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96)
기숙사에 있는 마르게타를 기다리며 어색한 손길로 옷깃을 매만졌다. 평소에는 편안했던 제복이 오늘따라 낯설게만 느껴진다.
‘또 까먹었네.’
적당히 옷깃을 정리하다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번에도 일반적인 예복이 아닌 감찰부 제복을 입고 연회에 가게 생겼으니.
물론 감찰부 제복을 입고 연회에 참석해도 큰 문제는 없다. 이 옷도 나름 예의를 차리려고 입는 복장이니까.
그래도 제복의 본질은 업무복이고, 감찰부의 업무는 꽤 흉흉한 편이지 않나. 가끔 감찰부 제복을 보면 PTSD를 호소하는 귀족도 있다.
그래서 적당히 다른 옷이나 사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매번 까먹는다.
‘연회를 갈 일이 있어야지.’
만약 내가 프로 연회 참석러였다면 진작 여러 벌 구입했겠지만, 내 연회 참석 주기는 최소가 수개월이다. 급하게 살 필요가 없으니 그대로 까먹는 게 다반사.
‘혼자 가는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는 그 건망증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번 연회는 마르게타와 가는 거 아닌가.
곱게 차려 입은 레이디 옆에 제복을 입고 나타난다? 빙의 전으로 치면 데이트 자리에 장교 예복을 입고 나온 거나 마찬가지다. 미쳐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네.
“칼은 뭘 입어도 멋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레이디에게 뺨을 맞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 그럼에도 드넓은 마음의 마르게타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걱정이 한가득이다.
그래, 이번 연회가 끝나면 꼭 사자. 신년하례식 때는 제발 정상적으로 입고 가자.
“칼.”
속으로 다짐하는 사이 뒤에서 들리는 마르게타의 목소리.
슬쩍 뒤를 돌아보자마자 제대로 된 옷을 사겠다는 다짐이 더욱 강렬해졌다.
붉은 드레스와 군데군데 착용한 장신구. 그리고 마르게타의 눈동자를 보는 것 같은 초록빛 보석의 팔찌까지. 잔뜩 힘이 들어간 모습이다.
그에 비해… 난….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나요?”
“아뇨. 마르를 볼 생각에 두근거려 시간이 금방 갔습니다.”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하기에 듣기 좋은 말로 답했다.
“저도 칼을 보고 싶어서 서둘러 나왔어요.”
다행히 마음에 들었는지 마르게타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수록 미안함은 더욱 커졌지만. 정말 미안합니다. 앞으로는 잘 입을게…
전승공이 보내준 텔레포트 마법사 덕분에 저택에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사위인 황태자는 공노비를 추노하기 위해 마법사를 보내고, 장인인 전승공은 손님을 편히 데려오기 위해 마법사를 보낸다.
장인과 사위면서 왜 이리 다를까. 황태자는 보고 배워라.
“많군요.”
아무튼 저택 정문에 떨어지자마자 상당한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작게 연회를 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작다는 의미를 잘못 알고 있었나?
“황태자비 전하는 검소하시다고 들었는데, 생일 연회도 작게 여셨네요.”
나처럼 주변을 훑어본 마르게타가 속삭였다.
아, 진짜 작은 거구나. 연회를 많이 가봤어야 이게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가늠이라도 하지.
“황궁이 아니라 저택에서 여는 것만 해도 충분히 작지만요.”
그런 내 의문을 알아챘는지 조용히 덧붙였다.
그건 그렇네. 황태자비 생일 연회면 황궁에서 여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 그걸 포기하고 일개 저택에서 여니 작다는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전승공의 저택을 일개 저택이라 하니 묘하지만, 황궁에 비하면 일개가 맞으니.
“작게 여는 연회에 초대 받았으니 감사한 일이군요. 어서 인사라도 드리러 갑시다.”
“그래요. 주인한테 인사도 하지 않으면 실례죠.”
