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7)
제 17화
제과 못하는 제과 동아리 – 3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말이다. 공무원 생활 4년을 보내면서 경험한 것들을 떠올려보면 사람은 고쳐 쓰기는 커녕 증오해도 모자람이 없는 생물이다. 자연아, 이 세상에 사람이 살고 있어서 미안해.
하지만 난 이제 누군가 사람을 고쳐 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당히 대답할 수 있다. 노력에 따라 충분히 고쳐 쓸 수 있다!
‘이 형이 어지간하면 눈물이 안 나오는데 눈물이 다 나오려 하네.’
며칠 전,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끝에 에리히는 변할 수 있었다. 흐뭇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곳에는 루이제와 나란히 붙어 제과에 열중하는 에리히의 모습이 보였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하면 돼!”
“오, 그렇구나.”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모습으로 열정적으로 에리히를 가르치는 루이제. 솔직히 에리히는 제과에 열중하는 게 아니라 루이제의 목소리를 듣는 게 마냥 좋은 모양이지만, 애초에 그러라고 해준 조언이다. 잘 하고 있구나. 장하다, 에리히. 루이제를 함락시켜 버리렴.
그렇게 며칠 동안 에리히가 다섯의 도긴개긴 개노답 레이스에서 선두를 점하자, 다른 네 주자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조금씩 제과에 참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한 에리히는 눈 뜨고 당할 생각이 없었고, 절묘하게 타인의 개입을 튕겨내며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이건 조금 열 받는다. 작정하면 잘할 수 있는 놈이 지금까지 대체 왜.
‘그래도 이제 알아서 잘 하겠지.’
에리히의 모습이 너무 답답해서 충격 요법을 시도하기는 했지만, 애초에 나도 누군가한테 연애 조언을 할 입장은 아니니까. 이제 그 답답함을 딛고 강화에 성공했으니 에리히를 믿을 차례다. 난 감찰관이나 고문이지, 연애를 조작하는 놈이 아니야.
“와, 이제 에리히도 잘한다!”
저거 저거 입꼬리 올라가는 거 봐라.
한심하면서도 뿌듯한 마음에 둘을 바라보고 있자 루이제와 눈이 마주쳤다. 빙그레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이길래 나도 고개를 숙이며 화답해주었다.
못난 동생한테 잘 해줘서 고맙다 정말… 애초에 동생을 홀린 것도 루이제긴 하지만, 그건 원작의 힘이니 불가항력이다. 이제부터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루이제는 죄가 없는 무결점의 아이다.
최약체 에리히의 반란은 며칠 동안이나 이어졌다. 아니, 말을 잘못했다. 최강자 에리히의 군림이 며칠 동안이나 이어졌다. 황족을 포함한 기라성 같은 남자들을 상대로 앞서다니, 분명 가주도 기뻐할 거다. 크라시우스 가문의 자식 농사는 풍년이구나.
“고문. 혹시 시간 있으십니까?”
흥겨운 마음으로 동아리실을 나가려고 하니 어쩐 일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라테르가 나를 잡았다. 뭐, 말을 걸 것을 짐작하기는 했다. 나한테 용건이 있었으니 굳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겠지.
“그래, 무슨 일이지?”
하지만 무슨 용건인지 짚이는 게 없으니 라테르에게 자리를 권하고 선반에 놓인 쿠키통을 가져와 내려놓았다. 아직 에리히보다 루이제가 만드는 양이 압도적으로 많아 루이제의 쿠키로 가득 찬 통이었다.
쿠키통을 내려놓는 것을 본 라테르의 입꼬리가 조금 떨렸다. 왕실 요리사는 쟤한테 뭘 먹였길래 입맛이 저리 까다로운지. 이야기가 길어질지도 몰라서 입이 심심할까봐 가져왔는데, 그냥 나만 먹으면 되겠다. 맛만 좋은데.
자연스레 쿠키를 꺼내 입에 넣는 내 모습을 라테르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검지 손가락으로 책상을 몇 번 두드리며 생각에 잠기는 모습. 그러다 결심을 했는지 입을 열었다.
