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45)
갈 때도 아주 예술로 가버린 매파 덕분에 평화로운 아카데미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웃기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왕족 시해를 꾸민 거지? 나도 황족을 저승행 편도 열차에 태운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태워도 되는 환경이라서 그런 거고.
대륙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다. 이 세상에도 다윈상이 있다면 수상은 확정일 텐데. 어쩌면 이 대륙에 매상이라는 게 생길 수도 있고. 이름부터 가슴이 옹졸해진다.
‘같은 매인데.’
시선이 열심히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 마르게타에게 향했다. 바렌티 공작가도 매를 상징으로 쓰는데 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철혈공이 매파의 대환장 파티를 듣는다면 당장 매파가 아니라 닭대가리로 이름을 바꾸라고 격노하겠지.
아니, 어쩌면 매파에게 갈 지능을 바렌티 공작가가 전부 흡수한 걸지도 모른다. 그러면 바렌티의 죄구나.
“칼?”
너무 뚫어져라 쳐다봤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르게타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일이 많은가 봅니다.”
차마 ‘이웃 나라에 매파라는 새대가리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같은 질문을 할 수는 없으니 다른 말을 꺼냈다.
매를 상징으로 쓰는 가문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건 선전포고나 다름 없지 않나. 별 이상한 이유로 마르게타와 싸우고 싶지는 않다.
“이제 반 대항전이니까요. 당분간은 계속 이러겠죠.”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래도 칼이 있으니 힘이 나네요.”
“그건 좋은 일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대답봇처럼 입을 열었네.
그건 그렇고 故 매파에 신경을 쓰다 보니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분명 2주 정도 남은 것 같았는데 벌써 코앞이라니.
반 대항전, 이름은 거창하지만 대충 아카데미 버전 운동회다. 평범한 운동회와 달리 검과 마법이 날아다니는 운동회라는 게 특이점이지만.
학년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반이 투쟁하는 아수라장. 하지만 박람회나 시험과는 달리 반 대항전은 설렁설렁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짜고 치는 접대 게임이니.’
박람회는 자기 동아리에도 3학년이 있다. 시험은 같은 학년끼리 경쟁한다. 그러나 반 대항전은 1학년이 2학년, 3학년과 붙어야 하는 상황.
서열에 민감한 귀족 입장에서는 선배를 이겨 먹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차피 졸업하면 아카데미 몇 기니, 선배님이니 하면서 웃어야 하는데 괜히 감정 상하면 곤란하지 않나.
그러니 반 대항전은 적당히 3학년, 그중에서도 신분이 높은 학생이 끼어있는 반이 우승하는 게 관례다.
“이번에는 골치 아프겠군요.”
“후후, 학생회에서도 고민이 많아요.”
규칙이 아니라 관례인 이상 언젠가는 깨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초월적인 신분을 가진 학생이 입학했을 때.
황족이 입학하면 3학년이 1학년에게 제발 우승 트로피 가져가라고 사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황족을 이긴 귀족? 너 역적이야?
그리고 이번 년도는 황자에다가 왕족 둘, 차기 성자 하나가 입학한 기적의 년도다. 심지어 한 반이 아니라 여러 반에 퍼져 있지.
“어느 반이 우승하는 게 좋을까요?”
“어려운 문제군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는 마르게타의 모습에 나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체면을 생각해서 아인테르 반이 우승해야 하는가, 아니면 손님을 배려해서 류티스나 라테르, 타니안의 반을 우승시켜야 하는가. 그리고 손님을 배려한다면 셋 중 누구를 택해야 하는가.
‘끔찍하네.’
누가 반 배정 이따위로 했냐.
물론 저 넷을 같은 반에 몰아넣으면 그 반을 담당할 교사가 너무 가엾기는 하지만.
“무난하게 아인테르 전하의 반이 우승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네 분의 반은 순수하게 경쟁하는 것도 방법이겠고요.”
“역시 그렇겠죠?”
내 제안에 마르게타도 동의했다. 영 방법이 없으면 그냥 자기들끼리 대충 싸워서 승자를 정하라고 하는 것도 방법이기는 하다.
그 녀석들이 제 신분을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막가파기는 하지만, 적어도 신분을 내세워서 특별 대우를 요구한 적은 없으니까.
오히려 아카데미가 허락한 광란의 시간이라며 미친 듯이 싸울 수도 있다. 다칠 것 같으면 근처에 대기하는 삼국 전력이나 내가 말리면 되고. 볼만하겠네.
“역시 칼이 있으니 마음이 편하네요.”
생글생글 웃는 마르게타의 모습을 보니 무심코 손을 뻗으려다 도로 내렸다.
‘이상한 버릇이 들렸네.’
루이제가 웃으면 머리를 쓰다듬거나 어깨를 토닥였더니 습관처럼 마르게타에게도 실례를 저지를 뻔했다.
말도 없이 머리를 쓰다듬는 건 너무 애 취급하는 행동이지. 루이제는 루이제니 괜찮고.
하지만 내가 움찔한 것을 눈치챘는지 마르게타의 시선이 내 손으로 향했다.
“칼. 방금 하려던 거 계속 해주세요.”
정확하고 당당한 요구와 함께.
“별 거 아니었─”
“하세요.”
“…예.”
하세요는 어쩔 수 없지.
조심스레 마르게타의 머리를 쓰다듬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래, 좋아하면 됐다.
