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46)
아인테르, 타니안은 불참. 류티스, 라테르는 참가. 루이제와 에리히는 가만히 둬도 큰 문제가 없는 타입.
굉장히 익숙한 상황이다. 딱 1학기 실기 시험 때의 포지션. 너무 안정적인 상황이라 마음이 편안해지는 착각마저 느껴진다.
‘역시 이 둘이 문제인가.’
오늘따라 더 미친 존재감을 자랑하는 빨강과 파랑에게 시선이 꽂혔다. 이 둘만 없으면 동아리에서 생기는 소란의 7할은 사라지지 않을까.
그래도 어쩌겠나. 국력 2위인 아르메인과 3위인 유벤의 자존심 싸움, 인류 역사와 함께하는 것 같은 검과 마법의 라이벌리티. 사이가 좋을 이유보다 투닥거릴 이유가 더 많다. 류티스와 라테르의 성격도 상극인 편이고.
오히려 저런 페널티를 주렁주렁 달고 동네 애들처럼 충돌하는 것도 고마운 수준이기는 하지. 애초에 진심으로 싸우는 건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다른 곳에서 싸웠으면 더 괜찮을 텐데.’
왜 아카데미 와서 사람 귀찮게.
계속 저것들을 보면 속만 타들어갈 것 같아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어쩌면 이 아카데미를 만든 아펠스가 만악의 근원이 아닐까 싶다. 멸망하는 게 마땅한 국가였어.
그리고 시선을 돌리자 무언가 생각 중인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루이제가 보였다.
“왜 그래?”
마침 에리히도 그런 루이제를 발견했는지 먼저 말을 걸었다. 나도 궁금했는데 잘됐다. 요즘 루이제가 내가 말을 걸기만 하면 놀라고 있어서 말을 못 걸겠더라.
“그냥. 어느 반이 우승할까 싶어서.”
“확실히 올해는 치열하겠네.”
그 말과 함께 에리히의 시선이 검법라시코를 진행 중인 두 머저리에게 한 번, 가만히 구경 중인 아인테르에게 한 번 향했다.
저 셋 중 하나가 속한 반이 우승하겠지. 타니안은 누가 이기든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으니 빼고.
“우리는 편하게 하면 되겠다.”
에리히의 시선을 따라 유력 우승 후보들을 보던 루이제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있으니 루이제 같은 평범한 1학년은 정말 운동회처럼 즐기면 된다. 박람회처럼 우승을 노릴 필요도, 실기 시험처럼 성적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니.
“그렇지. 우승한다고 뭐 주는 것도 아니고.”
그 와중에 낭만이 사라진 것 같은 에리히의 말이 들렸다.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자본주의자가 됐구나.
‘잘 컸어.’
사실 나도 그래. 얻는 게 없으면 엎드려 있는 게 귀족이지.
“마지막 4인전이 딱 맞겠는데.”
“우연이군. 마침 같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숙덕거리던 두 머저리는 자기들끼리 타협을 내는 것에 성공했다.
‘4인전인가.’
빌라르의 바람대로 저것들이 어느 경기에 참가할지도 알아냈다. 그래, 4인전이 가장 무난하기는 하지.
각 반에서 반 담당 교사, 검사 학생 하나, 마법사 학생 하나, 맡은 반이 없는 교직원 하나로 이루어진 4인 파티를 내보내는 4인전.
마지막 용병은 왜 넣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반 대항전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기다. 과시력이 넘치는 저것들 입장에서는 최적의 경기.
‘그나마 다행이네.’
서로 다른 경기가 아닌 같은 경기에 참가하면 호위도 더 편하니까.
‘4인전.’
무심코 에리히에게 시선이 향했다. 4인전이라는 말을 들으니 자동으로 에리히가 떠오르더라.
각 반에서 검사 학생 하나, 마법사 학생 하나.
‘딱 너를 위한 이벤트였는데.’
마음이 아팠다. 제과 동아리 중 루이제와 같은 반인 건 에리히뿐이었다. 심지어 에리히는 검사, 루이제는 마법사였다.
분명 에리히가 루이제와 함께할 수 있는 이벤트였는데. 그 이벤트로 사이가 좋아질 수도 있었는데.
‘조금만 더 버티지.’
하필 그 이벤트가 터지기 전에 차이고 말았다. 만약 4인전을 겪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니 보야르 공작령에 갈 때도 루이제랑 같은 마차에 탔는데 별일 없었구나. 딱히 달라지지는 않았겠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마음이 아파졌다.
류티스와 라테르가 4인전에 참가한다는 건 빌라르뿐만 아니라 마르게타에게도 알려줬다.
그것들의 안위를 생각해야 하는 건 아카데미도 마찬가지니까. 교장이 경기장을 순회하는 것과 별개로 학생회도 대비는 해야지.
“다행이네요. 4인전이면 일이 터져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으니까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마르게타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4인전은 반 대항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기이자 가장 화려하게 이루어지는 경기. 덕분에 치유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나 사제들이 몰릴 테니 누군가 다쳐도 빠르게 수습이 가능하다.
물론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래도 보험이 있다는 것에서 드는 안도감은 무시할 수 없다. 마음의 평화는 챙겨야 일을 할 때 편해.
“두 분 중 이기는 분의 반이 우승하는 게 좋겠네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확실히 마지막 경기를 이긴 반이 우승하면 그림이 나쁘지 않다. 수학여행 레크레이션 때도 마지막에 점수를 퍼주지 않나.
이러면 아인테르의 반은 우승에 도전하지도 못하지만, 반 대항전은 두 번 더 하니까. 이번 년도만 외국에 양보하자.
