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93)
멍하니 류티스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무언가 찾고 있는지 선반을 뒤적거리는 모습이 여과 없이 보였다.
정말 있었구나. 그냥 재미없는 농담을 센스 있게 받아친 줄 알았는데, 정말 있었어.
‘왜 있냐.’
근원적인 의문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대체 왜 그런 흉한 걸 가지고 있는 거냐.
사실 빙의 전과 후를 전부 통틀어도 두부 케이크라는 음식은 근신 때 처음 들어봤다. 떡케이크나 아이스크림 케이크까지는 알지만 두부는 상상이나 했겠냐.
그런데 그 존재도 몰랐던 음식을 한 달 사이에 세 번이나 먹게 생겼다. 내가 진짜 케이크도 이 정도로 먹은 적은 없는데.
“그, 오라버니. 아르메인에서는 보양식이기도 하대요.”
내 공허한 표정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루이제가 조심스레 다가와 속삭였다.
알고 있다. 저번 근신 때 들었던 내용이니까. 류티스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아직도 기억난다.
“류티스도 오라버니가 걱정돼서 준비한 것… 같아요.”
루이제도 이 상황이 조금 어색한지 말끝이 흐려졌다.
그래, 두부 케이크가 아르메인 왕국에서는 보양식으로 통한다. 실제로 석방된 죄수에게 선물로 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도 석방된 죄수니 받아도 문제는 없다. 문제는 없는데…
‘티배깅 같잖아.’
만약 근신 때 두부 케이크를 받지 않았다면 순수한 위로로 받아들였을 거다.
하지만 받아버리지 않았나. 이미 내 머릿속에 두부 케이크는 티배깅의 상징으로 각인되고 말았다. 류티스도 그걸 아니까 먼저 주지 못했던 거겠지.
“여기 있습니다.”
드디어 흉물을 찾았는지 류티스가 다가왔다.
‘이걸 또 보네.’
류티스가 들고 있는 하얀 두부 케이크.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어떤 물건보다도 까맣고 흉악하게 보였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저번에는 이런 모양이 아니었는데.
아, 죄수번호가 안 적혀있구나.
‘마지막 배려인가.’
슬쩍 류티스의 얼굴을 바라보니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너도 고민이 많았겠지. 죄수번호까지 적으면 확인 사살을 날리는 기분이었을 테니.
“…고맙다.”
결국 고민 끝에 두부 케이크를 받았다. 저번 티배깅도 내가 근신을 당해서 생긴 일이고, 근신을 당한 건 류티스를 패대기 쳐서 그런 거 아닌가. 전부 자업자득이다.
솔직히 에리히가 쓸데없이 부르지만 않았어도, 아니면 류티스가 악마의 주둥이로 업보만 쌓지 않았어도 그럴 일은 없었겠지만.
아무튼 내 자업자득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혼자 먹기는 많으니 같이 먹지.”
“아, 예.”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류티스. 그리고 다른 부원들도 눈치껏 포크를 들었다.
세 번째 먹는 두부 케이크는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이게 눈물 젖은 두부 케이크의 맛인가.
‘시발.’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맛이다.
동아리 시간이 끝나자마자 교장실로 이동했다. 교장도 내 구금에 놀랐을 사람이니까. 직접 얼굴을 보이고 복귀 신고를 해야 하지 않겠나.
“아, 감찰부장.”
그리고 교장실에 들어가자 어색한 시선 교환, 숨 막히는 침묵이 내리 깔렸다.
“고생 많았습니다.”
잠깐의 침묵을 깬 건 교장이었다. 괜히 길게 걱정을 하거나 안부를 묻느니, 짧은 위로 인사로 끝내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물론 정답이다. 오히려 교장까지 걱정 가득한 모습을 보였으면 부담스러웠을 거다.
“저보다 교장께서 고생이 많으셨지요. 갑자기 자리를 비워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감찰부장이 언질을 줘서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작게 미소를 짓는 교장의 모습에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확실히 붉은 파도 토벌이 끝나고 교장에게 언질을 주기는 했다. 수습할 일이 남아서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다고.
그 수습이 설마 구금일 줄은 몰랐겠지만.
“감찰부장이 아카데미를 위해, 제국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잘 압니다. 그러니 너무 부담 가지지는 마십시오.”
“감사한 말씀입니다.”
따뜻한 교장의 말에 더욱 머쓱해졌다.
교장은 단순히 ‘아카데미를 지키던 중 일어난 불행한 사고’로 인해 구금됐다고 생각할 거다. 그러니 아카데미 책임자로서 감사와 위로의 말을 할 수밖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붉은 파도에게서 아카데미를 지키던 중, 불행한 사고가 터진 건 맞다.
‘나한테만 불행했지.’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
만약 그 불행한 사고에 대해 자세히 알면 교장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웃을 수도 있고, 어쩌면 어이없어 할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마음이 아픈 건 매한가지다.
***
방을 이리저리 맴돌며 통신구를 힐끔거렸다. 혹시 고장난 게 아닌가 싶어 몇 번이나 매만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통신구가 멀쩡하다는 것만 확인했다. 마탑에서 만든 거라 그런지 튼튼하네.
“니아. 정신 없어.”
그런 내 모습에 라우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왜 그렇게 봐?”
“아니야. 아무것도.”
빤히 라우라의 다리를 바라보자 라우라도 부끄러운지 날카롭게 되물었다.
아까부터 라우라의 다리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심하게 떨리고 있었으니까. 누가 누구한테 정신이 없다는 건지.
