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60)
가련한 공무원이라는 죄로 아카데미라는 교도소에서 숙소라는 감옥에 갇혔다. 죄수명단은 제도 어딘가에 있을 거다.
솔직히 말하면 왕족을 팼으니 죄목은 따로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카데미를 근신 장소로 쓰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제대로 팬 것도 아닌데.’
엄밀히 따지면 류티스를 주먹이나 발로 구타한 것도 아니다. 단지 류티스의 옷을 잡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을 뿐. 전술적 임시 이동이나 다름없다.
이동 장소가 딱딱한 돌바닥이라는 사소한 문제점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폭행은 아니지. 애초에 류티스가 조금만 더 튼튼했어도 아무 일도 없지 않았을까? 발터는 절벽에서 떨어져도 알아서 기어 올라오던데.
하지만 류티스는 이미 피를 토했고, 나는 징계를 먹었다. 한 번만 물려달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예전에 지났다.
– 페로사의 말로는 잠잠하다고 합니다. 평범하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나 대신 고생해주는 사람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렇군요. 페로사 경 덕분에 마음이 놓입니다.”
페로사는 삼국 전력 중 유일한 10대인지라 적당히 교복을 입히면 의심의 시선을 받지 않는다.
물론 페로사를 아는 사람이 보면 바로 외부인인 걸 눈치채겠지만, 아는 사람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페로사의 정찰을 묵인하고 있으니.
– 동아리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아쉽습니다만.
“어쩔 수 없지요. 그것까지는 아무리 위장이어도 힘드니까요.”
빌라르의 말대로 제대로 감시하려면 주변을 떠도는 것이 아니라 동아리실로 들어가는 게 최고다.
문제는 단순히 교복을 입고 학생인 척 하는 것과 총원 여섯인 동아리실에 당당히 들어가는 건 별개의 문제지 않나. 어쩌면 대놓고 감시하는 모습에 부원들이 불쾌감을 표할 수도 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아쉬운 수준이다. 페로사에게 맡겨두면 근처에서 보는 걸로도 충분하니까.
‘팬심은 무섭지.’
류티스를 열렬히 동경하는 페로사에게 류티스(가 포함된 동아리) 관찰을 맡긴다?
감동의 공중제비를 돌며 한계를 돌파할 것이 분명하다. 사적인 일탈이 아닌 공적인 일이라 스스로에게도 당당하지 않나. 어떻게 보면 국가 공인 스토커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알려주십시오. 저도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나라가 인정한 스토커인 페로사에 대한 생각을 애써 지우며 입을 열었다.
페로사의 업무 만족도와는 별개로 애초에 부원들 감시는 내 업무다. 까놓고 말하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남에게 떠맡긴 상황.
그러니 무슨 일이 터지면 바로 달려가겠다는 말 정도는 하는 것이 도리 아니겠나. 솔직히 황태자도 아카데미를 근신 장소로 정한 걸 보면 유사시에 뛰쳐나가서 해결하라는 의미다.
양심이 있으면 근신 장소를 벗어났다고 추가 징계를 주지는 않겠지. 일하라고 처박았는데 일했다고 징계를 주면 그게 사람이냐.
‘아니긴 하네.’
내가 잠시 개새끼를 사람으로 착각했다.
– 아닙니다. 최대한 저희가 해결할 테니 감찰관님은 부디 푹 쉬고 계십시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빌라르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 빌라르가 보기에도 나는 휴식이 필요한 불쌍한 놈일 거다. 황태자 기행 전설을 들은 빌라르의 표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으니까.
나도 빌라르가 ‘국왕 전하께서 아카데미에서 근신하라고 하십니다.’ 라는 말을 했다면 같은 눈빛으로 보기는 했겠네.
“감사한 말씀입니다.”
그러니 그냥 빌라르 말처럼 푹 쉬고 있기로 했다. 기계도 기름칠 안 하면 고장 난다고.
내 염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근신 기간은 하루하루 조용하고 평화롭게 지나갔다. 숙소에 박혀있는 동안 일어난 일들도 사건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아기자기한 이벤트였으니까.
“햇빛을 못 보면 몸에 안 좋다고 해요. 그러니 먹는 거라도 좋아야죠.”
“고맙습니다, 마르.”
예를 들면 오늘도 어김없는 마르게타의 방문이라거나. 어째 나를 지하 감옥 정도에 갇힌 것처럼 여기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그래도 마음은 고맙기에 올 때마다 차라도 대접하고 있다.
내가 나가면 안된다고 했지 남이 들어오면 안된다고 한 적은 없지 않나. 나는 떳떳하다. 아무튼 근신 중이다.
“칼하고 같은 방에 있으니 좋네요. 같이 있는 이유는 슬프지만요.”
“미안합니다…”
하지만 그 떳떳함은 마르게타의 한마디에 거품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미안하다면 근신이 끝나고, 칼이 저한테 와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싱긋 웃으며 말했지만 그 내용은 가벼운 내용이 아니었으니.
근신이라는 이유로 나와 같은 방에 있는 건 슬프다고 했으니, 근신이 끝난 후에 제대로 함께하고 싶다는 의미. 심지어 나보고 와달라고 한 걸 보면 마르게타의 방을 말하는 것 같다.
