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76)
나 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부하가 붙으면 좋은 점이 있다. 당연히 내가 직접 움직일 필요 없이 보고만 기다리면 된다는 것. 자동사냥 돌려놓고 밥 먹는 기분이라 편하기는 하다.
대신 그 편안한 장점은 치명적인 단점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가만히 보다 보면 ‘아니, 저기서 크툰을?’ 같은 말이 나올 정도의 사태가 터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직접 하기는 귀찮지만 훈수 본능이 치솟는다.
– 못하고 있습니다.
“뭐?”
그 딜레마 속에서 전 2과장, 현 찰스 씨는 기적의 답안을 도출했다. 상사가 보고 답답해 한다면 애초에 아무것도 안 보여주면 된다고.
원인이 없다면 결과도 없다. 정말 상상도 못한 답안이다. 이거 미친 새끼 아니야 진짜.
“지금까지 뭐하고 있었냐?”
2과장이 찰스로 진화, 지금 하는 꼬라지를 보면 퇴화한 지도 사흘이 흘렀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평소 2과장의 행동력을 보면 무언가 착수하고도 남았을 시간.
게다가 붉은 파도가 언제 덮칠지 모르는 판국이니 최대한 빨리 움직이는 게 좋다. 그런데 사흘을 허무하게 날렸다고?
‘대학원생으로 위장하더니.’
실속도 대학원생 수준으로 변한 건가. 어디까지 추락한 거냐, 미스터 찰스.
진지하게 그런 생각까지 들자 2과장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본인도 민망한 상황인 건 아는 모양이지.
– 크리스티나 양이 도저히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예상 외의 말에 잠시 생각이 멈추고 말았다.
“그 정도라고?”
– 예.
단호한 대답에 오히려 내가 민망해졌다. 크리스티나가 오랜만에 생긴 후배를 아끼는 건 알지만, 설마 2과장의 발목이 잡힐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진짜 후배도 아닌데.’
2과장은 찰스도 아니고, 보조 교사도 아니고, 심지어 영구적으로 연구실에 있을 사람도 아니다.
사실 나이도 크리스티나보다 2과장이 더 많다. 신분을 만들면서 나이도 겸사겸사 후려쳐서…
– 어쩝니까. 장관님 처조카라고 생각하니 막 나갈 수도 없고.
어딘가 해탈한 듯한 하소연에 괜히 턱만 매만졌다. 크리스티나에게 헛짓을 하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오히려 아무 짓도 하지 않는 지경이 돼버렸다.
“내가 따로 뺄 테니까 그때 움직여.”
잠깐의 고민 끝에 간단한 해결법을 내놨다. 저 녀석이 자력으로 못 나오면 내가 빼내야지.
아무리 그래도 감찰관이 찾는다는데 크리스티나가 ‘히히, 못가!’를 시전하지는 않을 테고. 굳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
– 알겠습니다.
내 말에 안심했는지 미묘했던 2과장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신기하네.’
늘 능글맞고 지랄견스러운 모습만 봐서 색다르다. 아무리 장관 처조카여도 저렇게 몰린다고?
단순히 혈통 차이가 아니라 상성 문제도 있나.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통신을 끊자마자 연구실에 찾아가 2과장을 픽업했다. 부장이 직접 움직이게 하다니, 건방진 과장 나부랭이가.
“죄송합니다. 잠시 할 말이 있어서.”
“하하, 괜찮습니다. 부담 가지지 마시고 아무 때나 데려가십시오.”
다행히 게르하르트는 별 반발 없이 2과장을 보내줬다. 어차피 내 부탁으로 넣은 인물이니 내가 잠시 데려가는 것 정도는 신경 쓰지 않는 모양.
대신 크리스티나가 안타까움 가득한 눈빛으로 2과장을 쳐다봤지만 애써 무시했다. 눈 앞에서 알을 뺏기는 어미 새의 모습 같다면 기분 탓일까.
“후우…”
연구실에서 멀어지자마자 2과장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힘들었냐?”
“가만히 있는 것도 고역입니다.”
넌지시 던진 질문에 치를 떨며 답하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차라리 일을 던지거나 짜증나게 굴면 받아치기라도 할 텐데, 선의로 가득하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흘 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 한 번 열린 2과장의 입은 닫힐 줄을 몰랐다.
일이 많았다면 당당히 끝내고 나갈 명분이라도 있었다든지, 개 같이 굴면 똑같이 되돌려 줄 자신도 있었다든지.
그런데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이면 황급히 달려와서 자리에 앉히는 건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나. 순간 자신이 조금만 움직이면 몸이 부러지는 설탕 인간인 줄 알았다고 한다.
‘과보호잖아.’
절절한 2과장의 증언을 듣다 보니 본능적으로 떠오른 단어. 아무리 생각해도 과보호다. 늦은 나이에 본 자식한테나 보여줄 법한 과보호.
…늦은 시기에 본 후배니 얼추 비슷한 범주기는 한가?
“특별히 빼줬으니 열심히 해라.”
이상한 곳으로 빠지려는 생각을 정리하고 2과장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상사가 수고한만큼 부하도 보답해야지.
“어차피 저 없었으면 부장님이 직접 뛰어야─”
“아가리.”
비겁하게 팩트로 승부하는 거 아니야.
사흘 만에 바깥 공기를 마신 것에 대한 기쁨인지 2과장은 빠르게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 맞나?’
사실 자동사냥이니 훈수니 했지만 2과장 업무는 얼핏 보면 뭘 하는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러니 어련히 잘할 거라 믿는 거지.
분명 겉으로는 여기저기 놀러다니는 것 같은데 정작 필요한 정보는 잘 주워오더라. 저게 진정한 정보원이구나, 싶기는 하다.
