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73)
분명 그런 불평을 하기는 했다. 미친 놈의 입장을 알기 위해 나 스스로가 미친 놈이 될 수는 없다고. 내가 탐문에 능한 것도 아니니 내부 스파이를 찾을 방법은 없다고.
그래, 분명 내가 생각한 것들이다. 스스로가 깐 복선이다.
‘시발.’
그렇다고 이렇게 귀신같이 복선을 수거할 필요는 없지 않냐.
탐문에는 능하지만 미치기도 한 둘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한 당일에 바로 죽어버리는 꼴 아니냐고.
– 헤헤, 부장님 감동받으셨다.
– 아이고, 그동안 쓸쓸하셨나 봅니다.
내가 말이 없자 놀리는 것이 분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귀를 거쳐 뇌에 꽂히는 것이 환장할 지경. 왜 하필 너희냐. 왜 과장 넷 중에 딱 너희 둘이.
‘이 새끼들밖에 없긴 한데.’
이것들이 아무리 미쳤어도 아카데미에 놀러 오는 건 아닐 거다. 이 타이밍이라면 분명 붉은 파도 관련으로 오는 거겠지.
그렇다면 가슴으로는 부정해도 머리로는 납득할 수밖에 없다. 확실히 현 상황에서는 이 둘이 제격이니까.
정보 탐색에 능한 2과장, 재료를 잡으면 확실하게 처리하는 1과장. 당장 무력이 필요하지는 않은 지금으로서는 딱 적절한 인선이다.
“…왜 오는 거냐?”
그래도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차 물었다. 정말 이것들이 특이점에 도달해서 명령 없이 오는 걸 수도 있잖아.
– 짠!
그리고 부질없는 희망은 1과장이 보여주는 종이 쪼가리 하나로 인해 무너졌다.
‘맞네.’
대충 봐도 알 것 같다. 특무성 장관의 협조 요청, 재무성 장관의 승인 인장. 확실하다. 정식 파견 명령이다.
그래, 너희가 아주 미친 건 아니구나. 분명 기쁜 소식인데 왜 슬프지…
– 원래는 정보부에서 해야 하는데, 워낙 바빠서 저희 쪽에 협조 요청을 했습니다. 마침 부장님도 아카데미에 계시니 합이 잘 맞는 상대가 가는 게 낫지 않겠냐면서요.
이어지는 2과장의 말에 뒷목을 잡을 뻔했다. 그러면 더 너희를 보내면 안되는 거 아니냐. 합이 잘 맞기는 뭐가 잘 맞아.
‘망할.’
정보부가 바쁜 것 이유도 대충 알 것 같다. 북방에서 구르느라 정작 국내 인력이 부족한 거겠지.
하여간 내 인생에 흉악한 일이 생기면 열에 일곱 정도는 북방이다. 인생에 도움이 안되는 버러지 같은 놈들.
– 그러면 부장님! 곧 찾아뵐게요!
“그래.”
어차피 막을 수도 없기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빠른 포기도 중요한 법이라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부질없는 희망을 가진 순간부터 빠른 포기하고는 거리가 멀었지만 아무튼 그렇다.
“돌아버리겠네.”
통신구가 꺼진 걸 확인하고 한탄을 담아 중얼거렸다. 붉은 파도로도 골치 아픈데 1과장과 2과장도 온다고?
아니, 붉은 파도를 대비하기 위한 인력 지원인데 왜 짐처럼 느껴지지? 객관적으로 보면 저것들이 도움이 되는 건 맞는데, 분명 맞는데.
아마 정신적으로 고통받을 미래를 알기에 이러는 거겠지.
‘저것들도 정상은 아니야.’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저것들이 비정상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보통 상사를 만나러 오는 건데 저렇게 웃나?
하여간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다.
근신 이후로는 교장실에 방문한 적이 없다. 애초에 방문하지 않는 게 평화롭다는 의미기도 한 곳이니. 이렇게 말하니 중대장실이나 교수 연구실 같네.
