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52)
류티스와 라테르의 도발에 걸린 에리히의 소환술. 갑자기 소환당한 내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라 언짢고 귀찮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어디 가면 SSR급 대우 받는데 건방지게 단차로 뽑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흥미로워졌다. 저 광경을 보고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그게 더 신기하지.
“막아! 몸으로라도 막아!”
“피하지 마! 앉아서 살 바에는 서서 죽어라!”
아카데미 학생들이 저렇게 호전적인 줄은 몰랐다. 아니, 학생들 중에서 유독 호전적인 아이들만 뽑아 4인전이 이루어지는 걸 수도 있다.
아무튼 상당히 치열한 난전이 펼쳐졌다. 모든 반이 몸을 사리지 않고 충돌했다. 내가 한 대 맞더라도 상대의 턱주가리를 날려버리겠다는 의지가 보일 정도로.
‘미래가 밝다.’
흡족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제국의 미래가 밝아. 아무래도 이번 아카데미는 황금 세대가 맞는 것 같은데.
실기 시험 때도 노다지에서 금 캐는 기분이었지. 이번에도 추천장을 받아 마땅한 인재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학생들의 열의가 상당하군요.”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슬쩍 입을 여니 옆에 있던 남성이 대답해줬다. 졸지에 나와 같은 팀이 되어버린 1학년 3반의 담임 교사.
긴장한 듯한 모습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냥 지나가다 만난 사람도 아니고 동생의 담임이지 않나. 그런 사람이 내 눈치를 보고 있으면 진상 학부모가 된 것 같아서 조금 그렇다.
그렇다고 긴장 풀라고 하면 퍽이나 풀겠다. 사단장이 중대장한테 ‘내가 무섭나?’ 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달라.
“저희 쪽에는 오지 않으니 기다리도록 하죠.”
“훌륭하신 판단입니다.”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아부에 괜히 민망해졌다.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겠다.
***
무언가 잘못됐다.
‘이런 망할.’
작전은 완벽했다. 아카데미는 1, 2, 3학년을 합쳐서 18개 반. 반 하나에 4명이 참전하니 총 72명.
여기에 두 왕족과 감찰부장의 반이 빠져도 무려 60명이다. 60명이 한 경기장에서 난전을 벌이는 거다.
그 난전 속에서 몸을 살피지 않는 공격을 퍼부으면 빠르게 쓰러질 거라고 생각했다. 류티스 왕자에게 접대 대련도 했던 몸이다. 자연스럽게 쓰러지는 건 자신 있다.
‘이 개 같은 것들.’
전부 같은 생각이었다. 나를 포함한 60명은 누구보다 먼저 쓰러지기 위해 사소한 공격에도 치명타를 입은 것처럼 굴었다.
이를 갈며 옆에 쓰러진 로베르를 노려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옆으로 굴렸다.
‘배신자가.’
쓰러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맞으면 바로 구르며 연기할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 날아왔다.
기쁜 마음으로 손에 힘을 풀었다. 이제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편하게 쉴 수 있어.
“샤를, 위험하다!”
저놈이 튀어나와서 대신 맞더라. 보는 눈만 없었다면 이게 무슨 짓이냐고 발로 걷어차고 싶을 정도다.
“오, 샤를 아닌가!”
‘망할.’
예정에도 없던 최후의 1인이 되니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기억해줘서 고맙군.”
“내 첫 대련 상대였으니 당연하지!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류티스 왕자는 보는 사람이 시원할 정도로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나는 시원한 수준을 넘어 오싹한 수준이었지만.
‘하필 기억하다니.’
실기 시험 때 정말 최선을 다해서 굴렀다. 봐주는 느낌이 없게, 정말 치열하게 싸우는 느낌이 들게 노력했다. 사실 전력으로 싸워도 내가 졌겠지만 대련 도중 왕자의 몸에 상처라도 내면 끝장이니까.
겨우겨우 그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지나가다 인사한 것이 아니라 경기장에서 직접 이름을 불렀다.
어지간한 연기로는 안된다. 나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커졌으니 어설픈 행동은 오히려 독이 된다.
‘다른 쪽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나에게 관심이 꽂힌 류티스 왕자와 달리 라테르 왕자는 내가 아닌 감찰부장 진영을 살피고 있었다.
그래, 나보다는 감찰부장이 더 위협적이겠지. 당연한 판단이다.
그리고 감찰부장을 살피다가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이런.’
소름이 끼쳤다. 시선을 돌리자마자 눈이 마주쳤다는 건, 감찰부장은 계속 나를 보고 있었다는 거니까.
심지어 그 눈은 나를 평가하는 것 같은 눈이었다. 순간 늪에 빠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이럴 것 같아서 빨리 쓰러지려고 했는데.’
마지막까지 서있는다면 감찰부장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일이지 않나. 그래서 조기에 쓰러지려고 했는데 로베르, 저 배신자가 망쳤다.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켰다. 감찰부장의 눈에 들어왔다면 최대한 빠르게 탈출해야 한다.
‘빠르게 쓰러진다.’
아까와 같은 목적이지만 이번에는 감찰부장이 봐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연기해야 한다.
난이도가 갑자기 상승했네. 로베르, 저 빌어먹을 놈.
“너도 복수전을 원하겠지?”
‘안 원해.’
가볍게 웃으며 말하는 류티스 왕자의 말에 고개를 저을 뻔했다. 어떤 미친 작자가 왕족에게 졌다고 복수전을 원하겠나. 오히려 아무 일 없이 지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기도를 해야 할 일인데.
하지만 류티스 왕자의 눈은 이미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덤비지 않으면 실망할 정도로.
내가 덤비기를 원하는 왕자, 나와 전혀 연관점이 없는 다른 왕자, 건드리면 감찰당할 것 같은 괴물.
