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66)
동아리실에서 보는 사람은 거기서 거기다. 동아리 부원들, 마르게타, 빌라르, 가끔 교감, 가끔 이리나. 그 외에는 딱히 오는 사람이 없다.
그런 의미로 눈 앞의 인물은 실로 오랜만에 생긴 신규 방문자다. 선물이라도 줘야 하나?
“갑작스레 방문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감찰관님께 꼭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 실례를 무릅 쓰고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신규 방문자는 나에게 원하는 선물이 있는 것 같다.
다행이네. 딱히 줄 게 없어서 무슨 대접을 해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우선 앉으시죠. 어떤 용무신지는 천천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일단 손님을 계속 세워둘 수는 없어서 자리로 안내했다.
‘소문 빠르네.’
급하게 뛰어오기라도 했는지 선생… 아니, 본인이 소개하기로는 역사학 교사인 게르하르트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제 부원들에게 꺼낸 발언, 눈이 뒤집혀서 달려온 역사학 교사.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지적한 오탈자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갑자기 방문할 이유가 없다.
‘어떻게 들은 거지?’
분명 애들한테는 배운 대로 하라고, 내가 한 말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이렇게 됐다고? 아직 24시간도 안 지났잖아.
도대체 오전 동안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의문이지만 상관없다. 내가 묻지 않은 것도 다 털어놓을 것 같은 사람이 왔으니.
“게르하르트 씨, 라고 부르면 괜찮겠습니까?”
“예!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일단 당신부터 편하게 말해야 할 것 같은데.
기합과 흥분의 절묘한 조화로 인해 게르하르트의 목소리는 실로 우렁찼다. 저 정도 목소리는 장관이나 예산 더 달라고 드러누웠던 구휼성 장관밖에 본 적이 없다.
“금화 하나면 고아원 하나의 아이들이 배부르게 지낼 수 있고, 열 닢이면 도시 하나의 빈민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습니다!”
“알았으니 제발 돌아가시죠. 더 드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둘이 아가리 파이팅을 시작하면 장난 아니었지. 쌍방보다는 구휼성 장관의 일방적인 양심 공격이었지만.
아무튼 이럴 때는 진정하라고 하는 게 역효과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진정할 테니.
“알겠습니다. 그러면 게르하르트 씨. 저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요?”
대충 짐작은 가지만 그래도 예의상 물어봤다.
게르하르트도 본인 용건을 설명하다 보면 진정이 되겠지.
***
역사는 귀족의 교양이다. 각국이 어떤 사건을 겪었고 각 가문이 어떤 흥망을 겪었는지 알아두는 것. 귀족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 그것이 사교의 근간이니까. 이는 귀족과 자주 접할 평민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필수 교양이기에 배움은 넓지만 깊지는 않다. 교양 정도로는 익히지만 전공으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역사의 입지는 딱 그 정도였다.
그마저도 현 역사는 제국 위주의 역사. 제국을 제외한 국가들의 역사는 인지도가 적다.
‘유목민은 오죽할까.’
유목민은 그저 유목민이다. 북방을 전전하는 존재. 단 한 번도 하나가 된 적이 없어 유의미한 세력을 형성한 적이 없는 존재. 그렇기에 연구할 가치도 없고, 단순히 ‘생활 양식이 이렇더라.’ 정도만 알아두는 존재.
그것이 유목민이었다. 그것이 4년 전까지 유목민을 바라보는 역사의 시선이었다.
그리고 4년 전, 유목민이 하나의 세력을 일으켰다. 하나로 뭉쳐 나름의 체계로 갖추고 그들의 방식으로 제국과 맞섰다. 더 이상 유목민을 연구 가치 없는 대상이라 할 수 없었다.
‘사료가 없으니 원.’
문제는 연구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단이 부족했다. 수백, 어쩌면 수천 년의 시간 동안 괜히 학계가 유목민을 외면했겠나.
실제로 주시할 가치가 없기는 했다. 그러나 가끔 기행을 일삼는 학자들이 유목민에 도전했다가 아무 소득 없이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다. 그럴 이유가 있었으니.
유목민의 문자가 있기는 했지만 부족마다 달랐다. 심지어 문자의 수명도 짧았다. 애초에 유목민이 기록에 성실하지 않았다. 하나만 있어도 골치 아픈 악조건이 전부 모였다.
그나마 가아르라는 부족이 유목민들을 통합했으니 공용 문자의 시대가 오나 했지만, 뭘 기록하고 할 시간도 없이 2년 만에 무너졌다.
‘하나하나 부딪혀야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쉬운 사람이 노력하는 수밖에.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유목민에 대한 기록은 적고, 유목민이 남긴 기록은 더더욱 적었다. 심지어 기록에 사용된 문자는 제각각이요, 더 이상 쓰지 않는 문자도 있었다.
그래서 정말 하나하나, 분해하는 것처럼 연구했다. 속도는 느렸지만 조금씩 나아갔다. 솔직히 틀린 것도 많겠지만 일단 시도하는 거지.
“여기 있습니다, 선생님.”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은 난데없이 찾아왔다.
‘사레이 도브라 탈라?’
타니안이 제출한 답안지를 훑어보다가 시선이 멈추고 말았다. 순간 손이 떨렸다. 내가 가르친 건 사레이투 도브라 갈라다.
