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83)
머리를 잃고 쓰러지는 우두머리를 보자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본능적인 빡침 때문에 주먹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니, 주먹을 쓴 것까지는 당연히 문제없다. 심문 과정에서 약간의 물리가 동원되는 건 당연하니까. 그래, 약간은.
‘시발.’
문제는 너무 척수반사적인 주먹질이어서 힘 조절에 실패했다. 가장 중요한 포로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단장, 일어나…! 신분제 사회에서 공화주의를 외친 기개를 보여줘! 머리 하나 없어도 살아가는 의지 정도는 보여!
“프흐…, 푸흐읍…”
옆에서 바람 새어 나오는 소리가 들리자 시선을 돌리니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1과장이 보였다.
얼굴을 빨갛게 물들고 입술을 깨물고 있는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 없을 정도. 툭 건들면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대성통곡을 할 기세였다.
‘망할.’
그래도 대놓고 비웃지 않는 건 마지막 배려냐.
착잡한 심정과 함께 4과장을 보자 딱딱하게 굳은 상태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아, 4과장은 대항전 사건 모르는구나. 그때 다른 작전 중이라 소식을 못 들었나 보네.
‘어쩐지 연락이 없더라.’
내 관련이면 나도 기억 못하는 기념일까지 찾아 안부 문자를 보내는 4과장이다. 1과장도 두부 운운하는 판국에 아무 연락이 없어서 의아하긴 했는데.
아무튼 아무것도 모르던 4과장은 갑자기 분노조절장애 상태가 된 내 모습에 움츠러들었다. 미안하다, 세번째 영광 때도 이래서 많이 놀랐겠네.
“…1과장.”
“녜, 녜헤에… 부자앙─ 니히힘…!”
결국 참지 못하고 거하게 웃음을 터뜨린 1과장은 쪼그려 앉아 끅끅거렸다.
내가 생각해도 레전드기는 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붉은 파도의 단장한테 ‘우리보다 님이 더 공화주의스러운 듯 ㅎㅎ’ 같은 소리를 들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일단 내가 알기로는 있을 수 없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가 없다. 있다면 도대체 뭐하는 또라이인지 얼굴이라도 보고 싶을 정도.
‘그게 나네.’
와, 정말 상상도 못한 정체.
“에르제베트.”
하지만 그런 배경을 모르는 4과장은 1과장의 모습에 사색이 돼서 1과장의 어깨를 흔들었다. 마치 지금 웃음이 나오냐는 듯이. 근처에 있는 묵광대원들이 혼란 상태에 빠진 건 덤이었다.
그래, 예상치 못한 흑역사 발굴에 꼭지가 돌기는 했지. 그래도 묵광대가 걱정할 정도로 화가 난 건 당연히 아니다.
적당히 설명만 하면 이 오해를 풀기에 충분하지만, 도저히 내 입으로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걸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해.
“나 먼저 갈 테니까 애들한테 설명해 줘.”
결국 내가 선택한 건 도주였다.
자연스레 몸을 돌리자 황급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2과장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부, 부장님.”
“먼저 간다.”
식은땀을 흘리는 2과장에게 손을 휘저으며 아카데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과장과 2과장의 우렁찬 웃음소리가 들렸다.
시발.
아프다. 몸은 멀쩡하지만 멘탈이 너무 아프다.
붉은 파도의 목적이 최대한 많은 푸른 피에게 엿을 먹이는 거라면 나름 성공한 것 같다. 2과장에 이어 나도 마음을 다쳤으니까.
“부장님. 이제 붉은 파도 단장은 부장님이에요?”
닥쳐.
“대단하십니다. 감찰부장 겸 붉은 파도 단장이라니, 이거 역사에 길이 길이 남겠습니다?”
닥치라고.
양 옆에서 낄낄거리는 두 과장의 정신 공격에 더 미칠 것 같았다. 제발 다 꺼져, 이 빌어먹을 것들아.
– 부장님, 괜찮으십니까?
지금만큼은 걱정스레 물어보는 4과장의 말조차 가슴에 닿지 않는다.
아마 4과장은 위로를 위해 연락을 한 거겠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4과장 연락을 무시할 수도 없고.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애써 웃음을 지으며 4과장을 안심시켰다.
그래도 통신구로는 시청각 정보만 전달돼서 다행이야. 적어도 통신구를 쥔 손이 떨리는 건 전달되지 않을 테니까.
‘빌어먹을.’
아까 전까지는 숲에 남은 로빈을 향한 분노까지 솟았었다. 내가 그딴 말을 들은 것도 따지고 보면 다 로빈 때문 아닌가. 왜 그런 쓸데없는 걸 보고해서.
하지만 겨우 참을 수 있었다. 당시 로빈은 붉은 파도의 스파이. 스파이가 잠입 장소의 대형 사건에 대해 보고하는 건 당연하지.
애초에 못 참으면 어쩌겠나. 로빈도 ㅗ빈으로 만들 수는 없잖아.
“그런데 너 왜 여기 있냐?”
뒤늦게 이상함을 느끼고 1과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2과장이야 그렇다 쳐도, 1과장은 한창 심문을 하고 있어야 한다. 얘가 기껏 가진 장난감을 포기하고 돌아올 애가 아닌데?
“너무 웃어서 손이 떨려요. 이런 상태로 작업하면 몇 명 더 죽을 걸요?”
놀림이 가득한 발언이었지만 차마 꾸짖을 수 없었다. 의도는 놀림이지만 설득력은 넘쳤으니까.
