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9)
제 19화
윗분이 가리키면 아랫놈은 구른다 – 1
타니안의 사주팔자를 가장한 저주의 낙인은 짙게 찍혀버렸다. 틀릴 확률도 있고, 어차피 팔자가 좋은 편도 아니었으니 그냥 가볍게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머리 한구석에서는 저주의 낙인이 섹도시발의 존재감을 뽐내며 잊혀지지 않더라. 성자 후보가 저주라니, 말세다.
결국 밤새 꿈틀거리는 불안함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렇게 가슴이 떨린 건 카간과 케식의 기마돌격을 정면으로 봤을 때 이후로 처음이다. 타니안 이 새끼, 내가 에리히한테 조언 한 거를 이렇게 보복하는 건가? 설마, 그건 아니겠지.
아무튼 타니안의 활약으로 인해 편안한 취침과는 굿바이 키스를 나눌 수밖에 없었고, 그 여파는 아침까지도 이어졌다.
“환장하겠네.”
동아리실을 돌아다니다 정강이로 책상 다리를 쳐버렸다. 그 충격 때문인지 덜렁거리는 책상 다리. 평소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게 다 타니안 때문이다. 감히 고문에게 디버프를 걸다니.
그래도 다행히 자주 쓰는 책상은 아니었고, 충격으로 흔들리는 거면 다시 힘으로 끼워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대충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남의 직업 영역은 함부로 넘보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이게 안되네.’
다리 4개의 책상은 3개짜리로 퇴화해버렸다. 제갈량은 다리 3개가 받치는 형태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사실 이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그렇게 멍하니 위태롭게 서있는 삼족 책상을 바라보는 사이, 복도 쪽 창문으로 교감이 지나가는 게 보이더니 이윽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딱히 좋은 이유는 아닐 것 같은데.
“예, 들어오십시오.”
한 손에 들고 있던 책상 다리(였던 것)을 내려놓고 들어오라 말하자 교감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세하게 떨리는 저 눈동자. 알 것 같네, 나쁜 소식이다. 순간 머릿속에서 다시 타니안의 낙인이 떠올랐지만 애써 가라앉혔다.
“아침부터 손님이 오실 줄은 몰랐군요. 알았다면 미리 차라도 준비해두는 건데.”
불길함과 함께 온 손님이지만 아무튼 손님. 미소를 지으며 반겼으나 교감은 여전히 떨리는 눈동자를 주체하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었다. 내 인사에 겨우 대답하는 것이 전부. 그러다 진정이 되었는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감찰관님. 그… 그제 제출하셨던 계획서 말입니다.”
“계획서요? 그거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그제 동아리 시간, 루이제가 다 같이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서 소풍을 하자는 제안을 하길래 적당히 계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아카데미 밖이라 해봤자 성벽 너머의 작은 언덕 정도고, 그 정도야 충분히 왕복 할 수 있는 거리니까.
어차피 내가 인솔하고 다녀올 예정이니 제출할 당시에도 별 문제 없이 받아졌는데, 굳이 교감이 아침부터 온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생기기는 한 것 같다.
교감은 내 물음에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겨우 말을 이었다.
“소풍 장소 근처에 던전이 생겼습니다.”
“예?”
아니 시발, 그게 왜 생겨.
아카데미 내부 아티팩트가 던전의 생성을 감지했다. 뭐, 던전이라고는 했지만 거창하게 게이트를 타고 들어가 안에 있는 몬스터를 줘패고 보물을 얻는 그런 던전은 아니다.
빙의하고 처음 던전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을 때는 설마 원작이 로맨스 헌터물이라는 혼종인가, 라는 생각에 구석에서 혼자 상태창을 외치기도 했지. 물론 안 나왔다. 부끄러운 흑역사기는 한데 옛날 일이니.
아무튼 이 세계의 던전은 ‘대기 중의 마나가 일정 장소에 묶여버려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며 생기는 것’ 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매년 논문으로 다른 원인도 있다며 신나게 막고라를 하기는 하던데, 아무튼 기본 골자는 마나 문제다.
나도 로판 세계에 던전이 있다는 말에 신기해서 한번 찾아본 거지, 그 뒤로는 관심을 껐다. 원작을 안 봤으니 작가가 왜 그런 걸 넣었는지 알 수가 있나. 그런데 이 타이밍에 던전이라는 말을 들으니 짚이는 게 있다.
