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04)
요즘 인기 스타가 된 기분이다. 어디를 가든 화려한 시선이 나를 감싼다.
얼마 전까지는 이런 뜨거운 시선을 받지 못했다. 내가 사람을 최대한 피해 다니기도 했고, 애초에 누군가를 마주치더라도 상대가 알아서 걸음을 돌렸다. 지나가다 감찰부장을 만나는 건 산책 중 캥거루를 만나는 것이나 다름 없기에.
시바 저게 왜 여기 있어, 같은 감정과 잘못 건드리면 위험하다, 라는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존재. 그게 얼마 전까지의 나였다.
“마종공께서 저분을 고르셨다고?”
“아버지께서 분명 그리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보면 피해야 하는 캥거루’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구경할 만한 사파리 맹수’가 돼버렸다.
‘망할.’
수치스럽다. 본인들은 멀리서 속닥거린다고 생각하겠지만 다 들린다. 원래 자신을 향한 시선과 속삭임은 기이할 정도로 잘 느껴지지 않나.
하지만 여기서 불쾌한 반응을 보이면 저 학생들에게 인생의 트라우마를 선물하게 된다. 그건 참아야지.
그렇기에 애써 표정을 가다듬으며 걸음을 옮겼다.
‘미치겠네.’
물론 힘든 일이었다. 안전거리는 유지하지만 은근히 힐끔거리는 시선, 피하기는커녕 고의로 찾아오는 게 아닌가 하는 마주침.
차라리 아카데미에 처음 왔을 때부터 구경거리였다면 모를까, 너무 갑작스러운 관심이라 정신이 나갈 것 같다. 과도한 관심은 동물에게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알아줬으면.
결국 동아리실에 가까워지고 나서야 미친 듯이 쏟아지는 시선을 떨쳐낼 수 있었다.
‘왕족은 무섭냐.’
동아리실에 들어가니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들러붙던 것들이 왕족들의 보금자리에는 차마 오지 못하네.
물론 이해한다. 나도 여기가 직장이 아니었다면 근처도 안 왔을 테니.
그리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힐끔거리는 것도 이해한다.
‘마종공의 예비 반려.’
듣기만 해도 호기심이 샘솟는 마성의 문장.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홀로 살아온, 엘프의 피가 흐르는 공작이 마음에 품은 남자.
사교에 민감한 귀족들이 그 치트키 같은 문장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나도 마종공의 반려가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개처럼 달려가 구경할 의지가 충만하니까.
그 생각과 함께 거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기 있네.’
거울에 비친 나는 실소를 짓고 있었다. 굳이 개처럼 달려갈 필요가 어디 있나. 이렇게 쉽게 구경할 수 있는 것을.
와, 너무 기쁜 걸.
동아리 시간이 이리도 편한 적은 처음이다.
제국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아카데미에 비해 동아리는 절반이 타국인이다. 물론 타국인 입장에서도 마종공의 혼인 소식은 신기한 일이지만, 그래도 제국인만큼 크게 와닿지는 않은 상황.
덕분에 동아리 시간만큼은 상대적으로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그래도 1년 정도 같이 지냈다고 내 안식처 역할은 하─
“형, 연회 때 일 얘기해 줄 수 있어?”
아니었네?
잠잠하던 에리히의 기습 발언에 쿠키를 집던 손이 멈추고 말았다.
‘이 새끼가.’
가장 예상치 못한 사람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공격해왔다.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생이 비수를 박을 줄은 몰랐다.
내가 너한테 못해준 게…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타이밍에 그 말은 심하지 않냐. 심지어 근처에 있던 부원들도 놀란 듯이 에리히를 바라봤다.
약간의 원망을 담은 눈으로 에리히를 보자, 에리히가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어머니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성화셔서…”
‘아.’
그 말에 원망이 가라 앉았다. 정신이 없어서 가문 생각을 못했네.
확실히 이번 사태에서 나와 마르게타 다음 가는 피해자는 크라시우스 가문일 거다. 자고 일어나니 한순간에 마종공을 며느리로 들이게 생겼으니까.
‘미친 단어다.’
스스로 생각하고도 정신이 아찔하다. 마종공과 사돈 관계라고 해도 보통 일이 아닌데, 마종공이 며느리? 시어머니가 아니라 며느리?
