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61)
멍하니 산사나무 화분을 바라봤다. 평소에는 크게 관심을 주지 않아서 배경 정도로 느낀 물건이었지만 오늘따라 왜 이리 시선이 가는지.
아니, 사실 알고 있다. 내가 이러고 있는 이유 정도는 이미 잘 알고 있잖아.
“옆에 있던 게 없으니 허전하더라고. 동아리실에 가면 늘 보던 거라서.”
아직도 머리를 휘젓는 말이 떠오르자 살짝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너무 자주 찾아가서 그런지 오라버니는 내가 아니라 화분을 더 그리워했다.
찾아가는 횟수를 줄여야 하나? 그래도 공녀님 말처럼 오라버니와 둘이 있을 기회는 다시 오기 힘들 텐데. 어떤 게 맞는 거지?
“루이제 영애. 왜 그러십니까?”
아인테르의 목소리에 끝없이 이어지던 고민이 깨졌다.
“잠깐 화분 좀 보고 있었어.”
순간 흠칫했지만 태연하게 답했다. 화분을 보고 있던 건 맞으니까. 보는 이유는 설명하기 부끄럽지만.
그런 내 대답에 아인테르의 시선도 화분으로 향했다.
“주인이 없어서 그런지 생기가 없군요.”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모습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주인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산사나무는 평소보다 생기가 없어 보였다.
물론 오라버니가 없다고 방치한 건 아니다. 우리도 꾸준하게 관리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리나에게 선물로 받은 물건이니─
‘이리나.’
다시 입술을 깨물 뻔했다. 차라리 내가 오라버니에게 준 선물이면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을 텐데. 하필 다른 사람이 준 선물을 애지중지한다고 생각하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이 감정이 이상하다는 건 안다. 오라버니가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받을 수도 있고, 받았으니 소중히 대하는 건 당연한 거다.
그런데 왜 이럴까. 이상하게 계속 거슬린다. 머리로는 아무 문제 없다고 하지만 본능이 무언가를 경고하고 있다.
‘선물…’
나도 오라버니에 드린 건 많다. 문제는 전부 먹으면 사라지는 소모품이라는 것. 먹고 사라지는 선물보다는 눈 앞에 보이는 선물이 더 인상 깊기는 하겠지. 저 화분처럼.
그래, 나도 저렇게 없어지지 않는 걸로 드리자. 볼 때마다 내가 생각나는 물건으로.
“오라버니, 꽃을 드리면 좋아하실까?”
일단 에리히에게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드리고 싶지만 조금 망설여진다.
이리나는 원예 동아리라서 식물을 선물로 줘도 이상하지 않지만 내가 꽃을 선물로 주는 건 뭔가 애매하잖아.
심지어 이미 화분을 키우는 상황에서 하나를 더? 오라버니가 무언가 기르는 걸 좋아한다면 괜찮겠지. 하지만 선물로 받은 거라 의무적으로 기르는 거라면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다.
“형한테?”
내 질문에 에리히는 턱을 매만졌다. 전혀 생각해본 적 없다는 얼굴로.
“글쎄, 잘 모르겠는데.”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에리히, 예전에는 오라버니랑 어색한 사이였지.
“형은 딱히 취향이 없어서.”
“네가 모르는 게 아니고?”
라테르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줬다.
세상에 취향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좋아하는 게 있으면 싫어하는 것도 있을 텐데.
“진짜야. 뭘 주면 가리지 않고 받던데? 어릴 때부터 그랬어.”
억울하다는 듯 말했지만 딱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래, 오라버니가 감정 표현이 활발한 사람은 아니잖아. 친한 사이여도 알기 어려울 텐데 에리히는 오라버니와 어색했으니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내 불신을 읽었는지 에리히의 설명은 더 길어졌다. 어떤 선물이든 받으면 자기 방에 보관했다느니, 뭘 받으면 망가지기 전에는 버린 적이 없다느니, 거절한 것도 없다느니 등.
“형은 수련만 해서 다른 거에는 관심이 없었거든.”
“하긴. 그런 실력을 가지려면 그 정도는 해야 됐겠지.”
에리히의 말에 류티스가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인가? 정말 다른 거에 신경 쓸 여유도 없이 수련에만 몰두해서, 그래서 취향이 생길 시간도 없던 건가?
아무리 어색했다지만 가족인 에리히, 오라버니처럼 무인인 류티스가 하는 말이니 설득력이 높아졌다.
‘너무하잖아.’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마음이 아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릴 때부터 고생만 했다는 건데.
“그래도 가리는 거 없으니까 아무거나 줘도 괜찮을 거야. 선물을 받는다는 거 자체에 만족하는 것 같더라고.”
“…다행이네.”
그나마 긍정적인 말에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
혹시 내가 심심할까봐 아카데미 밖의 사람들도 친히 연락을 주며 안부를 물었다.
그래도 근신 중인 죄인에게는 통신구도 압수하는 법안이 필요한 것 같다. 근무에서 배제된 죄인 주제에 어딜 건방지게 사회와 연락을 하려고 하나.
– 근신은 할만하냐?
다시 생각해도 확실히 필요하다. 내 소중한 멘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저보다 많이 하신 분이 왜 물어 보십니까?”
– 아카데미에서 근신하는 건 네가 처음이잖냐.
“시발.”
처절한 욕설에도 장관은 보는 사람이 시원할 정도로 호탕하게 웃었다.
세상이 이 모양이다. 직속 상관이라는 양반은 4년을 함께 지낸 부하가 고통받는데도 안타까워 하기는커녕 비웃기 바쁘다.
그래서 나도 저렇게 한다. 받은 게 있으면 제대로 돌려줘야지. 오고 가는 게 많아야 정이 싹트는 법이니까.
