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198)
역시 연회는 피곤하다.
“마종공 각하를 뵙습니다!”
아직 저택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진이 빠진다.
언제부터였을까. 이상하게 사람이 많은 곳은 꺼려지고, 벌벌 떠는 사람이 눈 앞에 있으면 괜히 온 건가 싶다.
지금도 그렇다. 몸이 딱딱하게 굳어 인사하는 경비병을 보니 피곤함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아가가 아니었으면 오지도 않았을 텐데.’
하지만 어쩌겠나. 아가를 위해서라면 이런 사소한 문제는 극복해야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바로 열겠습니다!”
황급히 정문을 여는 경비병들을 보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으니까.
저 멀리, 저택 정면에 위치한 발코니. 그 발코니에 있는 두 남녀.
‘아가.’
분명 아가다. 내가 아가의 마나를 헷갈릴 리가 없으니.
마법으로 시력을 강화해서 보니 확실히 아가가 맞았다. 아가도 나를 확인했는지 조금은 놀란 표정.
‘온 보람이 있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연회 장소에 오자마자 보는 게 아가라니, 마치 나를 기다린 것 같지 않나.
하지만 차오르는 만족감은 옆에 있는 인물을 보자 조금 가라앉았다.
‘마르게타 공녀.’
아가의 옆에 붙어있는 여인. 내가 아닌 다른 여인이 아가의 옆에 있는 모습.
예상하고 있었다. 아가와 마르게타 공녀가 친밀한 관계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거슬린다.
“열 필요 없단다. 알아서 들어갈 테니 멈추렴.”
바삐 정문을 열고 있는 경비병들에게 짧게 말하고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이미 알고 있었기에 각오했지만, 역시 알고 있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달랐다. 각오가 무색하게 아가가 다른 여인과 있는 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감정이 치솟았다.
아니, 충분히 알고 있다. 질투겠지. 부끄럽게도 한참이나 어린 아이한테 질투를 하고 말았다.
‘상관없어.’
부끄러워도 상관없다. 질투가 앞서도 괜찮다. 그만큼 아가를 향한 내 사랑이 크다는 증거니까.
“아가.”
멀었던 나와 아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여전하구나.’
아가의 복장을 보자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이런 자리에서도 칙칙한 제복이라니. 아가답다면 아가다운 모습이다.
그리고 옆에 있는 공녀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아.’
검은색과 붉은색이라니, 너무 어색해. 아가가 검은 옷을 입었다면 따스한 흰색으로 감싸줘야 하지 않겠나.
“오자마자 보는 게 아가라니, 운이 좋구나.”
화려한 붉은색은 아가와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돋보이는 색이다.
“혹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거니?”
그러니 검은색에는 흰색이 어울리는 법이다.
“후후, 그렇다면 기쁘겠구나.”
바로 나처럼.
***
등 뒤를 잡혔을 때는 본능적으로 쫄고 말았다. 마종공이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흠칫했네.
‘마법이 좋긴 좋아.’
텔레포트로 편하게 이동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검사로 전직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물론 마법은 재능의 영역이고, 텔레포트는 꽤 고위 마법에 속해서 힘들겠지만.
아무튼 먼저 말을 건 마종공을 향해 가볍게 대답했다.
“바람을 쐬고 싶어 나왔는데, 마침 각하께서 오셨군요.”
“그러니?”
옅은 미소를 지은 마종공의 귀는 하늘을 향해 솟구쳐있었다. 진실을 알려주는 귀가 저런 걸 보니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신기한 일이다. 마종공은 사람이 많은 걸 싫어해서 신년하례식에도 겨우 오는 편이다. 연회에 자청해서 오는 것도 희귀한 일인데, 기분까지 좋아 보이니 더 신기하지.
“바람이 차니 들어가시죠. 전승공도 각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손님을 발코니에 세워두는 건 예의가 아니니 안으로 안내했다.
나도 손님이지만 손님 사이에도 서열이 있는 법 아니겠나. 지나가다가 공작을 보면 바로 시종 역할이나 하는 게 마땅하다.
“그래. 주인을 너무 기다리게 했지.”
내 말에 마종공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전승공이 많이 기다리기는 했다. 그냥 손님도 아니고 현명공 다음 가는 희귀종인 마종공 아닌가. 그 희귀종이 딸을 위한 연회에 참석한다는 소식에 전승공도 제법 기뻐했다.
그런데 온다고 한 손님이 오지를 않으니 많이 의아해하더라. 마종공이 이런 걸로 장난을 칠 사람은 아니니 때가 되면 오겠지, 하고 넘어갔지만.
“흐음.”
다시 연회장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묘하게 언짢음이 담긴 소리가 들렸다.
“각하?”
난데없는 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리니 마종공의 시선이 아래로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나와 마르게타가 맞잡고 있는 손 쪽으로.
“사이가 좋아 보이는구나.”
잠시 말이 없던 마종공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여전히 미소를 지은 얼굴이었지만, 기분이 아까와 달라졌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언짢음이 섞인 목소리, 조금 내려간 귀. 저걸 보고도 달라진 게 없다고 느끼면 그게 더 이상하다.
“감사합니다, 각하.”
내가 적절한 리액션을 검색하기 위해 입을 다문 사이, 침묵을 지키고 있던 마르게타가 대신 대답했다.
마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듯 밝게 웃는 모습. 아니, 그런데 방금 뉘앙스를 보면 진짜 칭찬을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들어가자꾸나.”
“아, 예.”
마르게타의 말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마종공은 앞장서서 연회장으로 향했다.