유감스럽게도 이제 평화롭지 못해서 방문하게 됐지만.
“붉은 파도,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저번 박람회 때 처리한 세번째 영광과 달리 붉은 파도에 대해서는 교장에게도 알렸다.
그때는 괜히 여러 사람에게 알리면 소란스러워지는 상황이었고, 아카데미에 접근하기 전에 요격할 의지로 가득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외부 침공과 더불어 내부 소요도 있을 확률이 높다. 적어도 자기 앞마당에 스파이가 있는 건 주인도 알고 있어야지.
“감찰부에서도 지원이 올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 말도 해야 하니까.
“그렇군요.”
그 말에 교장의 안색이 다소 어두워졌다. 자기 앞마당에 감찰부가 들어와서 쏘다닌다고 생각하면─
‘기분 탓인가.’
어째 붉은 파도 얘기를 했을 때보다 더 어두운 것 같은데.
아무튼 아카데미 밖에서 얼쩡거리던 세번째 영광을 잡아 심문했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아카데미 내부에 있을 스파이를 찾아내야 한다. 교장의 협조는 필수적.
감찰부의 이름을 내밀면 협조고 뭐고 다 밀어버릴 수 있지만, 그렇게 요란하게 탐문을 하면 탐문하는 의미가 없잖나. 관심병 있는 스파이도 숨을 것 같은데.
“적당한 신분을 준비해야겠습니다.”
교장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보는 외부인, 혹은 감찰부라는 명함보다는 적당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지.
“보조 교사 명분이면 충분할 겁니다. 수시로 바뀌니 교직원이나 학생들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겠죠.”
“그거 다행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끔찍한 대사가 나왔지만 애써 넘어갔다.
‘회전율 뭔데.’
교장 공인 ‘금방금방 교체되는 인력’ 이라니. 너무 잔혹한 거 아니냐. 대학원생도 사람이야, 사람!
‘맞나?’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맞다고 치자.
“지원 인력이 오면 알려주십시오. 저는 그 전까지 준비해두겠습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아카데미를 위한 일 아닙니까. 오히려 제가 감찰부장에게 감사해야지요.”
그렇게 말하고는 가볍게 미소를 짓는 교장에게 마주 웃어 보였다.
***
감찰부장이 나가는 걸 확인하고 소파에 몸을 묻었다.
갑작스러운 방문, 갑작스러운 요청. 심지어 다른 일도 아닌 붉은 파도라고 한다. 한동안은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건.
‘골치 아픈 일이군.’
감히 질서를 부정하고 혼란을 유발하려고 하는 붉은 파도는 제국은 물론 대륙 전체의 공적이다. 붉은 파도 토벌에 관해서는 앙숙인 국가도 서로 협력을 할 정도로.
그야 당연한 일이다. 국가 사이의 분쟁에서 밀려도 기득권은 남지만, 붉은 파도가 득세하면 목도 남지 않으니.
그렇기에 각국, 특히 기득권의 정점인 제국은 붉은 파도에 대해 무자비 무관용 원칙을 내세웠다. 그리고 그 선봉장은 감찰부.
황제 폐하의 권위를 위하여 귀족들을 억누르는 감찰부다. 하물며 황제 폐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붉은 파도는 어떻게 대하겠나.
‘학생들이 놀라지 않아야 할 텐데.’
피바람이 불 거다. 감찰부는 붉은 파도 소탕을 위해 마을이나 도시 여럿을 통째로 소거한 적이 있었으니까.
물론 현 감찰부장 시기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감찰부장이라고 과연 다를까?
‘그럴 리는 없겠지.’
2년 전, 19살의 나이로 감찰부장이 된 직후에는 여러 말이 나왔지만 지금은 아무런 반발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반발하면 전부 없앴으니.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에게도 가차 없는 사람이다. 과연 황제 폐하를 부정하는 자들을 온건히 대하겠나.
