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88)
손을 잘라갈 기세로 붙잡고 있던 마종공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손을 놓아줬다. 실제로는 몇 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체감상 거의 1시간은 잡힌 것 같았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렴.”
그렇게 말한 마종공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등을 돌렸다.
가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던지. 마치 ‘눈을 떼면 저 아이가 사라지지 않을까?’ 같은 걱정을 하는 모습이었다. 하필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까지 들어서 더 그렇게 보이네.
하지만 난 걱정 가득한 마종공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갈 곳도 없는데.’
기다리고 뭐고 할 게 있을까. 감옥에 갇힌 사람한테 갈 곳이 어디 있다고.
기껏해야 철창 앞에 서있던 놈이 침대에 누워있는 정도의 위치 이동이지. 그래봤자 감옥 안이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감옥에 갇힌 모습을 보고 기함을 한 마종공 아닌가. 그러면서 정작 감옥 안 죄수가 어디로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충격이 크신 건가.’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지혜의 상징인 마종공이 저런 어이없는 실수를 할까. 이건 감정이 죽은 사람도 마음 속 삼각형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불효자 새끼.’
세상에 둘도 없을 건강식품을 챙겨준 마종공이다. 가끔 답변하기 힘든 농담을 던지기도 하지만, 사실 전승공과 현명공에 버금갈 정도로 배려를 해주는 게 마종공이다.
두 공작은 그나마 이래저래 얽힌 게 있어서 잘 대해주는 게 이해라도 가지만, 마종공은 아무런 연관도 없다. 그럼에도 마종공은 언제나 따스했다.
실로 어머니 마종공이라 부르기에 부족함 없는 베품. 그런 상대에게 이런 못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각하… 난 징역 5년이 맞는 것 같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종공이 다시 돌아왔다.
“그 안에서는 먹는 것도 불편하겠지. 조금 챙겨왔단다.”
“아, 예. 감사합니다.”
먹을거리를 잔뜩 품에 안고.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조금이 아니다. 내가 조금이라는 단어를 지금까지 잘못 사용하고 있었나?
‘나가기 전까지도 못 먹겠는데.’
도저히 닷새 안에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다. 심지어 크기도 작은 편이 아니라 틈 사이로 들어오기나 할─
“자, 받으렴.”
들어오네?
마종공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품에 안은 물건들이 일제히 작아졌다. 철창 너머로 밀어 넣으니 작아진 게 거짓말이라는 듯 도로 커졌고.
‘와.’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분명 지팡이도, 영창도 없이 마법이 이루어졌다.
“마법사들이 추구하는 길은 각기 다르지만, 그 끝에 있는 것은 동일하다. 아무런 매개체도, 주문도 없이 이루어지는 마법. 그것이 마법의 끝이지.”
순간 동아리실에서 라테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부원들에게 정말 열정 가득한 모습으로 말했던 꿈.
보고 있니, 라테르? 너의 꿈이 지하 감옥에서 펼쳐졌어.
딱히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지만 내가 미안하다.
‘능력 낭비…’
그렇게 멍하니 감옥 안에 들어온 음식들을 보고 있었지만, 마종공의 목소리 덕분에 정신이 돌아왔다.
“부족한 것 같구나. 더 가져와야겠어.”
“괜찮습니다. 충분합니다.”
이 이상 쌓이면 간수하고 먹어도 남는다. 분명히 남는다.
그런 절박함을 담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종공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말려도 더 가져오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저기, 각하. 실례지만 저 닷새만 갇혀있는 겁니다.”
결국 수치를 무릅쓰고 징역 5일 전설에 대해 말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마종공이 내 구금 기간을 최소 개월 단위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게 아니고서야 이 양을 설명할 수 없다. 한 보름 정도 음식을 한 번에 가져왔다고 생각하면 납득이 가네.
“알고 있단다.”
하지만 마종공은 덤덤하게 답했다. 5일이라는 말에 당황하거나 어이없어하기는커녕 본인 입으로 본인의 구금 기간을 말해버린 나를 딱한 눈으로 쳐다봤다.
“닷새라는 게 중요하니? 아가가 그 안에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다시 철창에 손을 뻗은 마종공. 이번에는 나도 무심코 손을 뻗고 말았다.
그러자 따뜻하게 내 손을 감싸는 감촉에 마음으로 울고 말았다.
“아니, 그래봤자 닷새입니다!”
“그래봤자가 아니라 무려지.”
본능적으로 장관과의 대화가 떠오르고 말았다.
분명 같은 주제였다. 닷새만 갇혀있다는 것을 어필한 건 같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너무나도 달랐다.
아니, 어떻게 보면 비슷하기는 하다. 닷새라는 기간에 대해 전혀 연연하지 않은 대답이었으니까. 연연하지 않은 방향이 달라서 문제지.
‘이게 어른이다.’
어린 부하가 조금 놀린 걸 잊지도 않고 복수하는 누구보다 참된 어른이다.
사실 조금 놀린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 오늘부터 내 마음 속 재무성 장관은 마종공이다.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부르렴. 간수한테 일러둘 테니 부담 가지지 말고.”
필요한 일이 생기면 직접 오겠다는 가슴 따뜻한 말.
보는 눈이 없었다면 정말 울었다. 프리즌 크라잉 찍을뻔했네.
***
어제부터 가슴이 떨려서 제대로 자지 못했다. 졸음이 와도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칼은 차가운 감옥에 있을 텐데, 딱딱하고 불편한 잠자리에 누웠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니 도저히 잘 마음이 들지 않았다. 몸은 수면을 원해도 머리가 거부하는 밤을 보냈다.