실제로 1과장은 작은 변수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판을 접는 경우가 잦았다.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한 작업이라 무리하면 곤란하다나?
그 변수를 내가 줬다는 게 실로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 생포한 붉은 파도는 특무성이 수거하기로 했습니다. 곧 마탑의 마법사들이 올 예정입니다.
내 한숨에 4과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 어차피 여기서 심문할 것도 아니면 빨리 제도로 보내는 게 낫지.
“부장님도 같이 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4과장의 말을 들은 2과장이 피식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번 일로 징계 받으실 텐데, 편하게 마법사랑 같이 가시죠. 시말서만 쓰고 돌아오면 되지 않습니까.”
그 말과 함께 웃음을 터뜨린 2과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표정을 굳혔다. 중요한 걸 뒤늦게 떠올린 사람처럼.
대충 뭘 떠올렸는지 알 것 같아 헛웃음을 흘렸다. 사람이 극한에 몰리면 분노도 분노지만 허탈감도 장난 아니게 생기더라.
“저기, 부장님?”
“왜.”
“제가 정말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여쭙는 건데, 지금 몇 번째 시말서입니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 침묵에 2과장도, 옆에 있던 1과장도, 통신구 너머의 4과장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만이 자리 잡은 서글픈 새벽이었다.
일단 붉은 파도와 함께 제도로 압송되는 미친 상황은 펼쳐지지 않았다. 정식으로 소환 명령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나도 내 발로 가고 싶지도 않았고.
물론 어차피 맞을 매는 먼저 맞는 게 좋다는 건 알지만, 가면 구금이라는 것도 아는데 먼저 갈 놈이 어디 있겠냐. 조금이라도 사회 공기를 맡고 싶어하지.
– 특무성에는… 제가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최대한 소환 명령을 늦추기 위해 붉은 파도 단장의 사망 사유는 4과장이 보고하는 걸로 했다. 내가 보고하면 바로 제도로 튀어오라는 답변이 돌아올 테니.
4과장은 차라리 단장이 교전 중 사망하는 걸로 처리하자고 했지만, 그냥 사실대로 말하라고 했다.
‘괜히 숨겨봤자 일만 커지지.’
공무원 생활을 하며 느낀 게 있다. 아무리 숨기려는 사건도 결국은 들킨다는 것. 완벽한 가라도 결국 가라인 법이니 그때 가서 괘씸죄도 먹기 전에 사실대로 밝히는 게 맞다.
4과장이 시체 대장을 죽였던 사건도 적당히 처리한 거지, 완전히 숨긴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 밝히는 게 맞다. 정말 슬프지만 이렇게 하는 게 맞아.
‘시발.’
분명 맞다는 걸 알면서 왜 이리 슬픈지 모르겠어.
“에리코 트리안과 로빈은 제명했습니다.”
마음을 갉아먹는 서글픔은 교장의 목소리 덕에 털어낼 수 있었다.
“설마 교직원 중에 붉은 파도가 있을 줄은 몰랐군요.”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워낙 은밀한 것들 아닙니까.”
어이가 없는지 한숨을 내쉬는 교장에게 작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교장 입장에서는 자신이 담당하는 아카데미, 그것도 3년만 스쳐가는 학생이 아닌 교직원이 붉은 파도라는 것에 답답했을 거다.
그래도 그게 어디 교장 때문이겠나. 붉은 파도에 가입한 미친 것들 잘못이지.
“그리고 로빈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폐하의 품에 안기지 않았습니까. 스스로 붉은 파도에 입단했던 자가 아카데미에서 마음을 고쳐 먹은 겁니다.”
로빈을 예로 들자 조금 마음이 풀렸는지 교장의 안색이 밝아졌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아카데미 생활에 감화된 역적이 다시 충신으로 탈바꿈한 거 아닌가. 제법 괜찮은 미담이다.
“잠시 자리를 비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몇 마디 더 주고 받다가 본론을 꺼냈다.
“자리를 비우다니요?”
“수습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 말에 교장이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
겉으로 이번 사태는 무탈하게 끝났다. 내부의 스파이가 소동을 일으키기 전에 적발했고, 외부에서 들이닥칠 붉은 파도도 요격에 성공했다. 이 이상 좋을 수 없는 완벽한 승리.
그런데 수습해야 할 일? 그런 게 있나?
‘있지.’
이번 일은 내가 감방에 들어가야 끝난다. 정말 멋진 엔딩이 아닐 수 없네.
그래도 차마 교장에게 ‘포로를 죽여서 징계를 받을 것 같습니다. 이제 구금될 차례라 당분간 제도에 있을 것 같네요.’ 같은 말을 당당히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니 부질없는 희망이 생기더라. 혹시 황태자가 봐주지 않을까? 단장은 죽었지만 상급 간부들은 멀쩡한데, 그냥 넘어가지 않을까?
‘아직 모른다.’
내가 징계를 받을지 아닐지는 까봐야 안다. 교장에게 먼저 말했다가 황태자가 자비를 베풀면 서로 어색하지 않나.
난 믿는다. 황태자가 드넓은 관용과 자비의 소유자라고 믿는다.
제발, 황태자 전하… 그동안의 공로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 감찰부장의 제국을 향한 헌신과 노고는 제국의 홍복이나, 간혹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감찰부장에게 직접 보고를 받고자 하니 제도로 복귀하라. ]교장과의 면담을 마친 직후 통신구로 날아온 문자.
다행히 저번 류티스 폭행 사건 때보다는 온화한 소환 명령이다.
제발, 제발 한 번만 물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