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02)
공작과 관련된 일은 어지간하면 사교계에 퍼지지 않는다. 감히 공작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 공작의 심기가 불편해지면 모가지가 위험하니까.
하지만 어디서나 예외는 있는 법. 도저히 입을 놀리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사건, 당사자인 공작도 은근히 퍼지기를 바라는 사건이면 소문은 미친 듯이 퍼지게 된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지금이 그렇다.
– 칼 카토반 부장님. 요즘 지낼만하십니까?
“닥쳐.”
아무도 없는 동아리실에서 홀로 생각을 정리하던 중 걸려온 연락.
무시할까 싶었지만 중요한 일일 수도 있어서 받았는데, 받자마자 미친 도발을 듣고 말았다.
‘카토반이라니.’
그거 마종공 성이잖아. 누굴 데릴 사위로 만들어.
– 왜 그러십니까? 그렇다고 마종공 각하가 크라시우스가 될 수도 없는데.
“닥치라고.”
내 반응에 낄낄거리는 2과장을 보자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 새끼가 감히 상사의 불행을 놀려?
‘말세다.’
믿을 수 없다. 도대체 얼마나 사악한 심성을 가지고 있으면 상사를 장난감처럼 여긴단 말인가.
통탄스럽다. 위와 아래의 관계가 일그러진 이 상황, 어찌 올바른 공무원 사회라고 할 수 있겠나. 철저한 상명하복이 공무원의 미덕일 텐데.
당장이라도 2과장을 2/과/장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동시에 눈 앞이 깜깜해지는 막막함도 몰려왔다.
‘다 퍼졌네.’
저놈이 이렇게 놀릴 정도면 이미 마종공 사건이 퍼질 만큼 퍼졌다는 거다.
2과장의 특기가 정보 수집이기는 하지만, 황태자비 생일 연회에서 일어난 일을 순식간에 파악할 정도는 아니니까.
아마 연회에 참석한 누군가가 확성기로 전직한 모양이지. 도대체 어떤 입 가벼운 사람이 소문을 퍼뜨리는 건지 모르겠다.
‘이제 겨우 이틀 지났는데.’
아니, 겨우가 아니라 벌써인가? 생각해 보니 이틀이면 소문이 퍼지기에 충분한 시간 같기는 하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만 해도 황태자, 황태자비, 공작, 제국의회 의장, 그 외 여러 거물들. 그중 한 명만 입을 열어도 소문이 퍼지는 건 금방이다.
“누구한테 들었냐?”
– 마탑놈들이요. 처음 들었을 때는 저것들이 미쳤나 싶었습니다.
시시덕거리는 2과장의 말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마탑 관계자한테 들었다고? 업무 관련이 아니면 입도 뻥끗 안 하는 그것들한테?
‘마종공이었나.’
딱히 알고 싶지 않던 진실에 도달했다. 확성기 역할을 자처하는 건 마종공이었다.
아마 마탑 마법사들한테 소문 좀 열심히 내라고 한 모양이지. 마법사들은 자기들 꼭대기에 있는 마종공의 명령에 순순히 따랐을 테고.
‘망했네.’
마탑 전체가 확성기 겸 전서구 역할을 수행 중이면 답이 없다. 텔레포트 마법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들이 사방팔방 소문을 퍼뜨린다? 이미 제국 전체가 다 아는 거지.
‘작정했다.’
식은땀이 흘렀다. 마종공이 제대로 작정했어.
“신년하례식이 있으니, 그날을 기다려야겠구나.”
마종공이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 본능적으로 떠올랐다.
이제야 깨달았다. 확실히 신년하례식을 기다리겠다고만 했지, 가만히 있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바보 같이 마종공이 잠잠할 거라 지레 짐작하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그런 대형 폭탄을 터뜨린 사람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데.
‘…불참할까?’
진지하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이번 신년하레식에 참가하면 화려한 시선이 나를 감쌀 거다. 차라리 황제에게 괘씸죄 1 스택을 적립하고 탈주할까? 그게 정신 건강에는 좋을 것 같은데.
– 그래도 부장님, 마종공 각하의 반려면 누구도 못 건드리는 거 아닙니까?
침묵 상태에 빠진 나를 보자 그제서야 개념이 돌아왔는지, 2과장이 조심스레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전혀 위로 같지 않았지만 저놈 기준으로는 위로다. 전혀 위로 같지 않지만, 개새끼.
“결혼을 나 편하려고 하냐?”
머리가 복잡해서 절로 날 선 반응이 나왔다. 솔직히 2과장이 한 말을 생각하면 날 선 반응이 아니라 날로 찔러도 무죄지만.
‘못 건드리기는 하겠지.’
그래, 마종공의 남편이 되면 인생이 편하기는 할 거다. 같은 공작들도 마종공 앞에서는 굽히는 상황이고, 황제마저 마종공은 존중하는 편이다. 황태자? 논할 가치도 없다.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치. 그게 마종공의 남편이라는 자리다.
‘무슨 의미야.’
하지만 그게 어쨌다고.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이득을 따지며 고르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말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종공은 나를 좋아하는 상황 아닌가. 그런 마음을 이용해서 이득을 챙기는 건 개새끼지.
