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78)
정보부장과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사실 정보부장과 좋은 이유로 통신을 한 경우가 더 드물지만, 이번만큼은 통신구를 들자마자 숨이 멎어버렸다.
– 감찰부장. 아카데미는 무탈하오?
“아, 예.”
초췌한 안색에 이유 모를 분노로 불타고 있는 눈빛, 그리고 조금씩 양옆으로 휘청거리는 몸. 완벽하다. 완벽한 과로의 모습, 그 자체다.
그 처참하고 눈물겨운 모습에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뻔했다. 아카데미가 무탈하냐니, 지금 가장 무탈하지 못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쩌다 저런 꼴이.’
정보부장의 시선만 없었으면 바로 땅바닥을 치며 오열했을 거다. 저 사람의 디폴트가 과로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 그렇군. 다행이오.
진심으로 안도한 것처럼 작게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조용히 시선을 내리 깔았다.
저런 모습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두렵다. 어쩌면 저 모습이 내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기에.
‘보여줄 필요는 없는데.’
상상만 해도 아찔한 미래를 굳이 보여주는 저 친절함.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다.
아니, 어쩌면 정보부장도 젊은 시절에는 누군가에게 저런 가르침을 받은 걸지도 모른다. 이것이 제국에 이어지는 과로의 의지…
– 아카데미에도 문제가 있다면 꽤나 골치 아팠을 거요.
기괴한 망상은 과로에 찌든 한탄 덕분에 멈출 수 있었다.
“북방입니까?”
뒷목을 주무르는 정보부장의 모습에 슬쩍 입을 열었다. 부장급 되는 인사가 이렇게 처절하게 갈릴 사안이면 그거밖에 없다. 애초에 얼마 전부터 북방 문제로 소란스러웠고.
그리고 내 말에 정보부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아무래도 붉은 파도보다는 북방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 맞으니 말이오.
같은 생각이기에 딱히 반론은 하지 않았다. 귀찮고 거슬리지만 토벌이 가능한 반동분자와 제국을 끝장낼 뻔한 북방.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북방이니까.
단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제국, 정확히는 특무성의 시선이 너무 북방에 쏠렸다는 것. 이러면 내가 지원을 받기 영 힘들 텐데.
– 덕분에 묵광대를 따로 빼느라 고생 좀 했소.
‘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정보부장이 말을 이었다.
덤덤한, 하지만 그 내용은 덤덤하지 못한 말. 설마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묵광대를 보낼 줄은 몰랐다. 당연히 묵광대도 북방으로 팔려갔을 줄 알았지.
“배려에 감사합니다.”
– 이 정도 지원은 당연하지. 신경 쓰지 마시오.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그 속내는 ‘이 정도로 지원했으니 아무 잡음 없이 처리해라.’ 라는 건 나도 알고 정보부장도 아는 사실.
물론 잡음 없이 처리할 예정이다. 요란스럽게 진행되면 나도 피곤한데 미쳤다고 소란스럽게 처리할까.
게다가 과장만 셋이 붙었다. 이건 실패하려고 해도 실패할 수 없는 임무지, 아무렴.
“빠르게 돌려보내겠습니다.”
– 그거 참 고마운 말이군.
통신 내내 어두웠던 정보부장은 그제서야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2과장의 스파이 발견, 특무성의 묵광대 파견. 실로 오랜만에 겪는 겹경사에 절로 흐뭇해졌다.
“너무 과잉 전력 아니에요?”
반면 묵광대가 온다는 소식에 1과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4과장을 보니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굳이 묵광대까지 올 필요가 있냐는 반응.
“그것들 숫자가 얼마나 될 줄 알고. 전력은 과할수록 좋아.”
그런 1과장의 말에 단호히 대답했다. 솔직히 1과장 말처럼 묵광대는 붉은 파도 나부랭이에게 쓰기 과한 전력이기는 해.
그래도 그것들이 열이 올지, 백이 올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전력은 많고 강할수록 좋지 않겠냐.
“애초에 세 번째 영광 때도 왔었잖아.”
“그건 그렇네요.”
전례를 들먹이니 1과장도 납득했다. 이미 세번째 영광 토벌 때 묵광대가 왔던 이상, 누가 상대든 묵광대가 움직이는 게 딱히 이상하지는 않다. 이래서 전례가 중요한 거지.
“금방 끝나겠어요!”
히히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확실히 금방 끝나겠어.
묵광대는 4과로 불리던 시절부터 빠른 일처리를 자랑했다. 심지어 골치 아픈 일에 투입하면 알아서 척척 처리하기도 했고.
“이번에도 우리는 구경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겠다.”
게다가 세번째 영광 토벌 때는 아예 자기들끼리 처리하지 않았나. 나는 구경만 했고, 1과장은 뒤늦게 심문이나 하고.
붉은 파도도 지나가다가 묵광대에게 탈탈 털리는 게 아닌가 몰라. 이왕이면 그랬으면 좋겠는데.
“우리는 이라뇨. 저는 빼주십쇼.”
훌륭한 월급 루팡의 길을 걷는 것에 뿌듯해 하는 사이, 옆에서 피곤에 찌든 목소리가 들렸다.
슬쩍 시선을 돌리자 인상을 찌푸린 찰스─ 아니 2과장이 보였다.
“셋 중에서 저만 뼈 빠지게 구르고 있잖─”
“찰스 씨. 헛소리 말고 과자나 드세요.”
