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5)
제 15화
제과 못하는 제과 동아리 – 1
외무성이 요주의 인물로 선정했던 국외 인사 셋이 같은 동아리에 모이고, 삼국 전력의 대표인 인물과도 안면을 텄다. 이제 본격적인 아카데미 파견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째 아카데미에 도착한 이후로 이 생각 좀 자주 하는 것 같긴 한데. 매번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 같으면서 매번 무슨 일이 생긴다.
– 하하하하하!
통신구를 통해 들려오는 장관의 숨 넘어가는 웃음 소리. 요주의 인사들이 순식간에 한 동아리에 집결하고, 내가 그 동아리 고문이라는 말에 진심으로 빵 터져서 웃고 있다. 절로 빈정이 상해 시큰둥한 얼굴로 장관을 바라보았다.
“왜 웃으십니까?”
– 웃을 얘기를 해놓고 웃지 말라고?
더 빈정이 상해버렸다. 개같은 놈, 하필 이런 사람이 장관이라니.
몇 번이고 더 웃음을 터뜨리던 장관은 겨우 숨을 고르며 진정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직관하는 건 생각보다 가슴 아픈 일이었다. 내 불행이 당신에게는 웃음벨이구나. 그렇게 숨을 내뱉은 장관이 어느새 진중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였다.
– 그래서, 진짜 너도 모르겠다고?
“아까 말했지 않습니까. 정말 짚이는 게 없습니다.”
제과 동아리에 주요 인사들이 우르르 몰린 현상에 대한 공식적인 보고는 ‘원인 불명’으로 퉁쳤다. 감찰관이 이유를 모르겠다는 보고를 하는 것만큼 무능을 입증하는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핑크 카피바라가 아카데미에 독을 풀었다!’ 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가끔 살다 보면 왜 일어났는지 도저히 각이 안 보이는 사건이 터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그렇게 취급하기로 했다.
장관도 내 연이은 확답에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내가 은퇴각을 노리는 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업무 관련해서 장난질을 친 적은 없었다. 그걸 아니 장관도 정말 원인 불명으로 여길 수밖에.
– 나도 궁내성과 외무성에 이 소식을 전달해야 한다. 적당히 포장할 명분은 있어야 해.
“그냥 3황자 전하가 있는 동아리니 어디 갈지 고민하던 다른 인사들이 모인 것 같다고 할까요?
– 그러면 3황자 전하가 가입하신 이유는?
“그건 진짜 답이 없네…”
계승 분쟁부터 숨을 죽이고 살던 아인테르는 황태자의 신명 나는 칼춤 이후로 정말 죽은 듯이 지냈다. 그런데 그랬던 아인테르가 갑자기 동아리에 가입했다고?
‘여자한테 홀려서 그랬다고 어떻게 말해.’
절로 한숨이 나올 것 같다. 혼자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비밀을 품은 사람이 이런 기분일까.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장관이 손을 휘저으며 입을 열었다.
– 뭐, 됐다. 3황자 전하의 의도는 추가 파악 중이라고 하면 되겠지. 마침 네가 동아리 창설부터 고문을 맡았으니 명분은 설 거다.
“예, 알겠습니다.”
– 통신구에 보랏빛 물들면 올게 왔구나, 하고 받고.”
“이 시발, 너무 끔찍한데.”
황실 인사의 연락을 의미하는 보랏빛. 아마 황태자가 3황자를 다시 주시하기 시작한다면 난데없이 나에게 황실의 연락이 꽂힐지도 모른다. 제발, 제발 그것만은…
피식 웃음을 터뜨린 장관은 미련 없이 연락을 끊어버렸다. 장관의 얼굴이 사라지고 빛을 잃은 통신구. 내가 있는 방 안에는 다시 적막이 흘렀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제과 동아리의 패턴은 비슷했다. 애초에 패턴을 분석할 만큼 오래 지속된 동아리가 아니긴 하지만.
“루이제 영애. 조심하지 않으시면 얼굴에 다 묻습니다.”
동아리 시간이 되면 사실상 루이제 원맨쇼가 진행되며, 그 주변 다섯 관객이 어떻게든 말을 걸 명분을 찾고 이런저런 재료를 옮겨주는 모습을 보인다. 제과 자체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멀리서 보면 뭔가 하는 것 같기는 하는 기묘한 형태.
역시 태어날 때부터 위에 서던 놈들이라 그런가. 최소 행동으로 최대 효율을 뽑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물론 가까이서 보면 제과를 전혀 모르는 무임승차 짐 덩어리에 불과했다. 쟤네 루이제 좋아하는 거 맞지? 가끔 보면 조별과제 방임하는 조원들 같은데.
루이제의 행동에 추임새를 넣는 다섯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방청객 알바로 앉아 있으면 돈 좀 만질 것 같은 놈들. 사람의 호감은 살 수 있겠지만, 연애 감정을 진척시키기는 영 아니다. 그 영 아닌 놈 중에는 여전히 에리히도 끼어 있었고. 못난 놈.
‘귀띔 좀 해줘야지.’
진즉에 에리히에게 제과라도 같이 하며 취미를 공유하라는 조언을 줄 생각이었으나, 그 생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규 부원 셋이 우르르 와서 미처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다섯이 전부 관망 상태니, 지금 에리히가 조금만 치고 나가면 바로 선두 주자가 된다.
좋아, 일단 에리히만 따로 빼자.
“재료를 같이 옮길 한 명이 필요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시선을 끌었다. 물론 운반할 재료 따위는 없다. 고맙게도 부족한 재료가 있으면 아침마다 동아리실 앞에 가져다주는 짐꾼이 하나 있으니. 그냥 적당히 에리히와 단 둘이 빠지기 위한 핑계.
