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87)
언제나 기쁜 소식은 갑작스레 찾아오는 법이다.
“탑주님.”
평소처럼 탑주실에서 업무를 보는 사이 비서가 다가왔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대면이 아니라 서면으로 보고하라고 했는데.
수십 년 동안 알고 지낸 아이다. 감히 내가 한 말을 무시하거나 잊을 아이는 아니니, 대면으로 보고할 정도의 일이 생겼다는 거겠지.
“무슨 일이니?”
“황태자 전하께서 호출한 텔레포트 마법사가 복귀했습니다. 감찰부장도 제도에 왔다고 합니다.”
과연 대면으로 보고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소식이었다.
사실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저번에도 황태자가 텔레포트 마법사를 부른 이후에는 아가가 왔으니까.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정도는 품고 있었다.
“그래. 나가보렴.”
“예, 탑주님.”
기쁜 소식을 가져다 준 비서는 불필요한 말을 덧붙이지 않은 채 등을 돌렸다.
안 그래도 열심히 하는 아이인데 오늘따라 왜 이리 예쁘게 보일까. 조만간 성과금 명목으로 챙겨줘야겠다.
그렇게 비서가 나가는 걸 확인한 뒤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이 보였다.
“좋은 날이구나.”
흡족한 마음에 무심코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래,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다.
‘진작에 이럴 것을.’
아가가 아카데미 근신이라는 초유의 징계를 받은 이후, 마탑 소속 마법사들에게 내린 지시가 있었다. 아가가 제도에 오면 바로 보고하라는 지시.
그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아가가 온 소식을 들었으니까. 다행히 소식을 듣기도 전에 아가가 복귀하는 일은 없었지만, 언제 그런 안타까운 일이 생길지 모른다.
아가가 제도에 오려면 필연적으로 마탑의 마법사들과 접촉하게 된다. 만일 마차로 온다면 제도에 장기간 머무른다는 의미니 서두를 것도 없고.
‘이렇게 기쁘다니.’
슬쩍 가슴에 손을 올리자 평소보다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아가에게 제도에 오면 꼭 마탑에 들리라는 언질은 몇 번이나 했다.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 내가 찾아가지 않아도 알아서 오겠지.
물론 황태자의 호출이니 금방 오지는 못할 거다. 아카데미에 있다가 제도까지 올 사안이면 가벼운 일은 아닐 테니까.
그래도 아가가 올 거라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행복했다.
설령 아가가 저녁에 오더라도, 나는 그 기다림을 간직할 수 있는 아침부터 기쁘다.
‘나만 애가 타는 건 서운하지만.’
언젠가는 아가도 나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나겠지. 꼭 그렇게 될 거다. 우리 사이에 필요한 건 오직 시간뿐이니까.
그리고 아가는 밤이 될 때까지 오지 않았다.
‘…늦어.’
언짢은 마음에 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늦는 건 각오했지만, 설마 밤까지 소식이 없을 줄은 몰랐는데.
달은 야속할 정도로 높아졌지만 차마 탑주실을 나갈 수 없었다. 혹시 아가가 늦게라도 오지 않을까, 내가 없는 걸 보고 그냥 돌아가지 않을까 싶어서.
늦게라도 오면 늦은 만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나 모르게 돌아간 거라면 아카데미에 직접 찾아갈 것이다.
숙녀를 아침부터 두근거리게 한 책임은 져야 하니까. 아가가 그런 것도 모르는 매정한 신사는 아닐 거라 믿는다.
“탑주님!”
“소란스럽구나. 다른 마법사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니.”
아까는 예쁘게 보였던 비서지만, 지금은 심기가 어지러워서 그런지 날 선 반응이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내 반응에도 비서는 여전히 산만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상하다, 저 아이가 저렇게 품위 없는 아이가 아닌데?
“가, 감찰부장이 말입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아가에 대한 소식. 저절로 귀가 쫑긋 서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솟은 귀가 추락하는 건 단 한마디로 충분했다.
“구금됐다고 합니다!”
“…뭐?”
지금, 뭐라고?
그 소식을 듣자마자 아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감찰부장이 오늘 하루는 면회 사절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재무성 장관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비록 비서의 만류로 실패했지만.
‘면회 사절.’
그 말에 힘없이 자리에 앉고 말았다. 면회 사절이라니,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니.
아가도 얼마나 심적 고통이 컸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얼마나,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다행히 면회 사절은 구금 기간 전체가 아니라 단 하루다. 그래, 하루 정도는 참자. 하루는 아가가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가만히 두자.
“마, 마종공 각하를 뵙─”
“길게 말할 필요 없단다. 감찰부장을 보러 왔으니 일러주렴.”
물론 다음날이 되자마자 바로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오늘부터는 면회가 가능하니까.
