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0)
제 20화
윗분이 가리키면 아랫놈은 구른다 – 2
갑자기 나타나 머리를 향해 하이파이브를 날리는 검은 곰의 인사성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짐승 주제에 어지간한 사람보다 낫구나. 고마운 마음에 인사를 받아 쳐주니 좋아서 죽으려 한다. 바로 땅바닥에 누워 뒹구는 것이 분명 이 녀석도 내 화답에 감동한 것이겠지.
불쌍한 녀석,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해서 정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사람의 손길이 한번 닿았다고 바로 배를 보일 정도라니.
‘의외로 튼튼하네.’
뭐, 농담을 빼고 말하면 죽일 생각으로 복부를 후려쳤다. 하지만 주먹을 쓰는 건 오랜만이라 힘 조절을 잘못했는지, 그 결과가 죽지 못하고 뒹구는 저 모습이다. 던전에 있는 놈이라 그런지 일반적인 곰에 비해 튼튼한 것 같다.
조금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다행이긴 하다. 부원들이 있는 상태에서 이런 놈이 튀어나왔으면 의외의 사태가 발생했을지도 모르니. 지금이야 저렇게 쓰러져 있지만, 만약 악에 받쳐서 부원들에게 달려들었다면 심히 곤란해진다.
‘덩치도 제법 크고.’
곰의 복부에 꽂았던 주먹과 겨우겨우 일어나려는 곰을 번갈아봤다. 던전 안에서 계속 걷기에는 조금 넓은 편이고, 마침 저 녀석도 사람이 탈 정도 크기로는 충분하다. 좋아, 이것도 인연이지.
곰을 향해 걸어가자 기겁하길래 주먹을 보여주니 잠잠해졌다. 튼튼한데 지능도 괜찮다. 이것이 던전의 신비인가. 괜찮은 지능의 힘으로 가만히 있는 법을 터득한 곰의 코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
등 좀 빌려줘.
역시 사람은 탈것이 있어야 몸이 편하다. 두발로 걸어 다니기 귀찮았던 던전도 빠르게 돌아다닐 수 있었고, 처리해야 할 유해조수도 웅이가 냄새로 귀신 같이 찾아내서 내가 고생할 것이 없었다.
웅이는 지금 타고 있는 검은 곰에게 붙인 이름이다. 이렇게 도움이 되는데 이름 정도는 붙여줘야지. 대충 곰돌이라고 하려다가 그건 너무한 것 같아서 웅이라 틀었다.
“너도 웅이가 좋지?”
─쮸쀼…
“굿 베어.”
좋다는 뜻인 것 같다. 흡족한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몸을 떠는 게 느껴졌다.
던전의 유해조수들이 다른 짐승들에 비해 힘은 세지만, 지능이 좋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 이 녀석이 특이한 케이스인가? 뭐, 아무렴 어떤가. 내가 던전 생태계를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고.
그렇게 웅이를 타고 1시간 정도는 더 던전을 둘러봤다. 혹시 내가 놓친 것이 생기면 소풍 당일에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정말 던전이 생긴 걸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이 천운이었다. 사실 정말 천운이면 애초에 안 생겼겠지만.
‘지형 진짜 개같다.’
지금은 가로막는 나무를 다 부수며 전진 중이지만, 만약 6인방과 함께 이 숲길을 걸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한 명이라도 다치면 아카데미를 넘어 대륙이 요동치는 끔찍한 호위 미션인데 지형마저 좋지 못하다니, 지옥인가.
물론 그 지옥 같은 미래는 지금 내 손으로 부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웅이 등에서 내리자 웅이도 안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내가 떠나려는 걸 눈치챘나 보지. 이거 진짜 일반 곰 지능이 아닌데.
“웅아. 이제 더 남은 거 없지?”
대답은 없지만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더 없으니 제발 꺼져달라는 눈빛. 난 그 눈빛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웅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없어? 하나 있을 텐데.”
─쮸쀼?
정말 모르겠다는 울음소리를 내던 웅이의 눈에 점점 불안함이 차올랐다.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그게 맞는지, 제발 그게 아니기를 바라는 것처럼.
