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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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숙소를 벗어나는 이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감각. 1주 만이다. 이제 감찰관 칼 크라시우스로 돌아갈 때다.
[ 석방 축하한다. ]‘개새끼.’
그리고 따뜻한 감각은 순식간에 식고 말았다. 황태자 이 새끼, 이 문자 보낼 생각에 두근거리다가 딱 시간 맞춰서 보낸 게 분명하다. 얘 할 일 없나?
하지만 역지사지라고 했던가. 황태자가 황제에게 근신 명령을 받고 오늘 풀려났다는 상상을 하니 조금은 이해가 됐다. 나라도 이랬겠지. 티배깅은 못 참으니까.
‘석방은 개뿔.’
그래도 워딩은 제발 정상적으로 썼으면 좋겠다. 구금이 아니라 근신이라고. 본인이 근신 처분 내렸으면서 구금처럼 취급하는 건 뭔데.
심지어 시말서 하나만 더 쓰면 정말 구금이라 웃으며 넘길 수도 없었다. 제도의 감옥은 따뜻할까?
만약 따뜻하더라도 내 통신구보다는 차갑겠지.
[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 [ 업무에 복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 [ 1주 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마음 편히 복귀하시면 됩니다. ]우르르 몰려오는 문자에 통신구는 절로 따뜻해졌다. 그에 비례하여 내 마음도 다시 온기를 되찾았다.
이거지, 이게 옳은 안부 인사지. 내가 아카데미에서 헛된 삶을 보내지는 않았구나.
‘1년도 안 본 사람들이 이런데.’
교장도 교감도 빌라르도 3월에서야 본 사람들이다. 그나마 교장은 제국 공식 행사에서 가끔 봤지만 딱 인사만 하는 수준이었고.
황태자는 나름 2년을 알고 지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건지.
[ 세 번째 근신 종료 축하드려요! 제도에 오시면 두부라도 드릴게요! ]1과장의 문자를 보고 조용히 통신구를 집어 넣었다.
바닥 밑에 바닥이 있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근신이 끝나면 마르게타에게 가장 먼저 가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그 과정에서 음란 마귀의 자그마한 활약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약속은 약속.
아주 사소한 약속이지만 그런 사소한 것도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
“정말 먼저 왔네요?”
“마르와 약속했으니 당연하죠.”
사실 동아리실을 제외하면 딱히 갈 곳도 없다. 마르게타가 내 활동 범위를 너무 과대평가 한 것 같네.
“후후, 고마워요.”
그래도 마냥 행복한 마르게타를 방해할 수 없으니 사족을 붙이지는 않았다.
“칼을 만나는 건 좋지만, 제가 먼저 찾아갈 일은 없게 해주세요.”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아카데미 근신이라는 기상천외한 일을 당하지 말라는 투정 같은 부탁.
일단 노력하겠다고는 답했지만, 솔직히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황태자의 정신 세계는 감히 헤아릴 수 없지.
게다가 만약 평범한 근신이나 구금을 당하면 마르게타는 오고 싶어도 못 온다.
‘찾아갈 일은 없긴 하겠네.’
감옥은 제도에 있으니 학생인 마르게타는 면회조차 시도할 수 없다.
아무튼 찾아가지는 못하니 원숭이 손이 소원을 들어주는 상황. 물론 이 말도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은 더 노닥이다가 동아리실로 향했다. 혹시 어제처럼 부인 얘기를 꺼내나 싶었지만 별 얘기 없더라. 아직도 의문이네. 그 얘기는 갑자기 왜 나온 거지.
***
동아리실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드디어 오라버니가 석방되는 날이다.
아니, 석방이 아니라 그냥 근신 해제. 류티스가 자꾸 석방이라고 해서 나도 석방이라고 하잖아.
‘실수하면 안 돼.’
근신을 당한 것 자체에 씁쓸함을 느끼는 것 같은 오라버니 앞에서 석방 운운하면 더 큰 상처를 입을 거다. 절대 그럴 수는 없지.
오라버니를 오랜만에 보는 자리에서 실수를 하면 민망하니까. 사실 매일 찾아가서 보기는 했지만 동아리실에서 보는 건 다른 느낌이잖아.
둘만 만나는 것도 좋아. 그래도 동아리실은 오라버니와의 추억이 가득 쌓인 곳이니 더 특별하게 느껴져.
“1주는 금방 지나가는구나.”
의지를 다잡는 사이 옆에 있던 에리히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에리히를 흘겨 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오라버니가 심한 징계를 받거나 안위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어도 너무 무신경한 말이잖아.
“에리히는 오라버니 만난 적 있어?”
가족으로서 도리는 했냐는 질문.
생각해 보면 에리히가 오라버니를 4인전 인원으로 지목하면서 이런 일이 터진 거다. 류티스가 기절했을 때는 분명 미안한 기색을 보였는데.
“가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어서 안 갔어.”
그렇게 말하는 에리히의 눈빛은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어디 계시는 분이 어머니한테 별걸 다 말했더라고.”
“별거?”
“차남이 차인 이야기.”
이번에는 내가 조용히 시선을 내리 깔 시간이었다. 그 찬 사람이 나니까.
게다가 내가 칼 오라버니에게 차이고, 그 소식을 안 어머니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본다면 마음이 찢어질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분명 어머니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한 사람을 볼 용기가 나지 않겠지.
‘오라버니가 너무했어.’
이거는 오라버니 잘못이 맞다. 아무리 오라버니여도 차마 옹호할 수 없는 실수.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에리히가 차인 걸 말했다고?
‘…어디까지 말한 거지?’
등골이 오싹했다. 단순히 에리히가 차인 것만 얘기했다면 안타까운 일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찬 사람이 누구인지도 말했다면?
