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89)
가장 우려했던 순간이 찾아오고 말았다.
“흐으읍─ 흐끅─”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숨죽여 우는 마르게타의 모습을 보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감찰부장님. 면회 신청입니다.”
간수가 무언가 내려놓은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할 때는 왜 저러나 싶었지만, 마르게타가 면회객으로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나도 내려놓고 말았다. 내가 내려놓은 건 염치와 자존심이겠지.
누군가에게 철창 안에 있는 모습을 보이는 건 당연히 부끄러운 일이다. 에리히에게도, 루이제에게도, 이리나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그리고 마르게타에게는 하늘이 무너져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마르게타가 얼마나 나를 걱정하는지 아니까. 굳건하면서도 은근히 마음이 여리다는 것 정도는 아니까.
그래서 장관에게 삼연벙을 당해도 좋으니 마르게타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기도를 몇 번이나 했는데.
‘그거 하나 안 들어주냐.’
물론 에넨이 외래종인 내 기도를 들어줄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겠지. 토종 이 세계인들의 기도를 듣기도 바쁠 테니. 망할.
“칼… 칼…”
연신 눈물을 흘리는 마르게타는 한 손으로 철창을 잡은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안타깝고 애처롭던지. 당장이라도 나가서 괜찮다고 토닥여주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불가능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마르.”
감옥에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극히 제한적이다. 기껏해야 마르게타의 손을 잡아주는 것,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그 행동이 오히려 마르게타를 자극한 것 같다.
“흐아아아앙─!”
결국 마르게타는 울음소리조차 억누르지 못했다. 언제나 체면과 품위를 신경 쓰던 당당한 공녀가 어린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왜, 왜! 왜 칼이, 칼이 거기 있어요…!”
마치 어린 아이의 투정처럼, 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제를 마주친 사람처럼.
어느 쪽이든 평소의 마르게타와 달리 혼란에 가득찬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볼수록 내 죄책감은 더욱 강렬해졌고.
“어째서… 어째서어어어…”
그렇게 중얼거리던 마르게타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스르르 주저 앉고 말았다.
“선배, 괜찮으세요?”
뒤에서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루이제가 황급히 다가와 그런 마르게타를 부축했다.
그 모습을 보니 더욱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남이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아니, 애초에 내가 밖에 있었다면 마르게타가 저럴 일도 없었겠지만.
“루이제, 이거라도 드려.”
어디서 났는지 이리나가 수통을 루이제에게 건넸다.
그래, 물이라도 좀 먹여라. 너무 울어서 수분이 부족할 텐데.
“선배. 잠깐 밖에 나가요. 바람이라도 쐬셔야죠.”
“안돼, 싫어어… 칼이, 칼이 여기 있는데…”
걱정을 담은 루이제의 말에도 불구하고 마르게타는 고개를 저으며 거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루이제는 그런 마르게타의 모습을 보고 더욱 밖으로 데려나갈 의지를 불태웠다. 평소 존대로 일관하는 마르게타가 반말로 투정을 부릴 정도니 제정신이 아닌 거라 생각한 거겠지.
결국 이리나까지 붙어서 싫다고 도리질치는 마르게타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지하보다는 밖이 좋겠지.’
멀어지는 마르게타의 뒷모습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아무리 좋게 꾸몄다고 해도 근본은 지하 감옥. 기력을 잃은 가녀린 공녀가 있기에는 부적합한 곳이다.
“형, 괜찮아?”
“아까까지는 괜찮았지.”
다른 일행들이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에리히가 슬쩍 다가왔다. 면회를 시작한 이후로 처음 하는 대화.
그래도 이해한다. 방금 그 상황에서 마르게타를 제치고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에리히도 얼굴에 당혹감이 가득한 것이 마르게타가 저렇게 오열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카데미에 있던 사람이 어쩌다 구금을 당한 거야?”
에리히의 말에 슬쩍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그거 아냐? 내가 잡힌 이유 묻는 거 네가 처음이다.