“너 남았잖아.”
그 말과 함께 웅이의 머리를 내려쳤다. 다행히 이번에는 복부를 쳤을 때와 달리 제대로 힘을 조절해서 한번에 끝냈다. 같이 던전을 돌아다니면서 생긴 정이 있으니 특별히 신경 써서 아프지 않게 보내줬다. 아프지 않고 죽으면 호상이지.
터진 머리를 잃고 쓰러지는 웅이(였던 것)을 내려다 보니 괜히 씁쓸했다. 얘 지능도 괜찮고 나름 순한 것이 혹시 루이제가 던전에 들어오고 애완동물로 삼는 스토리인가, 라는 생각마저 잠깐 스쳐 지나갔었으니. 애완동물이라기는 덩치가 좀 크긴 하지만.
이 녀석에게 죄가 있다면 던전에서 태어났다는 것. 괜히 살려뒀다가 소풍 때 서프라이즈 파티를 한답시고 튀어나오면 서로 민망해진다.
‘다음 생에는 귀족가 애완동물로 태어나렴.’
그렇게 곰이의 명복을 짧게 빌어주고 등을 돌렸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던전에서 나가야지.
아, 곰이가 아니라 웅이였나? 뭐, 상관없다. 어차피 이제 부를 사람도 없는 이름이니.
임시로 던전 정화를 끝내고 돌아오니, 다행히 동아리 시간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교감이 아침부터 소식을 전달해줘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나 없는 동아리실에 6인방만 모이는 참사가 터졌겠지. 상상하니 조금 무섭다. 내 눈에서 벗어난 6인 집결…
‘끔찍하네.’
6명이 흩어진 정규 과목 시간에도 가슴이 조마조마한데, 전부 모인 동아리 시간? 갑자기 다섯 중 누군가 미쳐서 결투 신청을 남발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놀라진 않겠지만 참담하겠지, 시발. 누가 결투하자고 까불거리면 내가 상대 대전사로 나서야지. 진심으로 팬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동아리실로 들어가 늘 앉던 자리에 앉고 나니, 동아리실에 무언가 낯설음이 느껴졌다. 뭔가 더 깔끔해지고, 미묘하게 고급스러운 느낌.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눈을 돌리자마자 가장 가까운 책상에 올려진 편지 한 장이 보였다. 교감이 보낸 편지였다.
‘뭐지.’
아침에 본 사람이 굳이 편지를 남길 일이 있나? 보냈으니 보기는 봐야겠지만.
[ 망가진 책상을 교체하는 김에 전체적으로 교체했습니다. 혹여 소음으로 감찰관님이 불편하실까봐 감찰관님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신 사이에 처리했습니다. 부디 새롭게 단장한 동아리실이 만족스러우셨으면 합니다. ]“아.”
참된 교감…!
별 생각 없이 편지를 읽은 나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1을 한다면서 10까지 완벽하게 처리한 교감의 예술적 행동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거다, 이게 참된 사람이다. 아카데미라는 제국 최고 교육 기관의 교감까지 오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재다!
1, 2, 3 개새끼 중 하나라도 교감의 절반만큼만 했다면 내 직장 만족도는 떡상했을 것이다. 등에 업고 출퇴근 할 자신도 있다. 내가 은퇴하면 차기 부장 후보로 차장과 더불어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아꼈을 것이다.
물론 부질없는 가정이다. 개같은 거.
“어라? 오라버니, 책상 바꾸셨어요?”
동아리실에 들어오자마자 루이제가 한 말이다. 역시 제과에 가장 진심인 아이라 그런지, 무엇이 변했는지 바로 눈치 챈다. 다른 다섯은 루이제의 말을 듣고서야 눈치 챈 것 같고. 이건 너희가 정상이니 지능을 탓하지 않아도 된다.
“망가졌길래 교체했다. 하는 김에 다른 것들도 전부.”
“혼자서요? 저희하고 같이 하시지.”
“나 말고 교감이. 지나가다 만나면 감사하다고 인사 드려라.”
“네!”
