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54)
황태자는 내가 먼 길을 와야 하는 걸 안타깝게 생각했는지 텔레포트 마법사도 보내는 철저함을 보였다. 신하에게 이런 사소한 배려도 해주다니, 실로 성군의 자질을 가지신 분이다.
정확히는 대형 사고를 친 역적놈의 새끼가 어디 이상한 곳으로 도망치지 않게 바로 픽업하려는 것 같지만.
‘애초에 갈 곳도 없는데.’
왕족 폭행 사건으로 소환당하는 상황에서 다른 길로 새면 바로 현상금 걸리고 추포령이 떨어지겠지. 궁금하긴 하네, 왕족을 패고 도망치면 얼마가 걸릴까. 오늘부터 나도 초신성?
물론 그딴 게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그냥 작고 소중한 집에서 백수로 지내고 싶어.
‘미치겠네.’
하지만 눈 앞의 황태자궁을 보자마자 백수 생활이 아닌 징역 생활을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번 일로 징역까지 가지는 않겠지만 근신이나 징역이나 갇혀 있는 건 똑같잖아.
“황태자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한숨을 참으며 다가가자 황태자궁을 지키는 기사가 바로 길을 열어줬다.
사실 ‘예약을 하지 않은 방문자는 받을 수 없습니다!’ 같은 상황을 살짝 바라기는 했다. 당연하게도 황태자가 이미 언질을 줬는지 프리 패스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주치는 시종이나 호위병이 고개를 숙이는 걸 보니 착잡하기 그지 없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나도 저 사람들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겠지.
아니, 숙이는 수준이 아니라 바닥에 박고 있으려나.
“감찰부장님.”
“고생 많군.”
황태자의 집무실에 도착하자 호위 기사가 경례를 하며 반겨줬다. 오랜만이라 반갑지만 만나게 된 이유는 반갑지가 않네.
– 똑똑
“전하. 감찰부장이 도착했습니다.”
“들여보내게.”
호위 기사의 보고, 황태자의 짧은 답변.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래.”
아, 진짜 들어가기 싫다.
***
들어오라는 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서류를 보고 있던 시선을 문으로 돌리자 감찰부장이 조심스레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잘못한 건 아는군.’
평소에는 벌레 씹은 표정과 함께 귀찮은 기색을 온몸으로 풍기는 것이 감찰부장이다. 그런 감찰부장이 저렇게 눈치를 살핀다는 건 그만큼 본인이 불리한 입장이라는 걸 안다는 것.
당연히 알아야지. 모르면 그게 사람이겠나, 짐승의 용맹과 지능을 동시에 가진 놈이지.
“이런, 지고의 충신이 왔군.”
“황송한 말씀입니다.”
“내가 업무로 고단한 것을 염려하여 이런 독특한 소식을 들려주지 않았나. 이런 충신이 세상에 둘이나 있겠나.”
그렇게 말하자 감찰부장은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바빠 죽겠는데 이딴 소식을 들려줘서 정말 개 같다는 말이었으니.
그래, 확실히 업무에 시달리는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소식이기는 했다. 교육성의 보고를 듣고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순간 피로로 청력이 망가졌나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황족을 죽여본 놈이니 왕족 폭행 정도면 자중한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을까.
‘아직도 아찔하군.’
그때 느꼈던 감정을 생각하면 더 쪼고 싶지만 지금의 감찰부장은 더 건드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상태다. 이미 ‘내가 죄인입니다.’ 거리는 사람을 자극해봤자 폭주밖에 더 하겠나.
만약 사태가 험악하게 돌아간다면 모를까, 다행히 이번 일은 무난하게 수습됐다. 그렇다면 내가 열을 낼 필요도 없다.
물론 아무 문제 없다고 시인하면 감찰부장이 다시 당당해질 테니 언짢은 모습을 고수했다.
“앉게. 서서 할 이야기는 아니군.”