그래도 이해한다. 이 어미 같지도 않은 어미를 대신해서 칼과 에리히를 기른 라우라니까. 허무하게 잃은 자신의 아이를 대신해서, 정말 자기 자식처럼 칼을 보살폈으니까.
“…오늘 맞지?”
“맞아.”
하지만 라우라도 더 이상 기다리게 힘든지 초조함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이 맞다. 에리히가 분명 오늘이라고 했으니까.
– 그나마 닷새 동안 갇혀있는 거라고 합니다. 대우도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고 하던데요.
“그래도 면회라도 가는 게…”
– 이미 많이 시달려서 피곤해했습니다. 석방되면 먼저 연락한다고 했으니, 기다리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사흘 전, 에리히와 했던 대화.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칼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에리히의 만류로 겨우 참을 수 있었다.
소중한 아들이 차가운 감옥에 있다고 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지만, 정작 그 아들이 피곤해한다는 말을 들으니 망설여졌다. 내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괜히 귀찮게 하는 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에리히의 말대로 기다렸다. 오늘 석방이라고 했으니, 석방되면 먼저 연락한다고 했으니 믿고 기다렸다.
‘아침부터 기다렸는데.’
떨리는 손으로 다시 통신구를 매만졌다.
오늘은 씻을 때도, 식사를 할 때도, 업무를 볼 때도 통신구를 가지고 있었다.
– 그래서 이번 황태자비 전하의 생신 연회는 불참─ 니아?
“죄송해요 오라버니. 뭐라고 하셨죠?”
– 그, 무슨 일 있니?
심지어 다른 사람과 연락을 할 때는 그 사이에 칼이 연락을 하지는 않을까 불안했었다.
그리고 그런 불안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면회… 가는 게 맞았을까?”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잘도 갔겠다.”
퉁명스러운 라우라의 말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사실 칼이 면회를 바란다고 해도 가기 힘든 상황이었으니까.
에리히가 갑작스레 텔레포트 마법사를 요청했을 때, 그 이유가 구금된 칼의 면회를 위해서라는 걸 알았을 때. 정말 눈 앞이 깜깜해졌었다.
“정신이 들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라우라…? 나 왜 여기에…”
“기절했어. 6시간이나.”
그 후로도 한동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오죽했으면 의회에 있던 빌리가 돌아왔을 정도로.
그 상태에서 면회를 갔다면 오히려 칼에게 걱정만 끼쳤겠지. 아니, 솔직히 라우라 말처럼 가지도 못했겠지만.
그렇게 씁쓸한 심정으로 계속 통신구만 매만졌다. 이런다고 연락이 빨리 오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그 순간, 거짓말 같이 통신구가 반짝였다.
‘…효과가 있어?’
막상 연락이 오니 정신이 멍해졌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고생했다고? 괜찮냐고? 왜 이렇게 늦게 연락했냐고?
“니아.”
옆에서 라우라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말이 꼬이더라도 일단은 받아야지. 이러다가 연락이 끊기면 어쩌려고 그래.
– 어머니.
황급히 통신구를 작동하자 칼의 얼굴이 보였다.
“칼.”
왈칵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주먹을 꾹 쥐었다.
‘얼굴이 반쪽이 됐어.’
감옥에서 주는 음식 같은 거,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거다. 한창 자라날 나이에, 아직 어린 아이인데 그런 힘든 환경에 지내고.
얼마나 고생이 심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괜, 찮니?”
– 예,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겨우 참았던 눈물이 다시 솟구칠 것 같았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감옥에서 잘 지냈을 리가 없는데.
본인도 힘들었을 텐데 이 못난 어미를 배려해주고 있다. 이런 착한 아이가 왜 감옥에 있어야 했을까.
하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애써 웃고 있는 칼의 가슴을 다시 찢어버리는 질문이기에.
–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괜찮단다. 연락으로도 충분해.”
–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 이후 대화는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다. 주먹만 쥐느라, 입술만 깨무느라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칼의 표정이 나쁘지는 않았으니 이상한 말을 하지는 않았겠지. 그러면 됐다.
– 가주님과 시녀장에게도 안부 전해주십시오.
그 말에 옆에 있던 라우라의 얼굴이 급격히 밝아졌다.
“그래, 꼭 전할 테니 걱정 말렴.”
빌리도 칼이 안부를 물었다는 말을 들으면 기뻐할 거다.
***
어머니와의 연락은 최대한 빠르게 끝냈다. 너무 불타는 효자 같은 행동이지만, 도저히 어머니의 얼굴을 오래 볼 자신이 없었다.
‘예상대로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긴. 아들이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멀쩡한 어머니가 어디 있겠나.
본인은 최대한 감추려고 한 것 같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힘이 들어간 눈, 붉어진 눈가, 파르르 떨리는 입술.
…여기까지만 알아보자. 더 생각하다가는 불타는 효자가 아니라 쁄타는 효자로 진화할 것 같으니.
‘더 빨리 할 걸 그랬나.’
어머니의 상태를 보니 마음 속 삼각형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마르게타, 동아리, 교장. 연달아 복귀 신고를 하다 보니 정작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 안에 연락을 하기는 해서 다행이다. 여차했으면 어머니가 밤을 샜을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마님께서 안 좋은 일은 지워내고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가문에서 온 텔레포트 마법사가 상자 하나를 공손하게 건넸다.
상자 안에는 방금 만든 것 같은 두부 요리와 함께 정성스레 작성한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와.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게.”
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