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55)
황태자궁을 나가자마자 재무성 청사로 걸음을 옮겼다. 마음 같아서는 아카데미 숙소로 돌아가서 혼자 울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근신 장소가 자택이 아닌 다른 곳이니 준비할 필요는 있겠지. 내 그 정도 배려는 하겠네. 근신은 내일부터면 되겠어.”
이딴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그냥 돌아가.
‘준비는 개뿔.’
내가 자택에서 출퇴근 하던 것도 아니고 아카데미에 상주하고 있었는데 준비할 게 뭐가 있을까.
이 상황에서 ‘근신은 내일부터’ 라는 말을 한 걸 보면 뻔하다. 오늘은 감찰부에서 일 좀 하다가 돌아가라는 거다.
‘무슨 일이지.’
그래도 황태자가 아무 이유 없이 일을 시킨 적은 없다. 그 새끼가 사람을 개처럼 굴리기는 하지만 엿같이 굴리는 놈은 아니니까.
딱히 짚이는 건 없다. 장관이나 차장에게 연락이 온 것도 없고, 이맘때에 정기적으로 처리할 일도 없다. 아무래도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게 낫겠는데.
일단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다. 근신으로도 마음이 아픈데 다른 일까지 터지면 정말 슬플 테니.
그리고 별일이 있었다.
“부장님.”
“어? 부장님?”
그게 아니라면 눈 앞의 광경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뭐야, 다들 모여있었네?”
집무실에는 북방으로 먼 길을 떠난 2과장을 제외한 모든 간부들이 모여있었다. 얘네가 나 없을 때에도 회의를 할 정도로 성실한 것들은 아닌데.
일어나려는 간부들을 도로 앉히고 내 자리에 앉았다. 애석하게도 무슨 일이 터졌다.
“안쪽은 잠잠하던데. 바깥일?”
“그렇습니다.”
차장의 답변에 한숨이 나왔다. 국내 사건이면 어지간한 것들은 과장들이 처리할 수 있다. 과장들 선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차장까지 나설 정도의 대형 사건이면 진작 내 귀에 들어왔을 테고.
그러니 자동으로 국내가 아닌 국외의 일. 아니기를 바랐지만 골치 아픈 일이 터졌다.
“어느 쪽이야?”
“북방입니다. 일부 부족과 무력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미치겠네.”
환장할 것 같은 겹경사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국외인 걸로도 귀찮은데 심지어 북방. 가장 최악이 걸렸다. 어쩐지 마탑에서 갑자기 마법사를 소환하더라.
국외, 특히 북방에서 일이 터지면 백에 아흔 정도는 무력이 필요한 문제다. 이번에도 그 아흔 중 하나고.
그리고 그런 일에는 특무성이나 마탑이 나서는 편이다.
‘개새끼들이.’
북방에서 일이 터져서 마탑이 마법사를 소환했고, 마법사가 소환당해서 내가 4인전 짬처리를 당했다. 결국 북방 때문에 근신을 당했다는 거다.
인생의 짐덩어리 놈들. 하여간 도움이 된 적이 없어.
“2과장은?”
그리고 마탑이 움직일 정도의 소란이면 2과장의 파견 업무는 지옥불 난이도로 급등한 거다.
애초에 2과는 정보 수집을 위해 북방으로 갔으니까. 무력이 필요한 문제로 번지면 힘을 못 쓰겠지.
“그것이…”
차장이 드물게 말을 흐리며 입을 열지 못했다. 뭐야, 불안하게 왜 그래.
그렇게 잠시 침묵했던 차장은 겨우 말을 이었다.
“2과장이 보고한 것은 오늘이었습니다.”
“오늘?”
“예.”
이상한 일이다. 마탑의 마법사가 소환당한 것이 어제 일이니, 늦었어도 보고는 어제여야 한다. 아무리 마탑이어도 미래의 일을 읽는 능력은 없으니.
