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48)
흠칫거리던 학생은 내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심하게 몸을 떨었다. 처음에는 조금씩 움찔거리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핸드폰 진동 수준일 정도로.
‘너무 심한데.’
가진 명함이 명함이다 보니 내 첫인상이 다소 험악하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선을 피하거나 눈치를 살피는 정도지, 이렇게 애처로운 떨림을 보일 정도는 아니다.
이리나처럼 감찰부 때문에 피를 본 경우가 아니면 저렇게 경기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 감찰부가 사람을 물어도 이유 없이 무는 경우는 극히 드무니까.
‘평민인가.’
귀족이면 필요 이상으로 떠는 일이 없으니 평민일 확률이 유력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평민이면 무서워하지도 않을 테고, 아마 귀족 세계에 대해 애매하게 들은 평민이라 막연하게 무서워 하는 것 같은데.
“이름이?”
“아, 아멜리아입니다!”
혹시 겁이 많은 귀족일 가능성도 있어서 이름을 물어봤지만 역시 평민이 맞았다. 귀족이면 성도 같이 말하니까. 이걸로 귀족을 평민으로 오해하는 실례는 피했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아멜리아의 모습을 훑어봤다. 보라색 장발에 보라색 눈. 부족하게 먹고 자랐는지 조금 작은 체구. 아직도 요동치는 동공과 몸.
슬쩍 옆에 앉아있는 동생에게 시선을 돌리자 머리와 눈 색깔 빼고는 전부 반대다. 언니가 먹을 걸 대신 먹은 건지 건장한 체구에 태평한 표정. 머리도 언니에 비하면 짧네.
“올리비아. 어서 인사드려야지.”
“아, 응.”
아멜리아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동생, 올리비아의 어깨를 흔들자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리비아에요! 잘 부탁드려요!”
활기찬 인사에도 내 입은 차마 열리지 못했다. 올리비아가 들고 있는 물체. 아마 아까까지 씹고 있었을 물체에 시선이 향했으니까.
‘뭐야 저거.’
저거 순무 아니냐?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예상하지 못한 것이 등장했다. 분명 먹느니 뭐니 하는 대화가 들렸으니 저걸 먹은 게 맞을 텐데?
짠내나는 대화였지만 적어도 빵이라도 먹는 줄 알았다. 그런데 순무라고? 아니, 그냥 평민도 아닌 아카데미 학생이 이렇게 먹고 지내?
‘미친.’
하다못해 감자였으면 이런 기분은 아니었을 거다. 감자로 끼니를 때우는 건 평민층이나 병사 사이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순무다. 요리 재료 중 하나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생으로 순무를 씹어먹고 있었다. 심지어 그 순무조차 둘이 배부르게 먹을 수 없어서 아멜리아가 양보했다.
“그, 저기, 조금 단맛도 있어서, 잠깐 먹고 있었어요.”
멍하니 순무를 바라보는 내 시선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아멜리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괜찮은 순발력이었다. 확실히 순무는 미묘한 단맛이 있어서 평민 아이들은 간식처럼 먹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아멜리아의 배에서 공복에 대한 시위 소리가 들리지만 않았다면 괜찮은 수준이 아니라 완벽한 순발력이라고 칭했을 텐데.
“어, 언니! 아까 먹었다며!”
그런 아멜리아의 시위 소리에 충격을 받았는지 올리비아는 황급히 순무를 반으로 쪼개 아멜리아에게 건넸다.
아름다운 자매의 우애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아이들은 식사라는 게 뭔지 알까…?
***
제국 아카데미는 평민에게 있어 낙원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높으신 귀족분들이나 감히 쳐다 볼 수도 없는 황족분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들어가는 곳이지만, 그런 높으신 분들이 당연히 모이는 곳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에넨께서 내린 은총이다.
정말 대형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제국 아카데미에 입학한 평민은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 높으신 분들의 교육 기관에 들어갔다는 건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거니까.
능력을 증명하였으니 졸업 후에 직업을 얻는 것은 쉽다. 운이 좋아 학창 시절 동안 높으신 분 눈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더더욱 앞날이 밝아진다. 그렇기에 제국 아카데미에 입학한 평민 학생들은 성적과 평판, 두 가지를 신경 쓴다.
내 노력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니까. 평범한 남작이나 자작의 가신이 아닌 대귀족의 가신, 지방 행정부의 관료, 어쩌면 제국 행정부의 관료가 될 수도 있으니까.
심지어 단승이라지만 작위를 받는 경우도 있다. 정말 운이 좋다면 계승 작위까지 받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얘들아! 나, 나 아카데미에 합격했어!”
그래서 처음 아카데미 입학 시험에 합격했을 때는 세상을 가진 것만 같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넷이나 되는 동생들을 보살피고 있던 상황. 이 고달픈 인생은 언제까지 이어지나 에넨만 원망했다. 하지만 그 원망도 끝, 이제 행복 시작이다.
평민 학생에게는 학비 전액 면제에 장학금, 생활 보조금도 지원된다. 물론 내가 쓸 생각은 없다. 전부 동생들에게 보내줘야지. 나는 조금 배고파도 괜찮아.
“아멜리아야. 잘 부탁해.”
“응, 내가 할게.”
“괜찮아? 나한테 맡기고 가.”