하늘 같이 푸른 눈을 반짝인 루이제가 들뜬 발걸음으로 동아리실을 둘러봤다. 전부 바뀌었다니 확인하고 싶겠지. 사실 나는 봐도 잘 모르겠더라. 미묘하게 바뀐 듯 하면서도 뭐가 변한 건지 모르겠을 그 오묘함.
그렇게 다섯을 이끌고 동아리실을 살피던 루이제가 무언가 생각난 듯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보니 오라버니. 아침부터 어디 가시던데 무슨 일 있으셨어요?”
“어?”
뭐야, 어떻게 알았냐.
본인을 바라보는 내 눈에 의문이 가득 찼는지 루이제가 멋쩍게 머리카락을 꼬며 말을 이었다.
“아침에 교문 밖으로 나가는 오라버니가 보였거든요.”
“수업에 집중 안 한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하는구나.”
내가 나갔던 시간에 루이제가 수업을 받던 건물 위치를 생각하면 정말 작정하고 창 밖만 쳐다봤다는 거다.
나는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한 수업을 그렇게 낭비하는 루이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니, 본인도 민망한지 헤헤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래, 봐준다. 너한테 화내서 무엇하냐…
“그래서 어디를 가신 겁니까? 주변에 갈 곳이 있던가요?”
나 홀로 루이제와 대화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단순하게 뒷내용이 궁금해서인지 류티스가 끼어들었다. 류티스의 말에 어색히 시선을 돌린 루이제의 눈이 다시 내 쪽에 꽂혔고.
“현지답사를 할 겸 소풍 장소에 다녀왔다.”
“잠깐 소풍 가는데 뭘 현지답사까지 하십니까. 소풍 중에 무슨 문제가 터진다고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류티스의 목 부근을 유심히 쳐다봤다.
울대, 울대 한 번만 존나 세게 후리고 싶다. 외교 문제로 번지지만 않으면 진짜 딱 한 대만… 지금 그 문제가 터지기 직전에 해결하고 온 고문 앞에서 그게 할 소리냐.
동시에 류티스의 말을 듣자마자 99% 확신이 100% 확신으로 상승했다. 이거 모르고 갔으면 무조건 소풍 도중에 던전에 들어갔다. 저 플래그 같은 말을 들으니 확실하다. 저 악마의 주둥아리 진짜. 이미 해결한 일이지만 괜히 열받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넥슬라이스의 충동을 억누르며 적당히 대답하고 애써 시선을 돌렸다. 충동이 이성을 이기는 순간, 외무성이 눈이 뒤집어져 나를 잡으러 올 것 같으니.
“그 언덕에서 보는 벚꽃이 엄청 예쁘대요!”
류티스에게서 시선을 돌리니 루이제가 눈에 들어왔다. 벚꽃, 루이제에게 딱 어울리는 꽃이기는 하네. 그런데 예쁘대요, 라. 누가 루이제에게 헛바람을 넣어서 거기까지 소풍을 가게 된 것 같다. 어느 개같은 것이 개같은 짓을 해서 날 귀찮게 만든 거지…?
“아, 지난번에 이리나가 말한 그거? 그게 거기였구나.”
정체는 에리히의 말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이리나… 걔구나. 루이제 처음 봤을 때 옆에 있었던 걔.
상상도 못한 정체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기대에 찬 루이제의 말을 듣기만 했다. 이리나가 원인이라면 차마 원망할 수 없었으니.
이리나. 루이제의 가장 절친한 동성친구. 루이제 쟁탈 레이스 참가자인 다섯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나름 주시하고 있는 인물 중 하나. 그렇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슬쩍슬쩍 현황을 파악하고 있고.
그리고 풀네임은 이리나 요룬. 아카데미 파견 전, 감찰부의 오인사격으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그 가문의 영애다.
시발, 3과장 개새끼야. 네 똥이 아직 여기에도 있었잖아.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본 업무상 과실치사의 산증인은 내 죄책감을 자극하는 존재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담: 故 웅이(熊이, EP. 19 ~ EP. 20). 곰돌이와 전혀 다를 것 없는 이름.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영창님! 후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