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85)
서류를 처리하는 사이에 몇 번이나 문을 흘끔거렸다. 몇 줄 읽다가 보고, 다시 몇 줄 읽다가 또 보고.
이 서류를 처리하면 오겠지, 서명까지 하면 저 문도 열리겠지. 그런 생각으로 업무를 봤지만 문은 야속한 마음이 들 정도로 열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초조함에 괜히 애꿎은 펜만 만지작거렸다. 이상하다. 칼이 올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다.
처음에는 칼도 바쁠 테니 다소 늦는 거라고 생각했다. 칼이 기계도 아니고 매번 같은 시간에만 올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건 조금 늦는 수준이 아니잖아. 벌써 점심도 지났는데.
‘연락도 없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통신구로 시선이 갔다. 차라리 늦는다는 연락, 오늘은 못 갈 것 같다는 연락이 왔으면 아쉬울지언정 이렇게 걱정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데 아무런 연락이 없다. 점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자 하나조차 오지 않는다.
‘먼저 연락해야 하나?’
아까부터 몇 번이나 들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지만, 애써 고개를 저으며 털어냈다.
칼이 아무 이유 없이 조용한 건 아닐 거다. 연락도 주기 힘들 정도로 바쁘다고 생각하면 차마 먼저 연락을 할 수도 없다.
나도 바쁜데 통신구가 울리면 거슬리잖아. 칼도 그럴 거야. 괜히 바쁜 사람을 방해할 수는 없어.
‘참자.’
통신구로 은근슬쩍 향하던 손을 도로 거두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그냥 기다리고 있자. 칼이라면 내가 믿고 가만히 있을수록 더 미안해하면서 달래줄 사람이니까. 그때 조금 투정을 부리면 충분해.
“늦게나마 오겠지.”
듣는 사람 없는, 어쩌면 나 스스로가 듣고 싶은 말을 중얼거리며 다음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은 동아리 시간이 될 때까지도 오지 않았다.
동아리 시간이 되자마자 제과 동아리실로 향했다. 작게나마 남아있던 서운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있을 거야.’
살짝 입술을 깨물며 그렇게 되뇌었다. 있을 거다, 있어야 한다. 만약, 만약 칼이 동아리실에도 없으면 그건 보통 일이 아니니까.
칼이 아카데미에 머무는 건 왕족 학생들을 주시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왕족들이 모인 동아리를 떠날 수 없는 입장.
그런 칼이 동아리에 없다? 아카데미에 머무는 이유인 왕족 주시를 수행하지 못할 정도면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부회장?”
불안함에 휩싸여 빠르게 걷는 사이, 의외의 인물과 마주치고 말았다.
“교감 선생님?”
너무 의외의 인물이라 눈만 깜빡이고 말았다. 보통 교감실에만 있는 분이라 밖에서 보기 힘든 분인데?
이 어색한 만남은 교감 선생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는지 잠시 말이 없다가 헛기침을 하셨다.
그리고 그 찰나에 드러난 표정은 분명 안타까움이었다.
‘왜?’
이런 곳에서 교감 선생님을 본 것도 불안한데 하필 표정도.
“부회장. 제과 동아리실로 가는 건가?”
당혹감에 몸이 굳은 사이 교감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마치 다 알고 있지만 예의상 물어본다는 듯이.
“네. 카… 감찰관님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요.”
습관적으로 이름으로 부를 뻔했지만 급하게 감찰관으로 정정했다.
그리고 내 대답을 들은 교감 선생님의 얼굴에는 아까보다 더욱 짙은 안타까움이 자리 잡았다.
아니, 대체 왜.
“일단 가보게. 가면 알게 될 거야.”
“네, 알겠습니다.”
교감 선생님에게 적당히 인사를 하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방금 말 때문에 불안함이 더욱 증폭되고 말았다.
가면 안다니, 평소라면 별거 아닌 말처럼 들렸을 텐데 오늘따라 왜 이리 섬뜩하게 들릴까.
“───”
“──? ──”
동아리실에 가까워질수록 소란이 느껴졌다.
제대로 들리지 않지만 결코 작은 소리는 아니다. 심지어 일상적인 대화와 달리 빠르게 말이 오고 가고 있다.
‘제발.’
아까 전 교감 선생님의 반응, 부원들의 격앙된듯한 대화. 이제는 칼이 동아리실에 있어도 보통 일이 아니다.
아무 일도 없는 건 감히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큰 사고는 아니기를. 저번 근신처럼 칼이 갇히는 일은 아니기를.
아니, 차라리 저번 같은 근신 정도로 끝나면 괜찮다. 그걸 능가하는 일만 아니면 돼.
“실례할게요.”
“그러니─ 마르게타 공녀?”
“부회장님?”
다급한 마음에 노크조차 하지 않고 문을 열고 말았다. 숙녀답지 못한 행위였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수는 없잖아.
빠르게 동아리실을 훑어보자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보는 부원들이 보였다.
‘없어.’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서, 선배.”
망연히 동아리실만 보고 있자 루이제 영애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래, 가보면 안다고 했잖아. 루이제 영애한테 물어보면 될 거야. 무슨 일인지 잘 설명해줄 거야.
“루이제 영애. 한 명이 안 보이네요?”
내 직설적인 물음에 루이제 영애는 눈만 이리저리 돌리며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말없이 바라보자 결국 입을 열었다.
“저기, 그게, 오라버니가…”
그러나 말을 완성하지 못하고 도로 입을 닫고 말았다. 자세히 보니 루이제 영애도 눈물을 글썽거리는 게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제발 이러지마.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러는 거야.
