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79)
4과장에게서 연락이 온 건 그날 밤이었다.
– 내일 점심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아, 그래?”
그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가 뒤늦게 위화감을 느꼈다. 묵광대를 보냈다는 말을 들은 게 오늘이었는데, 내일 점심에 도착한다고?
제도에서 아카데미까지 거리는 마차로도 며칠이 걸릴 정도다. 심지어 아카데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텔레포트 마법진도 무시할 수 없는 거리.
‘다른 곳에 있었나?’
그래, 마침 근처에서 작전 중이다가 파견 명령을 듣고 움직인 걸 수도 있지. 아니면 오늘이 아니라 며칠 전에 출발한 걸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뭐가 그리 중요하겠나. 4과장과 묵광대가 오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거늘.
“다행이네. 빨리 만나면 나야 좋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좋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오라고 텔레포트 마법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로.
지금까지 나 홀로 1, 2과장을 통제하고 있던 상황.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놀라울 정도로 잠잠하지만, 그 둘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아닌가. 방심할 수 없는 노릇이지.
그 상황에서 4과장이 오면 겨우 한숨 돌릴 수 있다. 광인과 정상인의 비율이 맞으니까. 2대 1에서 2대 2로.
– 영광입니다.
그런 진심을 가득 담아 말하니 4과장은 고개를 숙였다.
얘가 아직도 감찰부 소속이었으면 보너스라도 얹어줄 텐데. 년 단위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아쉬워.
“그러면 저번에 만났던 숲에서 만날까?”
애써 쓰라린 속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개인으로 오는 게 아니라 단체로 몰려 오는 거니 아카데미에서 만나는 건 곤란하다. 시선이 어지간히 쏠려야지.
마침 세번째 영광 때 접선 장소로 쓰던 숲도 있으니 거기면 충분할 거다.
– 예,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점심 때 보자고.”
식사 시간이니 간단히 먹을 거라도 챙겨가야겠다. 얘네 아무래도 전투 식량으로 대충 때울 것 같은데.
루이제가 만든 쿠키─ 는 묵광대 전부가 먹기에 부족할 테니 상점에나 들려야겠다.
‘1과장도 데려가면 되겠네.’
어차피 지금은 할 일 없는 백수니 겸사겸사 끌고 가도 괜찮다. 2과장은 바쁘니 그냥 두고.
덕분에 방금 책상에 내려놨던 통신구를 다시 들었다. 내일 갑자기 데려가면 업무 외 활동이니 뭐니 난리를 칠 게 뻔하니.
– 부장님?
“어, 나야.”
게다가 이 녀석만 두고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게 영 불안하다.
다행히 1과장은 별 다른 반항 없이 따라왔다.
착한 과장이구나. 그 보답으로 내 짐을 나눠 들 수 있는 권한을 수여하겠다.
“저 이거 시키려고 부른 거죠?”
“응.”
옆에서 투덜거리는 1과장의 말에 간결히 답했다.
사실 그냥 두면 불안해서 잡아가는 거지만, 그렇게 말하면 발끈할 테니 그냥 짐꾼으로 데려가는 걸로 쳤다. 그게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이유겠지.
그래도 4과장에게 먹일 음식이라 그런지 1과장은 궁시렁거리면서도 탈주하지 않고 따라왔다.
‘얘는 대체.’
슬쩍 1과장을 보다가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1과장의 인간 관계는 매번 생각할 때마다 매번 새롭다.
황태자비하고는 친한 선배이지를 않나, 4과장하고도 친구로 지내지를 않나.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만 골라서 친해진 것 같은 수준.
그러고 보니 황태자비는 은발에 4과장은 회색 머리지. 얘는 백발이고.
‘머리로 통하는 게 있나?’
대충 비슷한 색깔끼리 뭉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아니, 그러면 3과장은…
“으, 왜 이리 많이 샀어요?”
순간 3과장이 알면 굉장히 서운해 할 방향으로 생각이 뻗었지만, 1과장의 적절한 투정에 멈출 수 있었다.