“여러 일로 바쁘실테니, 돌려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사실 라테르의 말과는 달리 의외로 지금 생활이 바쁘지는 않았다. 동아리에 집결한 6인방이 놀랍게도 얌전히 지내서 내가 무언가 수습할 일이 없었다. 이건 조금 고맙다고 할 수 있겠지.
…아니 시발,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애초에 쟤네 때문에 아카데미에 온 건데. 이게 그 스톡홀름 증후군인가 하는 그건가? 내가 가해자를 옹호하려고 했네?
이런 끔찍하고 슬픈 속내와는 별개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하자 라테르가 정말 돌리지 않고 직설적인 말을 꺼냈다.
“고문께서 에리히를 밀어주신 겁니까?”
두 개째 쿠키를 막 입에 넣던 나는 그 말에 라테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이 없는 내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라테르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며칠 전 고문께서 에리히와 나가신 뒤부터, 에리히의 행동이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겠지. 그렇게 말로 사정없이 팼는데 변하지 않으면 그게 사람 새끼냐. 적어도 내 동생은 정상적인 사람에 속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고문의 시선이 에리히에게 향한 적이 잦았습니다.”
그랬겠지. 난 동생이 변했을 것이라 믿지만, 그래도 혹시나 조언이 통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불안하여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봤었다. 다행히 에리히는 레이스의 선두를 달리며 내 불안한 마음을 종식시켰다.
“그래서 에리히가 고문께 조언을 듣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침묵하여 조용히 나를 응시하는 라테르. 자신의 추측이 맞느냐는 뜻 같기도 했고, 무어라 말할 것이 있느냐는 뜻 같기도 했다. 뭐, 정말 어떤 의미로 보는 건지는 라테르만이 알겠지. 워낙 표정 변화가 없는 놈이니.
“맞다. 내가 에리히에게 형으로서 조언을 해줬지.”
담담히 긍정하는 내 대답에 라테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알 것 같다. 아니기를 바란 추측이 정말로 맞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의 반응이다. 내가 많이 겪어봤거든.
“형으로서 조언이라, 알겠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건 아닙니다. 그저 고문께서 개입하시는 걸 예상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한 라테르는 책상 위에 올린 손으로 깍지를 끼더니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저는 물론, 에리히까지 포함한 다섯은 서로 자중하던 중이었습니다.”
잘 알고 있다. 그걸 가장 가까이서 본 것이 나니까.
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한 눈치 싸움이지만,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은 아니다. 다섯은 입학을 하고 나서야 루이제를 만날 수 있었고, 루이제를 두고 경쟁할 넷도 그제서야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 경쟁자가 어떤 인물인지는 파악해야 어떻게 행동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을 것.
요약하면 높으신 분들이 사교계에서 하던 버릇을 그대로 아카데미까지 들고 와버린 것이다.
“그 대치 상황이 에리히가 나서며 무너졌습니다. 심지어 루이제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갔다는 타이틀과 함께.”
라테르는 에리히로 인해 흔들린 상황이 막막한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시간을 두는 것이 아닌 빠르게 움직이는 게 정답일 때도 있는 법인데.”
그 한탄 같은 말에 나는 눈 앞의 라테르가 왕족임에도 잠시 어이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뭐지.’
에리히의 행동이 내 부추김으로 인한 결과라는 것을 눈치 챌 정도면 일단 기본적인 눈치는 있는 편이다. 아주 기본적인 눈치지만. 그렇다면 방금 스스로의 입으로 말한 ‘먼저 나서는 중요성’도 진즉에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사랑에 눈이 먼 지능 퇴화 의심범들이 삽질을 하는 사이, 에리히는 눈치 싸움에서 벗어나 직진을 택해 성과를 거두었다. 라테르의 말처럼 루이제와 관련해서는 빠르고 적극적 행동이 정답이었기 때문.
잠시 고민하던 나는 홀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갑자기 나를 붙잡고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 하는 걸 보면 나도 어느정도 솔직히 말해도 큰 지장은 없겠지.