마르게타가 받은 충격이 생각보다 컸나? 언제나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공녀가 저런 대담한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힘들겠지만 마르가 원한다면 노력하겠습니다.”
당황스럽지만 마르게타도 용기를 내서 말한 거겠지. 괜히 사양해서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지 말자. 까짓 기숙사 정도야 창문 타고 들어가면 되니까.
그러나 마르게타는 내 결연한 대답에 고개를 기울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급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제 방이 아니라 부회장실이요!”
“아.”
충격이 생각보다 컸던 건 나였네.
‘머리에 음란 마귀가 들어갔나.’
덕분에 웃으며 방에 들어왔던 마르게타는 얼굴이 붉어진 채 나갔고. 딱 이 정도가 근신 중에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오라버니, 잘 지내고 계시죠?”
“우리 아침에도 만났잖아.”
그리고 뒤이은 이벤트는 루이제의 방문. 등교 전에 한 번, 하교 후에 한 번 찾아올 정도로 열성적인 방문자다.
본인 가족이 감옥에 있어도 이 정도로 면회를 오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아니, 오히려 감옥이 아니라 오기 편한 건가.
일단 루이제가 건네주는 쿠키통을 받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하루에 한 번만 와도 충분해. 너도 오는 거 번거로울 텐데.”
그래도 잔소리는 잊지 않았다. 매일 사식을 넣어주는 마르게타는 그렇다 쳐도 하루에 몇 번이나 찾아오는 루이제는 정도가 너무 과하잖아.
아니, 사실 하루에 한 번도 심하다. 고작해야 1주잖아. 1주 정도면 아무도 인사를 오지 않더라도 딱히 서운하지도 않을 시간이라고.
“걱정되는 걸 어떡해요.”
그래도 시무룩하게 중얼거리는 루이제의 모습을 보면 강하게 밀어낼 수도 없었다. 가만히 방에만 있는 사람이 왜 걱정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래, 와주면 고마운 거지. 이런 과함은 부족한 것보다 좋으니까.
***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신 오라버니는 들어와서 차라도 마시고 가라 하셨다.
‘좋아.’
역시 오라버니는 일부러 찾아온 손님을 도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직접 대접도 해주고 챙겨주시잖아.
오라버니의 방에 들어가자 심장이 빠르게 요동쳤다. 공녀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루이제 영애가 칼과 함께 하는 시간은 길지만, 둘만 있는 시간은 별로 없죠.”
류티스가 쓰러지고 이틀 후, 오라버니가 근신을 시작한 날. 공녀님이 조용히 찾아와 조언을 해주셨다.
오라버니가 근신이라는 징계를 받은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건 기회라고. 늘 바쁜 오라버니가 1주 동안 가만히 있는 둘도 없을 기회라고.
“단둘이 있으면 진심을 말하게 되는 법이에요. 다른 사람들도 없으니 영애의 마음도 편하겠죠?”
공녀님의 소중한 조언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오라버니를 볼 수 있는 건 동아리실. 그리고 동아리실에는 나와 오라버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라버니에게 다가가려고 해도 부원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고.
…응, 시선 때문이야. 나는 겁을 먹어서 가만히 있던 게 아니야. 시선만 없으면 진작에 오라버니한테 고백했을 거야.
“짝사랑이 힘든 건 저도 잘 알아요. 그걸 소중한 후배도 겪게 하고 싶지는 않네요.”
“선배…”
정말 과분한 배려를 해준 공녀님을 위해서라도 난 시선 때문에 그런 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 류티스는 어때?”
차를 타던 오라버니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으셨다. 아무래도 오라버니가 다치게 했으니 걱정이 되는 모양.
그리고 아주 잠깐이지만 류티스를 질투할 뻔했다. 나하고만 있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 이야기를 꺼내다니. 그건 공녀님이 아니면 절대 용납 못할 일인데.
‘남자라서 다행이야.’
만약 류티스가 여자라면 우정이 깨졌을 위기였다.
“평소처럼 지내고 있어요. 조만간 면회 온다던데요?”
“그냥 가만히 숨만 쉬고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해줘.”
단호한 오라버니의 말에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요즘 류티스의 분위기를 보면 내가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오라버니가 근신 처분을 받은 이후로 류티스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 같았다. 매일 보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도 있고, 본인 때문에 징계를 받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오라버니를 위로하기 위한 나름의 준비도 하고 있었다.
“아르메인에는 출소한 죄인을 위한 보양식이 있지.”
방향이 조금 뒤틀린 것 같지만.
“그러고 보니 루이제. 부탁이 하나 있는데.”
“아, 네! 말씀하세요!”
예상하지 못한 말에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 부탁이다. 언제나 홀로 해결하던 오라버니가 나에게 하는 부탁. 공녀님도 아닌 나에게 직접 하는 부탁!
‘무슨 일이지?’
걱정과 동시에 두근거림이 몰려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오라버니가 부탁까지 하나 싶으면서도, 그 대상이 나라는 것에 너무나 기뻤다.
“동아리실에 산사나무, 그거 가져다 줄 수 있어? 혼자 지내니 적적하네.”
아.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