“소르덴 변경백의 보고는 어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2과장이 늦었군.”
소르덴 변경백의 보고는 어제, 2과장의 보고는 오늘. 하루의 딜레이…
영 좋지 않은 소식에 다시 한숨이 나올 뻔했다. 몇 시간 늦게 보고가 이루어지는 건 그럴 수 있다. 변경백과 달리 2과장은 과 하나만 달랑 들고 험지에서 구르고 있으니 정보 취합에 시간이 걸리겠지.
하지만 몇 시간 수준이 아니라 하루 차이다. 하루라는 시간 동안 보고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것.
‘이미 데였나.’
난이도가 지옥불 난이도로 급증한 수준이 아니다. 이미 지옥불 펀치에 얻어맞고 뻗어버렸다.
“2과장은 현장에 남겠다고 했습니다.”
“헛소리.”
내 말에 차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차장이 생각해도 2과장은 복귀하는 게 맞으니까.
‘자존심은 강해가지고.’
처음에는 북방 지옥불 펀치에 맞고 정신이 나갔을 거다. 그리고 뒤늦게야 난데없이 처맞았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겠지. 그래서 임무를 지속하겠다고 버티는 거고.
일을 시킬 때는 귀찮아 하면서도 막상 시작하면 아득바득 처리하려고 한다. 하여간 성격 참 특이해.
‘왜 보내나 했더니.’
무심코 뒷목을 주물렀다. 갑자기 황태자가 일하고 가라고 할 때는 뭔가 싶었는데 이거 때문이었구나.
감찰부가 북방에 파견된 것은 황태자도 안다. 그런데 보고는 소르덴 변경백만 올려서 의아했겠지. 그런 찰나에 감찰부장이 제도에 올라왔으니 처리하라 보낸 거고.
나도 일복이 더럽게 많다. 어떻게 타이밍이 이렇게 겹치지.
“엄한 곳에서 맞았으면 알아서 돌아올 것이지.”
한숨과 함께 통신구를 작동시켰다. 우리 개새끼는 때려도 내가 때리지, 남한테 맞는 걸 보는 건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맞고 다니기나 하는 나약한 놈. 당장 돌아오라고 해야지.
– 오, 부장님.
그리고 통신구를 통해 보이는 2과장은 좀 심하게 맞은 것 같았다.
“너 눈 하나 어디 갔냐?”
– 아, 이거 말입니까?
오른쪽 눈에 한 안대를 매만지며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가 좋다고 웃고 있어.
– 판돈으로 주고 왔습니다. 이제 찾으러 가야죠.
“지랄하지 말고 돌아와.”
– 에잉.
단호한 소환 명령에 이번에는 2과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손 하나가 절실한 상황 아닙니까. 중앙에서 사람이 더 오는 판국에 기존 인원이 빠지는 건 이상한데요.
명령권자의 지시라 적극적으로 반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이유를 들어 반항을 시작했다.
“과장 눈 하나 바쳤으면 할 만큼 했지. 변경백이 뭐라고 하면 나한테 따지라 그래.”
물론 부질없는 반항이다. 까라면 까야지 어딜 과장 나부랭이가.
그리고 마탑이 움직일 정도의 사태다. 무력이 아닌 정보 수집에 특화된 과가 관여하기에는 스케일이 커졌지. 변경백도 이해할 거다. 애초에 변경백도 정보 조사를 위해 파견을 요청한 거니.
“빨리 와서 치료나 받아.”
– 쓰으읍… 알겠습니다.
결국 그럴 거면서 버티기는.
2과장과의 연락을 끊은 뒤에는 다른 간부들에게 잔소리를 조금 했다.
“이런 일이면 나한테 먼저 연락을 줘야지. 부하가 맞고 다니는 것도 모르는 상사가 어디 있냐.”
“일단 2과장부터 복귀시키고 연락드리려 했죠. 아까도 뒷목부터 잡으셨잖아요.”