나는 오라버니의 어머니께 ‘차남을 찬 영애’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런 영애가 장남의 부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와.’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건 대체 무슨 상황이야. 일단 어머니께 미움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건 알 것 같은데.
제발 아니기를. 오라버니가 세세한 것까지 말한 건 아니기를.
“온 것 같네.”
에리히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동아리실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불빛.
이상하다. 분명 아까까지는 그렇게 보고 싶었던 오라버니였는데 지금은 조금 꺼려져.
가슴을 가득 채운 긴장감은 오라버니를 보자마자 가라 앉았다.
“오라버니.”
“아, 왔어?”
손을 흔들며 반겨주는 모습을 보자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지금 걱정해도 무슨 의미야. 오라버니가 어머니께 자세히 말씀드렸다면 앞으로 좋은 이미지를 위해 노력하면 되는 거다. 말하지 않았다면 다행인 일이고.
‘고민하지 말자.’
솔직히 당장 오라버니와의 관계도 지지부진한 상황에 너무 멀리 보고 있잖아.
스스로 하기에는 슬픈 평가지만 걷기도 전에 뛰려고 하는 거지.
“류티스도 왔는데 너는 얼굴도 안 비추고.”
“대신 선물 보냈잖아. 류티스한테 받았다며.”
“그거 너도 준비한 거였냐?”
“상자는 내가 샀어.”
다시 오라버니를 보니 에리히와 이상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저러지 않을 텐데, 갇혀있는 동안 많이 심심하셨구나.
***
근신 해제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슬슬 불안한데. 얼마나 큰 사건이 터지려고 기를 모으는 중인 거지?
‘조용하니 더 무섭네.’
이 세상에는 과로 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지금 편하고 나중에 미친 듯이 구르거나, 아니면 늘 적당한 강도로 구르거나. 아무튼 할당량은 채워야 한다.
그러니 이 평화는 일종의 폭풍전야다. 그나마 누가 허접한지 알게 되는 사태로 이어지지는 않아서 다행이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홀로 전전긍긍하며 아카데미 감찰관 생활을 한 것도 어언 수개월. 이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이 아카데미에 공무원이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 생각하며 쿠키를 한입 베어 물자 놀랍도록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맙다, 우리 개새끼.’
수개월을 버둥거리다가 근신을 하고 나니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한 건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걸.
사실 황태자는 나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악역을 자초한 게 아닐까?
“복잡하군.”
“이름이 정주민과 다른 형식이라 그런가?”
그런 내 망상을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자 평소처럼 밀가루와 계란을 만지는 게 아니라 펜을 만지작거리는 부원들의 모습.
‘고생 많네.’
가끔 그런 선생 있지 않나. 기습적으로 쪽지 시험을 내는 걸 즐기는 그런 분. 아무래도 아카데미도 사람 사는 곳이라 그런지 그런 선생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기습이 아니라 예고라도 했다는 점이 일말의 자비인 걸까. 시험 바로 전날에 알리는 건 딱히 자비가 아닌 것 같지만.
덕분에 부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지식을 욱여넣고 있었다. 왕족과 귀족의 체면을 생각하면 결코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없기에.
“사레이투 도브라 갈라? 이거 어떻게 해석하는 거였지?”
“사레이투 부족을 지배하는 도브라 씨족의 갈라입니다.”
“부족하고 씨족 차이가 뭐더라.”
허탈한 듯 중얼거리는 에리히의 모습에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과제에 치이는 대학생의 모습이구나.
‘하필 역사인가.’
그리고 익숙한 이름이 들리는 걸 보니 북방 쪽 같다. 내가 저 새끼 이름을 아카데미에서 들을 줄은 몰랐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슬쩍 부원들에게 다가갔다. 할 일도 없는데 아는 게 나왔으니 입이라도 열어야지.
“씨족은 가문으로 생각하면 된다. 가주는 씨족장이지.”
그 말에 부원들의 시선이 꽂혔다.
“그런 씨족이 여럿 모인 집단이 부족. 보통 가장 큰 씨족을 이끄는 씨족장이 부족장이다. 우리로 치면 영지와 영주 정도 되겠네.”
“오.”
이해했는지 에리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명칭만 다르지 크게 어려운 건 아니라.
“그리고 이거 잘못 썼어. 사레이투가 아니라 사레이, 갈라가 아니라 탈라야.”
덤으로 오탈자도 고쳐줬다. 부족명 틀리는 거는 그렇다 쳐도, 갈라는 누구야. 갈라 쇼야?
하지만 내 친절한 정정에도 불구하고 에리히는 눈만 깜빡였다.
“저, 오라버니. 선생님이 이렇게 알려주셔서…”
“잘못 가르쳐줬네. 북방은 문자가 달라서 이상하게 해석한 것 같은데.”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여는 루이제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선생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보다 잘 알겠냐. 내가 그 새끼하고 통성명도 했어.
“나는 사레이 도브라 탈라! 위대한 카간의 검이요, 늑대의 분노로다!”
다시 생각해도 개 같다. 목에 칼 꽂히고도 뛰어다닐 때는 진짜 뭐하는 새끼인가 싶었는데.
“그래도 가르쳐준 대로 쓰는 게 맞겠지. 내 말은 신경 쓰지 마.”
“아, 네.”
해석 오류지만 웃기긴 했다. 늑대의 분노 Mr. 갈라 쇼.
루이제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신경 쓰게 됐다.
갈라 쇼를 탈라로 정정한 다음날, 웬 선생 하나가 동아리실을 급습했다. 아니, 지금 오전인데 무슨 일이야. 수업 없나?
“감찰관님! 정말, 정말 죄송하지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너무나 열정적인 모습에 거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