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86)
****************************************************
감옥은 썩 지낼만했다. 이렇게 말하니 모든 걸 포기한 범죄자가 된 느낌이라 오묘하지만, 정말로 지낼만했다.
지하 감옥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차갑고 눅눅한 이미지. 하지만 닷새 동안 지내야 할 곳은 문 대신 달린 철창을 제외하면 평범하고 무난한 방 같았다. 가구들도 새로 교체한 게 느껴질 정도로 괜찮았고.
감옥이라는 것만 인식하지 않으면 지낼만했다. 그래, 인식하지만 않으면.
“2781번. 사식 왔다.”
애석하게도 눈 앞의 누군가 덕분에 불가능했다. 애써 인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또 오셨습니까?”
“소중한 부하가 차가운 감옥에 있지 않냐. 혼자 좋은 걸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아.”
개소리다. 내가 갇혀있는 모습을 안주 삼아 술을 병째로 들이켰을 모습이 훤하다.
실제로 장관은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로 나에게 상자 하나를 들이밀었다. 망할, 갇힌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사식을 넣어.
당장 그 흉한 거 치우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감옥에서 난동을 부리면 괘씸죄로 구금 기간이 늘어난다. 닷새로도 눈물 나오는데 더 늘릴 수는 없다.
‘다 아는 인간이.’
그리고 내가 아는 건 장관도 알고 있다. 알기에 이리 열정적으로 방문하는 거겠지만.
“감동했냐?”
그 말에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감동하셨습니까?”
아무래도 과거의 나는 미쳐도 단단히 미친 새끼였던 게 분명하다. 뒷감당은 지금의 내가 한다고 그런 짓을 하고 다녔어.
그래, 지금 생각하면 사식을 첫날에 넣은 건 선 넘었었지. 적당히 마지막 날에 넣을 걸.
“증믈 금스흡느드…”
신이 존재하는 세상이라 그런가. 업보 청산이 너무 확실한 세계다.
***
장관이 된 이후로 이렇게 만족스러운 적이 없었다. 앞으로 5년은 아무런 불만 없이 출근할 자신이 생겼다.
‘이런 느낌이었나.’
눈 앞에서 아득바득 이를 가는 죄인의 모습을 보자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충족감이 차올랐다.
철창이라는 장애물, 죄인이라는 상대의 열세적 신분, 일방적으로 놀릴 수 있는 상황.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내가 구금됐을 당시에 이 새끼가 시말서까지 쓰며 달려왔던 것,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도대체 뭐하는 새끼인가 싶었는데.’
나를 놀리기 위해 시말서를 썼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중책을 맡아서 머리가 돌아버렸나 싶었지.
하지만 이 녀석이 옳았다. 이런 상황을 즐길 수 있다면 시말서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근신이어도 고민 끝에 강행할 정도인데 시말서 하나 정도야.
“일단 받아라. 당분간 못 먹을 음식이다.”
들고 있던 상자를 틈 사이로 집어넣었다. 조금만 컸다면 넣지도 못했겠지만, 저 안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
“아니, 그래봤자 닷새입니다!”
“그래봤자가 아니라 무려지.”
틈새로 넘어온 상자를 받은 칼은 울분을 담아 소리쳤지만 가볍게 반박했다.
닷새 후에 나오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지금 이 순간, 사회에 나오지 못하고 갇혀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나.
“날씨도 싸늘하니 조심해라. 감옥에서 감기라도 걸리면 서글프지 않겠냐.”
나름 진심을 담아 한 조언이지만 이 감사함도 모르는 놈은 몸만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진심을 담은 만큼 비웃음도 담은 거니 딱 원하던 반응이다.
“그럼 가본다. 잘 지내라, 2781번.”
일부러 죄수번호를 언급하며 몸을 돌렸다. 아무리 닷새에 보여주기식 구금이라지만 명목상 죄수는 죄수.
이 2781번이라는 번호는 이 녀석이 석방돼도 영원히 따라 붙을 거다. 나도 일주일 동안 불렸던 1276번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으니까.
‘하늘이 이렇게 맑았나.’
감옥을 빠져 나오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너무나도 맑은 하늘이 반겨줬다.
어쩔 수 없다. 이런 날을 기념하지 않는 건 에넨을 향한 무례다.
오늘은 회식이다.
***
장관이 두 번이나 찾아온 이후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장관이 두 번이나 찾아온 이후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중요하니 두 번 말했다. 장관이 첫날부터 오는 건 예상했기에 충격이 덜했지만, 사식을 들고 두 번이나 오는 건 너무 고통스러웠다.
맞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연달아 팰 줄은 몰랐지. 제발 쿨타임 좀 지키자.
‘오늘은 그냥 넘어갔네.’
눈물샘이 달렸다면 오열하고 있을 심장을 진정시키며 침대에 누웠다.
그래, 오늘은 그냥 넘어갔다. 장관의 멘탈 공격이 너무 강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장관 외에는 누구도 오지 않았다. 이거 괜히 면회 사절을 했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문제는 내일부터다. 구금되고 하루가 지났으니 소문도 퍼졌을 테고, 마침 내일부터 주말이기에 사람들도 한가할 시기다.
‘…하루만 연장할까?”
순간 진지하게 면회 사절을 연장할까 고민했다.
물론 그랬다가는 ‘저 새끼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면회도 못 해?’ 같은 소문이 퍼질 테니 불가능하지만. 망할, 차라리 진짜 중죄를 저질러서 들어온 거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감찰부장님.”