아마 어머니는 손발이 덜덜 나고 눈물이 떨리는 상황일 거다. 마흔도 되지 못한 시어머니, 반면 100이 넘은 며느리.
놀랍다. 제국의 법도가 복잡하고도 기괴하구나.
“어머니한테는 내가 말씀드릴게.”
“응.”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에리히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세상 평온한 얼굴로 차를 한 모금.
‘미안하다.’
순간 요 며칠 사이에 에리히가 받았을 압박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도대체 무슨 영문이냐고 쪼아댔을 가문, 나보다 만만한 에리히에게 몰렸을 귀족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진실만을 울부짖었을 에리히. 환장의 삼박자가 아닌가.
지금 보니 다크서클도 짙어진 것 같다. 피곤과는 거리가 멀었던 녀석이.
“…용돈 필요하냐?”
“어?”
난데없는 말에 에리히가 눈만 깜빡였다.
나도 너무 뜬금없는 말이라는 건 안다. 평소에 금전은커녕 사소한 선물도 주는 편이 아니었으니. 칙칙한 남자들끼리 뭐 그런 아기자기한 짓을 해.
하지만 이번만큼은 뭐라도 챙겨주고 싶다.
희미한 형제애가 마종공 덕분에 부활했다…
***
갑자기 용돈을 주겠다는 말은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내가 시달린 걸 생각하면 받아 마땅한 돈 같기는 하다.
원래 주말이 끝나고 새로운 주가 시작되면 피곤한 법이다. 오죽하면 한 주가 시작되는 날은 피조물의 나태를 경계하기 위한 에넨의 시련이라고 부르겠나.
하지만 이번 시련은 조금, 아니 너무 가혹했다.
“에리히.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응?”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날아온 질문. 적당히 안면을 트고 인사 정도만 나눈 친구의 말이었지만, 오히려 그 정도 관계임에도 먼저 말을 건 거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겠지.
그래서 말하라고 했다. 알면 답해주고, 모르면 모른다고 해주면 그만이니까.
“마종공 각하께서 감찰부장께 청혼을 했다던데.”
…?
머리가 굳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때 알았다.
그 뒤로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 새끼, 아니 그 친구를 시작으로 온갖 귀족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우리 반, 옆 반, 2학년, 3학년, 심지어 간혹 교직원.
“글쎄, 잘 모르겠다.”
진짜 모른다. 형이 마종공에게 청혼을 받았다고? 그런 소식 너희한테 처음 들어.
일단 최대한 둘러댔다. 나도 자세한 건 모른다고, 확실하지는 않으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말라고.
그래, 아마 오해가 있을 거다. 그런 대형 사건이면 나름 가족인 내가 모를 리 없지 않나.
– 에리히. 칼한테 무슨 얘기 못 들었니?
“…….”
그리고 점심 시간에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헛소문이 아니라 진짜라는 걸 깨달았다.
예상치 못한 충격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진짜라고? 진짜 형이 마종공한테 청혼을 받았다고?
‘공녀님은?’
본능적으로 그 생각이 들었다.
마종공이 형을 노리면 공녀님은 어떻게 되는 거지? 마종공이 두 번째 부인이 되는 건 상상이 안 되는데, 그렇다고 공녀님을 밀어내고 첫 번째가 되는 건 더욱 상상이 안 된다.
‘루이제는?’
만약 마종공이 형의 첫 번째 부인이 되면 루이제가 붕 뜨게 된다. 다행히 루이제가 공녀님과는 친하지만, 마종공과는 아무런 안면도 없잖아.
그나마 공녀님은 첫 번째에서 밀리더라도 같은 공작가라는 체면으로 부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루이제는? 마종공이 안면도 없는 남작가 영애를 용납할까?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무슨 일인지 물어봐달라는 어머니의 간청, 아는 거를 뱉어내라는 귀족들의 압박, 그리고 루이제의 미래.
…솔직히 나를 찬 사람의 혼사를 걱정하는 게 머저리 같기는 한데, 그래도 친구 아닌가. ‘내가 가질 수 없으니 부숴주겠다!’ 같은 건 옛날 소설에나 나올 진부한 악역이고.
‘답답하긴.’