“예, 전하.”
빠르게 자리에 앉는 감찰부장을 보니 기묘한 분노가 마음에서 솟아났다. 평소에도 저 모습의 반 정도만 고분고분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참았다. 애초에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닌 걸 알면서도 저 자리에 앉힌 게 나니까. 이제 와서 감찰부장의 성격으로 열을 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어제 일은 들었네.”
어차피 화를 내지 않아도 내가 압도적인 우위기도 하고.
“활기 넘치는 나이의 학생들이 모여서 그런지 안타까운 사고가 종종 일어나기도 하지. 내가 아카데미에 다닐 때도 그랬는데 여전하군.”
물론 이번 사고는 단순히 활기가 넘쳐서 터진 사고가 아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흐르면 그렇게 되는 거지.
경기 직전에 갑자기 결원이 생기고, 그 공백을 감찰부장이 채우고, 하필 그 경기에 왕족도 참여하고 있고. 우연도 이렇게 겹치면 필연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단순한 부상으로 끝난 것 같던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르메인 측에서 이번 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 경기에 참여한 것은 아르메인 왕자의 의지였고, 경기 중에 부상을 입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학생이자 경기에 참가한 선수가 아카데미 일정 중 부상을 입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오히려 자발적으로 참가한 왕자가 다쳤다고 항의를 하면 모양새가 더 이상하다.
항의하면 겉으로는 안타까운 부상이며 범인을 처벌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오겠지. 하지만 뒤로는 분명 ‘본인 실력이 부족해서 생긴 일인데.’ 같은 말이 나온다. 아르메인 입장에서는 건드리지 않는 게 이득.
“왕자는 괜찮던가?”
“예.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확언하는 걸 보면 왕자는 정말 이상이 없을 터.
왕자가 회복했다는 소식은 이미 교육성을 통해 들었지만, 그래도 가해자의 의견도 듣는 게 확실하지 않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어.’
괜히 이 일을 공론화하면 오히려 아르메인과 왕자의 체면만 구기게 되고, 문제가 됐던 왕자의 부상도 완벽히 회복됐다. 심지어 왕자도 이번 일은 경기 중 일어난 사고에 불과하다고 말한 상황.
덕분에 왕족 폭행이라는 대형 사건이 터졌지만 조용히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지. 아니, 애초에 운이 좋았다면 이딴 일이 터지지도 않았겠지만.
그리고 일이 끝났으니 그 후속 조치를 할 차례다.
“감찰부장.”
“예, 전하.”
“신중하지 못했어.”
감찰부장의 시선이 다시 바닥으로 향했다.
“에넨께서 보우하셨는지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았네.”
정말 천운이 따랐는지 제국이 무언가 하기도 전에 아카데미에 있는 아르메인 전력 측에서 사태를 끝냈다.
물론 이렇게만 말하면 감찰부장은 내가 이번 사태로 심히 언짢아하는 걸로 생각할 거다.
“그래도 왕족의 체면을 생각해 우리도 무언가 보여야 하지 않겠나.”
사실 딱히 보일 필요는 없다. 이번 일 자체를 없던 걸로 하고 싶은 아르메인 입장에서는 제국이 ‘저희가 죄송하니 이거 드릴게요.’ 같은 말을 하면 오히려 발작을 할 거다. 제국이 움직일수록 아르메인의 왕자가 얻어 맞은 사건도 조명될 테니.
물론 이렇게만 말하면 감찰부장은 내가 아르메인에게 무언가 성의를 보이려는 걸로 생각할 거다.
“잠시 자중하고 있게.”
“받들겠습니다.”
덤덤히 고개를 숙이며 답하는 감찰부장의 모습은 신기할 정도였다. 이게 시말서 하나를 쓰라고 해도 분노에 휩싸인 글자 뭉치를 제출하던 사람이 맞나.
“감찰부장의 노고를 생각하면 일주일이면 충분하겠군.”
