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63)
루이제를 품에 안고 얼마나 토닥였는지 모르겠다. 얘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애인 줄은 몰랐지. 평소에는 늘 웃고 다니는 애라.
“진정됐어?”
“으응…”
부끄러운 건 아는지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게 그렇게 싫었구나.”
장난기가 생겨 슬쩍 묻자 루이제는 더욱 안으로 파고들었다. 미안하니까 그 이상은 말하지 말아달라는 것처럼.
귀엽다. 이상하게 루이제의 모습에서 저택에 있는 동생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평소에는 내가 루이제한테 안겼는데.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생길까 싶지만, 더 놀리면 또 울 수도 있겠지. 여기까지만 하자.
“그런데 나한테 화내도 어쩔 수 없어. 문지기는 따로 있잖아.”
그래도 이 말은 해줘야 한다. 오빠의 첫 부인으로 마르게타 공녀님이 유력한 상황에서 나를 미워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오빠의 부인이 되고 싶으면 공녀님에게 사정을 해야 하니까.
여러 부인을 두는 게 가능하다는 것도 몰랐던 루이제다. 첫 번째 부인의 허락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를 수 있지.
“선배한테는 허락 받았어.”
품 속에서 웅얼거리는 루이제의 말에 순간 귀를 의심했다. 선배?
지금 대화에서 나올 선배라면 공녀님밖에 없다. 공녀님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진짜? 마르게타 공녀님 말하는 거 맞지?”
“응, 잘 해보라고 하셨어. 응원할 테니 힘내라고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상한 곳에서 헛발질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가장 중요한 난관을 넘은 후였다.
게다가 허락 수준이 아니다. 묵인을 넘어서 사실상 지지한다는 말이잖아.
‘벌써?’
놀라운 일이다. 공녀님이 오빠와 가까워진 건 방학이다. 아직 방학이 끝나고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허락을 받은 추진력은 대체.
그리고 그 추진력을 왜 나한테 발휘한 거야. 공녀님 허락을 받았으면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 정도는 우습게 보일 텐데.
어째서인지 기만을 당한 것 같은 기분에 루이제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이미 허락을 받은 사람이 허락도 못 받은 사람을 견제해?
루이제가 버둥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놓아주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이러고 있자.
수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일단은 돌아갔지만, 쉬는 시간에 다시 나오기로 했다. 루이제의 질투는 빠르게 가라 앉았어도 나는 루이제한테 물어볼 게 남았으니까.
“말해봐.”
“으, 응?”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루이제를 끌고 추궁, 아니 질문했다. 내가 이거 때문에 집중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공녀님한테 허락. 어떻게 받은 거야?”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부족한 것도 없고 이미 오빠와의 관계도 확정된 공녀님이 뭐가 아쉬워서 다른 부인을 허락할까.
공녀님의 허락을 받기 위해 노력은 하겠지만, 솔직히 오빠와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것이 더 빠를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어.’
오빠보다 공녀님과 먼저 타협을 본 사람이 눈 앞에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갈망을 담은 눈빛으로 바라보니 루이제가 시선을 이리 저리 옮기는 게 보였다. 나는 널 믿어. 우리의 우정이면 알려줄 거라고 믿어.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의 우정이 얄팍한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아니, 정말 몰라! 선배가 먼저 오셨단 말이야!”
그런 내 심정을 느꼈는지 루이제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공녀님이 먼저 교실로 오더니 대화를 청했다는 말에는 의문이 들었다. 루이제가 공녀님을 찾아가는 모습도 그려지지 않지만, 그 반대도 상당히 특이하다.
자신의 것을 노리는 사람이 싫다는 경고를 했다는 말에는 소름이 돋았다. 그래, 공녀님이 뭐가 아쉬워서 양보를 하겠어.
하지만 자신의 것을 존중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말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첫 번째만 아니면 되는 거야?’
공녀님을 유일한 부인을 원하는 게 아니다. 첫 번째를 원하는 거다.
그렇다면 문제 없다. 감히 공녀님을 제칠 생각은 꿈에서도 한 적이 없으니까.
희망이 보였다. 굳게 잠긴 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열쇠가 있었다.
“저기, 이리나.”
“응. 왜 그래?”
기분이 급격하게 좋아지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심지어 루이제가 아니었다면 이 기쁜 소식을 몰랐을 거라 생각하니 더 웃음이 나왔다.
역시 루이제는 최고의 친구야. 난 우리 우정을 믿었어.
“괜찮으면 선배한테 가볼래?”
정말 최고의 친구다.
이런 중요한 용건으로 갑자기 찾아가는 건 실례니 우선 약속부터 잡기로 했다.
아무리 공녀님이 너그럽게 다른 부인을 용납한다고 하지만, 언질도 없이 찾아가서 ‘남편 좀 공유합시다!’ 라고 하는 건 아니잖아. 내가 공녀님이어도 그런 말을 들으면 당장 나가라고 소리칠 걸.
“약속은 내가 잡을게. 이리나는 오라버니한테 가면 되겠다.”
“오빠한테?”