“앞으로는 참지 말고 바로 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귀여운 부탁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도 마르게타의 체면을 생각하면 자제해야지. 다른 사람이 있으면 아예 뒷짐이라도 지고 있어야겠다.
학생회가 반 대항전 때문에 바쁜 것처럼 나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반 대항전 일정을 짜는 건 학생회의 일이지만, 그 일정에 따라 이리 저리 돌아다닐 부원들을 감독하는 건 내 업무니까.
사실 나보다는 빌라르의 일이 더 많은 것 같지만 아무튼 내 지분도 있다.
“실기 시험 때의 경험이 있으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빌라르 경이 그리 말하니 마음이 놓입니다.”
당당한 빌라르의 장담, 그리고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나.
확실히 이번에는 1학기 실기 시험 때와 비교하면 상황이 좋다. 그때는 처음이라 뒷목을 잡으며 한숨만 쉬었지만, 이번에는 한 번 했던 일이 아닌가.
게다가 무조건 누군가와 대련을 해야 했던 실기 시험과 달리 반 대항전은 아무 경기에도 출전하지 않고 구경만 하다 끝날 수도 있다.
“아마 주요 경기에는 참여하실 겁니다.”
“그렇겠군요. 워낙 모범을 보이는 걸 좋아하는 분들이니.”
물론 그건 행복 회로를 오버클럭 했을 때의 말이다. 그것들이 이런 이벤트에 아무것도 안 하고 구경만 한다고?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루이제에게 차인 이후로 세월을 낚는 강태공처럼 지내고 있다지만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다. 꾸역꾸역 타국 교육 기관에 입학하고, 여자에게 반해 냅다 동아리에 가입한 것들이다.
오히려 루이제의 통제력이 하락한 지금, 더욱 폭주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 없나?’
갑자기 불안해진다. 고삐가 있었어도 불안한 것들이 이제는 고삐마저 없다고?
“각국에서 새로 선정된 전력은 호위와 치료에 특화된 자들입니다. 훈련에 일가견이 있는 자들도 많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빌라르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다른 건 모르겠고 훈련 전문가가 있다는 건 확실히 마음이 놓인다. 훈련 조교의 역할 중 하나가 대련에 개입해서 부상을 막는 거니까.
그래, 믿자. 저번에도 잘 했으니 이번에도 잘 되겠지. 아카데미와 삼국의 능력을 믿는다. 우리는 사이좋게 모가지가 걸린 의형제니까.
태어난 날은 달라도 여차하면 다 같이 죽는 거야.
“그래도 최선은 아무 일도 없는 것이기는 합니다.”
은근히 운을 띄우는 빌라르.
‘너도 같은 마음이구나.’
그럴 줄 알았다. 아무리 준비가 철저하고 자신이 있다지만, 그래도 모가지를 거는 일 자체가 없었으면 하는 게 사람 심리다.
아무 일도 없는 게 최선, 부원들이 어떠한 경기에도 나가지 않는 게 최선이다. 당연한 일이다.
“동감입니다. 조용한 것이 최선이지요. 저도 고문으로서 부원들이 지친 모습을 보는 건 꺼려집니다.”
= 내가 대신 물어보면 되냐?
“감찰관님께서는 실로 훌륭한 고문이 되셨군요.”
= 그러면 고맙지.
아랫놈인 입장에서 모시는 왕족에게 어느 경기에 나갈 거냐고 묻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어쩌겠나. 내가 해야지.
아무리 예상한 일이어도 막상 현실이 되면 마음이 아프다.
“아, 당연히 참가할 생각입니다.”
“그러냐.”
당당히 말하는 류티스의 모습에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심지어 당연히란다. 나와 빌라르의 희망은 당연히 짓밟히는 거였냐고.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유벤의 마법사와 붙어 보겠습니까.”
아르메인 마법사든 유벤 마법사든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이번에 새로운 세계를 보겠군.”
“하하! 그거 기대되는걸!”
가만히 있던 라테르도 류티스의 말에 호승심이 불타버렸으니까.
하여간 저 시뻘건 새끼 주둥아리가 문제다. 아니, 이번에는 새파란 새끼도 문제네.
“올해 반 대항전은 치열하겠군요.”
가볍게 웃으며 말하는 아인테르는 아예 남의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애초에 아인테르는 철저한 학문 루트를 밟았으니 당연한가.
타니안도 딱히 호전적인 편은 아니고, 에리히도 실력을 과시하는 편은 아니고, 루이제는 말할 것도 없고.
‘검법라시코 새끼들.’
그냥 검하고 마법 쓰는 것들의 자존심 싸움이 터졌다.
이해가 안 되네. 어차피 맞으면 죽는 건 똑같은데 왜 그런 걸로 싸우지.
“그러면 류티스와 라테르만 참가하는 건가?”
“아, 나도.”
“너는 당연하고.”
에리히는 참가해도 상관없다. 다행히 에리히는 다쳐도 무방한 학생에 속하는지라 경기를 뛰든 말든.
슬쩍 타니안에게 시선을 돌리자 타니안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저는 성자 후보지 않습니까.”
그 말이면 충분했다. 성자는 인간 사이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으니 관망하겠다는 것.
그런데 일개 운동회를 분쟁으로 취급하는 건 너무 과한 것 같은데.
‘아무렴 어때.’
알아서 빠진다고 하면 나야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