‘이거 위기 조성 역할이잖아.’
다른 동네 던전에 비하면 안전하지만, 이 세계의 던전도 인접 생태계와 거리가 먼 유해조수가 존재하는 곤란한 짐 덩어리다. 심지어 던전을 구분하는 울타리 같은 것도 없기에 멀쩡히 걷다가 그 유해조수 서식지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리고 제과 동아리가 소풍을 가기로 한 장소 근처에서 던전이 생겼다. 육안으로는 저게 던전인지 아닌지 구분이 어려운 그 거대한 함정이 말이다.
‘시발.’
높으신 분들을 이끌고 던전 근처로 소풍을 가는 고문? 미쳐도 보통 미친 새끼가 아니다. 일단 내가 그 보통 미친 게 아닌 새끼가 되기 일보 직전이다.
“던전은 주기적으로 지방관이 관리하지 않습니까? 뭉쳐있는 마나만 풀어내면 던전이 생길 일은 없을 텐데요.”
던전은 기본적으로 마나가 고여서 생기는 것이니, 제국 각지의 지방관이나 영주들은 주기적으로 던전 방지의 의무를 지니며 관할지를 돌고 있다. 마탑에서 만든 아티팩트를 쓱 휘두르면 고인 마나가 흩어지니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런 의문을 담은 내 말에 교감은 곤란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카데미 인근을 관리하는 지방관이 최근에 제도로 압송되었습니다. 아직 후임 지방관이 오지 않았는데, 그 찰나에 생겨버렸습니다.”
“아.”
그제서야 머리 한구석에 박아 둔 작은 기억이 떠올랐다.
“도로 예산으로 장난질 친 놈, 털어서 처리해.”
아카데미에 도착한 날에 대충 차장에게 그런 지시를 내렸었다. 그거, 아직 후임이 안 왔구나. 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러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내가 쏘아올린 공이니 수습도 내가 해야지.
다행히 소풍을 가기 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고, 이제 막 생긴 던전이라면 위험도도 낮은 편이니 부담도 덜하다. 소풍을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적당히 휘젓고 와야지. 던전 안의 유해조수만 처리하면 던전 자체는 위험하지 않으니까.
“그래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하지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교감은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는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지방관이 제도로 끌려간 것이 감찰부 작품인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나를 따가운 시선으로 보지 않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교감을 불경죄로 잡아가기는 미안하니까.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교감의 시선이 내 뒤를 향하길래 돌아보니 삼족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저거…
“망가진 물건이 있었군요. 더 좋은 것으로 바꿔두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박살 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동아리 시간에 자리를 비우는 건 불안한 일이니, 부원들이 수업이라는 명목으로 교실에 잡혀있는 사이에 처리하기로 했다. 부원들 위해서 이렇게 고생하는 고문도 드물 것이다. 걔네는 이런 내 노력을 알까.
이럴 때는 수업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가끔 빙의 전처럼 0교시부터 야간 자율 학습까지 도입하면 내가 이렇게 감시니 뭐니 고생할 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든다. 그 대가로 푸른 피의 만인소를 볼지도 모르지만.
‘진짜 바로 옆이네.’
교감이 알려준 곳으로 이동하니 소풍 장소로 정한 곳과 상당히 인접한 숲에 자리 잡은 던전이 보였다. 던전인 걸 알고 봐서 눈치챘지, 아니었으면 평범한 숲인 줄 알았을 거다. 이 근처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얼쩡거렸을 거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네.
눈으로 직접 보니 단전에서부터 깊은 빡침이 올려온다. 정말 어지간히 재수가 없는 게 아니면 던전이 생길 일은 없다. 그런데 하필 내가 아카데미에 머무는 사이에 던전이 생기고, 내가 직접 던전을 처리하러 왔다.
심지어 엄연히 아카데미 밖인 제국 영토에 생긴 던전이라, 삼국 주요 인사의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삼국 전력에 짬처리도 못한다. 이미 맡은 일이 많은 아카데미 경비 인력에게는 더더욱 못하고.
“내 짬에 이게 무슨.”