그리고 내 동의에 살짝 미소를 지은 마르게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칼, 요즘 별일 없나요?”
“예?”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다. 별일이 없냐니?
“제과 동아리는 워낙 활기차잖아요. 부원들이 무슨 일을 했다거나 그런 거요.”
그 말에 빠르게 부원들의 현황을 떠올렸지만 마땅히 새로운 건 없었다.
요즘은 반 대항전을 제외하면 아무런 일도 없고, 그나마 별일이라고 할 수 있는 반 대항전마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마르게타에게 알려주고 있다. 딱히 별일이라고 할 건 없네.
“예, 다행히 별일 없었습니다.”
“그런가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마르게타의 모습에 작은 불안감이 생겼다. 마르게타가 이렇게 떠보는 걸 보면 뭔가 알고 있다는 건데. 아무 이유 없이 이럴 사람이 아니니까.
‘나도 모르는 동아리 일?’
끔찍하다. 그렇게 눈에 불을 켜며 감시하는데 기어코 일이 생겼다고?
망할, 적어도 내가 알아야 수습을 하지. 내 눈을 벗어난 일이면 대책이 없는데.
하지만 마르게타의 반응을 보니 아직은 초기 단계 같다. 무언가 제대로 터졌다면 마르게타가 이렇게 평온하지 못했을 거고, 교장이나 빌라르의 연락도 나에게 꽂혔을 테니.
“마르, 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내 질문에 이번에는 마르게타가 고민에 빠졌다.
아니, 왜?
***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예, 다행히 별일 없었습니다.”
칼의 대답에 저절로 고개가 기울어졌다.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정말 별일이 없었다고?
순간 칼을 의심할 정도의 대답이었다. 칼이 나에게 거짓말을 할 리는 없지만, 그 정도로 의외의 대답이었으니까.
혹시나 싶어 칼의 눈을 쳐다보자 한 점 부끄럼 없는 맑은 눈동자였다.
응, 칼은 결백한 것 같네.
‘왜?’
칼의 결백을 확인하니 의문은 더욱 커졌다.
진작에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친히 허락해줬으니까. 내가 한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았으니까.
‘루이제 영애…’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의아함 뒤에는 이유 모를 허탈함이 생겼다. 아니, 대체 왜?
차라리 루이제 영애가 우유부단하고 굼뜬 성격이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루이제 영애는 부원들을 전부 정리하는 강수를 둘 정도의 인물이 아닌가. 보통의 결단력과 행동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마르, 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칼의 말에 슬며시 시선을 내리 깔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기는 있다. 칼에게 말해도 괜찮을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루이제 영애가 두 번째가 되는 걸 허락한 입장이니 루이제 영애를 방해할 생각은 없다. 칼에게 루이제 영애를 좋게 말할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그럴 생각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애매하다. 만약 루이제 영애가 사정이 있어서 가만히 있는 거면? 내가 괜히 오지랖을 부리는 거잖아.
“얼마 전에 루이제 영애를 보니 고민이 있는 것 같아서요.”
결국 고민 끝에 적당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하면 칼이 루이제 영애에게 더 관심을 줄 테니까.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순발력과 배려심이었다. 아무한테나 이러는 건 아니지만 같은 남편을 둘 사이니 특별히 신경 쓴─
“마르가 보기에도 그랬습니까?”
건 데…?
‘내가 보기에도?’
그러면 칼이 보기에도 루이제 영애가 뭔가 이상하다는 거잖아.
“이상하게 얼마 전부터 눈치를 살피더군요.”
“아, 네.”
살피겠지.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데.
그 뒤로 칼은 이런저런 말을 꺼냈다. 들으면 들을수록 정신이 멍해졌다. 루이제 영애의 모습에서 짐작이 가는 게 있었기에.
“제가 말을 걸면 피하거나 말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군요.”
맞네. 내가 생각하던 게 맞아.
‘부끄럽구나.’
탄식이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았다. 루이제 영애, 내가 기껏 기회를 줬는데도 그러면 어떡해요.
이해는 한다. 먼저 반한 쪽이 지는 거니 칼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떨리는 건 이해한다. 그래도 그 떨림을 이기고 나아가야지. 나라고 부끄럼이 없어서 칼에게 다가간 줄 아나.
오히려 한 번 차인 상황이라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나와 칼은 하늘이 맺어준 운명이라고, 언젠가는 반드시 내 옆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였다.
“그래서 걱정이 큽니다. 무슨 걱정이 있는 것 같은데 입을 열지를 않으니.”
“그러게요. 저도 걱정되네요.”
칼과는 다른 이유로 걱정되지만.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마지막 용기를 내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루이제 영애는 그렇다 치고, 칼은 눈치가 나쁜 편이 아닐 텐데?
눈치가 나쁘면 지금의 자리까지 오를 수 없다. 그리고 예전에는 나를 밀어내기도 했잖아. 밀어낸다는 것 자체가 내 감정을 알고 있다는 거고.
‘루이제 영애는 왜.’
나는 알았으면서 왜 루이제 영애 마음은 모르지?
물론 내가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루이제 영애도 말만 안 하지 온몸으로 표현 중이다. 얼마 전에 남자 다섯을 찬 여자가 본인 앞에서만 우물쭈물 거리며 눈치를 본다. 이걸 보고도 모른다고?
이상한 일이다. 루이제 영애를 이성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보는 게 아닌 이상 불가능할 텐데.
“동아리에 다른 여자 부원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아무래도 루이제 영애가 걸어가야 할 길은 조금 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