‘이런 곳에.’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는 경비의 뒷모습을 보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지하 감옥. 나와는 연이 없는 곳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 곳. 그렇기에 지나가면서 어렴풋이 보여도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다.
‘…이런, 곳에…’
손이 떨렸다. 딱딱하고 차가운 기운이 넘실거린다. 오직 가두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만들어진 곳이기에 어떠한 따스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가가, 내 아가가 이런 곳에 있다고? 그 어리고 가여운, 누구보다 소중한 아가가?
‘안돼.’
황급히 고개를 젓고 말았다. 이런 차가운 곳에 홀로 갇혀있을 아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빼내고 싶다. 감히 누구를 가두는 거냐고, 공작의 반려가 될 사람에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내가 괜히 소란을 피우면 아가가 더욱 곤란해질 테니.
“죄수… 가, 면회를 받아들였습니다.”
아까의 경비가 아닌 다른 인물이 달려왔다. 견장을 보니 간수 같았다.
‘죄수.’
죄수라는 말이 상당히 거슬렸지만, 눈 앞의 상대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니 넘어갔다.
덕분에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감옥 내에서도 아가가 죄수인 것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구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조금 깊숙한 곳에 있어서 가는 길이 복잡합니다.”
그렇게 말한 간수의 뒤를 따라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조금 더 아래로, 조금 더 깊숙이 갈수록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정말 이런 곳에 있다고? 차라리 장난이기를 바랐다. 아가가 비서나 간수와 짜고 나를 놀리는 게 아닐까, 같은 말도 안되는 상상마저 하고 말았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을 텐데. 지금이라도 장난이라고 하면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데.
“각하. 이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철창 너머에 있는 아가를 본 순간 억장이 무너지고 말았다.
***
침통한 심정으로 면회를 수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간수와 마종공이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간수, 그것보다 빠른 속도로 철창에 다가오는 마종공.
“아가, 괜찮니?”
‘안 괜찮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말을 도로 삼켰다. 솔직히 아까까지는 아무래도 좋았지만, 이런 곳에서 어머니 마종공을 보니 너무 부끄럽고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입을 열지 못하자 마종공은 내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귀를 축 늘어뜨리며 철창을 잡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말도 제대로 못하니…”
철창을 잡은 마종공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마종공의 생각과 달리 그냥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못한 거다.
“지내면서 불편한 건 없었니? 밖이 그립지는 않고?”
어제 들어왔다. 딱히 그립거나 불편한 감정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식사도 제대로 못할 텐데…”
잘 먹고 있다. 장관이 사식을 너무 많이 넣어줘서 남은 거는 간수하고 나눠 먹었다.
“하필 추워질 때구나. 감기라도 걸리면 안될 텐데.”
간수가 한가득 가져온 이불 덕분에 춥다고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잘 때는 땀도 조금 나더라.
…이상하다, 분명 마종공은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들인데.
‘왜 양심이 찔리지?’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팠다. 오히려 내 사정을 알고 놀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러나 마종공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진실을 알려주는 귀가 힘없이 바닥을 향해 내려가 있었고, 눈과 손은 애처로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저게 연기면 당한 사람도 기립박수를 쳐야 할 경지다.
“괜찮습니다, 각하. 잘 지내고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어딜 봐서, 괜찮다는 거니…?”
놀랐을 어르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말이었지만, 마종공의 상태는 오히려 악화됐다.
‘망할.’
생각이 짧았다. 실시간으로 철창 안에 있는 놈이 ‘저는 행복합니다. 잘 지냅니다.’ 같은 말을 해봤자 울음벨 발언이지 않나.
다시 입이 다물어지자 마종공은 떨리는 손을 품 속에 넣었다. 무언가 다급히 찾는 것처럼.
“아가, 받으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당히 익숙한 병이 품 속에서 나왔다.
내 피로 만들어진 홍삼 농축액. 생각해 보니 급하게 갇혀서 저걸 챙길 시간도 없었다.
‘어쩐지 몸이 찌뿌둥하더라니.’
늘 먹던 걸 안 먹어서 그랬구나.
“감사합니다, 각하.”
철창 틈 사이로 손을 뻗자 마종공은 튀어나온 내 손을 어루만졌다.
혹여라도 잘못 만지면 깨질까, 놓치면 어디로 떠날까 걱정하는 손길이었다. 이 정도면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인데.
“아가, 아가…”
심지어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찾는 모습은 정말 자식 잃은 어미 같았다.
그런데 각하. 저 징역 5일입니다.
혹시 어디서 5년이나 50년으로 잘못 듣고 온 거 아니죠?
‘진짜 5년인가?’
이제는 내가 불안해졌다. 마종공이 내 구금 기간이 늘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성은 그럴 리가 있겠냐고 소리쳤지만, 너무나 서글퍼 보이는 마종공의 모습은 그 이성마저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마종공은 한참이나 내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