‘이걸 어떻게.’
사실 이 이름은 해석하는데 고민이 많았던 이름 중 하나다. 사레이와 사레이투 중 고민하다가 후자로 결정했고, 전자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타니안 학생. 이 답은 뭐죠?”
“아.”
내 물음에 타니안은 짧게 탄성을 내뱉었다. 마치 실수했다는 듯이.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썼습니다.”
가볍게 미소를 짓는 모습에 ‘그렇군요.’ 하고 넘어갈 뻔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건 연구와 해석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니까. 혹시 신성교국에는 따로 기록이 있었나?
그 뒤로 대답을 피하려는 타니안에게 정말 사정사정하며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고문.’
제과 동아리 고문, 아카데미 감찰관.
진실을 듣자 등골이 오싹했지만 그 이상으로 희열이 느껴졌다. 가까운 곳에 정답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학자의 열정으로 인간의 공포를 이겼다.
***
열정적으로 말하는 게르하르트의 모습에 박수를 칠 뻔했다.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오는 저 용기, 정말 감동적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아는 수준이라면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조언 정도야 얼마든지 해주겠다고 했다. 용감한 사람한테는 그만한 보상이 있어야 마땅하다.
게다가 황제가 6검의 이름이 퍼지는 걸 허락했으니 눈치 볼 필요도 없다. 북방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 녀석들의 이름도 빠르게 퍼질 거고.
그렇다면 몇 번이고 도울 수 있다. 아주 조금만 귀찮은 걸 감수하면 제법 괜찮은 결과가 나오는 거니까.
‘적이 강한 걸 알아야 명성도 높아지지.’
관우가 안량, 문추 정도는 잡아서 유명한 거 아니겠나. 솔직히 무안국, 양홍 같은 애들만 잡았다면 딱히 유명하진 않았을 거다.
제과 동아리실에서 역사를 논하는 건 너무 언밸런스한지라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처음 보는 장소에서 익숙한 향기가 느껴졌다.
‘교수 연구실이잖아.’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빙의 전,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던 마굴을 여기서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심지어 저 구석에서 꿈틀거리는 사람도 보인다. 저거 완전 대학ㅇ…
“자, 편하게 앉으십시오! 크리스티나 양? 손님께 드릴 차라도 준비해주시겠습니까?”
“네에…”
추욱 늘어진 목소리에 눈을 감을 뻔했다. 맞다. 내가 생각하는 그 사노비가 맞다.
그래도 애써 시선을 돌렸다. 자청하여 인권을 버린 저 사노비들은 타인의 연민 섞인 눈빛에 가장 마음 아파하니까.
그러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나도 어쩌다 보니 공노비잖아.
“감찰관님께서 도와주신다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까?”
게르하르트는 싱글벙글 웃으며 종이 더미를 책상에 내려놨다. 이게 다 사료인가?
‘생각보다는 많네.’
사료가 부족해서 허덕인다길래 어느 정도인가 싶었는데. 학자들 기준에서는 이것도 적은 건가.
그런 내 눈빛을 이해했는지 게르하르트가 머쓱하게 웃었다.
“제가 개인적으로 해석한 것들과 크리스티나 양이 만든 것도 섞여 있습니다.”
“고생 많으셨겠군요.”
없는 사료 쥐어짜서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진다. 어느 분야든 성공할 정도의 열정인데 하필 고른 분야가 이 모양.
그래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님 이거 망캐임. 새로 시작하세여.’ 같은 말을 할 수는 없다. 게다가 게르하르트가 북방에 대한 역사를 널리 퍼뜨려야 내가 좋고.
슬쩍 종이 더미 일부를 들고 하나하나 훑어봤다. 일단 오탈자는 전부 정정하고 나서야 뭔가 논하든 말든 하겠지.
그리고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튀어나왔다.
“저기, 게르하르트 씨. 이건?”
“아, 그건 크리스티나 양의 논문입니다. 보조 교사로서 본인 전공에 대한 성취를 보고할 필요가 있죠.”
몇 달은 붙잡고 있던 거라 꽤 괜찮은 내용입니다, 라고 덧붙이는 모습에 입이 달싹거렸다.
‘하필이면.’
석사 논문이라고 생각하니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내가 한 마디를 내뱉으면 이 논문은 순식간에 에넨 곁으로 떠나버리기에.
“감찰관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내 망설임을 눈치챘는지 게르하르트가 조심스레 물었다. 마침 차를 가지고 오던 크리스티나도 떨리는 동공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래, 언젠가는 터질 문제다. 차라리 제출 전에 터지는 게 낫지, 제출하고 터지면 그게 더 문제 아니겠나.
“이 논문 말입니다.”
들고 있던 사노비, 아니 석사, 아니 크리스티나의 논문을 내려놓고 제목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논문에 적힌 두 이름을 가리켰다.
[ 아리두 케자, 우데스르 자이루그 ]오탈자는 아니다. 내가 알기로도 이 이름이 맞다.
문제는 이 둘을 비교하는 내용의 논문이라는 것이 문제.
“이 둘, 동일 인물입니다.”
“…예?”
게르하르트가 얼이 빠진 목소리를 냈다.
– 쨍그랑!
게르하르트의 뒤에서는 크리스티나가 쟁반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나는 보지 않았다.
나는 사실 어제부터 눈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