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84)
올해도 아니고 이번 학기에만 황태자의 소환 명령을 두 번이나 받았다. 세상에 나 같은 공무원이 더 있을까.
이번에도 황태자는 오는 길 편안하라고 텔레포트 마법사를 보내줬다. 역시 우리 전하야, 신하들이 피곤하지는 않을까 세심하게 보살피시지. 실로 성군이시다.
그 배려의 아주 조금만이라도 내 징계를 정할 때 사용되면 좋겠다. 진심으로.
“황태자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황태자궁을 지키는 기사의 한 마디. 평소처럼 엄격 근엄 진지한 어투였지만 기사의 얼굴에 잠깐 스쳐 지나간 감정을 보고 말았다.
넌 도대체 뭐하는 새끼길래 또 불려왔냐는 듯한 눈빛. 물론 내 피해망상일 수도 있지만, 일단 의아함이 조금 담긴 건 확실하다.
이해한다. 장관이 아닌 이상 어지간한 공무원들은 1년에 한 번, 그것도 멀리서나마 보는 게 전부인 황태자를 동네 이웃처럼 보고 있으니.
‘돌아버리겠네.’
피해망상 상태에 빠지니 모든 시선들이 따갑게 느껴졌다. 지나가는 시종, 시녀, 호위병이 전부 ‘저 사람이 붉은 파도 차기 단장이래, 깔깔!’ 이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어지럽다. 이대로 어디 벽 같은 곳에 머리를 들이박고 기절하고 싶을 정도로.
“오셨습니까.”
“그래.”
그렇게 마침내 도착한 황태자의 집무실.
그리고 내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무슨 용무인지도 묻지 않고 인사를 하는 호위기사의 모습에 조금 더 씁쓸해졌다. 내가 불려오는 건 신기한 일도 아니구나.
– 똑똑
“전하. 감찰부장입니다.”
“들어오라고 하게.”
기분 탓인가. 황태자의 목소리는 묘하게 힘이 빠져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황태자의 허락이 떨어지자 호위기사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길을 열어줬다. 들어가도 된다는 목례와 함께.
저번에는 여기에 들어갔다가 근신을 먹었지.
이번에는 뭘 먹고 나올까. 정말 궁금하네…
집무실에는 침묵만 맴돌았다. 업무를 보던 황태자는 내가 들어오자 자리에 앉으라는 말만 하고 한참이나 서류를 처리했다.
평소와 같은 은근한 비웃음도, 분노도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하는 모습.
‘저게 더 무서워.’
차라리 시원하게 욕이라도 박으면 ‘아, 망했구나.’ 하고 마음을 놓기라도 할 텐데 이건 상상도 못한 반응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기를 모으는 건지.
오죽하면 지금이라도 먼저 무릎을 꿇을까, 라는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기다리게 했군.”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즈음, 황태자가 고개를 들어 이쪽을 쳐다봤다.
“아닙니다, 전하. 전하께서 공사가 다망하심을 아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을 줄줄이 뱉었다. 제3자가 보면 흉할 정도로 비굴한 모습이지만 어쩔 수 없다.
다른 것도 아니고 구금이 걸린 문제 아닌가.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황태자가 바쁠 때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굽신거려도 모자라다. 황태자가 격노해서 휘두른 주먹에 맞아도 ‘그 자리에 서있어서 죄송합니다!’ 라고 외쳐야 한다.
“감찰부장의 충심은 실로 모범이 될만하다. 그 충심을 그저 말이 아닌 행동으로도 보이기에 더욱 갸륵하지.”
= 바쁜 줄 아는 새끼가 또 일을 터뜨려?
황태자의 은은한 분노 표출에 조용히 시선을 내리 깔았다. 아니, 나라고 거기서 그 새끼가 ‘님 한 공화주의 하시네요.’ 같은 소리를 할 줄 알았겠냐고.
그런 내 모습을 보던 황태자는 상석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붉은 파도는 천명을 뒤흔드려는 역도들이지. 그것들을 소탕한 것에 대해 폐하께서도 흡족해하셨네.”
