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43)
루이제가 조금 이상해졌다. 아니, 이렇게 말하니 어감이 좋지 않네. 루이제가 조금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 것 같다.
무언가 고민하는 것처럼 시선은 묘하게 내리 깔려있고, 입술도 잘근잘근 씹는 게 가끔 보였다. 심지어 평소처럼 대화를 주도하는 게 아니라 멍하니 앉아있는 경우도 많았다.
‘탄핵 때문인가.’
어쩌면 연이은 탄핵에 몸도 마음도 지쳐서 묵언수행 중일 수도 있다. 무슨 일을 하든 탄핵으로 이어지니 아예 입을 다무는 것을 택한 거지.
안타까운 일이다. 가여운 카피바라가 무자비한 사냥꾼 다섯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굴복했구나.
“흐읏!”
‘여섯인가.’
조심스레 고개를 든 루이제와 시선이 마주치자 루이제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무자비한 사냥꾼에는 나도 포함된 것 같은데.
‘뭐지.’
일단 정말로 탄핵 때문에 저러는 건 아니다. 애초에 다 같이 웃자고 하는 콘텐츠에 불과했고, 루이제도 그 흐름에 올라탔으니까. 만약 탄핵으로 눈치를 볼 거면 진작에 그랬겠지. 이제 와서 저러는 건 너무 뜬금없다.
그러면 부원들을 찬 게 미안해서? 이건 더 가능성이 낮다. 차라리 찬 직후부터 저랬으면 이해가 가는데 이제 와서 그러는 건 말이 안된다. 애초에 루이제는 자기가 미안한 모습을 보이는 게 오히려 실례라는 걸 알고 있고.
게다가 만에 하나라도 찬 게 미안해서라면 내 눈치까지 볼 필요는 없잖아.
“루이─”
“오라버니, 쿠키 더 필요하세요?”
“아, 응.”
이름을 전부 부르기도 전에 루이제는 황급히 주제를 돌렸다. 보는 사람이 절로 움찔할 정도의 박력이었다.
왜 저러는지 짚이는 게 없어서 직접 물어보려고 해도 저렇게 차단을 하는데 어쩌겠나. 당사자가 말하고 싶지 않은데 캐물을 수도 없고.
생각해 보면 제국법으로 성인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열일곱 레이디에 불과하다. 사춘기가 다소 늦게 온 걸 수도 있지.
사춘기가 온 아가씨 주변에 남자만 여섯. 이거 좀 끔찍하긴 한데.
‘이리나라도 있었으면.’
적어도 여성 동지끼리는 통하는 게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리나는 개학하고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개학 직후에는 동아리에 일이 많아서 올 시간이 없다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리나가 거의 명예 제과 동아리 같기는 하지만 일단은 외부인이니까.
“마─”
“여기요!”
“…그래.”
그냥 많이 줄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하려고 한 건데.
‘많네.’
내 입을 막으려고 급하게 쿠키를 쓸어 담아서 그런지 접시에는 쿠키가 그득했다. 박람회 준비 기간이 생각날 정도의 양.
미안해. 앞으로는 함부로 안 부를게. 내가 배려가 너무 부족했어.
“잘 먹을게.”
저녁은 간단하게 먹어도 되겠다.
***
분명 가을이거늘 내 속은 한여름 같이 타들어갔다.
얼음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뒤로는 덥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설마 속에서 열이 생길 줄은 몰랐다.
‘이게 맞는 건가.’
저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는 게 과연 옳은가.
조용히 쿠키를 먹고 있는 고문. 그리고 그 모습을 힐끔거리지만, 정작 고문과 눈이 마주치려고 하면 빠르게 시선을 돌리는 루이제.
‘안타깝군.’
몇 주 동안 저런 모습이다. 아니, 정확히는 최근 들어 더욱 심해졌다. 고문을 보는 루이제의 시선이 더욱 뜨거워지고, 도망치는 것도 더욱 빨라졌다.
이해는 간다. 고문에게는 첫 번째 부인으로 확정된 인물이 있으니 먼저 나설 수 없는 거겠지. 왕자인 내가 귀족의 혼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를 수가 있겠나.
그래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한 심정이다. 고문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니 루이제가 먼저 나서야 할 텐데.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 뒷목에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정신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류티스였다. 손에 찻잔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저놈이 떨어뜨린 게 맞다.
“그래. 조금 낫다.”
갑자기 무슨 짓이냐고 따질까 하다가 포기했다. 저 낯짝 두꺼운 녀석은 무슨 말을 하든 신경도 쓰지 않을 테고, 저 녀석 말대로 정신이 돌아왔으니까. 아마 집중이 깨지지 않았다면 한숨이나 쉬고 있었겠지.
내 대답에 픽 웃음을 흘린 류티스는 자연스레 옆 자리에 앉았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가 돌아온다고 하더라고.”
뜬금없는 말이다. 여명 교단의 가르침 중에 그런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 상황에서 무슨.
그 의문을 해결해주려는 듯 류티스의 시선이 루이제와 고문에게로 향했다.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몰랐지만.”
“…그렇군.”
그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 알겠으니까.
