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49)
먹는 걸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말이 있다. 너무 복스럽게 먹어서, 아니면 먹는 사람이 너무 예뻐서 그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는 의미. 지금까지 그런 경지가 있다는 건 들었지만 내가 그 경지에 도달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오늘, 난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였다.
‘잘 먹네.’
아멜리아도 올리비아도 정말 어마어마하게 먹고 있다. 특히 아멜리아는 저 작은 체구에 저게 다 들어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저렇게 잘 먹는 애들인데.’
주면 잘 먹는 애들이 고작 순무 쪼가리, 심지어 언니는 못 먹어서 동생만 먹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치솟았다. 이런 감정은 뒷골목에서 굶어죽어가던 유리스와 소피아를 발견한 이후로 처음이다.
아멜리아보다 체구가 큰 올리비아를 보니 먹는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졌지, 줄어들고 있지가 않다. 반면 눈 앞의 음식은 서서히 바닥을 보이는 중.
“더 필요하겠군.”
다른 음식을 가져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멜리아가 황급히 따라 일어났다.
“괘, 괜찮아요! 이미 과분할 정도로 먹었어요!”
“동생이 출전한다고 하지 않았나. 배부르게 먹어야지.”
아멜리아의 어깨를 누르자 바들바들 떨면서 도로 자리에 앉았다.
올리비아는 먹을 게 늘어난다고 하니 반짝거리는 눈으로 쳐다볼 뿐이고.
“가샤햡니댜!”
“…그래.”
입에 음식이 가득해서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대충 느낌상 감사하다는 것 같은데. 우리 친구가 지갑은 가벼워도 예의는 무겁구나.
올리비아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빠르게 등을 돌렸다. 보는 눈만 없었다면 주먹을 입에 밀어 넣고 오열했을 것 같다.
‘제국이 미안해.’
능력만 있다면 평민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 활발한 신분 이동이 가능한 사회인 것이 크펠로펜 제국의 자랑이 아닌가. 그런데 능력 있는 평민의 상징인 아카데미 학생이 저런 꼴이라니.
제국의 죄다, 제국의 죄야. 그리고 나의 죄다. 내가 교육성이나 구휼성을 제대로 감찰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착잡한 심정을 억누르며 새로 음식들을 대량으로 주문했다. 이번에는 디저트까지 포함해서.
“가, 감사합니다아아…”
마카롱을 물고 울먹이는 아멜리아를 볼 때는 나도 울뻔했다.
‘나 이런 거에 약한데.’
이 아이들이 과연 행복이라는 걸 알까.
다행히 내가 영혼까지 터는 감찰을 할 일은 없어졌다.
이게 다행인 게 맞는지 많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제국이 썩어빠진 건 아니었다.
“동생들이 있다고?”
“네. 올리비아 아래로 셋 있어요.”
배가 불러서 긴장감이 풀린 건지, 아니면 먹이를 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경계심이 풀린 건지 모르겠지만 아멜리아의 떨림이 아까보다 잠잠해졌다.
그래서 슬쩍 이 처절한 가난에 대해 물어보자 조심스레 입을 열더라. 아카데미에서 받는 돈이 적은 건 아닌데, 전부 동생들에게 보내고 있다고.
“한창 크는 나이라 돈이 많이 필요해요. 게다가 올리비아도 입학한 상황이라 애들을 돌봐줄 분을 고용할 필요도 있고요.”
말하는 내용은 밝지 못했지만 동생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기쁜지 아멜리아의 표정은 밝았다.
자기가 굶으면서 동생들을 챙기는 가난한 소녀 가장. 망할, 나 이런 거에 약하다고.
“죄, 죄송해요!”
그런 내 표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사색이 된 아멜리아가 책상에 이마를 박을 기세로 고개를 숙였다.
“하, 학업에 써야 할 돈을 다른 곳에 써서 죄송해요! 하지만 제가 없는 동생들은 딱히 벌이도 없어서…”
그 말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추궁하는 것 같잖아. 학생이 장학금이나 생활 보조금을 어떻게 쓰든 자유라고.