사정을 아는 장관, 아무래도 좋은 마종공, 면회를 시작하자마자 오열한 마르게타. 분명 면회를 몇 번이나 했는데 누구에게도 구금된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그걸 어떻게 말해.’
차라리 묻지 않았을 때가 좋았다. 그 정신 나간 이유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냐고.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에리히 입장에서는 내가 아카데미에서 잘 지내다가 갑자기 잡혀간 거라고 생각할 거다. 그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면 설명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괜찮으려나?’
상황을 설명하려면 붉은 파도라는 반체제 공화주의 역적 단체가 아카데미 근처까지 접근했다는 말을 해야 한다. 아카데미 학생인 에리히에게 하기에는 조금 꺼려지는 일.
그래도 내 멘탈을 제외하면 아무 피해 없이 끝난 일이고, 에리히가 입이 가벼운 애는 아니다. ‘너만 알고 있거라.’ 라고 며느리에게 비법 전수하듯이 말하면 입 다물고 있겠지.
…그래, 말하자.
“조금 긴 내용인데.”
내가 입을 열면 열수록 에리히의 표정은 기묘하게 변했다.
시발.
***
참자. 참아야 한다.
‘왜 이런 시련을.’
순간 에넨을 원망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가혹한 시련을 내리는 건지.
설마 타니안이 같이 교회라도 가자고 할 때 거절해서 그런가? 그런데 그거 나만 거절한 것도 아니잖아. 심지어 타니안도 거절하니 알겠다 하고 그냥 갔는데.
‘가서 저주 기도라도 했나.’
신앙을 거부한 저 불신자를 벌해주십시오, 라고 외치는 타니안을 상상했다. 그래, 그게 분명하다. 타니안 이 사악한 놈, 웃는 얼굴로 그런 흉악한 짓을.
살다 보면 교회 좀 안 갈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내 교회는 마음 속 신앙과 믿음으로 이루어져─
“듣고 있어?”
“아, 응.”
형의 목소리에 애써 다른 생각을 하던 정신이 돌아왔다. 큰일 났다. 필사적인 마지막 도피도 실패했다.
‘미치겠네.’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천장을 노려봤다. 마치 슬프고도 원통한 얘기를 들어 답답하다는 듯이.
실상은 조금만 방심하면 웃음이 터질 것 같아 시선을 돌린 거지만.
“어디 가서 말하지 말고.”
형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화주의를 외치는 역적들이 아카데미 근처까지 왔던 것, 형이 그 역적들을 토벌한 것.
하나하나 범상치 않은 이야기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카데미가 위험에 빠질 뻔했다는 게 아찔하지만, 아무튼 무사히 끝난 일 아닌가.
딱 하나만 빼고.
‘이걸 어디서 말해.’
이런 걸 어디 가서 말하면 미친놈 취급 받는다. 당사자에게 듣는 나도 어이가 없는데, 건너서 듣는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형이 구금된 건 포로를 사살했기 때문. 비록 포로를 죽인 게 잘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구금이 될 정도로 큰 죄는 아니다.
“내가 시말서를 좀 많이 썼거든. 하필 이번에 쓰면 구금이었어.”
문제는 작은 죄도 큰 죄로 만들어버린 형의 업보였다. 거기서 1차 웃음 경보가 찾아왔다.
“아니, 거기서 그 놈이 류티스 얘기를 꺼내잖아. 그딴 말을 듣고 어떻게 참아.”
그리고 포로를 죽인 이유를 들었을 때 2차 경보가 찾아왔다.
‘그게 그렇게 이어졌다고?’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그 포로가 평범하게 도발을 해서 형이 분을 참지 못한 거면 웃기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데 하필 류티스를 들먹였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왕족을 패대기 친 그 전설적 사건을 언급했다.
게다가 그 사건으로 형은 아카데미 근신이라는 초유의 판결을 받았다. 자다가도 그 사건을 속삭이면 벌떡 일어날 것 같은데, 그걸 공화주의 역적한테 들었다?