그리고 1과장이 한 말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2과장이 안 돌아오고 버티는데요?’ 라는 보고를 해서 내 혈압을 상승시킬 바에는 자기들이 2과장을 설득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상당히 그럴듯했다. 내가 제도에 올라오지만 않았다면 괜찮은 방법이었네.
“부장님. 제도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 생각은 5과장도 마찬가지였는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왕족 패서 징계 받으러 왔어.’ 라는 말을 하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심지어 반항심이 투철한 1과장과 3과장 앞이다. 이 두 녀석 앞에서 나도 하극상을 일으켰다는 말을 하면 지금보다 더 지랄견이 되지 않을까?
“징계.”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이 작은 공무원 사회에서 누군가 징계를 받았다는 소문은 금방 퍼지니까.
내 대답에 5과장은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괜한 걸 물어서 미안하다는 듯이.
괜찮다. 난 5과장이 큰 실수를 해도 몇 번이나 용서할 생각이 있으니.
“푸흡…!”
“와, 얼마 전에도 시말서 쓰시더니.”
물론 너희는 아니야, 이 개 같은 것들아.
1과장의 웃음소리, 3과장의 감탄에 반사적으로 울컥했다.
“이번에는 근신이겠군요.”
덤덤한 차장의 말에 1과장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원통하다. 내가 받은 징계 중 절반 이상은 저것들 실수 커버하느라 받은 건데. 부하한테 잘해줘도 아무 소용 없어.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파견 중에 시말서를 쓸 일은 없을 텐데요.”
“시말서 아니야.”
그 말에 어색한 침묵이 집무실에 내려 앉았다. 징계인데 시말서가 아니면 그 위를 받았다는 거니까.
말을 꺼냈던 3과장은 빠르게 입을 다물었고, 1과장도 손으로 입을 막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와서 그래봤자 상처 입은 내 마음은 돌아오지 않지만.
“아니, 대체 무슨 일이…”
침묵이 길어지면 말을 잡아먹는 법.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던 3과장은 차마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내가 이기기로 했다.
“이거 보이냐?”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이 손이 왕족도 붉은 피를 가졌음을 증명한 프롤레타리아의 손이다.
“이 손으로 왕족을 팼다.”
말이 끝나자마자 거리를 벌리는 모습은 조금 충격이었다.
너네 왜 갑자기 정상인처럼 행동 하냐. 언제부터 상식에 신경 썼다고.
“부장님… 그럼 사형이에요…?”
“아니야.”
그냥 근신이야.
황태자가 경악하고 교장도 전전긍긍한 왕족 폭행 사건에 대해 말하자 침묵 대신 비웃음이 가득 찼다.
부장을 하려면 왕족을 팰 용기는 있어야 한다느니, 그냥 패는 걸로는 부족하고 피는 봐야 한다느니, 자기는 평생 과장으로 지내야 하겠다느니, 미취학의 한을 왕자에게 풀었다느니.
아무튼 온갖 도발이 난무하고 나서야 간부들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부장니이이임─ 화나셨어요?”
1과장만 빼고.
“화났으니까 너도 패고 시말서 쓰기 전에 돌아가.”
손을 내젓자 1과장은 입술을 삐죽이며 뾰로통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안 부끄럽나?’
가끔은 그런 생각마저 든다. 아무리 직책으로는 내가 위여도 나이로는 4살이나 아래인데. 혹시 본인 나이를 잊었나?
일단 본능적으로 1과장의 입술에 손을 뻗었다. 잡아달라고 내미는데 잡지 않으면 실례─
“부장님, 근신은 내일부터라고 하셨죠?”
“어.”
잡기 전에 입을 열어서 미처 잡지 못했다.
“그러면 저하고 같이 식사라도 해요!”
활짝 웃으며 말하는 1과장의 모습에 잠시 인지부조화가 왔다.
“식사?”
내가 너하고?
잠시 1과장하고 단 둘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투식량 까먹는 모습밖에 안 떠오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