‘미치겠군.’
그래도 셋 중에 누군가와 부딪혀야 한다면 그나마 류티스 왕자다. 다른 둘은 정말 답이 없을 것 같으니.
“간다.”
류티스 왕자를 향해 외치며 달려갔다.
나는 덜 뜨거운 지옥으로 간다.
***
역시 제법이다. 제국이 아닌 아르메인의 귀족이었어도 훌륭한 기사로 이름을 날렸을 거다.
‘샤를 올리드.’
확실히 기억하기에 마땅한 이름이다.
평온한 표정으로 바닥에 누워있는 샤를을 보니 만족스러웠다. 복수전에서도 패했으니 분할 텐데 결과에 깔끔히 승복하는 저 모습.
실로 뛰어나다. 훌륭한 상대와 붙으면 결과가 어떻든 만족스러운 법인데, 심지어 이겼다. 어찌 기쁘지 않을까.
“좋은 승부였다.”
“영광이다.”
그 말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만족감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인가.’
나와 샤를의 승부를 기다려준 라테르와 고문 선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해하려고 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거다. 직접 난입을 하거나, 아니면 멀리서 마법을 날려도 충분하니까.
그럼에도 방관했다는 건 일대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미. 이해한다. 내가 구경하는 입장이라도 그랬을 테니.
‘흐음.’
솔직히 라테르와의 승률은 반반이다. 마법사와의 대결은 변수가 너무 많다. 게다가 라테르의 실력은 만만치 않지. 내가 확실히 이긴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내 실력을 생각하면 확실히 지지도 않는다.
그에 반해─
‘자신 있지.’
고문 선생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긴가민가한 라테르에 비해 고문 선생은 자신이 있다.
질 자신이.
‘괜히 도발 했나.’
헛웃음을 지으며 고문 선생, 더 정확히는 그 뒤에 있는 에리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네가 뭐 어쩔 건데.’ 라는 표정으로 대응하는 에리히. 그래, 내가 아무나 부르라고는 했지. 설마 고문 선생을 부를 줄은 몰랐지만.
‘훌륭한 군인이군.’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 하지만 확실한 효과. 에리히가 군인의 길을 걷는다면 뛰어난 사령관이 될 거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아무리 창의적인 전술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아카데미 경기에 카간 살해자를 데려오는 놈이 대체 어디 있냐.
‘이기는 건 불가능하고.’
카간이 얼마나 괴물인지는 잘 안다. 그 괴물을 죽인 고문 선생을 어떻게 이길까. 그래서 도저히 고문 선생을 이기고 4인전에서 승리하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당연히 라테르가 이기는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4인전은 루이제 반의 승리가 확실.
‘결국 무승부인가.’
내 반과 라테르 반의 승점은 동일했다. 4인전에서 이기는 쪽이 반 대항전 우승이었는데, 둘 다 사이좋게 질 테니 무승부로 끝나겠지. 허무한 결말이다.
그래도 고문 선생과 싸워볼 수 있다는 것 자체는 기쁜 상황이다. 그 카간 살해자와 붙을 수 있는 기회를 어디서 얻겠는가. 심지어 죽을 걱정도 없이.
강자와의 승부는 더욱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고문 선생, 한 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은 지더라도 기분 좋게 질 수 있겠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무기는 없으십니까?”
고문 선생은 맨손이었다. 애초에 갑작스럽게 참여한 거니 무기가 없는 건 이해하지만, 지금은 에리히 검이라도 빌릴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고문 선생은 잠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덤덤히 말했다.
“딱히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아서.”
이건 조금 자존심이 상한다.
“이런, 고문 선생이 격투가인 줄은 미처 몰랐군요.”
“모를만하지. 난 검사니까.”
음.
뒤에 있던 팀원들이 더욱 거리를 벌리는 게 느껴졌다.
목표가 생겼다. 고문 선생에게 한 번이라도 유효타를 넣는 게 목표다.
“저는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고문 선생이 나에게 베여도 탓할 사람은 없을 거다. 무기를 들지 않은 상대에게 먼저 맨손임을 지적했으니까.
물론 고문 선생도 자신이 있으니 저렇게 나오는 거겠지. 그러니 지금은 신중하─ 게─?
‘뭐지.’
갑자기 눈 앞에 새카만 무언가가 튀어나오더니 멱살이 잡히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반전됐다.
땅을 딛고 있던 발은 갈 곳을 잃어 떠다녔고, 고문 선생을 보고 있던 시야는 전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게 무슨 일이─
– 콰아아아앙!
──ㅈ..ㅣ…
***
어깨에 쏟아지는 경기장 바닥(이었던 조각)을 털어냈다.
‘어디 터지진 않았네.’
다행히 바닥만 박살나고 류티스는 멀쩡하다.
그래, 이게 맞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기를 쓰면 어디 하나는 잘린다. 안심과 신뢰의 맨손으로 하는 게 맞지.
그리고 장기전으로 갈 것도 없다. 길게 끌어봤자 왕족한테 티배깅을 하는 게 아니냐는 말만 나올 터.
그래서 빠르게 끝냈다. 바로 멱살을 잡고 바닥에 내리꽂았다.
겉으로는 어디 터지거나 잘린 곳도 없으니 완벽하다.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죽었나?’
얘가 기절을 한 건지, 아니면 죽은 건지 움직이지를 않는다.
설마, 아니겠지? 겉이 아니라 속에서 터진 건 아니겠지?
괜히 불안한 마음에 바닥에 처박힌 류티스의 어깨를 건드렸다.
“…….”
류티스의 입에서 피가 울컥 솟아나왔다.
그나마 최대한 조절한 건데 이 지경이다.
‘시발.’
망했다. 이거 시말서로는 안 끝날 것 같은데.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 작은 만족감이 피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