‘그건 못 참지.’
나였어도 죽였겠네. 아마 대법관이 들어도 무죄라고 선고할 것 같은데.
아무튼 형이 갇힌 이유는 완벽하게 이해했다. 하지만 하나의 문제가 풀리니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형. 이거 다른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설명해?”
“그러게…”
지금 밖에서 아직도 울고 있을 마르게타 공녀, 그리고 그런 공녀를 달래고 있을 루이제와 이리나.
도저히 그 셋에게 진실을 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일단 업무 문제라고 해. 먼저 묻는 게 아니면 가만히 있고.”
형이 고심 끝에 내놓은 답변에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제발 아무도 묻지 말기를.
***
에리히에게 수치스러운 진실을 알려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게타가 돌아왔다. 다행히 조금은 진정한 것 같았다.
그런데 면회 시간이 끝나서 도로 나가야했다. 타이밍도 안 좋지.
“칼, 내일 봐요. 꼭, 꼭 내일도 올게요.”
다시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말하는데 말리느라 힘들었다. 아니, 닷새 갇혀있는 사람한테 이틀이나 면회 오는 건 좀.
아무튼 몇 번이나 도리질치며 다시 오겠다고 고집 부리는 마르게타를 겨우 설득하고 돌려보낼 수 있었다. 석방되면 가장 먼저 찾아가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돌아가더라.
“아, 형. 가문도 형 갇힌 거 알아.”
대신 마지막 가는 길에 에리히가 조금 골치 아픈 말을 남겼다.
“어머니도 오겠다는 거 일단은 말렸어. 계속 막는 게 좋겠지?”
그래도 배려심 넘치는 동생 덕분에 면회객이 늘어나는 일은 없었다. 그래, 내가 마르게타까지도 어떻게든 참겠지만 ‘갇힌 아들을 보러 온 어머니’는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다.
…석방되면 찾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연락은 가장 먼저 드리자. 그게 도리겠지.
‘망할.’
한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그때 머리를 후리는 게 아니라 허벅지 밟는 정도로 끝냈으면 죽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올려다 보고 있으니, 뒤늦게 위화감이 느껴졌다.
‘왜 안 오지?’
의외로 과장들이 잠잠하다.
특이한 상황이다. 가장 가까운 감찰부에서는 소식이 없고 멀리 아카데미에서 면회를 찾아왔다.
사실 걔네들은 안 오는 게 마음 편하기는 한데, 걔네가 내 마음 편하게 한 적이 얼마나 있겠나. 당연히 올 거라고 생각했지.
‘안 오면 나야 좋지.’
크게 신경 쓰지 말자.
***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 잡으며 몸을 뒹굴거렸다. 일어나야 하는데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겠다.
‘면회 가야 하는데…’
원래라면 오늘 아침부터 갈 예정이었다. 다른 과장들과 차장님도 시간을 내서 같이 가기로 했다.
그런데 어젯밤, 예정에도 없던 회식을 하게 됐다.
“너네 부장 구금 기념 회식이다. 면회 가기 전에 참석해라.”
장관님이 추진하는 회식인데 어떻게 빠져. 애초에 오랜만에 하는 회식이니 기분 좋게 참석했고.
그리고 결과는 이렇다. 장관님이 도수 높은 것들만 가져오셔서 그 여파가 어마어마하다.
“으으…”
뒹굴거리다가 아무렇게나 흩어진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소중하게 관리하는 흰색 머리. 분명 어디 가서 자랑해도 될 정도로 예쁜 머리인데, 오늘따라 보기가 무섭다.
하필 어제 마신 술도 흰색이었어… 흰색이 무서운 건 처음이야…
“부장니이이임…”
혼자 차가운 감옥에서 울고 계실 부장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미안해요, 부장님. 꼭 만나러 가야 하는데 오늘은 힘들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