그렇게 말하며 마르게타에게 손을 내밀자, 마르게타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저택을 향해 걸어갈수록 시선이 몰리는 게 느껴졌다. 감찰부 제복을 입고 등장한 나를 보고 움찔하는 시선, 뒤이어 옆에 있는 마르게타를 보고 안도하는 시선.
“감찰-장─ ─이 자리─”
“── 공녀─”
본인들은 작게 속삭이는 것 같지만, 얼핏 들리는 대화는 분명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어그로 끌기 딱 좋네.’
씁쓸한 심정에 마르게타의 손을 더욱 강하게 잡았다. 괜히 나 때문에 마르게타도 과하게 주목을 받는 것 같으니까.
걱정되는 마음에 슬쩍 시선을 돌렸지만 마르게타는 당당한 미소를 지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걸음을 옮겼다.
‘괜찮구나.’
생각해 보니 사교계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 감찰부장과 공작의 막내딸 중, 누가 시선을 받는 거에 더 익숙할까. 당연히 후자겠지.
내가 너무 과한 걱정을 했다. 은연 중에 마르게타를 너무 지켜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했어.
반성을 담아 손에 힘을 살짝 풀자, 이번에는 마르게타가 내 손을 꽉 잡았다.
“마르?”
“긴장되니까 계속 잡고 있어줘요.”
말과 달리 긴장과는 아득하게 거리가 먼 표정.
“알겠습니다.”
그래도 마르게타가 원하면 그렇게 해야지.
***
예상대로다. 아무리 황궁이 아닌 저택에서 이루어지는 연회라지만, 황태자비 전하를 위한 연회니 참석자 하나하나가 거물이었다.
규모가 작으면 뭐 어때. 사람이 좀 적어도 상관없어. 어차피 사교계를 좌지우지 하는 건 꼭대기에 있는 소수니까.
지금도 느껴진다. 우리에게 몰리는 시선이, 아닌 척하면서도 힐끔거리는 시선이.
‘좋아.’
그럴수록 부담감은커녕 주체할 수 없는 만족감이 차올랐다.
더, 더 우리를 봐. 모두 이 모습을 보라고.
‘칼은 내 거야.’
내 거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이 남자, 모두가 바라보는 이 남자는 내 거야.
전부 보인다. 묵묵히 우리를 보며 계산을 하는 것 같은 귀족들, 부채로 입을 가린 채 무언가 서로 소근거리는 귀부인들.
‘후후후…’
딱 원하는 결과, 그것도 최상의 결과가 나왔다. 이제 이 연회만 끝나면 저 사람들을 통해 나와 칼의 관계가 퍼지겠지.
물론 칼은 신년하례식이 끝나자마자 아버님께 간다고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잖아.’
조금이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관계를 알았으면 좋겠다. 이게 큰 욕심은 아니잖아?
게다가 결혼을 싫어하는 칼을 억지로 몰아넣는 것도 아니니까. 응, 이 정도는 아무런 문제없지.
그렇게 절로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필사적으로 제어하는 사이, 맞잡은 칼의 손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설마 긴장한 건가? 다들 우리를 보니 떨리는 거야?
‘귀여워.’
색다른 칼의 모습에 겨우겨우 고수하던 무표정이 깨질 것 같았다. 우리만 있으면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정작 남들이 보니까 떠는구나.
“왔나.”
그리고 인파를 가르고 아버님이 나타난 이후에야 그게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미래의 장인 어른을 보고 긴장한 예비 사위도 귀엽지?
***
저 멀리서부터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노인이 보였다.
‘왔다.’
무심코 눈을 감고 말았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손이 덜덜 떨리고 말았다.
노인─ 솔직히 아무리 봐도 중년 정도인 것 같은 양반이 다가올수록,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스스로 몸을 비켜 길을 만들수록 탈주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하지만 참았다. 맹수에게 등을 보이면 그대로 잡아먹히는 미래만 존재하니.
“왔나.”
높낮이 없는 묵직한 음성. 평소에도 위압감 넘치는 목소리였지만, 오늘은 염라대왕의 선고처럼 느껴졌다.
“크라시우스 가문의 후계자, 재무성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가 존귀하신 철혈공 각하께 인사드립니다.”
