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90)
평일과 주말의 경계가 극도로 희미한 것이 제국 공무원이 짊어진 숙명. 그래도 나름 주말은 주말인지라 평일보다는 시간이 남는 편이다.
그러니 주말만 버티면 내 멘탈을 참혹히 살해하는 원수들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살짝은 기대했다. 둘째 날에 오지 않았으니 셋째 날, 오늘만 어떻게든 버티면 된다.
“헤헤, 저희 왔어요.”
“왔냐.”
하지만 실패했다.
‘이럴 줄 알았지.’
1과장과 그 뒤에 서있는 다른 간부들.
그래, 애초에 기대를 하니 실망하는 법이다.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딱히 정신적 충격도 없었다.
보통 간절히 원하는 건 화려하게 실패하더라고. 오늘만 버티면 된다고? 그러면 오늘 일이 터지는 게 국룰이지, 아무렴.
“다들 바쁠 텐데 왜 왔어?”
어떻게 왔어, 가 아니라 왜 왔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진짜 왜 왔냐. 평일에는 쉬는 것도 힘들 텐데 주말에라도 좀 놀아야지.
감옥에 있는 상사를 놀리는 걸 논다고 생각하면 할 말 없지만.
“부장님이 혼자 울고 계실 텐데 어떻게 저희만 놀아요.”
“당장 그 부장한테 돌아가.”
대체 누구야 그거. 나 그런 부장 몰라.
평소와 같은 1과장의 헛소리. 하지만 단호히 무시하기에는 마종공과 마르게타가 떠올라 양심이 다시 움찔거렸다.
다른 사람들 머릿속의 난 차가운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구나… 이상하다. 가끔 마음이 아픈 거 말고는 안락하게 지내고 있는데.
‘힘든 척이라도 할 걸 그랬나.’
그런데 내가 골골거리고 있으면 마르게타는 정말 혼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잘 지내는 컨셉으로 가자.
“부장님. 불편하신 점은 없습니까?”
히히 거리는 1과장의 뒤에서 차장이 넌지시 물었다.
구금되고 이제야 사흘 지났다. 심지어 이틀 후면 석방이다. 게다가 면회도 벌써 여러 번이나 해서 사식도 풍족하다.
“…잘 지내고 있어.”
자세하게 말하기는 조금 민망한 상황이라 애써 얼버무렸다. 차장도 잘 지내고 있다고 하니 더 캐묻지는 않았지만.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지만, 면회객 라인업이 화려해서 그런지 침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장관님에 이어 부장님. 다음에는 누구 차례입니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2과장의 말에 무심코 차장에게 시선이 꽂혔다.
“부장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왜 이 타이밍에 자기를 보냐는 눈빛에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미안하다. 그런데 장관, 부장 다음이면 차장이기는 하잖아.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만.
“그래도 좋게 생각하면 더 이상 마음 졸일 필요 없지 않습니까?”
훅 치고 들어오는 3과장의 말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그건 그렇지. 이제는 시말서 몇 번 썼는지 계산하면서 마음 졸일 필요가 없기는 하지.
“그럼 너도 들어올래?”
“싫습니다.”
하지만 내 친절한 권유에 3과장은 정색을 하며 거절했다.
내 기억으로는 저 새끼도 시말서 스택 좀 쌓인 걸로 아는데. 감찰부 중에서는 3과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니 필연적으로 3과장이 쓸 시말서도 많은 편이다.
물론 나보다는 적지만. 이딴 걸로 이기고 싶지는 않았다.
“부장님, 부장님. 저희 몇 번째로 온 거예요?”
쓸데없는 말로 시끄러운 과장 트리오와 달리 묵묵히 침묵을 지키는 5과장과 눈인사를 하자마자 1과장이 달려들었다.
“다섯 번째.”
“넹?”
의외의 대답이었는지 1과장이 눈을 깜빡였다. 무슨 면회를 벌써 네 번이나 했냐는 반응.
유감스럽게도 장관이 하루에 두 번, 마종공이 한 번, 아카데미에서 한 번. 그리고 얘네가 한 번. 총 다섯 번 맞다.
놀랍지? 나도 놀랍다. 닷새 구금인 사람이 벌써 면회만 다섯 번인 게 말이 되냐.
‘시발.’
생각하니 또 빡치네. 하루에 두 번이나 면회를 오는 인간이 어디 있냐고. 나도 그렇게까지는 안 했어.
구금 기간 동안 매일 면회를 갈지언정 하루에 여러 번 가지는 않는다. 그게 암묵적인 티배깅 규칙 아니겠나.
하루에 두 번이나 면회를 오는 건 일퀘를 두 번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흉악한 행동이다. 난 그렇게 믿는다. 아무튼 믿는다.
“어… 장관님에 아카데미… 전승공 각하까지 오셨어도 하나가 남는데요?”
손가락을 접던 1과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만한 사람이 없다는 듯이.
과장밖에 되지 못한 자여서 그런지 부장을 너무 우습게 보는구나. 내 인맥은 네 상상 이상이다.
“장관 각하가 두 번 왔다.”
“와.”
“그리고 마종공 각하 한 번, 아카데미 한 번.”
“와아아…”
1과장의 탄식에 괜히 마음이 아파졌다.
‘저 녀석도 저럴 정도면.’
정상과는 거리가 먼 1과장도 놀랄 정도의 라인업.
나는 대체 얼마나 화려한 면회에 시달린 걸까.
면회 시간이 끝나려면 한참이나 남았지만 전부 돌려보냈다.
“괜히 간수들 일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돌아가. 너희도 주말에는 좀 쉬고.”
“부장님은 귀여운 부하보다 간수가 더 중요해요?”
“응.”
