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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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보내주신 두부 요리에 반성을 담아 한 입, 방학 때 받았던 건강식품에 회개를 담아 한 입, 마지막으로 마종공에게 받은 홍삼액에 다시는 이딴 일이 없을 거라는 다짐을 담아 한 입.
어느 때보다 호화로운 아침 식사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환장하겠네.’
씁쓸한 심정에 멍하니 바닥만 내려다 봤다. 어머니의 따스한 모정에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악의 없는 빅엿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법. 만약 조롱 가득한 티배깅이었다면 반격이라도 하지, 모정이 담긴 선물은 순순히 받을 수밖에 없다.
한참이나 바닥을 보다가 아직도 손에 들려있는 손편지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
[ 날이 점점 싸늘해지니 언제나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식사는 거르지 말고, 혹여라도 몸이 불편하면 바로 사제나 마법사를 찾으렴. ]구금 사건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이 순수하게 아들에 대한 걱정만 담긴 편지. 심지어 구석에 있는 눈물 자국과 잉크가 번진 흔적을 봤을 때는 혀라도 깨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만약 내가 가짜 아들이 아닌 진짜 아들이었다면 당장이라도 저택에 달려가 석고대죄를 했겠지. 가짜라서 버텼다.
‘자제해야지.’
한숨과 함께 편지를 서랍에 넣었다.
아무리 내가 지금 가족을 남이라고 생각해도, 그 남 입장에서 나는 진짜 가족이다. 내가 정신을 놓고 행동할수록 그 피해는 가족들도 입겠지.
그래, 3과장 말처럼 구금으로 기존 스택이 초기화 됐잖아. 앞으로는 시말서 쓸 일 없게 조심하자.
“망할.”
내가 빙의가 아니라 환생으로 이 세계에 왔다면 그나마 괜찮았을까.
오늘 동아리 시간에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오빠, 괜찮으세요?”
2학기가 되고 최초로 제과 동아리실에 온 이리나. 하지만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반가움이 아닌 걱정이 담긴 인사를 건넸다.
첫 인사가 안녕하세요, 가 아니라 괜찮으세요 라니. 대충 짐작한 일이기는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괜찮으니까 걱정 마.”
이제는 자연스럽게 지어지는 미소로 대답했다.
괜찮다, 잘 지냈다, 걱정하지 마라. 이 말들을 대체 몇 번이나 했는지. 이번 달 내내 저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정말 괜찮고 잘 지냈다. 얘네가 내 옥중생활을 봤으면 면회를 온 시간을 아깝게 생각할 정도로.
“그, 네, 알겠어요.”
우물쭈물하던 이리나는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저러는지 알 것 같다. 내가 억지로 괜찮다는 말을 한 걸로 생각하고 슬퍼하는 거겠지.
‘괜찮다고.’
진짜 괜찮다고. 솔직히 아카데미에서 지내던 시간보다 더 편했어. 너희도 내 입장이었으면 잘 지냈을 걸?
그렇다고 어린 여학생에게 ‘너도 들어가 볼래?’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오기는 뭐해서, 선물이라도 조금 챙겼어요.”
잠깐 침묵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여는 이리나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움찔하고 말았다. 선물? 선물이라고?
‘설마.’
류티스의 1타, 뒤이은 어머니의 2타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 상황이다.
아니지? 너도 두부는 아니지? 3타까지 맞으면 정말 삼연벙이다. 삼연벙만은 안된다.
“이거…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지만…”
머뭇거리던 이리나는 등 뒤에 숨겼던 화분 하나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손을 숨기고 있길래 뭔가 했는데.
흰색 화분에 담긴 산사나무 묘목. 화분과 같은 흰색 꽃이 활짝 피어있어서 밝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화분이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안도감이 몰려왔다. 다행이다, 삼연벙은 피했어.
