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8)
제 18화
제과 못하는 제과 동아리 – 4
하나가 앞서 나가는 것은 그 하나가 튀는 것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둘이 앞서 나가기 시작하면 전부가 움직여야 한다. 둘은 셋이 되고, 셋은 넷이 되어 거대한 선두 그룹이 생기는 것은 순식간이니까.
그렇기에 에리히에 이은 라테르의 질주는 루이제 쟁탈 레이스의 판도를 완전히 흔들었다.
어떻게든 유일한 취미 공유자라는 타이틀을 사수하려던 에리히는 결국 라테르를 막지 못했다. 제과 동아리 부원이 제과를 한다는 걸 막을 명분이 없기는 하지. 오히려 지금까지 막은 것으로도 에리히는 분발한 것이다. 지금까지 독점 효과를 누린 것으로 만족하자.
에리히와 라테르가 루이제의 양 옆을 차지하니 당연히 남은 셋도 제과에 참가했다. 제과 못하는 제과 동아리는 마침내 제과 하는 제과 동아리로 진화한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자괴감이 든다. 거창하게 판도를 뒤흔들 질주니, 진화니 했지만 결국 했어도 진즉에 했어야 할 일을 뒤늦게 시작한 거니까.
‘대륙의 미래가 밝구나…’
머저리 같은 놈들, 저런 것들이 대륙 주요 인사라니. 대륙의 미래가 3과장 머리 마냥 찬란히 빛나서 보이지도 않을 것 같다.
참담한 심정에 가만히 6인방을 응시하자 마침 접시를 옮기려고 몸을 돌린 라테르와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눈인사를 하기에 고개를 끄덕여 답해주니 그제서야 접시를 집고 다시 루이제의 곁으로 갔다. 지난번 대담 이후로 라테르는 계속 저렇게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본인도 많이 민망하겠지. 가족이 가족에게 조언을 하는 걸 멈춰달라는 부탁을 한 거니까. 당시 에리히가 유리한 상황이고, 그 상황이 지속되면 쟁탈전 지속 여부도 불투명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추한 모습이기는 했다.
라테르도 당시에는 에리히의 독주를 막는 게 절박한 일이라 몰랐겠지만, 마음이 진정되니 뒤늦게 깨달았겠지. 신박하게 추했던 자신의 모습을.
물론 난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일로 요주의 인물 하나가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이는 게 더 이득이니까. 상대의 흑역사를 대가로 얻은 작은 평화는 나에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
“정말 처음 하는 거 맞아?”
그 와중에 놀란 듯한 루이제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시선을 돌리니, 루이제가 타니안이 만든 쿠키를 감탄 섞인 눈으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접시에 플레이팅도 했는지 꽤 그럴 듯해 보이는 외견. 그런데 쿠키에 플레이팅이 필요한가? 그냥 적당히 통에 쌓아둬도 되지 않아?
“제가 감사하게도 손재주가 좋은 편입니다. 게다가 자매님이 알기 쉽게 가르쳐주시니, 금방 할 수 있겠더군요.”
그런 내 생각과는 별개로, 루이제의 관심을 받아서 그런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타니안은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차기 성자가 되는 게 확실하다고 평가 받는 유력 성자 후보치고는 소소한 행복이다.
아닌가, 신의 가르침 중에 검소하라는 말이 있는 걸 생각하면 저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미묘한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다른 부원들의 쿠키도 하나 둘 접시에 담긴채 탁자에 올려졌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타니안이 잘 만들기는 했네. 겉으로는 루이제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것이, 재능?
다른 놈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타니안의 쿠키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그 모습이 쿠키에 질투하는 것 같아 좀 그렇지만, 그래도 아직 사람을 미워하는 단계는 아닌 것 같아 이 고문은 만족스럽다. 사람끼리 싸우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이제 먹어보자!”
루이제가 여섯이 만든 여섯 가지 쿠키를 한 곳에 모으며 말했다. 그래, 이게 옳게 된 동아리지. 지금까지는 동아리가 아니라 루이제 원맨쇼 무임승차단이었고.
부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쿠키로 손을 뻗는 동안 나는 조금 물러나 지켜보기만 했다. 내가 먹을 것들은 선반 위에 고이 잠들어 있으니 굳이 끼지 않아도 된다. 루이제가 워낙 손이 커야 말이지. 먹는 속도보다 채워지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을 정도로.
‘아니, 이 새끼들아.’
그리고 동아리 창설 이후로 바닥을 보인 적 없는 내 전용 쿠키통은 오늘 다시 가득 찰 예정이다. 여섯 쿠키 중 루이제의 쿠키만 줄어들지 않는다.
예의상 루이제의 쿠키를 몇 개 먹던 놈들이 어느 순간 약속이나 한 듯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잘못 봤겠거니 했는데, 다른 접시들이 점점 비워지는 것을 보니 제대로 본 게 맞다. 미식 동아리는 여기가 아닌데 왜 여기서 미식을 챙기는 건지.
괜히 내가 민망해져서 슬쩍 루이제를 보니, 5인방과 얘기하느라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다행이다. 배신감과 수치심에 치를 떨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나 먹으라고 남겨 준 거냐? 고문을 이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군.”
그래도 계속 방치하면 루이제가 눈치 챌 수 있으니 슬쩍 다가가 접시째로 챙겼다. 오늘은 평소보다 양이 좀, 많구나… 오늘은 이것만 먹다 배 차겠네.
서로 눈치를 보며 피하던 접시를 수거해가니, 나를 보는 다섯의 눈빛이 절벽에서 떨어지기 직전 손을 잡아준 사람을 보는 눈빛이 되었다. 루이제도 내가 갑자기 본인의 쿠키를 가져가자 활짝 웃으며 기뻐했고.