“히잉…”
간수의 정신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조기에 돌려보내야 했다. 솔직히 이미 장관이나 공작, 공녀라는 고귀한 면회객들에게 시달린 간수지만, 감찰부는 그 궤가 다르지 않나.
까마득하게 높은 신분의 인사.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매뉴얼대로 대하면 된다.
그런데 당장 나를 조질 수 있는 감찰부. 그것도 간부들이 단체로 자기 근무지에서 어슬렁거린다? 내가 간수라면 심장마비 올 것 같은데.
‘나도 배려는 해야지.’
아무리 황태자의 명이어도 정말 세심할 정도로 케어해주는 간수다. 받은 만큼은 돌려주는 게 도리 아니겠나.
애초에 내가 구금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터지지 않았겠지만, 그건 넘어가자. 나도 좋아서 들어온 게 아니니까.
‘그래도 이제 끝났네.’
장관에 감찰부, 아카데미에서도 면회를 왔으면 이제 올 사람은 다 왔다. 마종공이 온 건 의외지만, 그건 초과 달성이지 조건 미달은 아니다.
그나마 남은 건 묵광대 정도기는 한데.
“아, 페넬리아가 꼭 안부 전해달래요. 묵광대는 바로 파견 가서 못 온다던데요?”
그렇다고 한다. 어쩐지 4과장이 소식이 없어서 이상하기는 했지. 첫날은 면회 사절이라 그렇다 쳐도, 둘째 날까지 오지 않을 애가 아닌데.
‘많이 바쁘네.’
붉은 파도 토벌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른 파견. 저렇게 구를 줄 알았으면 1과장이 말렸어도 더 많이 먹이는 건데.
다음에 보면 꼭 넉넉하게 챙겨주자. 몸이 재산인 애들인데 잘 먹고 잘 지내야지.
***
4일 전부터 생긴 습관이 있다. 출근하고 한 번, 퇴근하고 한 번 에넨께 기도를 드리는 것.
출근했을 때는 오늘도 아무 탈 없이 근무가 끝나게 해달라는 간청 기도, 퇴근했을 때는 정말 아무 탈이 없었음에 드리는 감사 기도. 이렇게 두 번씩.
‘이제 끝이다.’
떨리는 손으로 달력에 X 표시를 했다. 마침내, 마침내 닷새가 되는 날이다. 오늘 정오면 감찰부장을 석방할 수 있다.
‘드디어.’
고통의 시간이었다. 고작 닷새지만 마치 5개월처럼 느껴지는 닷새였다.
첫날에는 장관, 그것도 재무성의 장관이 왔다. 사실 거기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예전에 감옥 안에 계신 걸 직접 관리하기도 했는데 면회객으로 온 걸 보고 놀라는 건 이상하잖나.
물론 같은 날에 두 번이나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아무튼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버틸 수 있던 건 딱 그때까지였다.
‘장관이 가장 무난하다니.’
어이가 없는 현실에 실소가 새어 나왔다. 설마 재무성 장관이 가장 무난한 면회객이 될 줄은 상상이나 했겠나.
둘째 날에는 아침부터 공작이 찾아왔다. 심지어 마탑 밖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다는 마종공 각하가. 게다가 그 분이 사식을 들고 감옥에 들어갈 때는 심장이 철렁했다.
분명 감찰부장에게 최대한 좋은 음식을 주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 아닌가. 만약 감찰부장이 마종공에게 ‘식사가 재수 없고 간수도 맛없어요.’ 같은 말을 하면 내 모가지하고는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공작가가 둘.’
그리고 마종공 각하 이후에는 철혈공 각하의 딸이 왔다. 경비가 명단을 보여줄 때는 장난치지 말라고 후려칠 뻔했지.
솔직히 고위 관료보다 무서운 것이 공작가다. 관료는 퇴직이라도 하지만, 공작가는 죽을 때까지 공작가니까. 공작가 앞에서는 눈도 함부로 굴리면 안된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나.
그래도 정계와 사교계를 구르고 구른 사람이 아닌 어린 학생이 와서 다행이었다. 그 어린 학생이 감찰부장 앞에서 펑펑 울 때는 조금 씁쓸했지만.
‘마지막은…’
머리가 생각을 멈추고 말았다. 감찰부장이 구금된 순간부터 예상은 했지만, 가장 오지 말았으면 하는 사람들이 오고 말았다.
감찰… 감찰… 내 모가지를 다양한 의미로 날릴 수 있는 감찰부…
여기까지만 생각하자.
‘어차피 이제 끝이니까.’
급격하게 가라앉은 기분이 다시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이제 이 고생도 끝이다. 죄수라는 이름의 상전을 극진히 모시고, 혹여나 밉보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일상도 끝이다.
이 씻팔 더러운 간수 생활. 당장이라도 때려치워야지 진짜.
“가, 간수님!”
어제 밤에 공들여 작성한 사직서를 꺼내려는 순간, 등 뒤에서 경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급박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한숨이 나왔다. 뭔데, 이번에는 또 뭔데 대체.
“무슨 일입니까?”
경비가 달려올 때마다 평범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했다. 장관이 오고, 공작이 오고, 공녀가 오고, 감찰부가 오고.
그래도 오늘은 석방 날이지 않나. 아마 감찰부장 관련 일은 아닐 거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닷새 동안 단련된 나는, 사직서 제출을 눈 앞에 둔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어떤 소식이라도 전혀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전승공 각하의 전령이 왔습니다!”
“…예?”
바로 놀랐다.
‘전승공 각하…?’
아니, 왜? 전승공 각하가 왜?
그나마 이번에는 직접 찾아오신 건 아니지만, 대체 왜?
‘망할.’
울고 싶다. 사직서를 오늘이 아니라 어제 제출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