“선배,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루이제 영애의 말에 애써 미소를 지었다.
단순히 밤을 새는 것 정도는 익숙하다. 간혹 학생회 업무가 밀리면 잠도 못 자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칼에 대한 걱정으로 몸이 아닌 마음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덕분에 내가 봐도 안색이 좋지 않았지. 칼한테 이런 못난 모습을 보이는 건 슬픈데.
“그래도…”
“정말 괜찮아요. 조금 피곤한 수준이에요.”
단호한 말에 그제서야 루이제 영애도 고개를 끄덕였다.
‘남 걱정할 처지도 아니면서.’
루이제 영애도 칼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지 안색이 좋지 못했다. 누가 봐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모습.
그러면서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건지. 마음씨는 정말 좋은 것 같지만, 그래도 자신부터 챙겨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진지하게 조언이라도 해줘야겠다.
“전부 왔네.”
루이제 영애의 안색을 살피는 사이 에리히 영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왔구나.’
에리히 영식이 보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황급히 달려오는 이리나 영애가 보였다. 이리나 영애도 칼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니 같이 가야지.
…사실 나도 루이제 영애도 너무 정신이 없어서 오늘 아침에 급하게 알려줬다. 만약 아무 말도 없이 다녀왔으면 이리나 영애가 얼마나 원망했을까.
“오빠… 가요?”
그리고 주말 아침부터 대형 참사를 전해 들은 이리나 영애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미안해서 이리나 영애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적어도 어제 말했어야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라도 있었을 텐데.
“느, 늦은 건 아니죠?”
“네. 제 시간에 왔어요.”
전력으로 달려왔는지 숨을 헐떡이는 이리나 영애를 보니 죄책감이 더욱 커졌다. 정말 미안할 따름이다.
“전부 모이셨으면 이동하겠습니다.”
루이제 영애가 이리나 영애의 등을 토닥이는 사이, 크라시우스 가문에서 온 텔레포트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딱딱한 어투였지만 마법사의 안색도 썩 좋지는 못했다. 당연하겠지. 자신이 섬기는 가문의 후계자가 구금됐다고 하는데 어떤 가신이 멀쩡할까. 크라시우스 가문 전체가 뒤집어졌을 거다.
…어머님, 괜찮으실까? 은근히 마음이 여린 분 같았는데 쓰러지신 건 아니겠지?
텔레포트로 곧장 감옥에 갈 수는 없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돌아가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쩌겠어. 감옥 인근에는 탈옥을 방지하기 위해 텔레포트 방해 마법이 걸려있다는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조치다. 나도 칼을 텔레포트로 빼내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으니까.
“정지. 이곳은 제국과 황실의 명예를 더럽힌 죄인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합당한 용무가 없으신 분들께서는 이 이상 접근을 삼가해주십시오.”
감옥으로 다가가자 정문 앞에 있던 경비가 가로막았다.
‘명예를 더럽힌 죄인.’
입술을 꾹 깨물고 말았다. 누구보다 제국을 위해 헌신하는 칼에게 죄인이라니. 감찰부장이 죄인이면 대체 누가 충신이고 누가 시민일까.
안다. 알고 있다. 이 경비는 어디까지나 매뉴얼대로 말하는 것뿐이다. 칼을 향해서 말하는 게 아니다.
그래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그렇게 고생하는 칼이 죄인이라는 소리를 듣다니.
“크라시우스 백작가의 에리히. 면회를 신청한다.”
에리히 영식이 대표로 경비에게 답했다. 우리 중 칼과 혈연 관계가 있는 건 아직 에리히 영식밖에 없으니.
“…실례지만, 어느 분을 뵈러 오셨습니까?”
크라시우스 백작가라는 이름에 짚이는 것이 있는지 경비의 어투가 급속도로 누그러들었다.
아까는 죄인이지만 이번에는 어느 분이란다. 옳게 된 칭호에 조금은 기분이 풀렸다.
“칼 크라시우스.”
“확인했습니다. 면회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명단에 이름을 작성해주십시오.”
경비는 탁자 위에 있던 명단을 에리히 영식에게 바치다시피 건네줬다.
그리고 명단을 돌려받은 경비는 이름을 확인하더니 급하게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
아잇 싯팔.
‘재수도 없지 진짜.’
갑자기 경비가 달려오길래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마종공 각하께서 다시 돌아오신 건가 하고.
다행히 그건 아니었지만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어제는 재무성 장관, 오늘 아침은 마종공, 지금은 바렌티 공작가의 공녀라고 한다. 환장하겠네.
각오는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감찰부장, 심지어 닷새라는 보여주기 가득한 구금이다. 실권을 잃은 것도 아니니 면회객 하나하나가 화려할 거라는 건 예상했다.
그래도, 그래도 고작 닷새지 않나. 닷새 갇혀있다고 굳이 면회를 오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닷새가 아니라 5주였나?’
순간 내 기억이 잘못됐나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장관과 공작이나 되는 사람들이 사식까지 들고 오다니, 이거 닷새 맞나?
물론 맞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닷새가 맞다.
‘관운이 꼬인 건가.’
몇 년 전에는 재무성 장관이 구금돼서 관리한 적도 있었다. 내 간수 생활의 끝은 거기서 본 줄 알았는데, 끝 너머에는 새로운 끝이 있었다.
‘퇴직할까?’
재산도 제법 쌓였으니 진지하게 고민할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