“오라버니가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더 많이 만들었어요!”
응, 그건 보면 알 것 같다…
“형제님께서는 마음이 따뜻하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지?”
대충 동아리 시간도 끝나서 동아리실이 고요해질 무렵. 라테르에 이어 이번에는 타니안이 남아 나에게 말을 걸었다. 심지어 나와는 거리가 먼 기괴한 소리와 함께.
“오늘도 루이제 자매님을 위해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시지 않았습니까.”
빙긋 웃는 타니안의 말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무슨 배려를 했는지 모르겠어서? 그걸 모른다면 머저리고. 난 아직 지능 퇴화범이 아니다.
“그게 배려인 줄 알면 같이 먹지 그랬나?”
개자식아, 알면서 안 하는 게 제일 나빠.
모두가 외면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접시에 담긴 쿠키를 다 먹고 나서야 접시를 내려 놓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더 만들었다는 애가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데 어떻게 도중에 내려.
아직도 입 안에서 느껴지는 단맛에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자 타니안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제님. 노력으로도 힘든 것이 있더군요. 앞으로 더욱 유의하겠습니다.”
“그거 정말 기대되는군.”
“하하. 대신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괜찮다면 형제님의 앞길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널부러진 접시를 정리하던 내 몸이 절로 멈췄다.
“앞길?”
“형제님이 괜찮으시다면 말이죠.”
타니안이 말하는 앞길은 굳이 비유하자면 사주팔자 같은 것이다. 대신 신과 신성력이 존재하는 세계인만큼 그 신뢰도가 빙의 전 세계에 비해 상당히 높은 사주팔자. 신앙심과 신성력이 뛰어난 소수의 사제만 가능한 것인지라 지금까지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부탁하지.”
그런데 차기 성자가 봐주는 앞길? 쿠키가 아니라 밀가루를 생으로 퍼먹어도 무조건 이득이다. 내 꼬일대로 꼬인 관운과 행운에 대한 작은 실마리라도 찾을 기회니까.
내 태도가 변하는 것을 본 타니안이 다시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표정을 진중하게 굳혔다. 앞길을 봐준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가, 의무에 충실한 전문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신뢰도가 상승했다. 미안해, 지금까지 능글맞은 놈이라 생각해서.
“사실 형제님을 처음 봤을 때부터 형제님의 앞길이 보였습니다. 간혹 눈에 담기만 해도 그 사람의 앞길이 보이는 경우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군.”
“그리고 그런 경우는 축복으로도 간섭할 수 없는 앞길입니다.”
“…….”
뭐야, 불안하게 왜 그래.
쎄한 느낌에 말 없이 타니안을 바라보자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을 이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지만, 뭘 먼저 들어도 상관 없으니 차례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관없다. 경청하도록 하지.”
“형제님에게 불가능한 시련이 찾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좋은 소식이군.”
지금도 간혹 숨을 쉬기 벅찬데 재앙 같은 시련마저 찾아오면 정말 미쳤을지도 모른다. 타니안의 말에 작은 희망이나마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대신 불가능에 가까운 시련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 시발.
시간차 희망 고문에 절로 튀어나올 뻔한 욕을 겨우 목 끝에서 멈춰 세웠다. 타니안도 그런 말을 한 것이 조금은 미안한지, 내가 뭐라고 항의하기 전에 알아서 말을 이어갔다.
“말씀을 드릴까 말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축복도 소용이 없으니 듣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애초에 앞길이라는 것이 정확한 것은 아니니까요. 신께서 점지하신 사람의 일을 어찌 피조물인 저희가 꿰뚫어보겠습니까? 괜한 얘기로 마음을 어지럽힐 것 같아서 함구하고 있었습니다.”
옳은 생각이었다. 지금 내 마음은 굉장히 어지러워졌으니.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나 대신에 타니안이 머쓱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야, 그만해. 무슨 말을 들을지 이제 무서워.
“다시 말씀드리지만 앞길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앞길을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제대로 본 앞길임은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실제로 전대 교황이나 추기경이 본 앞길이 틀렸다는 기록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가.”
그거 정말 위안이 되네…
타니안 마저 나가 다시 나 홀로 남은 동아리실.
“설령 형제님에게 무거운 시련이 찾아와도, 형제님의 능력으로는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이니 좌절하지 말고 나아가십시오.”
타니안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사실 앞길에 대한 말보다는 이 응원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지금까지 말하고는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이제서야 말했다나.
그런데 앞길이 틀릴 수도 있다며. 본 것보다 최악이라 정말 불가능한 시련이 찾아올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러면 내가 좌절하지 않는다고 이겨낼 수 있나?
한숨이 나왔다. 오늘도 평범하고 무사히 넘어갈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성자 후보에게 ‘님 팔자 개같이 꼬임. 좀 힘들겠지만 방법이 없네. 유감.’ 같은 소리를 들어버렸다.
물론 타니안의 말처럼 사람이 보는 앞길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그냥 빙의 전 인생에서 점쟁이에게 조금 기분 나쁜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그 점쟁이가 노스트라다무스네. 망할.
다시 한숨을 내쉴 뻔하다가 입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언제는 내 팔자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당연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애초에 기대를 하니 실망을 하는 법인데 난 대체 뭘 기대 하고 있었을까.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나는 숙소로 돌아가 하루를 마무리 지었고─
“감찰관님. 그…”
다음날 동아리실에 교감이 찾아오자, 타니안의 말이 바로 찾아올 일거리를 암시하는 복선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올린 후기에 독자님들이 생각보다 큰 관심을 보여주셔서 놀랐습니다… 뼈치킨 사태는 바로 가게와 연락하여 양호한 마무리를 지었으니 독자님들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깨달음은 깨달음이고, 돈은 돈이니까요.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뭷뷃님! _993님! 후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