미안하다 3과장. 당분간 물 묻은 손으로 머리 내려치는 건 그만 할게.
“사람이 몇인데 이 정도는 사야지.”
“누가 보면 고아원에 기부하는 줄 알겠어요.”
그 말을 듣고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음식들을 확인했다. 내 양손에 하나씩, 1과장 양손에 하나씩. 총합 네 보따리.
많은 건가? 잘 모르겠네. 오히려 현장에서 구르는 애들한테 너무 적은 거 아닌가?
“한 끼로도 부족할 것 같은데.”
“와아…”
내 대답에 1과장은 감탄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왜 그래. 진짜 적은 것 같은데.
***
부장님이 묵광대를 4과 시절부터 아낀 건 알고 있다. 4과에 엮인 추억도 많으실 테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이해할 수 있는데…
‘총애의 방향이.’
뭔가 이상한 방향이다. 정말 아끼는 부하나 동료를 대하는 느낌이 아니다. 하다못해 도구를 대하는 방식조차 아니다. 마치 길거리에서 추위에 떠는 고아를 보는 시선이다.
저 가여운 고아가 어디 잘못되지는 않을까, 혹시 굶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건 아닐까, 대충 그런 감각.
‘고아 출신이 있기는 하지만.’
4과에는 고아 출신이 제법 많다. 페넬리아도 대토벌 전쟁으로 고아가 됐을 정도로. 애초에 부장님이 그런 애들만 주워 온 거잖아.
물론 그것도 옛날 얘기다. 지금은 어딜 가도 떵떵거릴 수 있는 준귀족 수준인데. 황제 폐하의 수족인 특무성 인원들이 빈곤하게 지내면 제국이 망할 때가 된 거지.
“2과장도 데려올 걸 그랬나?”
“그러면 분명 남아요.”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은 부장님의 모습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 양으로도 한 끼가 아니라 하루를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아마 4과 애들 성격을 생각하면 ‘부장님이 준 걸 남길 수는 없다!’ 면서 꾸역꾸역 먹을 테고.
그런데 지금보다 많이 가져간다? 그러면 그건 식고문의 영역이다. 분명 먹은 거 역류하는 애가 나올 거야.
‘걔들도 참 요령이 없어.’
정말 착실하고 눈치도 빠른 애들이다. 페넬리아를 닮았는지 무뚝뚝하고 진지하기만 한 게 흠이지만, 그래도 좋은 애들이다.
단지 너무 페넬리아를 닮아서 부장님을 향한 충성도도 광신 수준이라는 게 좀.
‘어디서 그런 애들만 모여서.’
진지하게 의문이다. 부장님이 그런 애들만 고른 건지, 아니면 부장님하고 지내다 보니 각성을 해버린 건지.
전자면 부장님 안목이 무서울 정도고 후자면 부장님의 매력이 무섭다. 둘 다 부장님 때문이기는 하네.
“역시 더 사야겠는─”
“가요, 애들 기다리겠네.”
발걸음을 돌리려는 부장님을 겨우 막을 수 있었다. 들 손도 없으면서 더 사서 뭐하려고.
‘할머니 같아.’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는 마음. 정작 먹는 사람과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나 과한 씀씀이.
어째서인지 익숙한 부장님에게서 더 익숙한 할머니의 향기가 났다…
***
일이 꼬였다.
심사숙고한 끝에 나온 결론이다. 꼬여도 대차게 꼬였다. 아니, 꼬인 수준이 아니라 파국이다.
– 새로운 동지가 생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인재가 되기에 부족함 없는 친구지요.
“하하, 그렇습니까?”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치솟았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그거면 됐다.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자유지 않나.
하지만 너무나 평온하게, 너무나 기쁘다는 듯이 말하는 에리코의 모습은 우습기 그지 없었다.
그래, 에리코의 말처럼 인재가 되기에 부족함 없는 친구기는 할 거다.