‘…손 때문인가?’
갑작스러운 변화에 머리를 굴리다가 슬쩍 손을 바라봤다.
그래, 이게 문제인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면 한참 어린 것들이 어르신 앞에서 애정 행각을 보인 거니까. 예의가 있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행동이었지.
‘실수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종공을 편하게 생각했나? 어머니, 어머니 거리다 보니 진짜 어머니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마─”
“가요, 칼.”
나도 눈치 챈 것을 마르게타가 모를 리는 없다. 그렇기에 방금 반응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지만, 마르게타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를 잡아 끌었다.
물론 마르게타의 힘 정도로 끌려갈 육체는 아니다. 아니기는 한데…
‘입 다물자.’
얼핏 본 마르게타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었다. 마치 전쟁을 앞둔 베테랑의 표정처럼.
심지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악력으로 내 손을 잡았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인다면 기분 탓일까.
그래,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 나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고 본능이 경고했다.
안 그래도 성황리에 진행되던 연회는 더욱 술렁이기 시작했다. 콜라에 멘토스가 빠지면 딱 이런 분위기겠지.
희귀종의 등장으로 인해 눈치 게임에 돌입한 귀족들. 하지만 희귀 멘토스에게 다가갈 자격이 있는 건 같은 위치에 있는 두 공작뿐이었다.
“저택에서 뵈니 반갑군요. 자리를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종공.”
마종공이 발코니 쪽에서 나타나자 전승공은 황급히 달려왔다. 근처에 있던 철혈공도 덩달아 따라왔고.
‘저게 연공 서열.’
세 공작이 모인 걸 보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마종공에게 인사하는 두 공작의 허리는 미묘하게 굽혀졌다가 다시 펴지고, 다시 굽혀지려고 하다가 또 펴지는 기괴한 모습을 보였다.
‘어쩔 수 없지.’
이해한다. 마종공이 어디 보통 공작인가. 전승공과 철혈공의 조부가 공작이던 시절에도 마종공은 공작으로 군림했다.
즉 두 공작은 후계자는커녕 일개 손자에 불과했던 시절에 마종공을 처음 봤다는 거다. 그런데 그때 본 공작이 지금도 공작이라고? 함부로 대하면 그게 미친 거지.
“저도 반갑습니다. 두 분 다 건강한 것 같아 다행이군요.”
그렇기에 마종공도 철저히 존대로 응수했다. 여기서 평소 같은 말투로 두 공작을 대했다가는, 곧바로 자기가 나이 끝판왕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니까.
…마종공의 존대를 들을 때마다 공작들의 허리가 더 숙여지는 건 애써 못 본 척 했다.
“어디 가서 보기 힘든 장면이군요. 이런 게 연회의 묘미인가 싶습니다.”
대신 아까부터 심각한 표정이었던 마르게타에게 작게 농담을 던졌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풀어줘야지.
“…….”
돌아오는 반응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마르?”
조심스레 마르게타를 불렀지만 이번에도 반응은 없었다. 이제는 입이 아니라 귀도 닫힌 상태에 돌입한 것 같다.
이유를 모르겠다. 만약 나한테 화가 난 거라면 사과라도 할 텐데, 아까부터 손을 놓아주지 않는 걸 보면 그런 건 아니고.
‘대체 왜.’
안 이러던 사람이 이러니 더 무서워.
***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절대 안돼.
‘내 거야.’
칼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심코 입술까지 깨물고 말았다.
‘내 거라고.’
이럴 수는 없다. 갑자기 이런 재앙이 덮치는 게 어디 있어.
억울함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적 앞에서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
‘내가 처음이야.’
그렇게 속으로 되뇌이며 마음을 바로 잡았다. 동요하지 말자. 칼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칼이 사랑하는 건 나야.
아무리 상대가… 공작이여도…
‘어떡해…’
공작이라는 신분을 떠올리자 겨우 다잡았던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공작의 힘은 잘 안다. 나도 공작가의 일원으로 살았는데 어찌 모를까. 공작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 공작가다.
그렇기에 이번 일이 끔찍한 재앙이라는 것도 안다.
‘왜 당신이.’
정말 예상하지 못한 재앙이다.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진 적은 있었지만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왜 칼을 좋아하는 거야.’
하지만 그 혹시나가 현실이 되었다.
발코니에서 깨달았다. 칼을 보는 눈빛, 칼을 향한 목소리와 손짓. 그리고 나를 보던 눈빛.
확실하다. 그렇게 대놓고 보이는 감정을 모를 리가 없잖아.
‘지금도 그렇고.’
공작들과 인사를 나누는 지금도 칼에게 은근슬쩍 시선을 보냈다. 그 속에 담긴 애정. 절대 착각이 아니다.
다시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그저 행복한 연회가 될 줄 알았다. 귀족들에게 우리의 관계를 알릴 기회가 될 줄 알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오는 게 아니었─
‘…아니야.’
약한 생각 하지 말자. 차라리 잘 됐어. 전혀 몰랐던 적을 알게 됐잖아.
오히려, 오히려 잘된 거야. 적이 누군지 알았으니 대비할 시간이 생긴 거야.
‘질 수 없어.’
상대가 공작이라고? 그게 뭐. 결혼을 신분으로만 하나?
나는 이미 칼과 약속했어. 신년하례식이 끝나면 바로 아버님께 가기로 했다고.
‘지지 않아.’
그래, 긴장할 필요 없어.
바렌티는 원하는 걸 반드시 얻으니까. 상대가 아무리 공작이어도, 절대 지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