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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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도 유니크 등급 정도는 받을 것 같은 파우치를 본 이후로 흉흉한 꿈을 꾸고 있다.
스파이의 사지가 아카데미 동서남북에 하나씩 걸린다거나, 목은 본관 앞에 걸린다거나, 그 광경을 본 교장이 격노하여 회춘한더거나. 악마 소환진이었나 그거.
아, 학생들이 기겁해서 본인들 가문에 하소연하는 건 덤이었다. 자식들의 눈물 어린 한탄을 들은 가문들은 행정부에 항의했지. 덕분에 나는 장관한테 신나게 털리고.
‘왜 이렇게 리얼하냐.’
최악의 최악만 골라서 벌어진 꿈이지만 그럴 듯해서 더 미치겠다. 차라리 허무맹랑한 꿈이면 개꿈 취급이라도 하는데, 진짜 삐끗하면 저렇게 흐를 수도 있어서.
환장할 노릇이다. 이제는 아무리 약한 징계여도 피해야 한다. 시말서 하나만 써도 바로 구금이라 전과범 부장이 되는 거라고.
“저는,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칼 편이에요!”
순간 철창 밖에서 울먹이는 마르게타의 모습을 상상했다. 꼭 이런 상상은 고퀄리티로 떠오르더라.
죄책감 때문에 미치겠네. 오랜만에 자결용 독이라도 챙길까?
“오라버니?”
“아.”
루이제의 목소리 덕에 심연에 빠져드는 걸 멈출 수 있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애써 표정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자 루이제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저보다는 오라버니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 말에 마땅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기는 하지. 엄청 커다란 일이.
그런데 그걸 또 표정으로 들켰다는 게 서글플 뿐이다. 예전에는 나도 한 포커페이스 했는데 요즘은 자주 들키네.
‘눈치가 빠른 건가?’
어쩌면 본인 연애 문제만 아니면 다재다능한 여주인공 버프일지도 모른다. 아님 말고.
아무튼 루이제에게 속내를 들킨 이상 전부 숨길 수는 없다. ‘아무 일도 없어.’로 일관하면 오히려 더 수상하잖아. 괜히 무슨 일이 있나 살피게 되고.
심지어 1과장 성격상 아카데미에서 조용히 있을 것 같지 않다. 분명 동아리실에 달려와서 놀다 가겠지.
‘말해두는 게 낫겠네.’
갑작스러운 외부인의 방문. 심지어 나는 방문할 것이라는 걸 아는 상황. 그래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게다가 1과장은 이미 박람회 때 부원들하고 만났잖아. 말해도 상관 없다.
“사실 손님이 오기로 해서.”
결국 짧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그래, 차라리 대놓고 말해서 동아리실에 붙들고 있자. 어차피 내부 스파이를 찾느라 돌아다니는 건 2과장이니까. 1과장은 스파이를 찾은 이후에야 할 일이 생기는 거니.
“손님이요?”
“왜, 그. 머리 하얗고 눈 뻘건 애 있잖아. 박람회 때.”
“아, 그 언니요?”
제대로 기억하는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한 번이라도 보면 잊기 힘든 외견이기는 해.
“걔가 좀 자유분방한 편이라.”
손님으로 귀찮은 애가 오니 표정이 좋지 못했다, 라는 말에 루이제도 납득한 것 같다. 엄밀히 따지면 맞는 말이니 설득력은 더 높았겠지.
1과장이 오는 것도 귀찮고, 걔가 오는 원인인 붉은 파도는 더 귀찮고.
‘망할.’
어디서 이런 손님들만 모였을까.
“빵을 좋아하시던데, 미리 준비해야겠어요.”
살포시 웃으며 말하는 루이제의 모습에 더 답답해졌다. 맞이하는 주인은 이렇게 착한데 손님은 왜.
“아무거나 잘 먹으니 무리하진 말고.”
“헤헤, 그래도 손님인데요.”
이렇게 착한데…
“저희 왔습니다.”
“하하, 조금 늦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웬일로 늦은 부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균형인가.’
부원들을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장이 한없이 착한 건 평범하지 않은 부원들 때문이 아닐까?
동아리의 평균 인성은 루이제가 지키고 있구나.
***
마차를 오래 타는 건 지겨운 일이다. 덜컹거리지, 답답하지, 밤에 묵을만한 도시나 마을을 찾지 못하면 노숙도 해야 하지.
그래도 이번만큼은 즐겁게 갈 수 있었다. 부장님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그깟 마차 좀 타는 게 대수일까. 대륙 끄트머리라도 걸어서 갈 자신이 있는데.
“흐흐흥~”
마음이 들떠서인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좋냐?”
그러자 2과장이 말을 걸었다. 좋냐니, 당연한 걸 묻고 있어.
“저 혼자만 가는 거면 더 좋았을 거 같아요.”
“그러면 네가 스파이 찾든가.”
비웃음 가득한 2과장의 얼굴을 보니 열이 받았다. 치사하게 맞는 말로 반박하고.
“야이, 그만 하라고!”
그래서 때렸다. 나약한 사람이 어딜 감히 말대답을 해.
맞는 말과 처맞는 말은 글자 하나 차이라고 부장님이 그러셨다. 난 과장으로서 부장님 뜻대로 행동하는 거야.
그렇게 평소와 달리 작은 터치에도 온 몸을 꿈틀거리는 2과장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반응이 좋아서 때리는 맛이 있어.
“앞으로도 이랬으면 좋겠어요.”
“끔찍한 소리.”
끔찍하라고 한 소리 맞는데.
하지만 그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오늘 분량의 괴롭힘 할당량은 다 채웠으니까.
“저녁이면 도착하겠지?”
“네. 그 정도면 되겠네요.”
