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75)
두부 케이크에 착잡함과 불안함을 담아 삼킨 다음날. 양 옆에 두면 여러 의미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두 과장과 함께 교장실로 향했다.
“대단한 분들이 오셨군요.”
지원 인력이 백발 여성과 금발 남성임을 확인한 교장은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교장이 과장들을 직접 본 적은 없겠지만, 적어도 특징 정도는 들었을 테니.
이렇게 보니 금도끼와 은도끼를 들고 다니는 산신령이 된 것 같다. 사실 신령은 나보다 교장이 더 어울리는 이미지기는 한데.
아무튼 양 옆에 있는 두 녀석을 살짝 건드니 곧바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감찰부 1과장 에르제베트 마살로라고 해요.”
“2과장 라파예트 바론입니다.”
평소의 지랄 맞은 모습과 달리 정중함이 가득한 모습.
‘나한테도 이랬으면.’
당연한 모습이지만 괜히 빡친다. 나하고 교장은 같은 부장급 인사로 취급되는데, 누구는 툭하면 괴롭히는 샌드백이고 누구는 정중하게 대하고…
물론 나한테 하는 짓을 교장한테도 하면 그때는 진심 펀치를 날렸겠지만.
“반갑습니다. 업무로 온 것이니 편히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필요한 게 있다면 부담 없이 말하세요.”
지랄견이라도 앞뒤 분간은 하는 지랄견이라는 걸 확인한 교장은 작은 미소를 머금으며 과장들에게 악수를 건넸다.
“자, 편히 앉으세요. 손님을 세워두는 건 예의가 아니지요.”
그러고는 친히 차를 타기 시작했다. 하필 비서도 잠시 내보낸 상황이라 가장 연장자가 직접 움직이고 있다.
덕분에 1과장이 달려가 대신 하겠다고 했지만 교장의 한마디에 도로 돌아왔다.
“뭐라고 하셨길래 그냥 왔어?”
“늙으면 이렇게라도 움직여야 몸이 안 굳는다고…”
그 말에 조용히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어르신이 스스로의 몸을 판돈 삼아 하는 장난은 차마 반박하기 어렵지. 심지어 듣는 사람이 젊은 편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어색하게 앉아있는 사이 1과장이 입을 열었다.
“저 학생 때도 교장실에 온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오네요.”
감회가 새로운지 은근히 두리번거리는 모습에 입이 달싹거렸다.
‘너는 선도부실을 자주 갔을 거 같은데.’
하지만 그 말을 꺼내면 아니라고, 내가 얼마나 기품이 넘치는 학생이었는데 그런 말을 하냐고 빼액 소리를 지를 것 같아 참았다.
그래도 아카데미 7대 미스터리 같은 거 보면 기행을 일삼는 백발 여학생이 나올 거 같은데. 찾으면 진짜 있을 것 같아 무서워서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너는 선도부실을 자주 갔을 거 같은데.”
‘오.’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한지 2과장이 퉁명스레 내뱉었다. 그런데 얘 마차에서도 맞는 것 같던데 도발이 멈추지가 않네.
“향이 제법 좋은 물건입니다.”
바들바들 떨리는 주먹으로 2과장을 응징하려던 1과장의 시도는 교장의 등장으로 실패했다.
이 새끼, 노렸구나.
오늘부터 2과장 라파예트 바론은 죽었다.
“하나면 된다고요?”
“예,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2과장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교장은 역시 아카데미를 지배하는 남자답게 짧은 시간 안에 완벽한 신분을 구했다. 1과장의 신분도 그냥 받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더라.
하지만 1과장은 아카데미 내에 얼굴이 너무 팔려서 가짜 신분 같은 걸 들고 다니는 게 더 이상하다. ‘사실 에르제베트 언니의 쌍둥이 동생이에요!’ 같은 컨셉으로 갈 수도 없고.
그러니 2과장의 신분만 감사하게 받았고─
“야, 찰스야. 차 좀 제대로 타봐라.”
“찰스 씨. 이런 것도 못해서 어떻게 교사 마음에 들려고요.”
역사학 게르하르트 교사의 보조, 찰스 슈타너의 탄생이었다.
“손님들, 연구에 방해되니 제발 전부 꺼져주십시오.”
정중한 어투, 그렇지 못한 내용. 2과장, 아니 찰스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순순히 차를 다시 우리기 시작했다.
‘왜 잘 어울리지.’
그 광경을 보니 계속 웃음이 새어 나왔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안경을 쓴 금발 미청년. 겉으로만 보면 완벽한 학자 지망생.
물론 우리는 껍데기 안의 알맹이를 알기에 그저 웃음벨에 불과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게르하르트 씨.”
이제는 결과물이 아니라 차를 우리는 과정에도 잔소리를 퍼붓는 1과장을 보다가 게르하르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붉은 파도나 감찰부 개입 같은 사실까지는 모르지만, 임시로 보조 교사를 받아달라는 교장의 부탁에 순순히 응한 건 게르하르트의 의지니까.
“별 말씀을요. 제가 감찰관님께 신세를 진 거에 비하면 가벼운 일입니다.”
“하하, 미리 빚을 지우기를 잘했군요.”
보는 사람이 흐뭇할 정도의 순박한 미소를 짓는 게르하르트. 설마 북방 연구에 대한 스노우볼이 여기까지 굴러갈 줄은 몰랐다.
만약 다른 교사에게 내 지인을 보조로 받아달라는 부탁을 했다면 의심과 부담을 동시에 느꼈을 거다. 감찰부장의 지인? 이 시기에 왜? 뭐 대충 그런 거.
