 리 없어.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나를 제외하면 아카데미에서 칼과 가장 가까운 여자가 루이제 영애라는 걸 떠올리고 말았다.
…음.
알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