– 역사에 내 이름은 잊혀져도 네 이름은 남을 거다.
그래도 낄낄거리는 장관의 말에 차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장관은 역대 재무성 장관 중 하나 정도로 기억되겠지만, 나는 이래저래 기록될 이유가 많으니.
사람은 잊혀질 때 죽는다던데 이 정도면 불로불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오래 살면 뭐하나.’
내가 장수하면 황실만 좋은 일인데. 아, 조기 은퇴가 가능하다면 오래 살아도 괜찮겠다. 가능하다면 말이다.
“각하도 같이 남으면 좋겠는데요. 근신 받으실 때가 되면 전하께 건의드리겠습니다.”
– 개수작 부리지 마라.
진심을 가득 담아 말했지만 장관은 단호하게 끊어냈다. 너무하네 정말.
그 뒤로도 구금은 어떤 기분이냐, 너도 곧 들어갈 테니 그때 가서 알아봐라 같은 대화가 오고 가다가 장관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 오늘 2과장이 복귀했다.
아무래도 이게 용건인 것 같다.
“치료는 받았습니까?”
– 눈 하나 정도야 금방 치료 가능하지. 게다가 파견 중 다친 거니 우선적으로 고쳤고.
부상도 확실히 해결했다는 말에 안심이 됐다. 간혹 부상자가 몰리면 부상을 달고 몇 주는 지내야 하는 상황도 있으니 원.
“과장이라는 놈이 어디 가서 맞고 다니기나 하고.”
– 너도 만만치 않게 맞고 돌아다녔잖냐. 원래 부하는 상사를 닮는 법이다.
그럼 나는 너를 닮게 되는 건데요. 징그러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그리고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지나가다 던전에라도 들어갔답니까?”
– 차라리 그런 거면 웃기라도 할 텐데.
작게 한숨을 내쉰 장관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불안하게 왜 저러냐. 저렇게 짜증내는 거는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 차우지드 부족과 조우했다.
“예?”
아니 시발, 그 새끼들이 갑자기 왜 나와.
오랜만에 듣지만 전혀 반갑지 않은 이름이다. 대토벌 전쟁 당시에 카간의 수족 중 하나로 움직였던 놈들이니.
심지어 부족 전체가 활을 더럽게 잘 쏘는 놈들이었다. 부족장은 만호장 중 하나였을 정도로 전투 특화 부족. 2과장이 두들겨 맞은 것도 이해가 된다.
‘아직도 남아있다고?’
하지만 그 위험도가 위험도인지라 제국이 아주 박살을 낸 부족 중 하나다. 애초에 카간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서 성인 남성 대부분이 참전한 부족이었고. 덕분에 마지막 전투에서 싸그리 죽였는데.
“아직도 살아있었습니까?”
– 확실하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2과장의 증언으로 추측한 거니까. 단순히 비슷한 부족일 수도 있지만…
장관은 탐탁지 않은지 말끝을 흐렸다. 북방 유목민들은 부족마다 개성이 확실했다. 증언을 토대로 추측했다면 차우지드 부족이 맞을 확률이 높다.
돌아버리겠네. 카간의 핏줄이 살아있는 것도 골치인데 차우지드 부족도 있다고?
‘더 있을 수도 있겠는데.’
일어나지 않은 일을 너무 걱정하는 건 미련한 짓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카간의 핏줄 생존이라는 일이 일어났다.
한 번 일어난 일이 두 번 일어나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카간의 핏줄에 이어 차우지드 부족의 존속이 확인됐다. 사태가 이렇게 흐르면 세 번, 네 번이 없으리라는 법이 없다.
순간 카간의 군세를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거의 사준사구를 이끄는 칭기즈칸 수준이었지. 그 구성의 절반만 생존 중이어도 재앙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 일단 너도 알아두라고 말한 거다. 괜히 어디서 주워듣고 왜 말 안 했냐 따지지 말고.
“알겠습니다.”
확실히 장관의 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다면 서운하기는 했을 거다.
머리가 복잡했지만 애써 진정시켰다. 안달 낸다고 근신 중인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북방에 대한 우려와 증오는 제국 공무원의 패시브 스킬이니 다른 사람들이 잘 하겠지.
“부탁하신 거 가져왔어요.”
그리고 루이제 앞에서 초조한 모습을 보일 수도 없지 않나.
게다가 갑작스러운 화분 셔틀 심부름에도 불평 하나 없이 가져다 준 거다. 고마울 따름이지. 그래, 정말 고마운데…
“이건 뭐야?”
루이제의 왼손에 들린 산사나무에 이어 오른손에도 들린 화분을 바라봤다. 왜 원 플러스 원으로 온 거지? 난 분명 하나만 주문했는데?
“제 선물이에요! ”
내 질문에 루이제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선물이면 어쩔 수 없지.’
주는 건 감사하게 받는 것이 도리 아니겠나.
“고마워. 잘 키울게.”
이미 산사나무도 키우고 있으니 꽃 하나 추가 돼도 상관없다. 오히려 화사하고 좋기만 하겠네.
“오라버니가 허전하다고 하셔서 열심히 골랐어요.”
“역시 우리 부장이 최고다.”
세상 사람들이 마르게타와 루이제 정도 인성이었으면 법도 필요 없었을 거다.
***
기뻐하시는 오라버니를 보자 뿌듯했다. 백합을 고른 건 내가 생각해도 정말 좋은 선택인 것 같아.
오라버니에게 말한 것처럼 정말 열심히 골랐다. 그래, 정말 열심히.
‘꽃말까지 알아봤지.’
외견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속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나하나 찾아봤다. 마침 백합의 꽃말이 좋아서 바로 백합으로 골랐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산사나무의 꽃말도 알아버렸다.
‘이리나…’
이리나를 떠올리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