내 인사에 철혈공은 코웃음을 치더니 딱 한 마디를 내던졌다.
“그저 말뿐인 존귀는 부질없는 법이지.”
누가 들어도 ‘너한테 유감이 많다.’ 는 말에 다시 손이 떨렸다.
‘꼬였다.’
마르게타와 결혼을 하고 싶다면 직접 찾아와 무릎을 꿇으라는 말을 한 철혈공이다. 농담과 거리가 먼 사람이니 가볍게 한 말은 아닐 터. 진심으로 내가 무릎을 꿇은 이후에야 마르게타와의 관계를 용인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황태자비 생일 연회에서 마르게타의 파트너로 등장한다? 무릎을 꿇지도 않고?
공작이자 마르게타의 아비인 자신을 무시하고 업신여긴다 판단해도 이상하지 않다.
…다행히 아직 주먹이 날아오지 않은 걸 보면 진지하게 분노한 단계는 아닌 것 같지만.
“아버님.”
옆에 있던 마르게타가 입을 열자 언짢음 가득했던 철혈공의 표정이 급격히 누그러들었다.
역시 늦둥이 막내딸에게는 약하구나. 저게 아비 된 자의 숙명인가.
“마르. 오랜만에 보는구나.”
“네, 아버님. 건강하셨나요?”
공손한 인사에 철혈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 이 아비와 같이 있어주지 않으니 알아서 건강을 챙겨야지.”
서운함 가득한 말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그 말에 안 그래도 닫혀있던 내 입이 더욱 무거워졌다.
“아버님이 같이 가자고 하시기는 했는데…”
어제 마르게타가 조심스레 꺼낸 말. 애석하게도 마르게타는 내가 파트너 신청을 하기 전, 이미 철혈공의 권유를 거절한 상태였다.
‘서운할만하지.’
저번 여름 방학 때, 마르게타는 내 저택에 머무느라 영지에 돌아가지 않았다. 이번 생일 연회, 철혈공의 권유를 거절하고 내 파트너로 참석했다.
이건 내가 철혈공이어도 눈이 뒤집힐 일이다. 마르게타를 향한 서운함이 클수록 나를 향한 분노도 커질 것 같은데.
“방금 온 손님을 너무 붙잡고 있었군. 주인에게 인사부터 드려라.”
침묵 상태에 빠진 나를 바라보던 철혈공은 그 말과 함께 등을 돌렸다.
인사’부터’ 드리라는 말이 이따가 조지겠다는 선전포고로 들린다면 착각일까.
“칼.”
“아, 예.”
마르게타의 목소리 덕분에 가출하려던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아버님도 섭섭해서 저러시는 거예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마르게타의 위로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무 쫄 필요는 없으니 정신 차리자. 눈물의 그랜절을 하기 전에 철혈공과 마주친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나마 황태자비를 위한 연회에서 만난 건 다행이다.
아무리 철혈공이라도 황태자비가 주인공인 곳에서 소란을 일으킬 수는 없다. 황태자비가 주목 받아야 할 자리에서 감찰부장이 무릎을 꿇고, 공작이 저먼 수플렉스를 하면 너무 시선 강탈이잖아.
‘철혈공이 그런 것도 모를 사람도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니 긴장이 조금은 풀렸다.
***
업무가 아닌 이유로 마탑을 나온 건 오랜만이다.
연회 같은 복잡한 장소는 질색이다. 힐끔거리는 시선, 속닥거리는 대화, 귀찮은 접근.
하지만 이번 연회는 그런 것들을 감수하더라도 갈 이유가 있다.
‘아가.’
신년하례식, 제국백 가문끼리의 회합 정도를 제외하면 극히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아가. 그런 아가가 연회에 참석하는 건 희귀한 일이니까.
마침 요즘 업무량이 줄어 외출할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차가운 감옥에 있던 아가가 석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지 않나.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꼭 가야지.
‘기다리렴.’
아가를 위한 포션을 새로 만들었으니까.
비록 수명을 늘릴 수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건강에는 좋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