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41)
동아리실에서 홀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소소한 행복이다. 마르게타와 마시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혼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사실 마르게타가 오늘은 바쁠 것 같다고 해서 안 간 거지만.
‘평화롭네.’
빙의 전 세상에는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었다.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생기기 마련이라는 뜻. 세상을 살면서 늘 불행만 겪으라는 법은 없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그동안 고생한 나는 이 소소한 행복을 즐길 자격이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반대도 성립한다. 지금 좋은 일이 있으면 훗날 참사가 생긴다. 세상을 살면서 늘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라는 것도 양심이 없는 일이니까. 행복의 총량은 무한하지 않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리고 나는 내 운을 믿는다.
‘이제 터질 때가 되긴 했지.’
내 운은 바닥을 기어 다니기에 반드시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확신이 든다. 아무튼 불운도 운이지 않나. 불행할 걸 미리 아니까 마음이 평화롭네, 망할.
다행스럽게도 아카데미 내부, 정확히 말하면 동아리 내부는 극히 평온하다. 동아리에서 일이 터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내부가 조용하다고 외부도 잠잠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
이미 원작에서 아카데미 부수기를 할 것 같은 단체 중 둘이 실제로 튀어나온 상황이니, 나머지 셋도 슬슬 나올 때긴 하다.
‘제발 전부 꺼졌으면.’
루이제가 부원들을 전부 차면서 원작은 찬란한 빛을 내며 소멸했다. 원작 내용은 모르지만, 설마 고백을 받지 않는 걸 넘어 남주들이 전부 차이는 로판이 존재할까? 그러니 원작이 터진 건 맞을 거다.
눈물겨운 다섯 남자의 실연으로 원작이 무너졌다. 그러면 다섯 악역도 같이 사라지는 게 밸런스적으로 옳은 일이 아니겠나.
‘둘이나 때려 잡았으면 됐지.’
억울한 마음까지 든다. 아니, 내가 다섯을 전부 날로 먹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이미 반년 만에 자력으로 둘을 퇴장시켰다. 남은 셋이 조용하기를 바라는 건 지극히 소소한 바람 아니냐고.
그리고 소소한 바람이라 그런지 이루어질 확률마저 소소하다. 애초에 테러에 눈이 돌아간 미친 놈들이 ‘저런, 차이셨군요. 마음이 아프실 테니 저희는 돌아가겠습니다.’ 라는 신사적인 모습을 보일 리는 없긴 하지.
‘망할.’
로맨스 판타지에서 로맨스는 개같이 멸망했지만, 귀찮은 판타지는 정상 운영 중이다. 오히려 로맨스 지분을 흡수했는지 더욱 미친 존재감을 뽐내면서.
한숨과 함께 슬쩍 책상 위에 놓인 통신구로 시선을 돌리자 정보부장이 보낸 글귀가 보였다.
[ 다섯 기둥 내부의 비둘기파 실각. 앞으로 보다 과격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추정. – 특무성 소속 정보부장 ]어제 갑작스레 날아온 문자다. 남아있는 셋 중에서 그나마 다섯 기둥이 잠잠하다는 말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시발.’
다시 봐도 끔찍하네. 비둘기파 실각, 누가 봐도 조만간 사건이 터질 거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문장이다.
‘나약한 것들.’
비둘기라는 이름을 달았다고 능력도 비둘기 수준이면 어쩌자는 거냐. 너희가 실각하면 나머지 놈들이 통제가 안된다고.
복잡한 심정에 몇 번이나 마른 세수를 했다. 그나마 통제가 가능하고 조용했던 다섯 기둥이 순식간에 위험 분자로 등극했다.
사실 내 마음 속에서는 이미 잠재적 테러리스트였지만, 이제는 내 마음이 아니라 제국의 눈으로도 거슬리는 존재가 됐다.
‘어쩌지.’
진짜 어쩌지 이거.
골치가 아프다. 지금까지 제국은 다섯 기둥에게 익명으로 돈을 찔러줬다. 유벤 연합왕국의 단일국 형성을 반대하는 다섯 기둥이 무럭무럭 클수록 제국 입장에서는 잠재적 경쟁자가 사라지는 거니까.
문제는 돈을 받는 주체가 비둘기파였다는 것. 괜히 과격한 매파를 밀어줬다가 뇌절에 뇌절을 거듭해서 폭망하면 돈만 날리는 꼴 아닌가. 그런데 설마 비둘기파가 실각할 줄은 몰랐지.
– 매는 길러본 적이 없어서 말일세. 아무래도 준비가 오래 걸릴 것 같아. 하하, 하여간 비둘기는 먹을 줄만 알지 도움이 안되는군.
정보부장의 문자를 받고 급하게 외무성 장관에게 연락을 하니 해탈한 표정의 외무성 장관이 맞이해줬었다.
제국이 수십 년에 걸쳐 지원하던 비둘기파가 갑자기 본인이 장관일 때 실각해버렸다. 황제의 잔소리를 들을 생각에 정신이 아찔할 거다.
하지만 외무성 장관을 미치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 매가 괜히 매겠나. 길들이기도 전에 어디 가버릴까 걱정되네.
“동감입니다. 워낙 사나워서 말이죠.”
외무성 장관은 내가 걱정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몇 안 남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었다.
제국이 아무 이유 없이 매파를 외면했겠나. 아무리 봐도 저것들이 주도권을 잡으면 8기통을 외치다가 벽에 들이박고 폭발하는 미래밖에 안 보여서 그랬지.