“저번하고, 같은 선물이지만… 그래도 얘가 예쁘게 자라서…”
하지만 내 안도감과 별개로 이리나는 같은 선물을 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눈을 이러저리 굴리며 말을 흐렸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지금의 나는 두부만 아니라면 무얼 받아도 기쁘게 받을 자신이 있다. 흰색이라는 거에 PTSD가 올 것 같지만 그래도 먹는 건 아니니.
“예쁘네. 열심히 키웠구나.”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눈치를 보던 이리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나도 열심히 키울게.”
“네!”
밝게 웃는 이리나의 모습을 보니 아침부터 씁쓸했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
손에 들린 화분이 오빠 손으로 넘어가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행이다.’
산사나무를 준비하면서도 몇 번이나 망설였다. 혹시 같은 선물이라 싫어하지는 않을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까.
그래도 고민 끝에 다시 산사나무를 들었다. 산사나무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념비적인 아이니까.
오빠를 향한 공포와 미움을 풀었던 상징. 오빠를 향한 마음을 인정했던 상징.
‘…유일한 사랑.’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지는 꽃말. 딱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오빠에게 내 마음을 고백했던 상징이기도 하다.
유감스럽게도 오빠는 눈치 채지 못하고 애꿎은 루이제만 알아챘지만, 상관없다.
‘다시 고백할 수 있으니까.’
의도하지 않은 고백을 어떻게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 오빠에게 다시 산사나무를 줬다. 이번에는 내 의지로, 내 마음을 담아 유일한 사랑을 줬다.
이번에도 오빠는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괜찮아.’
내가 만족스러우니까. 실수가 아닌 내 의지로 오빠에게 고백을 했으니까.
물론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다. 이런 우회적인 꽃말이 아니라 내 말로 직접 오빠에게 고백하는 것.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게 노력해야지.
산사나무를 창가로 가져가는 오빠의 뒷모습을 보는 사이, 무언가 옆구리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루이제?”
옆을 돌아보자 루이제가 싱글싱글 웃으며 손가락으로 콕콕 옆구리를 찔렀다.
“이리나는 사랑이 두 개구나?”
장난기 담긴 말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마 거울을 본다면 빨갛게 익었겠지.
이 자리에서 산사나무에 담긴 진짜 의미를 아는 건 루이제뿐이다. 다행히 여기저기에 소문을 내지는 않았지만, 가끔 이렇게 짖궂은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건 그렇고 사랑이 두 개라니.
‘너무해.’
그렇게 말하니까 두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잖아. 난 오빠만 좋아한다고.
괜히 섭섭한 마음에 빤히 쳐다봤지만, 루이제는 계속 웃고 있을 뿐이었다.
…아, 좋은 거 생각났다.
“루이제. 잠깐 귀 좀.”
살짝 손짓을 하니 루이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들이밀었다.
남을 놀리면서도 의심을 하지 않다니. 이 순진함이 루이제의 약점이지.
“미안, 미안해애애애… 내가 잘모테써어어어…”
일부러 어눌한 발음으로 루이제의 귀에 속삭였다. 예전에 내 앞에서 펑펑 울며 말했던 그 대사로.
반응은 확실했다. 눈만 깜빡이던 루이제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르더니 황급히 내 입을 막았다.
‘어딜 감히.’
만족스러운 결과다. 나보다 더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사람이 누굴 놀려?
차오르는 흡족함에 눈웃음을 짓자 루이제의 얼굴은 더더욱 붉어졌다. 하필 손으로 입을 막고 있어서 눈이 더 부각돼 보이겠지.
“미안해…”
결국 손을 치우며 작게 항복 선언을 하는 루이제. 먼저 선공을 하고 먼저 항복하는 모습은 조금 우스웠지만, 그래도 기꺼이 받아줬다.
내가 이렇게 보여도 백작가 영애라고. 사교계에서 얼마나 활약했는데.
“이제 화분만 세 개네.”
마침 우리에게 다가오는 오빠의 말에 루이제가 황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
“마음에 드세요?”