“감사합니다, 전하.”
근신 기간은 일주일이라는 말에 감찰부장의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아무리 징계지만 근신이면 일단 업무에서 손을 떼고 자택에만 머무르게 된다. 업무에서 해방된 일주일이면 적당히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
일주일보다 길어지면 오히려 후폭풍이 염려되는 수준이니 감찰부장 입장에서는 적당한 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림도 없지.’
내가 누구 좋으라고 그런 평범한 근신을 주겠는가.
“그래도 감찰부장이 아카데미에서 행하는 역할은 지대하지 않나.”
그렇다. 감찰부장은 아카데미에서 타국 주요 인사들을 살피는 중책을 맡고 있다. 그런 인재를 일주일이나 제도에 묶어둘 수는 없지.
“근신은 아카데미 숙소에서 하도록 하게.”
근신은 징계자의 자택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감찰부장의 집은 근무지 아닌가? 어딜 건방지게 퇴근을 하려고 하는가. 오늘부터 감찰부장의 집은 아카데미다.
“전─”
반론을 하려는 감찰부장의 모습에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러자 바로 입을 다물며 침묵하는 모습.
이거다. 이걸 원했다. 억지인 결과에도 감찰부장이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원했다.
내가 괜히 소환 명령도 짧게 보내며 분노한 티를 냈겠는가. 그래야 감찰부장이 내가 내린 징계에 순순히 따를 테니 그런 거다.
‘나쁘지 않군.’
물론 처음 왕족 폭행이라는 대형 사건을 들었을 때는 진심으로 욕을 내뱉을 뻔했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마음이 진정되니 웃음만 나오더라. 감찰부장이 대항전에 참여한 것 자체가 웃기고, 나름대로 힘 조절을 하려고 한 것 같은데 실패한 것도 웃겼다.
결정적으로 외교 문제로 번지지 않았으니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었다.
“근신 장소가 자택이 아닌 다른 곳이니 준비할 필요는 있겠지. 내 그 정도 배려는 하겠네. 근신은 내일부터면 되겠어.”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전하.”
오랜만에 만족감이 가슴을 채웠다.
***
시발.
시발시발시발시발…
‘빌어먹을 놈.’
제발 유병장수해서 십일장생 돼라.
황태자의 정신 나간 징계를 듣고 내 정신도 나갈 뻔했다. 이게 무슨 근신이야. 근무지에서 근신하는 놈이 어딨어.
‘여기 있네.’
그게 나야, 망할.
‘쉬는 건 글렀군.’
아카데미에 박혀 있으면 퍽이나 쉴 수 있겠다. 아마 숙소에 있으면서도 무슨 일이 터지지 않나 노심초사할 테고, 정말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하겠지.
심지어 명목상 근신 중이라 내가 직접 나설 수도 없다. 우회로를 찾아서 복잡하게 처리해야 한다.
‘망할.’
억울하다. 너무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
아카데미에서 일하는 건 억울하지 않다. 어차피 하는 일을 하는 건데 뭐가 억울할까.
하지만 근신 처분을 받고도 쉬지 못하는 건 동서남북으로 울부짖을 일이다. 이왕 근신 스택이 쌓인 거 쉬기라도 하면 좋은데.
‘따질 수도 없고.’
이번 사건은 내가 명백한 범인이다. 황태자도 눈이 돌아갔을 테니 여기서 입을 잘못 놀리면 근신으로 끝날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세 번째 근신…’
억울함 뒤에는 막막함이 몰려왔다. 이걸로 내 전적은 근신 3회, 시말서 9회.
‘…앞으로 하나.’
시말서 하나만 더 쓰면 바로 구금이다.
근신 수준이 아니다. 차디찬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
솔직히 올해 안에 들어갈 것 같은데. 망했네 이거.
‘전과범 감찰부장.’
가슴이 옹졸해진다. 이거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