무언가 절절한 한탄을 시작하려던 2과장의 입에 쿠키가 틀어박혔다. 말이 길어질 것 같으니 1과장이 물리적으로 잘라낸 것.
“잘했죠?”
“잘했어.”
칭찬을 바라는 듯이 묻기에 원 따봉을 날려줬다. 이번에는 1과장이 잘한 게 맞다. 기껏 좋은 분위기인데 다 망칠 뻔했네.
그러나 집념과 악기로 가득한 2과장은 입 안에 쑤셔 넣어진 쿠키를 몇 번 씹더니 그대로 삼켜버렸다.
“저만 일하고 있잖습니까, 저만!”
그러고는 책상을 두드리며 언성을 높였다. 두드린다고 해봤자 손바닥으로 툭툭 치는 정도지만.
“일하다 보면 남들 놀 때 구를 수도 있는 거지. 관료 하루 이틀 해?”
사실 두드리든 언성을 높이든 딱히 와닿지 않는 울분이기에 심드렁한 대답이 나왔다.
서로 맡은 분야가 다르면 누군가가 쉴 때 누군가는 구르는 법이다. 공무원 생활도 제법 한 녀석이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몰라.
1과장도 동감하는지 옆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자 2과장은 거칠게 마른 세수를 했다.
“순전히 업무로 고생 중이면 이러지도 않습니다. 위장 신분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닙니까.”
“위장 때문에?”
순간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대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찰스가 저녁 이후에 복귀한다고 들었습니다.”
2과장을 빼내기 시작하고 며칠 후, 게르하르트와 대화를 나눴었다.
“아, 그렇습니다. 연구실은 밤낮을 가리지 않아서 저녁 이후라도 상관 없습니다.”
“다행이군요. 제가 낮에 붙잡고 있어서 제 역할을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었습니다.”
들어보니 보조 교사는 밤에도 열심히 구르는 것 같더라. 낮에도 밤에도 구르면 자유 시간이나 수면 시간은 제대로 챙기나 의문이지만.
아무튼 2과장이 보조 교사로서도 잘 지내는 것 같아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얘가 보조 교사처럼 지내야 남들이 보기에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
‘대체 어땠길래.’
그런데 이렇게 울분을 토할 정도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 싶다.
“에이, 그냥 연구실에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편한 거 아니에요?”
심각하게 고민에 빠진 나와 달리 1과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지 히죽이며 입을 열었다.
아닌가? 알면서도 저러는 건가?
“그건 그냥 감옥이야, 감옥.”
2과장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치를 떨며 겨우 대답했다.
그런데 감옥이라니, 말이 너무 심하네. 어떻게 연구실과 감옥을 비교하냐.
‘죄수들도 인권은 있는데.’
대학원생은 없잖아. 감옥이 이겼네.
하지만 서로 멱살과 머리끄덩이를 잡기 시작한 둘을 보니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
떨리는 손으로 어깨에 묶인 붕대를 풀어갔다.
북방에서 입은 상처는 이상할 정도로 회복이 늦었다. 아마 고위 주술사들이 사용하는 주술이겠지.
‘드디어.’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상처가 전부 나았다는 것이 중요할 뿐.
어깨에 흉터 하나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그 분에게 갈 수 있으니까.
– 생각보다 부상이 심하군. 회복되기 전까지는 쉬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북방에서 교전 중, 나를 포함한 대원 몇 명이 부상을 입었다. 중상은 아니지만 회복이 기이할 정도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 덕분에 묵광대 전체가 제도로 복귀했다.
고통은 없지만 미지로 가득한 북방의 주술이다. 뒤늦게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니 제도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잠시 숨을 돌리려고 했지만─
– 아무래도 아카데미 파견은 다른 부대를 찾아야겠군.
“…예?”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급해졌다. 아카데미 파견이라니. 누구를 만나러 가는 파견인지 너무나 뻔하지 않나.
다른 부대를 찾을 필요 없다고, 즉각 움직이겠다고 특무성 장관에게 강력히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괜히 무리했다가 영구적 부상으로 이어지면 치명적인 피해라는 이유로.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지, 특무성 전체가 북방에 몰두하고 있어 묵광대를 대신할 부대를 찾지 못했다. 오죽하면 회복 중인 내가 가장 여유로운 인력일까.
– …부상을 회복하면 파견하도록 하지. 하지만 너무 늦어지면 다른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거면 충분했다. 너무 늦어지면, 이라는 두루뭉술한 조건. 이미 특무성 장관은 묵광대를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니.
실제로 치료사의 예상보다 치료 기간이 길어졌지만 묵광대를 대신할 부대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마음이 놓였다. 부장님을 뵈러 가는 기회를 뺏기지 않았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다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해.”
그렇다면 상처를 회복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부장님은 우리가 아주 작은 상처를 입으셔도 걱정하셨으니까.
걱정스런 눈빛으로 상처 부위를 닦아주던 모습. 그 따뜻한 손길이 너무나 좋았지만 슬픈 눈빛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부장님.’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붕대를 꼭 쥐며 고개를 숙였다. 걱정에 물든 얼굴이 아닌 반가움에 가득한 그 분의 얼굴이 보고 싶다.
그리고 이제 볼 수 있다. 특무성 장관이 약속한대로 이제 움직일 수 있다.
‘…주인님.’
지금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