답답한 심정에 중얼거리지만 듣는 이조차 아무도 없다. 부장 직급을 달면 현장 지휘를 하는 일도 드문데, 던전에 직접 가서 직접 발로 뛴다. 제국 역사를 뒤져봐도 내가 최초일 거다. 최초가 아니면 그게 더 문제지.
하다못해 적당히 부릴 수 있는 수행원 하나라도 있었으면 이렇게 피곤하지는 않았을 거다. 이럴 때는 2과장이라도 있었으면 할 정도.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2과장은 아니다. 내가 잠시 미쳤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놈은 아니다.
‘자랑스런 우리 개새끼.’
홀로 서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해주는 2과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던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전에 만들어진 던전이라 그런지 던전 내부도 그리 특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무가 조금 더 울창해지고, 돌아다니는 동물들이 좀 커진 정도? 일단 토끼가 다람쥐를 뜯어먹는 모습은 인상적이긴 했다.
물론 저 이빨로 6인방 중 하나라도 무는 순간, 내 공무원 생활에도 깊은 스크래치가 날 것이기에 바로 처리했다. 다음 생에는 던전이 아닌 멀쩡한 생태계에서 태어나렴.
그런데 생각보다 위협적인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막 만들어진 던전이지만, 적어도 마을 하나 위협할 짐승 정도는 있는 법이다. 설마 방금 처리한 토끼가 만렙 토끼는 아닐테고, 적어도 곰이나 사자 정도 되는 것들은 있을 텐데.
그러자 내 생각에 반응이라도 한 듯, 수풀 사이로 검은 털의 무언가가 나타났다.
─쮸쀼쮸쀼!
오.
그래, 저런 거.
갑작스레 나타난 검은 곰은 순식간에 나에게 달려오더니, 두 발로 서서 큼지막한 오른손을 내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이 새끼, 인사성이 밝은 놈이구나.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조금 긴 후기입니다.
이번에도 어젯밤이었습니다. 어째 요즘 들어 밤에 일이 생기는 것 같은데, 아무튼 이 작가는 피로에 찌들어 잠시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소설을 쓰는 걸 아는 지인분께 톡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단 태그에 의문을 품고 계시는 독자님들이 계시다는 소식이었죠. 그 말을 듣고 작품 태그를 확인했습니다. 확실히 판타지부터 빙의까지 5개 태그는 무난하지만, 그 뒤의 태그 3개는 보편적이지 않은 태그입니다.
먼저 ‘아카데미파견공무원’은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나 다름 없으니 유지할 생각입니다. 주요 무대가 아카데미기는 한데, 학생으로 활동하는 건 아닌지라 고심 끝에 정한 태그였기 때문이죠. 이 점은 양해 바랍니다.
‘공무원생활’은 작품 제목, 소개, 마지막 태그가 전부 공무원임을 지칭하니 굳이 달 필요가 없는 것 같기는 합니다. 이건 지워도 무방하니 날리도록 하겠습니다.
어… 마지막으로 댓글로도 종종 의문이 보이던 ‘남의로맨스’ 인데, 이건 “칼의 연애는 결코 허용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단 태그는 아닙니다. ‘연애 싸움을 한 발자국 물러나 지켜보는 포지션’을 표현하기 위해 단 태그죠.
그런데 왜 저렇게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냐고 물으신다면, 저 태그를 건 날에 “난 노리치로 간다!” 라며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작성했었습니다. 덕분에 저런 오묘한 태그가 생겨버렸죠.
지금까지 칼의 연애 유무에 관한 질문이 올라와도 스포일러와 관련된 대답이기에 함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작품의 특징을 나타내는 태그에서 작품의 향후 내용에 혼동을 줄 수 있는 걸 달아버리는 건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칼이 연애를 한다, 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를 명백하게 말씀드리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남의로맨스’ 태그는 고심 끝에 제외하도록 결정했습니다.
열흘이 넘게 달고 있던 태그를 일방적으로 삭제하여 독자님들께 혼란을 주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여러 해석의 여지가 있는 태그로 독자님들 사이에 분쟁의 가능성을 남기는 것이 더욱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후기가 더 길어졌군요. 작가는 내용으로 독자님들을 납득 시켜야 하는데, 후기로 긴 사족을 달아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DNKE님! 후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