하지만 게르하르트는 내가 아무 연관이 없는, 적어도 그 시점에서는 장관의 처조카인 줄 몰랐던 크리스티나를 챙기는 모습을 봤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다른 사람을 챙기나 보다, 정도로 생각이 뻗을 가능성이 높지. 이미지가 좋은 사람이 무슨 일을 하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법이니까.
“크리스티나 양도 오랜만에 생긴 후배라 기뻐할 겁니다.”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리고 크리스티나를 쳐다봤다.
“찰스 씨, 저한테 주세요. 제가 할게요.”
늘 어두웠던 안색이 묘하게 밝아진 크리스티나는 1과장의 갈굼에 시달리던 찰스를 빼돌렸다.
후배가 들어오면 자신이 할 잡무를 짬처리 할 수 있어서 기쁠 텐데 스스로 일을 자처하다니. 소중한 후배를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역시 처조카.’
장관 조카가 아니라 처조카라 저런 바른 인성을 가진 걸 거다.
“감사합니다. 크리스티나 씨.”
“후후, 잠시지만 선배라고 편하게 불러도 돼요.”
“알겠습니다, 크리스티나 선배.”
묘하게 밝았던 안색은 확연히 밝아졌다. 저렇게 좋을까.
“크리스티나 양은 선배도 후배도 없이 보조로 지냈습니다. 그나마 들어오던 후배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갔고요.”
“저런.”
내 의문 섞인 눈빛을 눈치챈 게르하르트의 말에 절로 탄식이 나오고 말았다. 요약하면 개 같이 꼬인 군번이라는 거 아니야.
대학원생이라는 것 자체로도 힘들 텐데 군번도 꼬이다니, 에넨도 너무하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시련이다.
‘심지어 임시.’
찰스는 길어야 1, 2주 정도 머물 임시 후배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저렇게 아끼는 걸 보면 얼마나 후배에 굶주린 건지.
“그래도 저렇게 아끼는 걸 보니 믿고 맡길 수 있겠군요.”
“하하, 염려 마십시오. 역사학이 연구 자체는 힘들어도 사람이 힘든 곳은 아닙니다.”
다행인 소식이다. 적어도 찰스가 사람한테 치이다가 가면을 던지는 일은 없을 테니.
‘저 새끼가 문제인데.’
게르하르트와 크리스티나의 인성은 의심하지 않지만 찰스… 입에 영 안 붙네. 아무튼 2과장 저 새끼의 인성은 걱정이니까.
그래도 제정신이라면 자제하겠지. 업무는 확실하게 하는 놈이기도 하고, 크리스티나가 장관의 처조카라는 것도 말했으니.
“역사학에는 보조 교사가 딱 하나 있거든?”
“예쁩니까?”
“예쁘기는 한데, 장관 각하 처조카야.”
2과장이 찰스로 진화하고 게르하르트의 연구실로 가던 중 했던 대화. 능글맞게 말하던 2과장은 그 말에 딱딱히 표정을 굳혔다.
“장관 각하, 애처가인 거 알지?”
“예에… 뭐어…”
즉 잘못 건드리거나 하면 다리를 건너 건너 장관 귀에도 들어간다는 소리.
2과장도 충분히 알아 들었는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부장에게 장난을 치는 것과 장관의 분노를 받는 건 전혀 다른 문제.
‘잘하겠지.’
지금도 그렇잖아. 자세히 보니 크리스티나가 말을 걸면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남들이 보면 선배의 부름에 움찔한 후배의 모습이지만…
그래, 잘할 거다. 기본적인 머리만 있다면 충분히 잘할 거다.
***
부장님과 1과장은 아무 망설임 없이 나를 버리고 떠나갔다.
저 매정한 인간들. 본인들은 논다고 저렇게 가버리네.
‘재수도 없지.’
적당히 연구실 인원들과 친해지고 아카데미를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아무리 임시 신분이지만 최소한의 인간 관계는 쌓아야 활동에 용이하지.
하지만 둘뿐인 인원 중에 장관님의 처조카가 껴있는 건 대체 어느 정도 확률을 뚫어야 가능할까.
‘차라리 그냥 조카였다면.’
장관님의 조카면 이런 걱정도 없다. 장관님은 가까운 혈육이 자신의 위세를 빌리는 꼴을 혐오하는 편이기에 오히려 냉정히 대하는 편이다.
그래도 ‘처’조카는 다르다. 아무리 가차없고 냉정한 사람이라도 본인의 혈육이 아닌 사랑하는 처의 혈육이면 망설이는 법 아니겠나.
‘이래서 결혼은 하는 게 아니야.’
철저한 사람도 결혼을 하면 약점이 생기니 원. 내가 괜히 연애만 즐기는 게 아니지.
“찰스 씨, 고생했어요. 앉아서 쉬고 있으세요.”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 주인공이 조심스레 다가와 입을 열었다.
쉬라고?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저 아직 아무것도─”
“차 타느라 고생했잖아요. 원래 첫날에는 적응 기간이라 가만히 있는 게 맞아요.”
쿡쿡 웃음을 흘리는 처조카, 크리스티나의 모습에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실에는 그런 문화가 있었나.
‘환장하겠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아무래도 연구실 밖으로 나가는 건 생각보다 힘들겠다고.
아무래도 한동안은 선배가 만족할 때까지 연구실 토템으로만 지내야 할 것 같다고.
‘왜 이걸 이제야.’
부장님이 원망스러웠다. 이런 중요한 정보는 아카데미에 도착하기 전에 말해줘야지. 그러면 적절한 대처법이라도 생각했을 텐데.
업무가 늦어지면 부장님 탓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