“오라버니, 사실 근신 중이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아카데미에서 근신이 무슨 말이야.
‘와…’
그리고 이해했을 때는 탄식 같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관료들의 세계는 힘들구나. 나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근신 중이니 위로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동아리 시간에 오빠를 만나지 못하면 차라리 하교 이후에 찾아갈까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하지만 감찰관 숙소에 학생이 갈 이유도 마땅치 않고, 귀족가 영애의 품위를 생각하면 함부로 하기 어려운 일.
여기에 ‘지인의 근신’ 이라는 명분이 붙으면 앞의 두 가지 걸림돌이 사라진다.
‘이상하지 않아.’
당당하게 오빠를 찾아갈 수 있다. 2학기가 되고 처음으로 만날 수 있다.
“오라버니랑 단 둘이 있을 기회는 없잖아. 이럴 때라도 노려야지.”
“루이제…”
감동에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자기도 오빠랑 같이 있고 싶을 텐데.
“이걸로 아까 일은 용서해주는 거다?”
히히 웃는 루이제의 모습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화도 나지 않았지만 아무튼 용서하기로 했다.
***
예전에는 동물도 아니고 식물을 기르는 사람이 이해가 안됐는데 요즘은 알 것 같다.
‘마음의 평화.’
싱그럽게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왜 이리 뿌듯한지. 나한테 싫은 소리도 안 하고, 뒷목 잡게도 안 하고, 가만히 두면 알아서 잘 지내고, 나는 그냥 물이나 햇빛만 잘 받게 하면 충분하고.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반려 생물이 어디 있을까. 최소 투자로 최대 행복을 얻을 수 있는데.
‘예쁘네.’
산사나무 화분과 백합 화분을 나란히 두니 더 아름답게 보인다. 둘 다 흰색이라 그런지 보는 내가 정화되는 것 같아.
조심스레 두 화분의 꽃잎을 매만졌다. 산사나무 배송만 부탁했는데 백합도 덤으로 올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선물로 받은 소중한 아이지. 우리 졸업까지 함께하자. 이 더러운 아카데미를 떠나 감찰부로…
아니, 감찰부도 만만치 않게 더러운데.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는 건가.
‘주인이 못나서 미안해.’
우리 아이들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자라야 하는데, 하필 주인이 공무원 나부랭이라.
그렇게 식물들과 교감을 하는 사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슬슬 루이제가 올 시간이었지. 역시 언제나처럼 칼 같이 시간을 지키고 있다.
“열려있어. 들어와.”
루이제가 올 때가 되면 그냥 문도 열어두고 있다. 어차피 잠그지 않아도 마르게타나 루이제가 아니면 올 사람도 없고.
그리고 문이 열리더니 틈새 사이로 금발 머리가 빼꼼 삐져나왔다.
“안녕하세요, 오빠.”
“이리나?”
있었네. 다른 사람도 오긴 오는구나.
슬쩍 산사나무로 시선이 향했다. 이게 내 방에 오자마자 이리나가 왔다고?
‘토템인가.’
사람을 부르는 효과가 있다니. 예쁘기만 한 줄 알았는데 범상치 않은 아이다.
“오랜만에 보네. 잘 지냈어?”
신기하지만 시선을 도로 이리나에게 돌렸다. 기껏 방문한 손님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실례니까.
“저는 잘 지내죠. 오빠 소식 듣고 찾아왔어요.”
“부끄러운 소식인데.”
이리나의 말에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루이제나 에리히한테 내가 근신 중이라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그래서 위로 면회나 온 것 같고.
아무튼 고마울 따름이다. 처음 이리나가 나를 피하던 걸 생각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네.
“그런데 루이제는?”
적당히 와도 된다고 했지만, 늘 오던 애가 안 보이니 걱정이 되기는 한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아, 다른 용무가 생겨서요. 별일은 아니에요.”
“그러면 다행이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이리나는 지나가던 사람이 봐도 기분이 좋아 보일 정도로 밝았다.
진짜 별일은 아닌가 보네.
***
의외의 방문자가 찾아왔다.
“어머, 루이제 영애?”
이상하네, 이 시간이면 루이제 영애는 칼에게 갔을 시간 아닌가? 분명 칼 말로는 아침저녁으로 간다고 들었는데.
“안녕하세요, 선배.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해요.”
“괜찮아요. 아, 일단 앉아요. 차라도 마실래요?”
“아, 네. 감사합니다.”
대접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이유가 있어서 온 거겠지. 루이제 영애가 실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게 찻잎을 우리는 사이 뒤에서 루이제 영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 여쭤볼 게 있는데요.”
설마 바로 용건을 꺼낼 줄은 몰랐는데.
“네, 말하세요.”
그래도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것보다는 빠르게 말하는 것이 더 취향이기는 하다.
시선을 돌리자 손가락을 매만지던 루이제 영애가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혹시 세 명 정도는 괜찮을까요?”
“네?”
뜬금없는 말에 눈만 깜빡였다. 세 명이라니, 뭐가?
‘자식 말하는 건가?’
일단 못해도 셋은 있었으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