“엄청.”
루이제가 표정을 정리할 시간을 벌기 위해 적당히 꺼낸 말이었지만, 단호한 대답에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저렇게 마음에 들어할 줄은 몰랐는데. 산사나무의 꽃말을 알고도 저런 반응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알고 계시나?’
조용히 고개를 드는 망상에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시, 혹시 내 고백을 눈치 채신 게 아닐까? 알고도 저렇게 마음에 들어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좋겠는데…
“잘 키울게. 오래 살면 좋겠다.”
그 말이 나와 오래도록 살자는 말로 들렸다.
***
절망적인 두부 릴레이는 이리나 덕분에 끝낼 수 있었다.
고맙다 이리나. 만약 네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날이 오더라도 웃어 넘길게. 정말 고마워…
– 선물이 많을수록 인망이 좋다는 게 아니겠나. 칼 군이 좋은 인생을 살았다는 증거지.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풀리는군요.”
전승공의 말에 애써 미소를 지었다. 인망의 대가가 티배깅이라면 난 망나니의 길을 걷고 싶은데.
하지만 곧 경사를 앞둔 어른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으니 참았다.
– 그렇게 생각하게. 너무 과거의 일에 연연하면 피곤한 법이니까.
전승공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정답을 말한 것 같아 다행이다.
그렇게 잠깐 웃음을 터뜨리던 전승공은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 그래, 마르게타와 같이 온다고?
“예, 각하.”
이제 며칠 남지 않은 황태자비 생일 연회. 적어도 누가 참석하는지는 알아야 연회 준비도 편하지 않겠나.
그래서 전승공에게 마르게타와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서프라이즈 손님은 창작물에서나 보기 좋지, 실제로는 조금 민폐야.
– 어울리는 한 쌍이 자리를 빛내줄 거라 생각하니 기쁘군. 고맙네, 칼 군.
저 고맙다는 의미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겠지.
– 철혈공도 기뻐하겠어.
“하하…”
그 말에 어색하게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연회에 철혈공도 참석할 줄은 몰랐다.
사실상 은퇴 상태에 돌입한 이후로, 철혈공은 신년하례식 정도를 제외하면 영지 밖으로 나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왜 이 타이밍에 철혈공도 오는 건데. 보자마자 무슨 말을 할지 뻔하잖아.
“나는 네놈이 무릎 꿇은 걸 보지 못했는데, 왜 마르와 같이 있는 거지?”
자동 재생되는 음성에 손발이 바르르 떨렸다.
신년하례식이 끝나면 바로 철혈공의 성으로 갈려고 했다. 무릎을 꿇고 마르게타와의 혼인을 허락해달라고 빌려고 했다. 한 말을 지키는 철혈공의 성격상, 그런 모습은 보여야 마르게타와 함께할 수 있을 테니.
그런데 그 절차를 밟기 전에 마르게타와 붙어 다닌다? 철혈공이 왜 철혈공이라 불리는지 온 몸으로 체험할 거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 어떻게든 될 거다. 설마 소중한 막내딸이 보는 앞에서 예비 사위의 허리를 접어버리겠나.
솔직히 사지는 위험하지만 척추는 지킬 수 있을 거다.
“설마 철혈공 각하도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딘가 부러질 것이 예정된 연회. 약간의 한탄을 담아 말하자 전승공은 너털 웃음을 지었다.
– 저런. 마종공도 온다는데 벌써 놀라면 어쩌려고 그러나.
“예?”
아니 미친.
‘마종공도 온다고?’
철혈공이 환상의 포켓몬이면 마종공은 전설의 포켓몬이다. 신년하례식 기간에도 딱 하루만 얼굴을 비추고 마탑으로 돌아갈 정도니까.
그런데 신년하례식도 아닌, 일개 연회에 얼굴을 비춘다고?
‘…무슨 일이지?’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제도에 일이 터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