그래, 벌을 받은 거구나. 고문이 보기에 고통스러운 짓을 했었으니 이번에는 우리 차례인 것 같다. 류티스 말처럼 이렇게 빨리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아무래도 차기 성자가 있어서 에넨께서 주시하시는 것 같다.
환장할 노릇이다. 그대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이제 아무리 한심하게 생각하고 욕을 해도 의미가 없다.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꼴이지 않나.
‘도울 수도 없고.’
루이제도 마르게타 공녀의 눈치를 보며 자제하는 상황이니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가 나서봤자 실패자가 다섯에서 여섯이 될 텐데.”
그리고 얼마 전, 류티스가 했던 말이 상당히 설득력 넘쳤다. 우리가 뭐 잘났다고 도움을 주겠는가.
우리는 친구인 루이제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거지, 연애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동지가 되는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고문께서 에리히를 밀어주신 겁니까?”
“고문께서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셨으면 합니다.”
‘끔찍하군.’
연애 생각을 하니 자동으로 떠오르는 악몽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 인생 최악의 악몽.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를 발언. 꼴에 제대로 해보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이런 결과로 이어졌었지.
그런 내가 나서봤자 도움이 아닌 방해가 되는 조력만 남발할 거다. 그러면 루이제는 우리가 원한을 가지고 방해하는 거라고 오해할 테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용서해줘…”
예언가도 아닌데 미래가 보인다. 도움이라는 이름의 방해에 넘어져 울면서 애원하는 모습이 선명하다.
“한 학기만 버티면 되겠나?”
“그랬으면 좋겠네. 기도나 하자고.”
고문은 1학기 동안 고통 받았으니 우리도 이번 학기로만 참아줬으면 한다. 그 이상 넘어가면 굉장히 슬픈 일이다.
“차도 같이 드세요!”
“고맙다.”
조용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더 이상 보지 않는 게 낫겠다.
두 눈과 귀를 얼려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겨날 무렵, 겨우 동아리 시간이 끝나서 기숙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걸 방학식까지.’
심지어 그것도 최소로 잡았을 때.
힘든 싸움이다. 고문, 당신은 대체 어떤 싸움을 해왔던 겁니까.
작게 한숨을 내쉬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심정 같아서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지만, 나한테까지 온 걸 보면 중요한 일이겠지.
“들어와라.”
“예, 저하.”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아만다 경이었다.
‘본국 일인가.’
아만다 경은 본국과 소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어찌 보면 아카데미에 주둔 중인 아국 전력 중 가장 바쁜 인물.
그런 아만다 경이 직접 찾아왔다면 보통 일은 아닐 거다. 어지간하면 자기 선에서 해결하거나 대표인 가르단 경에게 보고 했을 텐데.
“무슨 일이지?”
“본국의 일로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역시 좋지 않은 예상은 틀린 적이 없다.
“다섯 기둥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급하기도 하군.”
아만다 경의 보고에 다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다섯 기둥 내부 비둘기파가 실각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정계 주요 세력의 주류 계파가 뒤바뀐 사건인데, 아무리 타국에 있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지.
하지만 그 이상 알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저돌적인 매파여도 숨을 고를 시간 정도는 챙길 줄 알았으니까. 그 시간은 아무리 짧아도 두세 달일 테고, 그 정도 시간이면 왕실에서도 이미 대처가 끝났을 시간이다.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것.
그런데 벌써 움직였다고 한다. 제정신인가? 아직 비둘기파가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닐 텐데.
“그리고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드물게 아만다 경이 멈칫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황공하다는 말을 쓰는 걸 보니 매파에서 어지간히 사고를 쳤나 보군.
“감히 저하를 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나를?”
그건 예상 못한 일이다.
‘잘못 들었나.’
본국에 있는 것들이 아카데미에 있는 나를 왜.
아만다 경도 같은 심정인지 황망한 표정이었다. 본인이 말하고도 이게 맞는가 싶은 반응.
“다행스럽게도 다섯 기둥 내부의 충신들이 역적들을 고발하여 빠르게 제압했다고 합니다.”
“…다행이군.”
다행이라는 대답도 겨우 나왔다. 왕족 시해라는 대형 안건을 제대로 실행하기도 전에 내부의 적에게 당했다. 본국과 거리가 먼 나를 노렸으면서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졌다.
‘뭐하는 것들이지.’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시도한 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니, 광인의 생각을 이해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짜증나는군.’
광인에게 노려질 정도로 우습게 보였다는 게 불쾌했다.
“전하께서는 이번 사태의 피해자는 저하시니, 본국에 와서 역적들을 친히 처단하셔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 은혜에 황송하오나, 가지 않겠다고 전해라.”
“예, 저하.”
그리고 은근슬쩍 본국으로 부르려는 부왕의 뜻을 들으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어떻게 본국을 나왔는데 내 발로 돌아가겠나. 심지어 이제 반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3년은 꽉 채워야 한다.
‘이게 무슨 꼴인지.’
나라고 좋아서 타국 생활을 하고 싶을까. 어쩔 수 없으니 이러는 것이지.
부왕께서도 이해하시니 명령이 아닌 제안을 하신 것 같지만.
‘내가 늦게 태어났어야 했는데.’
아니면 형님께서 더 일찍 태어나셨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