“그걸 알면서도 그랬다고…?”
내 중얼거림에 가까운 말에 라테르도 할 말이 없는지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숨 막히는 침묵이 동아리실에 내려 앉았다.
라테르가 나가며 나 홀로 남은 동아리실. 나는 아까까지만 해도 라테르가 앉아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신박한 놈이네 이거.’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온다. 라테르가 나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입에 담은 말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고문께서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셨으면 합니다.”
본인이 한 대형 삽질에 스스로도 부끄러운 듯 입을 다문 라테르가 10분 같은 10초가 지나서야 말한 이번 대화의 목적. 내가 에리히에게 조언을 주지 않는 것을 넘어, 아예 다섯의 경쟁에 관여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불안했을 것이다. 에리히가 이후로도 내 도움을 받는다면 승부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겠지. 그렇다고 에리히를 돕지 말라는 말은 너무 노골적이니, 그 범위를 다섯의 경쟁 자체로 확대했다. 어차피 내가 에리히 외의 누군가를 도울 일은 없으니 같은 의미지만.
물론 앞으로의 경쟁은 순전히 에리히에게 맡길 생각이었으니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랬더니 안심하기는 한 모양. 라테르의 표정이 조금 풀리더니 무례한 요청을 해서 죄송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썩 나쁜 기분은 아니라 그 사과도 받아줬다.
“내가 애들을 너무 무시했었나.”
나도 모르게 부원 다섯을 단순히 사랑에 눈이 먼 원작 속 남주들로 취급한 모양이다. 이미 이 세계에 빙의하고도 5년. 이 세계 사람들이 소설 속 이야기처럼 단조롭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다섯을 쉽게 보고 말았다.
솔직히 속이 뒤집어지는 눈치 싸움을 보다 보면 다섯을 단순 지능 퇴화범으로 여길 수밖에 없긴 했다. 이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도 그랬을 거다. 최단 공략 루트가 있는데 왜 그 위를 걷지를 않고 탭댄스만 추냐고.
그래도 에리히가 내 조언에 변하고, 라테르가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려고 했던 것처럼 다섯의 행동 패턴은 다양하고, 단순하지 않다. 그걸 직접 보니 그럭저럭 유쾌한 기분이었다. 이것들이 단지 원작의 힘으로 루이제에 홀린 것이 아닌, 정말 진심으로 반해서 노력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
“적당히 선은 지키면서 잘 해보라고.”
흥얼거리며 다시 쿠키 하나를 입에 넣었다. 라테르의 바람대로 특정인에게 힘을 실어주지는 않겠지만, 경쟁이 좋지 못한 방향으로 심화되면 당장 개입해서 뜯어 말려야 하니까.
생각해보니 이 유쾌함도 다섯 사이에서 고통 받는 미래를 직감한 내 방어 본능이 아닐까? 기분이라도 좋아야 사이에서 치여도 오래 버틸 수 있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 작가는 어젯밤, 정말 과분하고도 감사한 독자님들의 성원에 자축의 기념으로 치킨을 시켜 먹었습니다. 심지어 가성비를 따지며 시킨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은 브랜드를 시킨 사치를 부렸습니다…
하지만 감히 사치를 부리는 것에 대한 하늘의 징벌이었는지, 순살로 시킨 치킨은 뼈가 붙은 상태로 왔습니다. 순간 ‘요즘 순살은 뼈도 끼워주나?’ 라는 행복 회로를 돌리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 이건 앞으로도 글을 쓸 때 뼈를 바르는 심정으로 신중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구나! 신참 작가 주제에 벌써 사치에 눈을 뜰 뻔한 것을 하늘이 꾸중을 준 것이구나!
이 부족한 작가, 다시금 초심을 되새기고 더욱 노력할 다짐을 할 수 있었읍니다…
쓰고 보니 많이 헛소리 같군요. 요즘 잠이 부족하기는 한가 봅니다.
이번 회차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성님! 지나가는레콘님! 후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