어깨를 주물거리던 2과장의 말에 슬쩍 지도를 보고 대답했다. 방금 란덴 남작령을 지났으니 저녁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하여간 아카데미에도 붉은 파도가 있을 줄은 몰랐어.”
이건 옛날처럼 처리하지도 못하고, 라고 덧붙이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꼭 옛날에도 만나봤다는 것처럼 말하네?
“예전에도 만난 적 있어요?”
“팀원일 때 자주 만났지. 너는 왜 못 본 거처럼 말하냐?”
“전 과장되기 전에 딱 한 번 봤어요.”
붉은 파도는 명성에 비해 만나기 힘들었다. 제국이 붉은 파도에게는 무자비 무관용을 내세우기에 어지간하면 현장에서 사살하는 것도 있지만, 심문을 위해 생포하려고 해도 그 자리에서 자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나도 팀원일 때 겨우 한 번 봤고. 심지어 일개 팀원이라 심문에 제대로 참여도 못했었는데.
“치사하게 혼자만 보고. 1과는 붉은 파도 보기 힘들었단 말이에요.”
괜히 그때의 서운함이 떠오르자 투덜거리게 됐다. 애초에 만나기 힘든 놈들이면 몰라, 치사하게 2과만 독차지하고.
“그럼 어떡하냐. 전대 부장은 전부 죽이라고 했는데.”
어깨를 으쓱거리는 2과장의 말에 기분이 언짢아졌다. 하여간 전대 부장이 문제다. 재미도 없고 융통성도 없고 멋지지도 않고.
감찰부 생활을 하며 안 좋은 일을 겪었다면 거의 전대 부장 때문이다. 지금 부장님이 집권한 후로는 너무 즐거운데.
“…그런데 전대 부장은 장관님 아니에요?”
인상을 찌푸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슬쩍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부장님 전에 부장을 한 사람은 장관님 아닌가? 한 달도 못 채웠다지만 부장을 하기는 했는데?
“공식적으로는 아니던데? 폐하께서 승인하기 전에 바로 장관으로 올라서.”
“와.”
그러면 공식적으로는 2단계 승진이구나. 대단한데 부럽지는 않다.
“아무튼 전대 부장 때는 붉은 파도가 하나라도 보이면 그 마을 전체를 밀어버렸거든.”
그 얘기를 들으니 나도 생각났다. 전부 잠재적 공범이니 소탕하는 게 맞다나 뭐라나.
지금 생각해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한다고 효율적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지레 겁을 먹고 숨어들거나 악만 품어서 날뛰던데.
“아카데미를 밀 수도 없고 곤란하네요.”
게다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쓰지도 못하는 방법이다. 하여간 전대 부장은…
“그러니 이번에 제대로 해야지. 최대한 생포로 가자고.”
“네에~”
기꺼운 말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2과장이 스파이를 찾으면 그 숫자만큼 내 재료가 늘어나는 거니까. 부장님을 만나는 것 자체도 기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네.
언짢았던 기분이 조금씩 회복되자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좋아하시려나.’
저번 박람회 때와 달리 이번에는 선물도 준비했다.
“갇힌 사람한테는 두부가 제일이야. 입으로는 싫다고 해도 좋아서 환장하지.”
예전, 장관님이 구금을 당하실 때 부장님이 했던 말.
그러니 부장님도 좋아하겠지. 근신이나 구금이나 갇힌 건 매한가지니까.
‘아르메인 보양식이라던데.’
게다가 메뉴도 신경 써서 골랐다. 단순히 두부만 주면 심심하잖아.
아르메인 사람들도 대단하네. 어떻게 두부로 케이크를 만들 생각을 하지?
***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왔구나, 드디어 올 게 왔어.
“나간─”
– 딸깍
“와, 열렸다.”
“아카데미도 별거 없구만.”
이 새끼들이.
주인이 문을 열기도 전에 본인들이 따고 들어오는 기행에 뒷목을 잡고 말았다.
미친 것들아, 아무리 열 수 있는 문이어도 주인이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게 사회적 약속이야.
“부장니이임! 오랜만이에요!”
착잡한 심정으로 그 꼴을 보고 있었더니 1과장이 손을 퍼덕퍼덕 흔들며 다가왔다.
그래, 그래도 도와주러 왔으니 반겨주기는 해야─
“선물이에요!”
…지.
“선물?”
본능이 외치는 경고가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원래 선물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불안한 단어였나.
“네! 며칠 전부터 열심히 준비했어요!”
‘시발.’
하필 그런 말까지 들으니 더 거절할 수가 없게 됐다. 아무리 심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게 뻔하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부하의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지 않나.
뻔하지만. 다시 뒷목을 잡을 미래가 너무 뻔하지만.
‘미치겠네.’
이거 직장내 상사 괴롭힘이야. 내가 팀장일 때는 상상도 못한 일이라고.
“고맙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1과장이 내민 상자를 받았다.
기분 탓인가? 얼마 전에 느꼈던 무게감하고 비슷한데.
‘아.’
상자를 열자마자 그대로 굳고 말았다. 애석하게도 기분 탓이 아니었다.
“마음에 드세요?”
히히 거리는 1과장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거 1과장이 열심히 구했습니다. 아르메인에서도 인지도가 없어서 물량이 없더라고요.”
다시 문을 잠그고 온 2과장의 말에 삐걱거리는 고개를 겨우 끄덕였다.
그러면 난 그 인지도 없는 음식을 두 번이나 먹는 거네.
“…고맙다.”
고맙다 이 새끼들아.
“마음에 드시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이야, 저는 살면서 이런 거 처음 봅니다.”
낄낄거리는 두 원수를 양 옆에 두고 케이크만 내려다 봤다.
‘시발.’
그리고 두부 케이크는 셋이 나눠 먹었다. 하필 맛있어서 더 짜증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