형에게 받은 용돈을 챙기며 루이제를 살피자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소식을 들었는지 안절부절 못하는 루이제가 보였으니.
아니, 본인은 나름대로 태연한 척 하려는 것 같지만 누가 봐도 동요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가.’
그나마 루이제의 눈빛은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기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동안 보는 사람이 답답하게 굴던 루이제지만, 지금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위기에 몰리고 나니 움직일 의지가 생긴 것 같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아무리 루이제가 마종공과 안면이 없다고 해도, 결국 결혼은 형이 결정하는 거 아니겠나.
그리고 그 생각은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같았다.
‘지금?’
‘지금.’
류티스와 마주친 시선. 빠르게 오고 간 눈의 대화.
“아, 나 교실에 뭔가 두고 와서. 잠시만 다녀올게.”
빠른 시선 교환 끝에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
저 새끼들 청년 치매인가?
“아, 나 교실에 뭔가 두고 와서. 잠시만 다녀올게.”
처음 에리히가 입을 열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너도냐? 같이 가지.”
류티스가 일어났을 때도 그렇구나, 싶었다.
그 뒤로 아인테르, 라테르, 타니안까지 줄줄이 나갈 때는 차마 잡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대륙의 미래는 대체.’
창창한 청년들이 벌써 건망증이라니.
루이제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지 잠시 벙찐 표정이었지만, 금방 헤헤 웃음을 지었다.
“다들 서둘러서 왔나 봐요.”
“그래, 서둘렀나 보다.”
루이제의 말에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왕족들의 명예를 생각해서 청년 치매가 아니라 서두른 거라고 쳐주자.
그리고 다시 침묵. 딱히 단둘이 있다고 어색한 사이는 아니지만, 갑자기 다섯이나 되는 인원이 우르르 나가서 대화에 공백이 생기고 말았다.
“저기, 오라버니.”
“응. 말해.”
언제나 대화의 중심인 루이제는 그 찰나의 공백도 용납하지 않았지만.
“마종공 각하…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다고 공백을 이렇게 메꿀 필요는 없지 않니.
겨우 회피한 비수가 다시 날아오자 쓴웃음이 지어졌다. 역시 밝고 해맑은 루이제도 귀족은 귀족인가 보다.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는 걸 보니.
“글쎄, 과분한 호의를 주시는 분이지.”
고민 끝에 조심스레 뱉은 말.
마종공이 싫은 건 아니다. 정말 과분한 호의를 주는데 어찌 싫어할 수 있을까. 단지 그 호의의 성격이 전혀 예상치 못한 성격이라 당혹스러울 뿐.
“그런가요?”
그 말에 루이제는 살며시 시선을 내리 깔았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마음을 남들한테 전부 알린 거잖아요.”
“대단하긴 하지…”
무심코 동감하고 말았다. 대단하기는 하다. 그 스케일이 너무 커서 대단해.
“저는 한 사람한테 마음을 보이는 것도 무서웠는데…”
루이제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신의 손만 매만졌다. 마음을 보이는 게 무서웠다라…
‘언니 얘기인가.’
확실히 예전의 루이제는 트라우마를 꽁꽁 감췄다. 하지만 지금은 남에게 털어놓은 상태 아닌가. 과거의 일로 아직까지 자괴감을 가지는 건 옳지 못하다.
“지금 당당하면 되잖아.”
“그렇겠죠?”
“그래.”
내 위로에 루이제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듣고 싶은 말을 들은 것처럼.
“그럼 저도, 오라버니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나요?”
“그─”
래…?
습관적으로 대답을 하려다 멈추고 말았다. 지금 뭐라고?
‘고문으로서 좋아한다는 거지?’
멈췄던 머리가 다시 돌아갔다. 하필 마종공 쇼크를 받은 직후라 그런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였네.
‘…그런 거지?’
하지만 루이제의 표정을 보자 입이 열리지 않았다.
빨개진 얼굴, 떨리면서도 나만 바라보는 눈, 안절부절 못하는 손.
나는 눈치가 둔한 거지, 머리가 없는 게 아니다.
하지만 오늘 하루는 그냥 멍청하고 싶은 욕구가 솟았다.
‘…못 들었다고 할까?’
물론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이다.