내 미래, 동생들의 미래를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 학우라는 이름의 높으신 분들 눈에 들기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 이름이 귀족분들 기억에 남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반말이 아니라 존댓말로 하고 싶었지만 그건 학칙 위반이었지.
“언니! 나도 왔어!”
“올리비아?”
그리고 1년 후에 올리비아가 입학했다. 나하고 달리 학문이 아닌 무력 쪽으로 입학했더라.
작년까지만 해도 올리비아한테 그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는데. 내가 부모님 역할을 제대로 했더라면 올리비아의 재능을 더 빨리 찾았을 텐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마냥 해맑은 올리비아의 기분을 망칠 수 없으니 애써 웃었다. 아무튼 좋은 일이야. 올리비아의 미래도 이걸로 보장됐잖아.
이제 내가 보낸 돈으로 넷이 나눠 쓸 필요는 없어. 올리비아한테도 장학금이나 생활 보조금이 나올 테니까. 올리비아는 풍족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 올리비아는 거지 꼴로 다녔다.
“돈? 나도 동생들한테 보냈는뎅?”
“…뭐?”
그 말에 정말 크게 화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는데. 너희 잘 먹이고 잘 키우려고 그 고생을 하는 건데. 왜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야. 네가 거지 꼴로 다니는 걸 보려고 이러는 줄 알아?
당장 그만두라고, 이럴 거면 차라리 자퇴를 하라고, 아니면 나하고 연을 끊자고 말하며 올리비아의 등을 몇 번이나 후려쳤다.
“그치만 나도 언니한테 도움이 되고 싶었단 말이야!”
나보다 덩치도 크면서 때리는 대로 맞던 올리비아가 빼액 소리쳤다. 뭘 잘했다고 큰 소리를 치냐고 하려다 차마 그러지 못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모습을 보니 입이 열리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나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그럴까.
결국 올리비아의 고집은 꺾지 못했다. 그래도 돈을 보내는 사람은 늘고 받는 사람은 줄었으니, 너는 조금만 보내도 된다고 했는데 그마저도 거부했다. 동생들이 이제 커서 많이 먹는다고.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이미 컸으니 동생들한테 다 보내는 게 맞아.
“근처 숲에 먹을 거 많더라!”
“그 사이에 숲도 다녀왔어?”
“응! 텃밭도 작게 만들었어!”
“대단하네…”
나는 올리비아와 함께라면 어떤 고난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이름이?”
그렇다고 이런 엄청난 고난을 바란 건 아닌데.
오늘도 어김없이 인적이 없는 곳에서 올리비아와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귀족분들은 체면과 품위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우리가 먹는 모습을 보면 언짢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미래의 상사에게 밉보일 수는 없지.
그런데 미래의 상사가 아니라 당장 제국을 좌지우지하는 높으신 분이 나타나버렸다.
‘망했다.’
실수였다. 반 대항전이라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이 없어 방심했다. 누가 오기 전에 빠르게 먹고 가려고 했는데 그 찰나에 들키고 말았다. 심지어 가장 위험한 분에게.
아무리 평민인 나라도 저 분이 누구인지는 안다. 아니, 오히려 평민이기에 더욱 주의 깊게 알 필요가 있었다.
내가 꾸준히 눈치를 살펴야 하는 귀족분들. 그리고 그 귀족분들도 꺼리며 피하려 하는 감찰부장.
‘어, 어쩌지…?’
게다가 지금 감찰부장님은 아카데미 감찰관 직책도 겸하고 있다. 혹시 화내시면 어쩌지? 아카데미 학생이 품위를 지키지 못한다고 하시면 어떻게 하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건가? 그러면 소문이 다 퍼져서 평판이 떨어지는데? 만약 퇴학까지 당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올랐다. 감찰부장님 앞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따라와라.”
잠시 말이 없던 감찰부장님은 그 말과 함께 등을 돌리셨다. 도망치면… 오히려 괘씸죄만 추가되겠지?
아직도 떨리는 손으로 멀뚱멀뚱 서있는 올리비아의 손을 잡고 감찰부장님을 따라갔다.
‘제발, 에넨이시여.’
저는 괜찮으니 올리비아라도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해주세요.
***
빠르게 밥만 먹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결식 아동 후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언니, 언니! 이것도 먹어봐!”
“으, 으응…”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그냥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황태자도 눈물을 흘리며 무언가 먹여주고 싶었을 광경이었다.
특히 감자도 아닌 순무라는 점에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 대륙에서 감자조차 먹지 못한다는 건, 빙의 전 세상에 비유하면 김치조차 없다는 것이기에…
‘제국이 장차 어찌 되려고.’
평민이면서 아카데미에 입학했다는 건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거다. 본인의 처신에 따라서는 고위 관료나 핵심 가신이 될 정도로.
그런데 그런 인재 둘이 순무나 깨작거리고 있다고? 이건 교육성 장관과 구휼성 장관이 책임지고 옷 벗어야 할 일 아니냐.
한숨을 애써 억누르며 둘을 쳐다봤다. 행복한 표정으로 음식을 먹는 올리비아, 눈치를 살피면서도 빠르게 손을 움직이는 아멜리아.
“…이것도 먹어라.”
내 앞에 놓인 음식도 슬쩍 밀어줬다.
“감사합니다!”
“오, 올리비아!”
“괜찮다. 내가 준 거니 먹게 둬.”
난 방심하면 눈물 나올 것 같아서 밥도 못 먹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