‘이 세상을 위한 인재지만.’
에리코가 생각하는 새로운 세상이 아닌 지금의 세상을 유지하는 인재인 게 유감스러울 뿐.
‘이 짓도 끝나겠군.’
올해 아카데미 신입생은 화려했다. 제국의 황자는 물론 타국의 왕자, 차기 성자까지 입학했으니 어찌 소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사실에 수뇌부는 열광했다. 더러운 신분제의 상징인 인물들이 모였으니 제대로 거사를 치를 수 있다면 우리의 의지를 대륙에 보일 수 있다나.
‘머저리들.’
그 단순한 생각에 기가 찼다. 그런 생각을 우리만 하겠나, 당연히 상대도 하지.
아니나 다를까, 입학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국이 거물을 보냈다. 감찰관이라는 명목으로 감찰부장을 보낸 것.
정말 상상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뒷목을 잡을 뻔했다. 그런데 수뇌부는 붉은 피로 적실 대상이 늘어났다는 반응만 보이고 별 다른 대처가 없었다.
‘하여간 현장만 고생이지.’
그 머저리 같은 대처에 나만 불안에 떨었다. 그 감찰부의 수장이 바로 옆에 있다. 언제 내 목을 뜯어버릴지 모르는 상대가 근처에 있다.
이 최악의 상황에 에리코는 공화주의를 전파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좋게 말하면 본인의 역할에 충실한 거고, 솔직하게 말하면 눈치가 없는 거다.
감찰부장이 있는 곳에서 공화주의를 전파? 진짜 미쳤나.
‘어떻게 지금까지 버텼지만…’
다행히 감찰부장은 타국 학생들을 감시하는 것에 집중한 건지 나나 에리코를 처리하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감찰부장이 온 이후로 숨을 죽이고 있어서 걸릴 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하루하루를 보냈으나─
– 그러고 보니 로빈 씨. 찰스 슈타너라는 친구가 있더군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보조 교사라고 합니다.
에리코의 말을 듣자마자 직감이 왔다.
‘끝났다.’
학기 중에 새로운 보조 교사? 올 수도 있다. 평소 보조 교사를 들이지 않았던 게르하르트의 보조 교사라는 것? 그럴 수도 있다. 하필 게르하르트가 최근 들어 감찰부장과 친밀한 것?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막 들어온 보조 교사가 뻔질나게 돌아다니는 것, 그 보조 교사가 에리코와 친해진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일들이 연달아 터지면 그건 우연이 아니다. 작정한 거다.
‘오래 버텼지.’
지금까지는 언제 감찰부가 들이닥칠까 전전긍긍했지만 막상 눈 앞에 다가오니 마음이 공허했다. 사람은 적당히 해탈해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더니 정말이네.
물론 이대로 죽을 생각은 없다.
‘아직 나는 안 들켰다.’
에리코와 달리 나는 정말, 정말 숨을 죽이고 살았다. 내 역할은 공작보다는 감시였으니까.
그렇다고 도망을 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 시기에 사라진다면 오히려 의심을 사는 행동이고, 칼을 뽑은 감찰부에게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난 사실 공화주의가 싫었어.”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까짓 전향하면 그만이다.
제국은 투항자에게 은근히 자비롭다. 내가 병신이라 헛된 꿈을 꿨다고, 황제 폐하의 품에 안기고 싶다고 대가리부터 박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
다행히 내가 가진 정보도 그럭저럭 쓸만하다. 먹고 살기 위해서 붉은 파도에 입단했다가 이 위치까지 오를 줄은 몰랐지.
‘시발.’
과거의 선택이 떠오르자 한탄이 절로 나왔다. 내가 미쳤지, 어지간히 미쳐서 이딴 머저리 집단에 투신하고.
같은 마을에 살던 애들이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는 정말 소름이 돋았다. 나보다 어려웠던 아이들은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고 저렇게 성공했는데.
‘이제와서 후회해봤자지.’
그저 그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에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