“황송하옵니다.”
듣기 좋은 말이지만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보통 좋은 말부터 시작하면 그 뒤에는 나쁜 말이 이어진다는 뜻이니.
“허나 그 과정에서 조금 의아한 일이 있었어.”
지금처럼 말이다.
골치 아프다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린 황태자는 턱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분명 붉은 파도의 단장도 생포한 걸로 알고 있네. 작전에 투입된 묵광대와 다른 포로들의 증언도 그렇고, 단장의 시신을 보니 포박된 흔적이 남아 있더군.”
그래, 그 포박된 흔적이 문제다. 내가 괜히 순순히 자백했겠나. 예전에도 저거 때문에 들킨 적이 있어서 그랬지.
재갈이 물린 흔적─ 은 머리가 사라졌으니 넘어가도, 몸이 밧줄로 묶인 자국이나 바닥에 꿇려진 흔적은 의복에 남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그 흔적들을 지우면 지운대로 티가 나서 들키고. 옛날에는 그걸 몰랐어.
“예, 전하. 단장도 생포했지만 심문 중 사살하고 말았습니다.”
순순한 인정에 황태자는 미간만 다시 찌푸렸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내가 포로를 ㅗ로로 만든 건 황태자도 아는 사실. 이 과정은 그저 책임을 공식화하는 자리일 뿐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랬을 거라 생각하지 않네. 그럴 이유가 있었겠지.”
잠깐 침묵하던 황태자는 긍정적인 발언으로 말을 이었지만, 아직 방심할 수 없다. 그동안의 경험상 저렇게 말하고 갑자기 드리프트를 할 수도 있다.
“애초에 수뇌부 전원을 잡지 않았나. 단장이 아쉽긴 하나, 그렇게 절실한 포로도 아니야.”
그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맞는 말이다. 이미 수뇌부 전원을 생포하여 붉은 파도의 붕괴는 확정이고, 다른 상급 간부들도 있으니 단장이 없어도 정보를 뽑아낼 주체는 많다.
“감찰부장의 공을 생각하면 이번 일은 과오라고 할 수도 없네.”
연이어 들리는 긍정적 신호에 점점 희망이 차올랐다. 설마, 설마 봐주는 건가? 드리프트를 위한 밑작업이 아니라 정말로 용서해주는 건가?
내 기대에 부응하듯 황태자는 연이은 발언 속에서도 부정적인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만약 웃는 얼굴로 저랬다면 오히려 불안했겠지만, 피곤과 귀찮음에 찌든 얼굴로 공치사를 하니 오히려 설득력 있었다.
내가 트롤링을 한 건 맞지만 공훈을 생각해서 퉁치겠다는 표정이니까. 정말 딱 한 번 봐주겠다는 모습이니까.
“그래도 앞으로는 자제하게. 교전 중 사살은 당연한 일이나, 포로를 적법한 절차 없이 사살하는 건 곤란하지 않나.”
“예, 전하. 명심하겠습니다.”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하는 황태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살았다.’
다행히 구두 경고로 끝났다. 시말서를 쓸 필요가 없으니 구금될 필요도 없다.
그래, 솔직히 역적 새끼 좀 죽인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 어차피 죽일 놈을 조금 일찍 죽인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역시 위대하고 현명하며 자비로우신 황태자 전하시다. 사소한 것에 묶이지 않고 열린 마인드로 일을 처리하셨잖아.
‘그냥 오길 잘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카데미에는 자리를 비운다고만 했다. 만약 구금된다는 말을 했다가 그냥 돌아오면 서로 어색하고 민망하지.
훌륭한 판단이었다. 나는 황태자 전하의 관용을 믿고 멋진 판단을 한─
“닷새만 들어가 있게.”
거…
“예?”
뭐지, 잘못 들었나?
***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부터 느껴지는 은은한 두통이 거슬리기 그지 없었다.
“예?”
그 두통의 원인이 눈 앞에 있어서 그런지 더욱 심해졌다.
‘사고를 쳐도 이렇게 빨리.’