“언니는 잘못 없어요!”
‘아.’
잠잠했던 올리비아도 참전해버렸다. 작고 소중한 언니가 벌벌 떠니 차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나 보다.
아멜리아를 끌어안고, 아니 저 정도면 품에 안은… 아니 어쨌든 아멜리아에게 붙은 올리비아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제가 보내자고 억지 부린 거예요! 언니는 말렸는데 제가 하자고 했어요!”
제발 나한테 이러지마. 이거 멀리서 보면 귀족이 평민 둘을 핍박하는 걸로 보인다고. 권선징악 동화에 나올 내용이잖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멍하니 두 빈곤 자매의 모습을 바라봤다. 어느새 아멜리아는 올리비아의 등짝을 철썩철썩 내려치며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고 혼내고 있었다.
‘제국의 업보다…’
애초에 아멜리아의 동생들이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는 구휼 시스템이 있었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유토피아도 불가능할 시스템이지만 아무튼 제국의 업보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탓할 문제가 아니니 조용히.”
일단 내 멘탈을 실시간으로 갉아먹고 있는 두 자매부터 진정시키기로 했다.
본인들이 굶어가며 동생들에게 돈을 보내는 이야기는 오히려 표창을 받을 미담이다. 어떤 정신 나간 귀족이 그 미담을 듣고 ‘가아아암히 제국의 돈을 사적으로 쓰다니!’ 같은 말을 할까.
황제조차 신하들에 대한 의심이 짙은 거지, 일반 백성들에 대해서는 애민 정신이 있는 판국이다. 오히려 그런 미담이 생길 정도로 가난한 백성이 있다는 것에 짐의 부덕이요, 짐의 부덕이요 거리겠지.
물론 짐의 부덕이란 말은 아랫것들을 더 갈아버리겠다는 의미인 건 넘어가고.
“학생에게 돈이 전달된 순간부터 그 돈은 학생의 돈이다. 가족에게 주든, 도박에 날리든 간섭할 게 아니지.”
아멜리아는 내 확답에 안심한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하지만 학생을 위한 돈인데 정작 학생이 이런 꼴이라니.”
다시 딱딱하게 굳어버렸지만.
고민된다. 이미 교육성과 구휼성은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 적절한 지원금을 이 자매에게 줬고, 아카데미에서도 전달 과정에 문제는 없었다.
단지 최종 종착점인 줄 알았던 자매마저 지나가던 경유지에 불과했다는 것이 문제지. 주는 족족 다른 곳으로 보내는데 어쩌겠어.
‘답이 없네.’
이러면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다. 이미 적법하게 지원금을 주던 부서에게 지원금을 늘리라고 할 수도 없고, 어떻게 지원금을 늘린다고 해도 이 자매는 그 늘어난 지원금도 동생들에게 보낼 기세다.
그렇다고 동생들에게 보내지 말라고 윽박 질러? 그건 좀.
“잠깐 시간 괜찮나?”
고민 끝에 떠오른 것이 하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
간단히 식사를 하고 업무를 보는 사이 칼이 방문했다. 할 일이 있기는 하지만 칼을 돌려보낼 정도로 바쁜 건 아니다.
오히려 좋아. 내가 일이 있는 걸 알면서도 보고 싶을 정도로 칼이 나한테 푹 빠졌다는 거니까.
“아, 마르게타, 안녕…?”
“안녕하세요 선배님!”
하지만 상상도 하지 못한 조합에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모르는 얼굴은 아니다. 아멜리아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평민 학생인데다가 같은 학년이기도 하니 안면 정도는 튼 사이다. 능력도 제법 좋고 싹싹한 편이라 기억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올리비아는 그 기억대상의 동생인데다 평민 학생이기에 알고 있다. 필기는 처참하지만 실기 하나로 상위권으로 입학한 학생이었지. 선도부장이 노렸지만 워낙 아멜리아와 붙어 다녀서 데려오지 못했다고 했었나?