멍하니 천장을 보는 사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설마 면회객이 또 있어?
황급히 몸을 일으키자 철창 밖에서 어색하게 서있는 간수가 보였다.
“혹시 불편하신 점이 있으신가 해서 왔습니다.”
아, 별일 아니구나.
다른 면회객, 아니면 장관의 삼연벙인가 싶었지만 다행히 둘 다 아니었다. 오늘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괜찮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간수에게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방도 불편한 건 없고, 좀 빡치지만 장관이 사식도 넣어줘서 아쉬운 것도 없다.
애초에 닷새만 있다가 나오는 건데 이거 마음에 안 든다, 저거 고쳐달라 징징거리는 것도 추하잖아. 여기 있는 게 뭐 자랑이라고 감옥에서 그렇게 당당해.
그런 내 반응에 간수는 몇 번이나 허리를 숙이다가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달라는 말을 남기며 떠났다.
‘감캉스.’
미친 생각이지만 순간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간수가 저렇게 살갑게 대하는 걸 보니 내가 감옥에 있는 건지, 아니면 어디 숙소에 있는 건지 헷갈린다.
그래도 어쩌겠나. 간수 입장에서는 나를 정말 죄수 취급하기 어렵겠지.
‘나라도 그랬겠다.’
만약 감찰부장 직책을 박탈당한 상태거나, 하다못해 년 단위 구금이면 간수도 FM으로 대했을 거다.
그런데 징역 5일? 누가 봐도 보여주기 처벌이잖아. 구금이 끝나면 바로 업무로 복귀할 테고. 그런 사람을 어떻게 죄수처럼 대할까.
어찌 보면 저 간수도 나와 버금가는 피해자다. 그냥 열심히 일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거물을 관리하게 됐으니.
‘장관 때도 저 간수였나?’
장관과 부장을 관리한 간수.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업적이다.
물론 웅장하든 옹졸하든 딱히 의미는 없다. 안에 있는 내가 밖에 있는 간수를 위해 해줄 것도 없고. 그냥 얌전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지.
그리고 밤이 되자 간수는 이불을 한가득 들고 다시 찾아왔다.
“지하는 제법 춥습니다. 난방은 힘들지만 이렇게라도…”
“그래, 고맙다.”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는 간수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걸 사양하면 오히려 간수에게 부담이 된다.
내가 얌전히 있어도 내 존재 자체가 너한테는 민폐구나.
‘미안하다…’
석방되면 선물이라도 보낼게.
옥중 생활 2일차. 눈을 뜬 내가 처음으로 본 것은 아침 인사를 온 간수였다. 누가 보면 감옥이 아니라 저택에 있는 줄 알겠어.
“감찰부장의 실수에 비해 과한 징계지만 어쩌겠나, 국법에 예외는 없으니. 그래도 지내는데 불편함 없게 일러두겠네.”
고개를 숙이는 간수를 보니 집무실에서 황태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대체 어떻게 일러뒀길래 간수가 집사로 전직한 거냐, 이 새끼야.
황태자 때문에 고생하는 가련한 피해자.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넌 내가 꼭 선물 보낼게.
‘다른 부서로 옮겨주는 게 선물이려나.’
아무튼 수시로 방문하는 간수를 제외하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가끔 감옥에서는 혈기왕성한 죄수 형님들이 징역 연장을 각오한 혼신의 맞다이를 한다고도 들었는데, 난 1인실이니 그 화려한 결투를 볼 기회조차 없다.
애초에 진짜 그런 일이 터지는지도 모르겠고. 세상에 어떤 미친 녀석이 본인의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즐겨?
‘나네.’
놀랍게도 그 미친 녀석이 나였다. 장관한테 티배깅 한답시고 시말서만 쓰지 않았으면 구금까지는 안 당했을 텐데.
감옥의 죄수나 나나 별로 다를 게 없는 존재였구나. 딱히 알고 싶지 않은 걸 알게 됐다.
“저기, 감찰부장님?”
“글쎄 불편한 거 없대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닫는 사이, 다시 간수가 다가왔다.
정말 필요한 게 생기면 그때 부르겠다고 했는데 또 왔다. 이렇게 깍듯한 사람이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건 아닐 테고, 황태자 때문인가.
대체 뭐라고 했길래 이렇게 열성적으로 붙는 거야. 내가 다 무서울 지경이네.
“그게 아니라, 면회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아.”
기어코 올 게 왔다는 심정에 무심코 눈을 감을 뻔했다.
우선 장관은 아니다. 장관은 ‘재무성의 일이다!’ 라며 내 동의도 구하지 않고 들이닥쳤으니까. 어제도 그랬으니 오늘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장관이 아니라면…
‘누구지?’
후보가 생각보다 많다. 우선 차장과 과장만 해도 다섯에다 4과장까지 포함하면 여섯이다.
아, 어쩌면 단체로 왔을 수도 있네. 걔네 입장에서도 그게 편할 테니까.
“아직 오전인데 빠르기도 하지. 누가 온 거지?”
“그게─”
가볍게 던진 말에 간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시선만 이리저리 돌렸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일단 감찰부는 아니다.
“마종공, 각하입니다…”
아.
순간 ‘나 없다고 전해줄래?’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치솟았다.
죄수가 감옥에 없으면 어디 있어,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