– 부인 덕을 보는 게 이상한 건 아닌데…
“그건 결혼하고 덕을 본 거지, 덕을 보려고 결혼한 거냐?”
– 아니, 평민 출신은 전데 왜 부장님이 더 그러십니까?
정략 결혼과 완전히 위배되는 발언에 2과장이 헛웃음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너보다 내가 더 평민스러울 거다.
***
부장님과의 대화는 짧게 끝냈다. 아무래도 길게 말하기는 부장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서 원.
“그럼 힘내십쇼. 부장님이 쓰러지면 마종공 각하가 달려올 거라 생각하시고.”
– 개새끼야.
마지막까지 조언을 아끼지 않은 부하에게 개새끼라니. 엄청난 극찬이었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군.
그렇게 이를 바득바득 가는 부장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통신구가 꺼졌다.
‘굉장하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부장님이 결혼 시장의 우량 매물인 건 진작 알았지만, 설마 마종공도 노리는 물건일 줄은 몰랐다.
정말 놀라울 지경이다. 철혈공의 막내딸과 그렇고 그런 관계로 나아가는 것도 대단한데, 공작의 딸을 넘어서 공작 당사자까지?
‘줄을 잘 잡았어.’
권력의 중추로 달려가는 부장님을 보니 만족스럽다. 역시 2년 전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젊다 못해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의 부장. 다른 놈들은 그런 부장을 어떻게 따르겠냐고 드러누웠지만, 나는 바로 부장님에게 붙었다.
사실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 황태자가 작정하고 밀어주는 게 보이는데, 반항하면 그게 머저리지.
‘머저리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대든 거지? 부장님은 전쟁 전에도 거물이었잖아.
제국백 후계자인 것도 그렇고, 외가 쪽으로 가면 현─
“어땠어요?”
뒤에서 나지막히 들리는 목소리에 상념이 깨졌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내가 미쳤지, 지금 중요한 건 부장님 혈연 관계가 아닌데.
“걱정할 필요 없겠어. 부장님도 당황스러운 것 같더라고.”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 당황한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추궁만 당할 수도 있─
“확실해요?”
“…당황하셨을 걸?”
싸늘한 빨간 눈과 마주치자 바로 말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확실하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지.
그런 내 반응에 빨간 눈의 귀신, 아니 1과장은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서럽다.’
야박한 반응이다. 대신 부장님을 떠봐달라고 해서 기껏 해줬더니, 돌아오는 건 저런 눈빛이냐.
하지만 따지지는 않았다. 1과장이 부장님을 좋아하는 건 알고 있으니까. 연적으로 무려 공작이 등장한 건데 당연히 저럴 수 있지. 동료로서 충분히 이해한다.
절대 출근하자마자 스산하게 혼잣말하는 1과장을 봐서 이러는 게 아니다.
“뭐, 부장님이 아무 여자나 좋아할 리는 없죠.”
잠시 침묵하던 1과장은 애써 밝게 말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아무런 타격도 없다는 듯이.
그래, 동의한다. 부장님은 2년 동안 헤카테님의 그림자에 덮여있던 분이다. 이제야 겨우 그 그림자를 걷어내는 중인데 다른 여자가 보일까?
그런데…
‘너도 아무 여자인데.’
1과장이 인지하지 못하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
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1과 지하실은 나도 가기 싫거든.
1과장이 진정된 것 같아 조용히 밖으로 빠져 나왔다.
‘당분간 출장이나 나갈까.’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진정했지만, 언제 다시 1과장이 분노 상태에 돌입할지 모른다.
1과장이 연애 문제로 심기가 뒤틀리면 나만 피곤해진다. 유감스럽게도 1과장이 부장님을 좋아한다는 건 나만 알고 있으니까.
‘차라리 몰랐다면.’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그때 아는 척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눈치챘더라도 이 악물고 모르는 척 했어야 됐는데.
괜히 금지된 지식을 손에 넣은 자는 고통스러운 법이다. 빌어먹을.
“결혼이 뭐라고.”
막막함과 원망을 담은 한탄. 이제 내 설움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향해 뻗어나갔다.
이래서 결혼이 문제다. 자유로워야 할 인간을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으려고 하니 당연히 일이 터질 수밖에.
부장님만 봐도 그렇다. 평소에는 잘만 지내는 사람이었는데, 결혼 문제가 엮이니 이렇게 고통받지 않나.
그러니 결혼은 피해야 한다. 오직 연애를 즐기며, 자유를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다들 그걸 몰라.’
자유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스스로 구속의 길로 가는 불나방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심히 안타깝다.
뭐, 안타깝지만 어쩌겠나. 본인들의 선택인 것을.
‘이미 늦기도 했고.’
부장님은 이제 무를 수도 없다. 마르게타 공녀와의 관계가 진전된 순간부터, 부장님에게 남은 건 오직 직진뿐이니.
안타까운 마음에 아카데미 방향으로 살짝 고개를 꾸벅였다. 명복은 이걸로 빌겠습니다, 부장님.
그리고 적당히 바람도 쐤으니 집무실로 돌아가려는 찰나, 품 속의 통신구가 빛을 뿜었다.
– 라파예트 씨.
통신구를 작동하자 남색 머리를 가진 여인이 나타났다.
“크리스티나 양.”
반가운 얼굴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행복을 누리기는 쉬운데.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