“그게 말입니다.”
옆에서 한숨 소리와 함께 에리히 영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이… 구금됐다고 합니다.”
그 말을 한 에리히 영식은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하기 싫은 말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했다는 듯이.
그 모습을 보니 에리히 영식이 정말 큰 마음 먹고 얘기한 것 같다.
“네?”
정작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전혀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슨 소리야, 구금이라니? 칼이 구금됐다고?
…아, 다시 근신을 당했다는 소리구나.
“그러면, 지금 숙소에 있는 건가요?”
애써 혼란스러운 머리를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그랬구나, 그런 거였어. 칼은 부끄러워서 연락하지 않은 거구나. 근신이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근신을 받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칼도 참. 아무리 그래도 걱정시키는 게 더 나쁜 일인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따끔하게 말해야겠다. 아, 그래도 다시 근신을 받은 거니 위로도 잊지 말고…
“…제도에 구금 중입니다.”
그런 내 현실도피는 에리히 영식의 한마디에 무너졌다.
구금, 구금이라고? 근신이 아니라 정말로 구금?
왕족 폭행도 근신으로 끝났는데? 그러면 왕족 폭행을 능가하는 사건이 터졌다는 거야?
“…아, 아아…”
뒤늦은 사태 파악에 내 몸도 무너지고 말았다.
“선배!”
“공녀!”
옆에서 부축하는 손길과 함께 뭐라고 말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나, 난…’
부회장실에서 칼을 기다리면서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냥 칼을 믿고 기다리자고, 칼이라면 그럴수록 더 미안해할 거라고.
그만큼 나를 달래줄 테니 그때 못 이기는 척 용서해주자,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칼이 감옥에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런 속 편한 생각이나 하고.
자괴감이 몰려왔다.
***
힘없이 의자에 앉은 공녀님을 보니 가슴이 욱신거렸다.
“칼, 칼… 미안해요, 칼…”
자세히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리던 공녀님은 결국 눈물까지 보이고 말았다.
나는 물론 다른 부원들도 공녀님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애써 못 본 척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감옥에 있다는데 어떻게 멀쩡할 수 있을까.
응, 이해한다. 나도 공녀님이 오지 않았다면 울 뻔했으니까.
“감찰관님은 현재 구금 상태셔서 당분간 오지 못하신다.”
동아리실에 가니 오라버니 대신 기다리고 있었던 교감 선생님.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남기고 빠르게 자리를 떠나셨다.
뒤늦게 이해했을 때는 공녀님처럼 주저 앉을 뻔했지. 그 찰나에 나보다 충격이 크실 공녀님이 오셔서 참았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류티스 때도 근신으로 끝났잖아.”
뒤에서 작게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공녀님을 배려하여 들리지 않게 말하는 것 같다.
“뭐 아는 사람 있어?”
“있을 리가. 짐작되는 것도 없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류티스가 다쳤을 때 구금됐다면 슬퍼도 이해는 됐을 거다. 그런데 그 일도 아닌데, 갑자기 왜.
“직접 가봐야지.”
나지막한 에리히의 말에 시선이 몰렸다. 심지어 공녀님까지도.
안 들리게 조심했는데 다 들리셨구나… 에리히도 공녀님의 시선에는 당황한 것 같지만 애써 표정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마침 내일부터 주말이잖아. 제도에 잠깐 가볼게.”
“그럼 우리도─”
“높으신 분들은 남아 계시고요. 왕족이 제도에 방문하면 무슨 꼴을 보려고.”
류티스의 말을 에리히가 빠르게 걷어냈다. 방학 때처럼 장기간 머무는 것도 아닌 당일치기인데 왕족에 동행하면 곤란하다는 이유로.
설득력 있는 말이었기에 다들 납득했다. 나도 나를 제외하는 건 아니니 반박하지 않았고.
“저도 갈게요.”
가만히 듣고 있던 공녀님의 말.
이 역시 모두가 예상한 말이었기에 에리히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진짜 제발 꺼졌으면 좋겠다.
“그래도 닷새 동안 휴가 아니냐. 기분이 어떠냐?”
“혀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니 제발 돌아가십쇼.”
“저런. 죽으면 시체 수습할 사람은 남아야지.”
이 미친 노친네, 제발 꺼져.
눈 앞에서 비웃는 장관을 보니 정신력이 실시간으로 하락하는 게 느껴졌다.
알고 있었다. 이 양반이라면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오히려 늦는다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나도 그랬으니까.’
철창 너머에 있는 장관? 못해도 한 달 정도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올 소재다. 이건 장관도 마찬가지겠지.
그렇다고 구금되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올 줄은 몰랐지만.
‘개 같네 진짜.’
아무튼 이 상황을 예견했기에 오늘 하루만큼은 면회 사절을 신청했다. 지금의 정신력으로는 도저히 다른 사람을 볼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죄수 입장에서 지금이 가장 약한 시간대라는 건 장관도 잘 안다. 나보다 먼저 들어간 사람이니 모를 리가.
그래서 장관은 면회 사절에도 불구하고 ‘재무성의 업무’ 라는 명목으로 긴급 면회를 신청했다.
‘없잖아.’
물론 업무 따위는 없다. 그냥 나를 보려고 둘러댄 핑계에 불과하다.
허위로 면회 사절인 죄수와 면회를 가지는 것. 이건 시말서를 써야 할 행동이지만, 장관은 시말서 하나를 대가로 나를 티배깅 하는 걸 택했다.
“첫날은 춥겠지만 금방 적응할 거다.”
미친 노친네. 제발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