그러면 제국은 유벤 연합왕국의 발목을 잡는 족쇄를 잃게 되고, 나는 미친 매파의 아카데미 부수기에 휘말릴 확률이 크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팰 수도 없고.’
다섯 기둥은 함부로 건들기 애매한 것들이다. 세번째 영광처럼 반란군도 아니고, 황혼 교단처럼 대륙 단위 어그로를 끄는 놈들도 아니다. 그렇다고 제5제국처럼 비주류 중의 비주류도 아니고, 붉은 파도처럼 타협이 불가능한 것들도 아니다.
일단 다섯 기둥도 유벤 연합왕국 내에서 나름 입지 있는 단체라 덩치가 크지. 정계에서도 대충 제1야당 포지션이다. 덕분에 다른 단체처럼 부담 없이 팰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게다가 아무리 매파가 주도권을 잡았어도 다섯 기둥이 유벤 연합왕국을 묶는 족쇄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제국 입장에서는 차마 제 손으로 죽일 수 없다. 진짜 더럽게 꼬였네.
– 아직은 잠잠하네. 비둘기를 사냥하느라 매도 지친 모양이야.
“그건 다행입니다.”
– 하지만 언제 기운을 차릴지 모르지. 자네도 조심하게. 매는 워낙 지독한 것들이니.
“예, 각하. 명심하겠습니다.”
외무성 장관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통신구를 매만졌다.
그래도 비둘기파가 닭둘기 수준으로 무능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 돈을 그렇게 받아먹고 꿈틀거리는 것도 제대로 못했으면 느그가 사람이냐.
아무튼 매파도 비둘기파 숙청에 힘이 빠졌는지 바로 날뛰는 건 아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기는 하지만.
‘라테르가 문제인가.’
매파가 발광하는 걸 굳이 나에게도 경고하는 건 아마 라테르 때문이겠지. 그나마 제국이 가진 매파의 정보를 긁어모아서 차후 행보를 예측한 것 같은데.
숨을 고른 그것들이 라테르와 접촉한다면 어떤 방식일까. 화끈한 테러? 아니면 포섭?
‘미치겠네.’
아는 게 없으니 답이 안 나오잖아. 이 시바, 비둘기 새끼들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이 사단을 일으킨 비둘기파가 원망스럽다. 그것들이 실각만 안 했어도 이런 걱정도 안 했을 텐데. 망할 것들, 난 사실 비둘기보다 매를 더 좋아했어.
‘…가만히 있어야지.’
매파가 활동을 재개하면 외무성이나 정보부에서 귀띔을 줄 거다. 괜히 심력 낭비하지 말고 기다리자.
***
오늘은 고민 끝에 칼을 만나는 것을 포기했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슬픈 결정이었지만, 나와 칼의 미래를 생각하면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루이제 영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확실히 알아둬야 해.’
슬쩍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아직 칼과 약혼도 하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하지만 어쩌겠어. 내 눈에도 좋은 남자는 다른 사람 눈에도 좋은 남자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애초에 각오한 일이니까.
아버님도 부인이 여럿이니 칼도 그럴 수 있지. 심지어 황금공 각하는 부인이 열두 명이잖아. 칼이 나 말고 다른 부인도 들이길 원한다면 기꺼이 존중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칼의 마음이니까.
‘첫 번째는 나야.’
하지만 여럿인 건 이해해도 내가 밀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칼이 루이제 영애를 원하더라도 첫 번째를 내놓을 생각은 없다.
내가 먼저야. 내가 첫 번째야. 칼을 좋아한 것도, 칼에게 마음을 보인 것도, 칼이 과거를 털어놓은 것도 내가 처음이야. 이 처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어.
‘욕심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다행히 루이제 영애가 내 자리를 노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주변을 정리하는 걸 보면 칼을 마음에 품은 건 확실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루이제 영애가 칼에게 마음을 고백한 건 아니다.
만약 루이제 영애에게 고백을 받았다면 칼은 어떤 방식으로든 반응을 보였을 거다. 나에게 사실대로 말하거나, 아니면 침묵하는 대신 눈치를 보거나.
‘아무것도 아니었어.’
칼은 루이제 영애의 일을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라는 식으로 말했다. 칼이 나를 속일 일은 없으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게 맞아.
그렇다면 나도 관대하게 나갈 수 있다. 루이제 영애가 내 눈치를 보고 자제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황자와 왕자가 낀 부원들을 밀어낸 걸 보면 칼에게 진심이겠지. 그리고 루이제 영애는 심성도 괜찮았고, 딱히 무례하지도 않고.
‘아직 확실한 건 몰라.’
물론 루이제 영애가 자제한다는 건 내 추측에 불과하다.
칼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 속으로 내 자리를 노리는 걸 수도 있다. 내가 직접 루이제 영애를 본 게 아니라 칼에게 전해 들은 것에 불과하니까. 그러니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칼과의 소중한 시간도 포기하고 직접 움직인 것이다. 지금에 집착했다가 미래를 영원히 잃을 수도 있으니.
‘바렌티는 느리면 안 돼.’
결정은 신중하게. 행동은 신속하게. 하늘에서 활강하는 매처럼. 바렌티 가문의 상징인 붉은 매처럼. 그것이 아버님이 주신 가르침.
그 가르침에 따라 루이제 영애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움직였다.
만약, 만약 첫 번째를 넘보는 거면.
‘나도 어떻게 나올지 몰라.’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거다. 공작가의 이름으로 박살을 내버릴 거다.
감히 이 마르게타의 것을 노리면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