그동안 감찰부장을 보고 지내면서 개인의 성품은 파악했다. 잔혹하고 무정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사적인 모습과 공적인 모습은 다른 법.
‘순순히 잡혔으면 좋겠군.’
스파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관리하는 아카데미에 역적의 끄나풀이 있다는 분노보다, 그 끄나풀이 발버둥치며 벌어질 사태가 더욱 두려웠다.
설마 괘씸죄로 본관이나 정문 앞에 효수하지는 않겠지.
…않겠지?
***
주기적으로 두 과장에게 연락을 걸어 어디쯤 왔는지 확인했다.
자식이 학원에 잘 갔나 확인하는 부모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야.
‘아쉬운 놈이 참아야지.’
그래도 한눈을 팔았더니 갑자기 동아리실에 들이닥치는 서프라이즈보다는 낫다. 어쩌면 이상한 곳으로 빠질지도 모르고.
– 부장님도 차암~ 그렇게 제가 보고 싶으세요?
“아가리.”
그걸 다르게 해석했는지 머리카락을 꼬는 1과장의 모습은 상당히 거슬렸다. 보고 싶기는 무슨. 이게 미쳐가지고.
내 단호한 대답에 입술을 삐쭉 내민 1과장은 옆에서 웃던 2과장을 한대 후려팼다.
– 아니, 나는 왜!
– 몰라요. 누가 거기 있으래요?
이건 조금 마음에 든다. 더 때려, 더.
그렇게 투닥이던, 아니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던 2과장은 앓는 소리를 내며 통신구 밖으로 밀려났다.
“쟤 왜 저리 약해졌냐?”
2과장이 전투 특화는 아니지만 1과장에게 당할 정도는 아닌데?
– 아직 몸에 힘이 안 들어간대요.
“저런.”
이유는 생각보다 슬펐다. 아직 북방 후유증이 끝나지 않은 모양.
그래, 북방이 험하기는 하지. 난데없이 차우지드 부족을 만나고 죽지 않은 게 어디야.
“그래서, 어디까지 왔냐?”
2과장에 대한 동정은 3초면 충분하기에 빠르게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그래도 심각하지는 않으니 파견도 온 거겠지. 제국은 공무원을 무리하게 굴려서 빨리 망가뜨리기 보다는 적당히 오래 굴리는 걸 선호하니까.
– 리베크 남작령이니까, 이틀 정도만 더 달리면 도착할 거예요.
“금방이네.”
이틀 안에 신분 준비가 끝날까 싶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교장이 직접 나서는 건데 금방 끝나겠지.
그런 마음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자 히죽거리는 1과장의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러냐?”
2년 동안 같이 지낸 경험은 폼이 아니다. 이제는 웃는 모습만 봐도 왜 웃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 경지에 올랐다.
나를 놀리기 직전의 웃음, 그냥 별 생각 없이 웃는 모습, 화가 나서 나오는 웃음 등.
지금 같은 경우는 두근거림의 웃음이다. 무언가 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을 때의 모습.
– 저 붉은 파도는 과장되고 처음 봐요!
그리고 그럴 때는 백에 아흔 정도가 새로운 컬렉션을 발견했을 때다.
해맑게 외친 1과장은 옆으로 손을 뻗더니 파우치 하나를 들이밀었다.
– 이번에는 잊지 않고 챙겼어요!
“아, 그래.”
익숙한 물건의 등장에 슬쩍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저걸 기어코 가져왔네. 세번째 영광 때는 그냥 왔었는데.
‘고문 다이어리…’
1과장이 애용하는 고문 도구, 그리고 인상 깊었던 고문 기록을 적어둔 물건.
– 헤헤, 스파이는 몇 명일까요?
그 모습을 보고 직감했다. 스파이가 여럿이든 하나든 일단 엑조디아 파츠로 분리 될 것 같다고.
얘 요즘 많이 심심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