근신 처분을 받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런 일을 터뜨리나. 이런 속도면 오히려 경이로울 지경이다. 사실 감찰부장은 누구보다 징계를 사랑하는 관료가 아닐까?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 사태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징계 역사의 신기록을 쓴 재무성 장관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21살에 구금이라.’
헛웃음이 나올 것 같다. 19살 부장이 더 신기할까, 21살에 구금되는 게 더 신기할까. 쉽게 고를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이다.
“전하, 닷새라고 하시면…?”
“구금.”
조심스레 입을 여는 감찰부장에게 단호히 말했다.
사실 이번 사태 자체는 가볍고도 가벼운 일이다. 아까 말한 것처럼 다른 수뇌부는 전원 생포하기도 했고, 붉은 파도를 토벌한 공로를 생각하면 단장을 사살한 건 별일 아니다. 고의로 놓아준 것도 아니잖나.
포로를 무단으로 사살했다는 것. 딱 그것만이 감찰부장을 질책할 명분이다. 그리고 그건 시말서 작성 정도로 끝낼 수 있는 문제지만─
‘쌓인 게 많으니.’
사안 자체는 시말서 수준이다. 하지만 감찰부장은 이미 너무 많은 시말서를 작성했고, 지금 쓸 시말서는 구금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되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징계의 최소 단위가 시말서인 이상 구금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시말서조차 면제하면 제국이 포로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인다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저, 전하. 그럼 닷새 동안 아카데미는─”
“어쩌겠나. 교장을 믿고 맡겨야지.”
격하게 떨리기 시작한 감찰부장의 동공을 보자 다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나도 감찰부장을 아카데미 밖으로 돌리기는 거북하다.
그렇기에 이전에는 감찰부장에게 아카데미 근신 처분을 내리면서까지 아카데미에 머물게 했다. 하지만 구금은 그런 편법도 통하지 않는다.
“죄를 지은 관료는 제도의 지하에 가두어 반성케 하라.”
선대 황제가 확립한 제도는 건드리기 어려운 법. 심지어 구금에 관한 것은 초대 황제이신 에이만카 대제께서 남기신 법이다.
하필 정확히 제도의 지하에 가두라고 하셔서 ‘아카데미 구금’ 같은 방식은 불가능하다.
‘방법이 없지.’
아카데미로 천도를 하거나, 아카데미를 제도 지하에 새로 만드는 미친 방법이 아닌 이상 방법이 없다.
결국 답은 하나다. 그냥 감찰부장을 감옥에 집어 넣는 것.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말게. 감찰부장의 죄가 가볍다는 건 잘 아니까.”
그래서 특별히 1인실에 가장 넓은 곳으로 준비했다. 가구도 좋은 것들로 바꾸라고 했으니 지내는데 불편함은 없을 거다.
물론 내 위로에도 감찰부장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게 왜 포로를 죽여서 이 사단을 만들어.
***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어떻게 구금까지 갑니까? 시말서로만 구금되려면 마흔 번은 써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과거, 장관이 구금당했을 때 진심을 다하여 놀렸던 그 발언.
업보다. 업보가 쌓였던 게 분명하다.
‘미치겠네.’
아무리 업보여도 막상 눈 앞에 아른거리니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항변하기도 했지만.
“전하, 아무리 그래도 구금은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이번 사건에 대한 처벌은 시말서일세.”
그런데 그 시말서를 수십 개나 쌓은 건 너 아니냐, 라는 발언에 차마 반박할 수 없다.
그렇지. 내가 자초한 거기는 하지…
‘어쩌지?’
구금이 확정되니 애써 생각하지 않았던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닷새 동안 자리를 비워야 할 아카데미? 소식을 들을 과장들의 폭소? 공중제비를 돌면서 티배깅을 위해 찾아올 장관?
그것보다 심각하다.
“칼, 무슨 일이 있어도 저는 칼 편이에요.”
내가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을 마르게타다.
‘시발.’
울먹이는 마르게타의 모습을 상상하니 죄악감이 가슴을 장악했다.
미치겠네, 이거 진짜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