“안녕, 아멜리아. 올리비아도 반가워요.”
뜬금없는 조합이지만 상대의 인사를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심지어 칼이 직접 데려온 손님이라면 더더욱.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두 손님을 반기고 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데려온 거겠지만, 그래도 직접 들어야지.
“아는 사이 같군요.”
“조금은요. 저는 오히려 칼이 이 둘을 아는 게 신기한 걸요?”
내 말에 머쓱한 듯 웃은 칼은 아멜리아와 올리비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조금 섭섭하다. 내 앞에서 다른 여자의 몸에 손을 대다니. 차라리 루이제 영애라면 이해하겠는데.
“학생회 인원이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속내를 숨기고 이어지는 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간부 정원은 일곱뿐이니 결원이 생긴 적이 없지만, 간부 밑에서 활동할 인원들은 부족한 편이다. 아무래도 학생회가 인기 있는 곳이 아니니까.
아멜리아와 올리비아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 손님들을 데리고 학생회 얘기를 꺼냈다면 다음 말은 뻔하잖아.
나쁘지 않다. 올리비아는 애초에 선도부장이 노렸던 인재고, 아멜리아도 좋은 성적을 자랑한다. 평민 학생치고 능력이 부족한 학생이 없기는 하지만.
“부족하죠. 딱 둘 정도만 더 들어오면 여유가 생길 것 같아요.”
“잘됐군요. 이 둘은 어떻습니까?”
“네?”
“넹?”
칼의 말에 오히려 둘이 놀랐다.
‘독단이었구나.’
칼도 참, 오기 전에 설명이라도 해주지. 당사자도 모르게 하는 건 너무하잖아.
어딘가 허술한 것 같은 모습에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보는 눈이 있어서 참았다. 다른 사람 앞에서 칼을 웃음거리로 만들 수는 없지.
“학생회는 언제나 열려 있어요.”
“그럼 이 둘의 의향만 남았군요.”
그리고 칼은 둘에게 무언가 짧게 속삭였고─
“할게요.”
“하겠습니다!”
새로운 학생회 동지가 생겼다.
***
나도 가끔 잊지만 내가 아카데미에 상주하는 명목은 감찰관이다. 그러니 아카데미 내부에서 소모되는 자금이나 물자는 파악하고 있다.
그 덕분에 학생회의 극히 미세하고 의미 없는 특권도 알고 있었다. 아마 학생회 당사자가 아닌 이상 모르는 사람이 많을 특권.
“학생회 소속 인원은 교내 시설을 무료로 사용 가능하다.”
“무, 무료로요?”
“그래.”
“어, 그러면 식당도…?”
“그래.”
내 속삭임에 아멜리아와 올리비아는 빠르게 학생회에 투신했다.
교내 시설 무료 이용 가능. 거창한 것 같지만 실상은 별거 없다. 교내 시설이라고 해봤자 뭐 얼마나 비싸다고.
귀족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한 평민 학생들도 장학금이나 지원금을 이래저래 받기에 거들떠보지 않는 특권이다. 지갑에 지폐 빵빵한 사람에게 ‘자판기 밀크 커피 무료!’ 같은 말을 해봤자 신경이나 쓰겠냐.
‘쓰는 사람이 있을 줄은.’
오늘따라 눈물샘이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마르게타가 내민 서류에 희희낙락하며 서명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쟤네한테 돈을 더 주면 동생들에게 가는 돈만 늘어날 뿐이다. 차라리 이게 맞다. 밥이라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하는 게 맞다.
솔직히 쟤네도 사람인데 배가 안 고프겠냐. 내가 사줄 때도 열심히 먹었고, 지금도 식당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는 걸 알자마자 저런 꼴이다.
‘가엾게도.’
꼭 추천장을 써줘야 할 사람이 둘이나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