“에리히. 같이 가지.”
내 빠른 지목에 에리히가 흠칫 떨더니 조심스레 내 쪽으로 다가왔다. 고문의 부탁에 순순히 따라주는 부원이라니. 이 고문은 마음이 몹시 흡족하다.
에리히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고 밖으로 나가려 하자 류티스가 손을 들었다.
“둘로 충분하겠습니까? 힘 쓰는 일이라면 저도 있는데요.”
‘넌 갑자기 왜 끼어들어.’
루이제에게 관심이 쏠려있을 놈이 자청해서 나서려고 한다. 의문스럽지만 원래 활발한 놈인가 싶어서 그냥 넘어갔다. 저 원작 일당의 행동을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고차원적 문제니.
“괜찮다. 둘이면 충분해.”
“뭐 그러시다면야.”
어깨를 으쓱인 류티스가 다시 루이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 번 묻고 끝인 걸 보니 예의상 물어본 모양이다. 그래, 그런 예의라도 보여줘서 고맙긴 하네.
“가자.”
“어, 알았어.”
이제 이 최약체를 조금이라도 강화시켜야 할 시간이다.
문을 닫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자 류티스의 시선이 슬쩍 문을 향했다.
‘칼 크라시우스.’
삼국에 대응하여 아카데미에 머물게 된 감찰관의 이름. 지금은 예상치 못하게 동아리의 고문으로 만난 사내. 어쩌다보니 그가 관리하는 부원이 된 류티스가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2년 정도 전의 일이었다.
제국이 북방에서의 전쟁을 끝내고 황태자를 책봉하며 이루어진 대대적 인사 이동. 제국 다음 가는 국력을 자부하는 아르메인 왕국이 제국의 그런 변화를 주시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니 19살이라는 나이에 부장이 된 칼 크라시우스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
그 소식을 접한 아르메인 왕국의 수뇌는 제국의 인력난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죽 했으면 19살 부장이 등장했겠냐며. 그래도 굳이 칼이라는 자가 부장이 되었다면 그만한 이유가 존재는 할 것. 아르메인은 조사에 착수했다.
다행히 전쟁과 계승 분쟁, 대대적 숙청 등으로 인하여 당시 제국의 방첩망은 이전에 비해 느슨해진 편이었고, 아르메인 첩보부는 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존 결론을 철회하였다.
‘카간을 잡은 사람에게 부장 자리 정도야 줄 수 있었겠지.’
4년 전, 북방 유목민을 규합하여 제국에 칼날을 겨눈 존재. 유목민의 황제, 카간. 물론 대륙 유일 제국인 크펠로펜은 카간이라는 호칭을 인정하지 않으며, 카간을 제국의 천명에 도전한 역천자라 칭하였다. 그러나 그 분수를 모르는 역천자에게 2년이나 시달린 것은 제국의 치욕.
그리고 2년 동안의 전쟁 끝에 마지막 전투에서 카간의 목을 벤 것이 칼 크라시우스. 제국군을 지휘하며 카간의 군세를 격파한 것은 다른 자였지만, 그 전투 속에서 카간의 목을 벤 것은 칼이었다. 이상하게도 제국이 대대적 공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철저히 숨긴 일도 아니라 첩보부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가 감찰관이라.’
류티스는 피식 웃음이 흘러나올 뻔했다. 왜 칼이 재무성 소속인지는 둘째 치고, 아카데미에서 삼국이 허튼짓을 한다면 바로 엎어 버리겠다는 제국의 의지가 보이는 것 같았으니까. 삼국과 주요 인사의 체면이 있었고, 삼국의 양보를 받은 것이 있기에 호위 전력 주둔은 허락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여차하면 감찰관이 무력으로 패겠다. 그리고 제국은 카간을 잡은 인재를 지키기 위해 추가적인 지원도 추진할 것이다. 그런 환청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양보하는 척 하면서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을 점하려는 것은 제국의 주된 외교 방법이니.
제국의 살벌한 의도를 떠올렸음에도 류티스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삼국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만 않으면 제국도 움직일 명분이 없으니까. 그리고 라테르와 타니안은 어떨지 몰라도, 류티스는 정말 조용히 아카데미를 다닐 생각이었다. 그러니 두려울 것이 없는 상황.
단지 루이제라는 첫 눈에 반한 여인이 있는 동아리에 그 감찰관이 있다는 것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의문스러울 뿐. 그래서 류티스는 칼과 대화하기 위해 슬쩍 손을 들어봤고, 거절 당하자 깔끔히 접었다. 아무리 의문스러워도 당장 눈 앞의 루이제가 더 중요했으니.
류티스는 해맑게 웃으며 반죽 중인 루이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답답하고 재미없는 왕실에 갇혀 있던 류티스를 처음으로 두근거리게 만든 그 얼굴을.
‘고문 선생, 동아리를 잘 부탁한다고.’
저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이 동아리가 무너져서는 안되니까.
“너 루이제 좋아하는 거 맞냐?”
그리고 그 시각, 칼은 동생을 강화하기 위해 동생을 망치로 내려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등에 황실과 상관을 태우며 고난의 행군을 하던 표지 속의 칼은 드디어 허리를 필 수 있었습니다. 흔쾌히 표지 사용이 가능하게 저작권 양도를 해주신 창작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그제와 어제 이틀 연속으로 좀 마실 일이 있어서 속이 좋지 않습니다만은, 도저히 표지를 바꾼 기념으로 휴재를 때리는 신박한 놈이 될 수 없어서 어떻게든 완성했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DNKE님! 그레이얼님! 후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