“2과는 감찰부가 아니라 정보부에 있어야 할 거 같아요.”
“그럼 너도 거기로 가야지. 1과는 뭐 다를 줄 아냐.”
그리고 감찰부에도 자체적인 정보망은 있어야 움직이기 편하다. 움직일 때마다 정보부에 협조 구하면 귀찮잖아.
자연스레 1과장의 말을 받아치며 앞에 있는 물을 들이켜마셨다. 냉수가 들어가니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다.
‘얘는 왜 매번 이 시간에.’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억누르며 슬쩍 1과장을 바라봤다. 매일 밤마다 숙소에 찾아와서 이게 무슨 일인지.
우려했던 것과 달리 1과장이 동아리실에 놀러오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얘가 나 귀찮게 할 생각은 없구나 싶어서 감동했었는데.
“부장님! 저 왔어요!”
어림도 없지. 동아리실 따위가 아니라 숙소로 왔다. 이 녀석은 내 예상에서 벗어나는 걸 즐기는 것 같다.
“돌아가.”
“이이잉, 너무해요! 기껏 놀러왔는데!”
“됐으니까 돌아가.”
애초에 한밤 중에 상사 숙소로 놀라오는 부하가 어디 있냐고. 상사가 부하한테 해도 끔찍한 짓인데. 이게 역괴롭힘인가 그런 거냐?
하지만 1과장의 칭얼거림을 이기지 못해서 결국 숙소에 들이고 말았다. 내 팔자도 참.
‘차라리 이게 낫나.’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1과장의 얼굴이 상대적으로 팔린 편이지만, 이왕이면 온 줄도 모르는 게 낫지 않나.
괜히 동아리실에 놀러 온다며 들쑤시고 다닐 바에는 이게 낫다. 그래, 이게 나은 거야…
“이거 더 먹어라.”
“와! 감사합니다!”
행복회로가 불탈 수준으로 돌리다가 옆에 뒀던 빵을 1과장 쪽으로 밀어줬다.
원래는 루이제가 1과장에게 줄 용도로 만들었는데, 정작 1과장이 동아리실로는 얼씬도 하지 않아서 내가 가지게 됐다.
‘잘 먹네.’
멍하니 1과장이 빵을 먹는 모습을 봤다. 옴뇸뇸이라는 의성어는 이럴 때 쓰는 건가.
***
무심하게 빵을 밀어주는 부장님의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예상한 반응이야.
‘싫으면 싫다고 하는 분이니.’
물론 말로만 싫다고 틱틱거리는 건 예외다. 몇 번 의례적으로 그러다가 결국 다 들어주시잖아. 정말 싫으면 말보다 행동으로 하는 분이니.
특이한 성격이다. 어차피 받아줄 거면서 밀어내고 보는 건 평범한 모습은 아니지.
‘나야 좋지만.’
그 모습이 사춘기 동생 같아서 귀여워. 이럴 때가 아니면 부장님이 연하인 걸 느낄 일도 없다고.
그래도 저 독특한 성격의 원인이 짐작되기에 순수히 기뻐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아마 6검분들 사건으로 생긴 성격일 테니.
소중하게 대한 사람들이 전부 떠나니 다른 인연을 만들기는 싫고, 그렇다고 완전히 남을 무시하기에는 그때의 추억이 그립고.
‘이런 건 몰라도 되는데.’
하는 일이 일이다 보니 쓸데없이 마음을 읽는 능력만 늘어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장님 마음은 훔쳐보고 싶지 않은데.
“왜 그래?”
너무 빤히 쳐다봤는지 부장님이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부장님도 드시라고요. 여기요!”
그 모습에 조금씩 가라앉고 있던 기분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부장님 앞에서는 우울할 수 없지. 유쾌한 동료의 모습을 보이는 게 최고니까.
“너 먹으라고 준 건데 그걸 도로─”
“여기요!”
쓸데없는 거절을 하려는 부장님 입에 빵을 들이밀자 부장님은 눈으로 욕을 하더니 순순히 입을 벌렸다.
“맛있죠?”
어쩐지 연인에게 먹여주는 기분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아직 공녀님도 이렇게 먹여주지는 못했을 걸? 부장님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이 해주는 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나처럼 2년을 울고 웃은 관계는 돼야 이렇게 놀 수 있는 거지, 응.
“빵이 거기서 거─”
“하나 더 드세요!”
낭만 없는 말을 하려는 이 나쁜 부장의 입. 빵으로 막아 버려야지.
‘좋다아아…’
이 상황이 그저 행복해서 계속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부장님과 둘이 있는 이 시간.
물론 업무 문제로 부장님과 둘이 있던 적은 많다. 감찰부 집무실에서도 그랬고, 저번 세번째 영광 때도 그랬고.
하지만 이렇게 빵을 나눠 먹으니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기는 것 같다.
‘덜 아프게 해줘야지.’
아카데미를 노린다는 붉은 파도, 이미 내부에 존재하는 스파이. 그것들이 아니었으면 이럴 기회도 없었겠지.
당연히 놓아주는 건 무리다. 그런 짓을 하면 부장님한테 미움을 받을 테니까.
그러니 최대한 덜 아프게, 고통 없이 보내주자. 마취약도 확실하게 챙겼으니 괜찮을 거야.
***
입을 열려고 하자마자 1과장이 계속 빵을 들이밀었다. 입을 다물면 열 때까지 짓눌렀다.
이거 식고문이야. 상사한테 대체 무슨 짓이야 이게.
‘맛이 없나?’
계속 짬처리 하는 걸 보니 합리적 의심마저 들었다. 아니, 그래도 얘 빵이면 어지간한 건 다 먹는 편인데?
…뭐, 배가 부르기라도 한가 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